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91화 (91/145)

# 91 < Film Kim in ASIA (1) >

152.

- 부우우웅!

비행기 한 대가 힘차게 활주로를 날아올랐다.

목적지는 한국.

전생 이후 처음으로 밟게 되는 한국 땅이어서 그런지 왠지 모르게 가슴이 설레었다.

“도훈이 너 한국 가보는 거 처음이지?”

비행기 일등석 좌석에 나란히 몸을 누인 아버지가 나를 향해 물었다.

내가 당신보다 훨씬 더 한국이라는 나라에서 오래 살았다는 사실을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채.

“네, 아버지. 근데 한국이라는 나라는 어떤 나라예요?”

“글쎄, 나도 한국을 떠나온 지 너무 오래돼서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그래도 가서 보면 기억이 나겠지. 유년 시절과 청년 시절을 모두 그곳에서 보냈으니까.”

아버지의 대답에 내가 속으로 빙긋 웃음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버지가 미국으로 이민을 간 1950년대와 비교하면 지금의 한국은 엄청나게 눈부신 발전을 이루었다는 사실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서울 도착하면 우리 아버지 놀라 자빠질지도 모르겠군. 주변에 온통 논밭밖에 없던 서울이 고층 빌딩과 자동차로 뒤덮여 있는 모습을 보게 될 테니까 말이야, 흐흐.’

아니나 다를까.

한국에 도착한 아버지가 일명 ‘한강의 기적’을 이뤄낸 모습을 보고 한동안 입을 다물지 못했다.

“여, 여기가 진짜 한국이 맞아?”

“그런 것 같네요, 아버지. 시내에 온통 한국어로 쓰인 간판을 보면.”

“말도 안 돼! 어떻게 이 짧은 기간에 우리나라가 이렇게 큰 발전을 이룬 것이지?”

“아버지 그동안 한국에는 한 번도 안 와보신 거예요?”

“하루하루 먹고 살기도 바쁜 내가 올 틈이 있었겠냐? 간간이 한인타운 주민들을 통해 한국이 많이 발전했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차마 이 정도일 줄은 미처 몰랐다.”

연신 주변을 둘러보며 ‘어메이징’, ‘판타스틱’을 연발하는 아버지.

하지만 내가 관심 있는 것은 따로 있었다.

그것은 바로,

‘거리 곳곳에 붙어 있는 영화 포스터. 이걸 보면 현재 한국 영화가 어느 수준까지 와 있는지를 명확하게 알 수 있을 테니까.’

1980년대에는 극장주들이 영화 포스터를 직접 벽에 붙여놓고 영화를 홍보하던 시기였다.

그 덕분에 내가 지금은 다소 가물가물해져 버린 현재의 한국 영화 제작 수준을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그런데.

영화 포스터들이 즐비하게 붙여져 있는 벽 앞에 선 내가 현재 상영 중인 영화 한 편을 보고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그 영화는 바로,

<티라노의 발톱을 찾아서>

유명 코미디언 출신 영화 감독이 만든 공룡 영화였다.

문제는 이 영화의 수준이었다.

‘맙소사! 1980년대 말 한국 영화 수준이 매우 낮을 것이라고 짐작은 했지만, 막상 눈으로 확인을 하고 나니 이건 완전히 처참한 수준이군. 현재 할리우드에서는 CG를 이용해 공룡을 구현하는 단계까지 이르렀는데, 한국은 아직 사람이 직접 공룡 탈을 쓰고 연기를 하는 상황이니까 말이야.’

다른 영화들도 마찬가지였다.

<티라노의 발톱을 찾아서>와 나란히 붙어 있는 영화 포스터들은 기껏해야 3류 에로 영화나 유치한 코미디 영화가 전부였던 것이다.

***

한국 정부에서 마련해준 고급 호텔에 짐을 푼 아버지와 나는 곧바로 청와대로 이동했다.

이번에 한국을 방문한 우리를 대통령이 직접 저녁 만찬에 초대한 것이다.

“도훈이 네 덕분에 호강하는구나. 살다 살다 내가 대통령 각하를 다 만나보고 말이야.”

“뭘 이 정도 가지고 그러세요. 조만간 미국 대통령도 만나게 될 텐데.”

“뭐?”

“농담이에요, 농담, 흐흐.”

만찬은 형식적인 수준에서 끝이 났다.

감사패 전달, 그리고 이어지는 대통령의 공치사 정도가 전부였다.

중요한 것은 만찬이 끝나고 이루어진 조상우 문화부 장관과의 면담이었다.

내가 살던 시대 문화체육관광부의 전신(前身)인 문화부는 국가의 문화, 예술 사업을 총괄하는 부서였다.

특히 이 시기는 문화, 예술 분야에 대한 정부의 통제와 검열이 심한 시기였고, 그 때문에 이 분야에서 문화부의 권한은 절대적일 정도로 강했다.

