# 96 < 한국 영화 시장 진출 (1) >
162.
김포 국제 공항.
비행기 한 대가 미끄러지듯 활주로에 내려앉았다.
비행기에서 내린 사람은 나를 비롯한 여러 명의 회사 관계자들이었다.
나의 공식적인 한국 방문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앞서 첫 번째 방문은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초청에 따른 다소 의례적인 방문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이번 나의 방문은 한국 영화 산업과 관련된 보다 실질적인 목적을 가지고 방문한 것이었다.
‘영화사 Film Kim 덕분에 할리우드 영화계의 발전이 무려 10년 이상 앞당겨졌다는 평가를 받게 되었지. 그동안 내가 제작한 수십 편의 영화는 할리우드 영화 산업을 내용적인 면에서나 기술적인 면에서나 엄청나게 발전시켜 왔으니까. 그리고 이는 홍콩 쪽에서도 마찬가지였어. Film Kim이 홍콩 현지 영화시장에 진출하면서 ‘홍콩 느와르’라는 새로운 장르가 만들어졌고, 그 덕분에 홍콩 영화는 아시아 영화시장을 휩쓸며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하게 되었으니까.’
따라서 이번 Film Kim의 한국 진출은,
할리우드나 홍콩에서와 마찬가지로 한국 영화 시장을 수십 년 이상 앞당길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불러일으키고 있었다.
그 때문인지,
공항에는 이미 나의 한국 방문 소식을 듣고 찾아온 기자들로 북새통을 이루고 있었다.
- 번쩍! 번쩍!
- 찰칵! 찰칵!
내가 공항에 모습을 드러내자, 수많은 취재진의 카메라 플래시 세례가 터져 나왔다.
연이은 기자들의 질문 공세도 쏟아졌다.
그 덕분에 나는 현재 한국 내에서 나의 인기가 어느 정도인지, 나의 행보가 얼마나 한국 국민의 큰 주목을 받고 있는지를 새삼 느낄 수 있었다.
‘하긴, 당연히 그럴 수밖에 없을 테지. 동양인 최초의 할리우드 영화감독이자, 최초의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자가 바로 나니까. 게다가 지금까지 내가 제작한 모든 영화가 다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두며 수백억 달러가 넘는 돈을 벌어들였으니까.’
“누가 보면......”
공항 앞에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오르기가 무섭게,
레이첼이 나를 향해 웃으며 말했다.
이번 한국 방문에는 특별히 그녀도 함께 동행하기로 한 것이다.
“영화감독이 아니라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가 방문한 줄 알겠어요, 호호.”
“한국이라는 나라가 좀 그래요. 한국계 외국인이 해외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 다들 자기 일처럼 기뻐하죠. 그 대상이 미국과 같은 선진국인 경우는 더더욱 그렇고요.”
“그건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 아닌가요? 자국 출신의 사람이 해외에서 큰 성공을 거두면 국위선양에도 큰 도움이 되니까요.”
“그렇긴 하네요. 그나저나 기자들이 레이첼에 대해서도 상당한 관심을 보이던데요?”
“그야 내가 유명한 킴의 여자친구니까 그렇죠.”
“내가 보기에는 레이첼의 빼어난 외모가 더 큰 이유인 것 같은데요? 그래서 몇몇 기자들은 레이첼을 감독이 아니라 배우로 착각하고 질문하는 경우도 있었잖아요.”
“뭐, 그건 나도 기분 나쁘지는 않더라고요, 호호.”
“내친김에 이번에 한국에서 제작하는 영화에 레이첼도 한번 출연해볼래요? 레이첼 정도의 외모면 웬만한 할리우드 여배우 못지않은 인기를 얻을 수도 있을 텐데.”
“으, 사양할게요. 내가 다른 건 몰라도 연기는 완전 젬병이니까. 그런데, 킴.”
“네.”
“이번에 킴이 한국에서 만들려고 하는 영화는 어떤 영화예요? 듣자니 원작이 이미 있는 영화라고 하던데.”
“그게......”
내가 대답 대신 가방에서 시나리오 책자 하나를 꺼내 레이첼의 앞에 내밀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이 적혀 있었다.
<장군의 아들>
한국 영화사에 큰 족적을 남긴 유명 영화였다.
