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4 < 본격적인 CG 영화 시대의 개막 (2) >
158.
픽사(Pixar)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ILM과 더불어 Film Kim 산하의 자회사인 픽사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전문적으로 만드는 곳이었다.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애니메이션의 역사는 꽤 오래됐다.
그 대표적인 곳이 바로 할리우드 빅식스(Big Six) 영화사 가운데 하나인 ‘월트 디즈니’로, 이미 1920년대부터 계속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어오고 있었다.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인 <미키마우스>, 그리고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인 <백설 공주와 일곱 난쟁이> 등이 바로 그것이었다.
‘중요한 것은 지금까지 월트 디즈니가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는 모두 2D로 만들어졌다는 것이지. 2D 애니메이션은 전문 애니메이터들이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모두 손으로 직접 그려서 만든 영화를 뜻하는 것이고.’
하지만 픽사 애니메이션은 달랐다.
현재 픽사에서는 컴퓨터를 이용한 입체감 있는 CG 애니메이션 개발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었는데,
특히 지난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엄청난 기술 노하우를 쌓아오고 있었다.
‘원래 픽사는 유명 컴퓨터 프로그래머를 거쳐 전통적인 애니메이션 강호인 월트 디즈니에 인수되지. 그 덕분에 월트 디즈니는 애니메이션 영화시장에서는 거의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고. 하지만 이번 생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지게 되었어. 전생의 기억 덕분에 머잖아 픽사가 세계 애니메이션 영화 시장을 주름잡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던 나는 이미 오래전에 픽사를 인수했고, 또 여기에 많은 연구 개발비를 투자해서 앞으로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을 완벽하게 장악할 준비를 해왔던 것이지.’
거의 10년 가까이 계속 이어져 온 픽사에 대한 나의 투자가,
이제 드디어 그 빛을 발할 때가 온 것이다.
그 시작은 바로,
세계 CG 애니메이션 역사에 길이 남을 명작 영화 <토이 스토리(Toy Story)>였다.
***
픽사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지하 영사실.
회사 운영진과 프로그래머, 그래픽 디자이너 등이 한자리에 모여 영화 시사회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늘은 픽사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인 <토이 스토리>의 기술 시사회가 있는 날.
이 때문에 영화에 참여한 스태프들이 모두 한자리에 모인 것이었다.
‘기술 시사회는 영화감독과 제작진, 투자자 등 영화 제작에 직접적으로 관여한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시사회로 1차로 제작된 영화를 함께 보면서 최종적인 수정 방향을 논의하는 자리이기도 하지.’
만약 오늘 이 자리에서 별다른 문제가 발견되지 않으면,
영화는 곧바로 개봉 일정을 잡고, 극장 상영을 준비하게 된다.
“자,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조감독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픽사 애니메이션의 상징과도 같은 마스코트 ‘룩소 2세’가 화면에 등장하면서 본격적인 영화가 시작되었다.
-----
미국의 어느 평범한 가정집.
앤디가 자신의 장난감을 가지고 놀고 있었다.
앤디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은 단연 ‘우디’였다.
우디는 카우보이 형상을 한 인형으로 앤디의 작년 생일 선물이기도 했다.
“우디 넌 내가 가장 아끼는 부관이야.”
한참 동안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앤디의 귀에 엄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앤디, 어디 있니? 얼른 와서 저녁 먹어야지.”
“네, 지금 가요.”
앤디가 우디를 바닥에 내려놓고 허겁지겁 방을 나갔다.
그런데.
갑자기 인형인 우디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말을 하기 시작했다.
“자, 다들 모여봐. 곧 간부 회의를 시작할 테니까.”
우디의 말에 주변에 있던 인형들도 하나둘 몸을 움직이며 우디의 곁에 모여들기 시작했다.
어렸을 적 누구나 한 번쯤 해보는 상상.
그것은 바로 주인 없는 방에서 장난감이 살아서 움직일지도 모른다는 그 엉뚱한 상상이 바로 이곳 앤디의 방에서 실현되고 있었던 것이다.
------
‘전생에서도 이 <토이 스토리>라는 영화는 세계 애니메이션 영화시장을 떠들썩하게 만들었지. 역사상 최초의 풀 CG 애니메이션이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이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끈 것은 단순히 기술적인 부분 때문만은 아니었어. 뛰어난 CG 기술력과 더불어 짜임새 있는 이야기 구조가 있었기 때문에 영화가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지.’