“초청에 응해줘서 고맙소, 제임스 김. 덕분에 우리 정부의 대외적인 위신이 아주 높아졌다고 대통령 각하께서도 크게 기뻐하셨소, 하하하.”

“별말씀을요.”

“한국 오신 김에 내가 한 가지 부탁을 드려도 되겠습니까?”

“부탁이요?”

“예. 제임스 킴이야 워낙 능력 있고 유명한 영화 감독이니까, 우리나라 영화산업의 발전에도 큰 도움을 줄 수 있지 않겠소? 듣자니 제임스 킴의 영화사가 홍콩에 진출한 덕분에 홍콩 영화가 아시아 영화시장을 완전히 석권했다고 하더군요. 경제적인 파급 효과도 엄청나게 커졌고.”

“글쎄요......”

내가 별로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한국 영화계는 제가 현재 몸 담고 있는 할리우드 영화계와는 여건이 많이 달라서요.”

“제임스 김이 아직 잘 모르나 본데, 우리 한국은 정부의 영향력이 상당히 강한 나라요. 그래서 마음만 먹으면 제임스 김에게 많은 힘을 실어줄 수도 있소.”

“아무리 그래도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는 법입니다. 그것도 단기간에요.”

“지금 그 말은 우리나라 영화산업이 아무 것도 없는 불모지 수준이나 마찬가지라는 뜻입니까?”

‘당연하지. 당신도 할리우드에서 최신 기술을 동원한 CG 영화를 만들다가 공룡 탈을 뒤집어쓰고 만든 영화를 한번 보라고. 과연 나 같은 생각이 들지 않겠는지.’

“솔직히 말하면 그렇습니다. 제가 볼 때, 현재 한국 영화의 수준은 할리우드에 비해 최소 수십 년 이상은 뒤떨어져 있으니까요.”

“그 정도 쯤이야......”

조상우 장관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우리나라가 가진 저력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불과 30년 만에 수백 년이나 뒤떨어져 있던 서구의 경제 발전 수준을 따라가고 있으니까요, 하하.”

“경제와 문화는 완전히 다른 영역입니다. 경제적인 발전은 수십 년 만에 이루어낼 수 있을지 몰라도, 문화는 그 같은 비약적인 발전을 이루는 것이 몹시도 어려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제임스 김......”

계속되는 나의 거절에도 불구하고 한 치도 물러서지 않는 조상우 장관.

아무래도 대통령으로부터 나의 도움을 받아 한국의 영화산업을 발전시키라는 엄명(?)을 받았기 때문인 듯했다.

“정 그렇다면 이건 어떻습니까?”

조상우 장관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만약 제임스 김의 회사가 우리 한국에 진출하면 정부 차원에서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습니다. 제임스 김이 요구하는 어떤 조건이라도 제가 수용을 하겠다는 뜻입니다.”

“어떤...... 조건이라도요?”

“그렇습니다.”

순간,

내 머릿속을 번뜩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미국과 다른 한국 영화산업의 구조였다.

‘1948년 미국에서는 일명 ‘파라마운트 합의 명령’이라는 법령이 제정되면서 영화사들의 극장 소유가 금지되었지. 그 덕분에 미국 영화 산업에서는 제작과 상영업이 엄격하게 분리되었고 말이야.’

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달랐다.

한국에서는 파라마운트 합의 명령과 같은 법이 없었고, 그 덕분에 대형 영화사들이 자체적으로 극장을 설립해서 자사에서 만든 영화를 마음껏 상영할 수가 있었다.

‘그 대표적인 회사가 바로 CV와 로테 그룹이고. 이 두 회사는 각각 CVG와 로테 시네마라는 자사 소유의 극장 체인을 설립해 전국 스크린의 70% 이상을 점유하면서 한국 영화 산업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지. 그런데 지금 내가 만약 한국 정부로부터 이 같은 극장 사업 허가를 따내게 된다면......’

한국 영화 산업에 대한 독보적인 영향력과 더불어 여기에 뒤따르는 막대한 수익을 모두 우리 Film Kim의 것으로 가져올 수 있을 것이었다.

‘1990년대 중반 이후가 되면 홍콩 영화 산업이 사양길에 접어들게 되고, 대신 한국 영화가 아시아 영화시장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되지. 따라서 지금부터 미리 그 초석을 깔아두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

생각을 마친 내가 조상우 장관을 향해 말했다.

“좋습니다. 장관님의 부탁도 있고, 또 한국은 저와 아버지의 조국이기도 하니, 저도 한국 영화 산업의 발전에 일조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예. 미국으로 돌아가면 곧바로 Film Kim 한국 지점 설립 준비에 착수하겠습니다. 동시에 한국 영화 산업을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모두 발전시킬 수 있는 방안도 찾을 것이고요.”