***
1980년대 말,
한국 영화 산업은 할리우드와 비교하면 무척이나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영화 제작 환경이나 극장 여건도 그랬지만, 특히 내용적인 면에서도 수십 년 이상 뒤떨어져 있었다.
당시 가장 인기 있는 영화가 <애마 부인>이라는 에로영화였을 정도이니, 그 수준을 대략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주된 이유는 정부의 극심한 검열 제도와 더불어 홍콩 영화와 할리우드 영화와 같은 외화 수입의 증가에 있었지.’
최근 한국 극장가는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홍콩 느와르 영화와 같은 인기 외화가 휩쓸면서 한국 영화의 스크린 점유율은 갈수록 낮아지고 있었다.
급기야 1980년대를 통틀어 국산 영화가 외산 영화보다 관람객 수가 더 많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을 정도가 되었다.
하지만,
‘1990년대 들어 한국 영화사의 전설과도 같은 작품이 하나 등장을 하게 되지. 한국 최초의 액션 블록버스터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영화 <장군의 아들>이 바로 그것이고.’
<장군의 아들>은 당시로서는 무척이나 획기적인 영화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전까지 한국 영화는 사랑 이야기나 드라마적 소재가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영화 제작에 들어가는 제작비 또한 소규모의 독립 영화 수준에 머무르고 있었다.
그런데,
<장군의 아들>은 이 같은 기존 한국 영화의 틀을 완전히 깨부순 영화였다.
일제 강점기 유명한 주먹패였던 김두한이라는 인물을 소재로 한 액션 영화를,
그것도 당시 한국 영화계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의 거액인 8억 원의 제작비를 투입해 만든 영화였기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영화의 흥행 성적 또한 엄청났지. 전국적으로 무려 200만 명이 넘는 관객 수를 기록하며, 한국 영화 사상 최초로 100만 관객을 돌파한 영화가 되었으니까.’
그랬다.
Film Kim의 한국 영화 시장 진출을 알릴 첫 번째 영화로 내가 선택한 것은 바로 한국 최초의 블록버스터 영화라고 할 수 있는 <장군의 아들>이었다.
하지만 단순히 전생의 영화를 복제하는 수준에서 그칠 생각은 아니었다.
현재 Film Kim이 보유하고 있는 최신 영화 제작 도구와 기술들,
여기에 내가 그동안 할리우드 영화를 제작하며 쌓아온 다양한 연출 경험과 기법들을 접목시켜,
전생의 그것보다 훨씬 뛰어난 퀄리티를 가진 영화를 만들 계획을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1990년대 들어 한국 사회가 민주화되면서 이전까지는 금기시되었던 사회 문제들을 다룬 영화가 본격적으로 제작되고, 이에 한국 영화계도 점점 발전을 거듭하게 되지. 그 결과 2000년대 들어서면 천만 관객을 동원하는 영화도 심심찮게 등장하고, 역으로 해외에 수출되는 영화까지 나타나게 되니까 말이야.’
전생의 기억 덕분에,
한국 영화 산업의 발전 과정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나는 일찌감치 이 분야에 진출함으로써 추후 CV와 로테와 같은 대기업들이 장악하게 될 한국 영화 시장을 선점하려는 계획 또한 더불어 세우고 있었던 것이다.
‘그 시작이 될 영화가 바로 이번에 제작할 영화 <장군의 아들>인 것이고.’
163.
영화사 Film Kim 코리아.
한국 영화 시장 진출을 위해 내가 한국 영화 산업의 중심지인 충무로 인근에 세운 회사이다.
Film Kim의 한국 진출은 정부, 특히 담당 부처인 문화부의 적극적인 지원하에서 이루어졌다.
우리 회사가 한국 영화 산업의 발전에 도움을 주는 대신 정부는 각종 세제 혜택과 영화 제작비를 지원해주기로 한 것이다.
아울러 앞으로 진행될 다양한 영화 관련 산업에 대한 인허가 문제도 적극적으로 해결해줄 것을 약속했다.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세계적인 명감독인 내가 직접 한국 영화 산업의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낮은 국민 지지율을 높일 수 있는 좋은 방편이 될 수 있을 테니까.’
물론,
그 과정에서 생기는 막대한 수익은 모두 우리 Film Kim의 몫이 될 것이었다.
“조폭 영화요?”
조대성 전무가 놀란 표정으로 나를 향해 말했다.