내가 다시 스크린으로 눈을 돌렸다.
화면에는 ‘우디’와 더불어 영화의 또 다른 주인공이 될 장난감 ‘버즈’가 등장하고 있었다.
------
앤디의 생일날.
새 장난감 선물을 받아든 앤디가 뛸 듯이 기뻐하고 있었다.
우주인을 형상화한 최신 장난감 ‘버즈’는 앤디가 요즘 너무나도 갖고 싶어 하던 장난감이었다.
이로 인해 앤디가 가장 좋아하는 장난감 1순위는 순식간에 우디에서 버즈로 바뀌게 된다.
더불어 지금까지 우디를 따르던 다른 장난감들도 버즈를 더 따르게 된다.
졸지에 2인자 자리로 전락하게 된 우디.
버즈를 시기하고 질투하던 우디는 급기야 버즈를 함정에 빠뜨리게 되는데,
이는 버즈는 물론 우디 자신마저도 큰 위험에 빠지게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장난감을 부수고 고문하는 것을 즐기는 나쁜 아이 시드의 손에 우디와 버즈가 들어가게 된 것이다.
이에 우디와 버즈는 다른 장난감 친구들의 도움을 받아 시드의 집을 탈출해 다시 원래 주인인 앤디의 곁으로 돌아가기 위한 대모험을 시작하게 된다.
------
대략 80분 정도의 러닝타임이 지나고,
영화 <토이 스토리>의 기술 시사회가 모두 끝이 났다.
이와 동시에 옆자리에 앉아 있던 찰스 레인 사장이 조심스럽게 나에게 물었다.
“어떻습니까, 킴. 킴이 생각했던 것만큼 영화가 잘 나왔습니까?”
“역시......”
내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픽사의 기술력은 대단하군요. 그동안 내가 픽사에 많은 공을 들인 보람이 있습니다.”
“지금 킴의 그 말은 이번 영화의 완성도가 아주 만족스럽다는 뜻입니까?”
“물론입니다. 지금 당장 극장 상영을 시작해도 손색이 없을 만큼요.”
“다행이군요. 저는 혹시나 킴이 마음에 들어 하지 않으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픽사의 첫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인 <토이 스토리>는,
내가 직접 제작에 참여한 영화이다.
더불어 내 기억 속에 남아 있는 실제 영화의 각본가와 연출가들도 대거 영화에 참여했다.
하지만.
‘비교적 빠르고 손쉬웠던 각본과 스토리보드 제작에 비해 실제 이를 애니메이션으로 만드는 과정은 무척이나 어렵고 오래 걸렸지. 현재의 기술 수준으로 무려 90분에 달하는 장편 애니메이션을, 그것도 CG 기술을 이용한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으니까.’
CG 애니메이션 제작은 실사 CG 영화보다 훨씬 더 손이 많이 가는 작업이다.
가장 먼저 모델링 프로그램을 통해 캐릭터와 배경을 제작하고, 이를 각 프레임 별로 조금씩 움직여가며 동작을 표현한다.
이후 랜더링 작업을 통해 질감을 살리고, 후보정 작업을 통해 각종 효과를 삽입한다.
그리고 이 모든 작업은 철저한 수학적 계산과 프로그래밍을 통해 이루어진다.
‘영화 <토이 스토리>의 스토리보드가 나온 지도 벌써 3년이 넘게 지났지. 이 기간 동안 픽사에서는 모든 직원들이 오직 이 영화를 애니메이션화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지금의 <토이 스토리>가 탄생을 하게 되었어.’
“그럼 이제 슬슬......”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개봉관 확보에 들어가는 것이 좋을 듯하군요.”
“지금이 겨울 방학 기간이니, 어린이 관객들이 꽤 많이 극장을 찾게 되겠군요.”
“아이들 뿐만이 아닙니다.”
“예?”
“이번 우리 영화 <토이 스토리>는 아이들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충분히 좋아할 만한 영화라고요. 영화 스토리상 자신의 유년 시절 향수를 충분히 자극할 수 있을 테니까요.”
159.
영화사 Film Kim.
사무실에 들어서자 레이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어디 갔다 오는 길이에요, 킴?”
“픽사 스튜디오요. 예전부터 픽사가 만들던 장편 애니메이션 영화 <토이 스토리>가 드디어 완성되었거든요. 그래서 기술 시사회에 참석하고 오는 길이에요.”