대통령에게 큰 칭찬을 들을 생각 때문인지,

잔뜩 기분이 좋아진 표정으로 조상우 장관이 장관이 말했다.

“잘 생각하셨소, 제임스 김. 정부 차원에서도 제임스 김이 하는 일을 적극적으로 돕도록 하겠소.”

153.

한국 방문을 마친 나는,

곧바로 홍콩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Film Kim 홍콩 지점에 중요한 볼일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홍콩 국제 공항에 도착하자,

“사장님, 여기예요, 여기.”

미리 마중 나와 있던 미셸 예가 반가운 얼굴로 나를 맞았다.

현재 미셸 예는 Film Kim 홍콩 지사장직을 맡아 현지 영화 투자와 제작 사업을 총괄하고 있었다.

물론 어떤 영화에 투자할 것인지는 매번 내가 전화로 지시를 내리고 있었고.

“오래간만이네요, 미셸. 안 보는 사이에 더 예뻐진 것 같은데요?”

“호호, 그런가요?”

“아무래도 미셸에게 좋은 남자 친구가 생겼나 보네요. 그 왜, 여자들은 연애하면 더 예뻐진다고 하잖아요.”

“으, 진짜 그럴 시간이라도 있었으면 좋겠네요. 사장님도 잘 아시잖아요? 요즘 회사가 얼마나 바쁘게 돌아가고 있는지.”

“하긴. 미셸이 아니었으면 내가 홍콩 쪽 사업은 엄두도 내지 못했을 거예요.”

1980년대 초반 무렵이었다.

우리 Film Kim이 홍콩 영화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기 시작한 것은.

‘전생의 기억 덕분에 1980년대와 90년대는 홍콩 영화의 전성기로 아시아 전역에서 홍콩 영화가 큰 인기를 누리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던 나는 일찌감치 홍콩 영화 시장으로 진출해 그 이익을 선점하려는 계획을 세웠지. 기존의 현지 영화사를 인수해 Filim Kim 홍콩 지점을 설립한 것도 바로 그 때문이고.’

Filim Kim이 홍콩 영화 시장에서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영화 <영웅삼색>이 큰 흥행 성적을 거두면서부터였다.

오웬삼 감독이 연출을 맡은 <영웅삼색>은 1편과 2편이 연달아 히트를 기록하면서 관람료 수익만 2억 달러 이상을 기록했다.

그 결과 Filim Kim은 홍콩 느와르 영화계의 독보적인 존재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근데 사장님.”

공항 앞에 대기 중이던 차에 오르기가 무섭게,

미셸 예가 다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정말로 골든 하베스트 관계자들을 만나실 생각이에요?”

“당연하죠. 내가 이번에 홍콩에 직접 온 것도 바로 그 때문인걸요. 근데, 왜요?”

“사장님이 걱정돼서요. 사장님도 아시다시피 골든 하베스트 관계자들 대부분이 삼합회와 관련된 사람들이잖아요. 걔 중에는 삼합회 간부급 인사들도 꽤 있고요.”

홍콩의 대표적인 폭력조직인 삼합회는 홍콩 영화 산업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었다.

홍콩 영화는 막대한 이권이 걸려 있는 홍콩의 주요 산업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따라서 Film Kim의 홍콩 영화 산업 진출은 필연적으로 삼합회와의 충돌을 가져올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지금까지는 우리 Film Kim과 삼합회가 큰 충돌 없이 사업을 진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지. 그 이유는 그동안 Film Kim은 느와르 영화 제작에만 집중하고 있었고, 삼합회가 뒤를 봐주고 있는 골든 하베스트 사의 주력인 무협, 무술 영화 쪽으로는 큰 관심을 두지 않았기 때문이지.’

우리 Film Kim이 다소 껄끄러운 존재이긴 했지만,

그래도 자신들의 밥그릇을 건드리지 않는 이상 삼합회도 굳이 미국계 영화사인 Film Kim과 불편한 관계를 만들려고 하지는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변하기 시작했다.

삼합회 쪽에서 노골적으로 우리 Film Kim의 사업에 훼방을 놓기 시작한 것이다.

Film Kim이 투자한 영화 촬영장에 조직원들을 보내 위협을 한다든지,

극장주들을 협박해서 Film Kim이 제작한 영화를 상영하지 못하도록 하는 행위가 바로 그것이었다.

우리 회사와 삼합회의 갈등이 표면화된 것은 최근 Film Kim 홍콩 지점에서 한 편의 영화를 제작하면서부터였다.

그 영화는 바로,

‘장소동 감독의 영화 <천년유혼>, 1990년대를 대표하는 걸출한 스타 배우들을 배출하며 홍콩 무협 영화의 새로운 전성기를 가져온 영화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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