현재 그는 신생 영화사인 Film Kim 한국 지점의 업무를 총책임 지고 있었다.
물론 명목상의 사장은 내가 맡고 있었고.
“예. 근데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그게, 요즘 시대가 제아무리 민주화가 이루어진 시대라고는 하지만 이런 주제는 무척이나 민감한 주제라서요. 특히 지난 정부도 그렇고, 이번 정부도 그렇고 조직 폭력배를 사회악의 하나로 규정하고, 이를 뿌리 뽑기 위한 다양한 정책들을 내놓고 있는 상황인데, 만에 하나 우리 회사가 이들을 미화하는 영화라도 만들면 정부가 가만히 있겠습니까?”
“조 전무가 뭘 걱정하는지는 나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너무 걱정하지는 마세요. 이번 영화에 등장하는 조폭들은 조 전무가 생각하는 그런 류의 조폭이 아니니까요.”
“예? 그게 무슨......”
“백문이 불여일견이라고, 일단 시나리오 내용을 먼저 한번 읽어보는 것이 좋을 것 같군요. 그래야 영화 제작에 대한 세부적인 사항들을 논의할 수 있을 테니까요.”
내가 조대성 전무 앞에 시나리오 책자 하나를 내려놓았다.
시나리오의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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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일제 강점기.
고아 출신으로 거지 생활을 전전하던 김두한은 종로의 유명 극장 ‘우미관’에 취직을 하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김두한은 우미관 패의 우두머리를 만나러 온 망치라는 건달을 때려눕히고 종로 주먹계에 입문한다.
이 과정에서 당시 학생 주먹패의 대장이었던 신마적은 김두한이 독립군 장군인 김좌진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알고 뒤에서 그를 키워준다.
한편 일본계 야쿠자인 하야시 패거리들이 점점 세력을 확장하며 종로까지 진출하게 된다.
이에 김두한은 하야시 패거리들로부터 한국인 상점들을 보호해주며 종로에서의 자신의 세력을 점점 키워나간다.
그 무렵 우미관 조직의 우두머리가 일본인 형사를 폭행한 죄목으로 체포되면서 김두한이 조직의 공식적인 우두머리가 된다.
이후 김두한은 호시탐탐 종로를 넘보는 하야시 패거리와 한판 대격돌을 벌이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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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손에 들고 있던 시나리오 책자를 다시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조대성 전무가 말했다.
“이번 영화는 단순한 조폭 영화가 아니라, 일제 강점기 일본의 조폭으로부터 우리 국민을 보호한 일종의 협객(俠客)과 같은 성격을 가진 조폭을 그린 영화라는 말이군요?”
“예. 게다가 일제 강점기 한국인들은 일본인에 비해 상대적인 차별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비록 폭력배이긴 하지만 조선인인 김두한이 타고난 힘을 바탕으로 일본인 폭력배 두목을 제압하는 모습을 보여주면 이를 보는 관객들이 굉장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을 것이고요.”
“흠. 듣고 보니, 주인공인 김두한이라는 인물이 영화적 소재로는 매우 매력적인 인물이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물론입니다.”
“그럼 사장님. 제가 무엇부터 준비하면 되겠습니까?”
“일단 영화의 원작 소설 판권부터 우리가 확보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제가 쓴 이 시나리오는 동명의 소설을 바탕으로 쓴 것인 만큼, 판권 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습니다. 그런 다음 곧바로 실제적인 영화 제작 준비에 들어가면 될 듯하고요.”
“알겠습니다. 그럼 제가 지금 바로 소설의 원작자를 만나 판권 협상을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주세요. 아, 그리고......”
내가 다시 조대성 전무를 향해 말했다.
“한국 영화감독 한 분을 제가 만나볼 수 있게 약속을 좀 잡아주세요.”
“영화감독요?”
“네. 아무래도 제가 한국 영화 제작은 이번이 처음인 만큼 연출 경험이 많은 현지 감독님의 도움을 좀 받아야 할 것 같아서요.”
“알겠습니다. 근데 그 감독님 이름이 어떻게 됩니까?”
“임건택 감독이라고, 이곳 한국에서는 꽤 유명한 분이라고 들었습니다.”
임건택 감독.
전생에서 영화 <장군의 아들>을 실제로 연출한 영화감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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