“그러고 보니, <토이 스토리> 그 영화 꽤 오랫동안 만든 것 같네요. 시나리오 보드 완성한 지가 3년은 족히 된 것 같은데.”
“원래 애니메이션 제작이 좀 오래 걸리는 편이잖아요. 한 프레임 한 프레임 모두 프로그래머들이 수작업해야 하니까요.”
“그건 그렇고, 킴.”
레이첼이 다시 말했다.
“킴이 말한 ILM의 기업 공개(IPO) 건 말이에요, 아직 상장 심사도 완료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시장 반응이 아주 뜨거워요.”
“그래요?”
“네. 앞선 여러 편의 영화로 ILM의 CG 기술력이 증명됐고, 또 그 덕분에 많은 영화사가 ILM에 CG 작업을 의뢰해오고 있으니까 말이에요. 그래서 상장만 되면 회사의 주가가 못해도 몇 배는 오를 거라는 소문이 주식 시장에 나돌고 있더라고요.”
“잘 됐군요. 덕분에 레이첼이나 나나 모두 돈방석에 앉게 되었으니까 말이에요, 하하하.”
올해,
ILM은 기업 공개를 단행하기로 결정됐다.
최근 할리우드 영화계에 CG 영화 산업이 본격화되기 시작했고, 이에 걸맞는 기술 개발을 위해서는 막대한 연구 자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그동안은 회사 자체 자금만으로도 ILM을 운영하는데 큰 무리는 없었지. 영화 산업에서 CG가 차지하는 비중은 그리 크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앞으로는 상황이 달라지지. 앞으로 만들어지는 영화들은 대부분 CG를 사용하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할리우드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에서 우리 ILM에 CG 작업을 의뢰해 올 것이 분명해. 이를 위해서는 기업 공개를 통해 회사의 규모를 지금보다 훨씬 키울 필요가 있고.’
내가 레이첼에게 ILM의 주식 시장 상장 업무를 맡긴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ILM의 상장이 성공적으로 끝나면 곧바로 픽사도 기업 공개를 진행할 생각이에요.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에 개봉할 영화 <토이 스토리>가 큰 성공을 거두어야겠지만.”
“당연히 성공하겠죠. 다른 사람도 아닌 킴이 직접 제작에 참여한 영화인데.”
레이첼이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내가 투자와 제작에 참여한 영화는 단 한 편도 예외 없이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었다.
“나 너무 믿지 마요, 레이첼. 원숭이도 가끔 나무에서 떨어질 때가 있는 법이니까.”
물론 이번 영화는 절대 아니고.
***
영화 <토이 스토리>가 본격적인 개봉 준비 단계에 돌입했다.
방학 시즌이 되면 의례 애니메이션 영화 하나쯤은 개봉되기 때문에 이번에도 크게 특별할 것은 없었다.
그런데.
“4천 개요?”
Film Kim 상무 이사직을 맡고 있는 조나단이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우리 회사의 영화 배급 업무를 총괄하고 있었다.
“예. 근데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저기, 사장님. 개봉관 4천 개는 블록버스터급 영화쯤 돼야 확보 가능한 숫자입니다. 그런데 겨우 어린이들을 상대로 한 애니메이션 영화 상영에 4천 개의 개봉관을 동원하는 건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그렇겠지.
어차피 애니메이션을 관람하러 극장을 찾은 아이들의 숫자는 빤하니까.
극장을 찾는 어른들은 대부분 아이의 보호자 역할로 온 것일 뿐이라서 상영 시간 내내 졸다가 나가기 일쑤니까.
‘하지만 이번 영화는 조금 성격이 다르지. 이번 영화는 일종의 어른들을 위한 동화의 성격도 가지고 있고, 그래서 남녀노소 누구나 즐겁게 볼 수 있는 애니메이션 영화이니까.’
전생의 기억 덕분에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어린이가 보는 만화 영화 정도로 치부되던 애니메이션 영화가 <토이 스토리>를 기점으로 어른들이 더 즐겨보는 영화 장르로 변화하게 된다는 것을.
“일단은 제 말대로 최대한 많은 개봉관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해주세요. 우리 Film Kim의 이름값이면 극장주들을 설득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게다가 마침 지금은 다른 영화사에서 준비하는 개봉작도 그리 많지 않으니, 개봉관을 확보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알겠습니다, 사장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