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89화 (89/145)

# 89 < 콜롬비아 픽처스 인수 (2) >

149.

월트 디즈니, 워너 브라더스, 유니버셜 스튜디오, 파라마운트, 콜롬비아 픽처스, 20세기 폭스.

지난 반세기 동안 세계 영화산업을 주름잡아온 이른바 할리우드 ‘빅식스(Big Six)’ 영화사들이다.

그동안 이름만 대면 알만한 주옥같은 영화들이 모두 이 여섯 개 영화사를 통해 투자, 제작, 배급이 이루어졌다.

그런데.

‘최근 우리 Film Kim이 콜롬비아 픽처스를 전격 인수함에 따라 기존의 ‘빅식스(Big Six)’ 영화사 목록에도 변화가 생기게 되었지. 콜롬비아 픽처스의 이름이 있던 자리를 Film Kim이 대신하게 되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이는 아직 시작에 불과했다.

내 최종 목표는 Film Kim을 그 어떤 회사도 넘볼 수 없는 세계 최고의 영화사로 만드는 것.

그러기 위해서는 앞으로 지금보다 더 많은 영화를 Film Kim의 이름으로 직접 만들어내야 했다.

이번 콜롬비아 픽처스 인수로 이를 위한 토대가 확실하게 만들어졌고.

“기분이 어때요, 킴?”

새로 인수한 회사 건물 사장실에 자리 잡고 앉은 나를 향해 레이첼이 물었다.

미국 캘리포니아 컬버 시티(Culver City)의 고층 빌딩.

어제까지만 해도 ‘콜롬비아 픽처스’라는 이름을 달고 있던 이 회사는 오늘부로 새로 간판을 바꿔 달게 되었다.

새로 바뀐 이름은 당연히 ‘Film Kim’이었고.

“글쎄요, 아직까지는 현실로 와닿지가 않네요. 다만 뭔가 또 하나를 이룬 것 같아서 뿌듯하기는 하군요.”

“으,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영화사 가운데 하나인 콜롬비아 픽처스를 인수하고도 저렇게 담담한 표정이라니, 그것도 아주 운 좋게 실제 회사 가치보다 훨씬 낮은 가격에 인수를 했잖아요. 가만 보면 킴은 정말 천운을 타고난 사람 같아요.”

운이 아니라,

이런 상황이 올 것을 미리 알고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아마 레이첼은,

‘그야말로 기절초풍하게 될 테지, 흐흐.’

“아 참, 킴.”

문득 생각났다는 듯, 레이첼이 나를 향해 말했다.

“킴을 한번 만나 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는데......”

“저를요?”

“네. 예전에 제가 유니온 픽처스를 운영할 당시 인연을 맺게 된 감독님인데, 몇 년 전 <야행>이라는 영화로 꽤 괜찮은 흥행 성적을 올린 적 있는 크리스 콜롬버스 감독님이에요. 그분이 영화 제작 문제로 킴을 꼭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저에게 부탁을 하더라고요.”

크리스 콜롬버스 감독이라.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름인 것 같은데, 누구지?

전생의 기억을 더듬으며,

내가 레이첼을 향해 말했다.

“영화 투자 의뢰라면 회사 담당 부서로 곧바로 시나리오를 보내면 될 텐데요. 우리 회사로 들어오는 모든 영화 시나리오는 최종적으로 제가 컨택을 한다는 사실을 할리우드 영화감독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을 테니까요.”

“그게 조금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나봐요.”

“복잡한 문제요?”

“네. 이번에 크리스 감독님이 만드는 영화가 워너브라더스 사로부터 제작비를 지원받아 만들 예정이었는데, 처음 예상했던 제작비 천만 달러가 프리 프로덕션 과정을 거치면서 1,500만 달러까지 치솟자 워너 쪽에서 제작비 지원을 철회하기로 했다더라고요. 그 때문에 영화 제작도 무산될 위기에 처해 있고요.”

“총제작비가 천만 달러라면 애초부터 저예산으로 만들어질 계획이었던 영화인가 보군요.”

“네. 아마 워너 브라더스가 제작을 엎은 이유도 그 이상은 투자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워너 브라더스 정도 되는 영화사가 제작 지원을 철회할 정도면 그렇게 매력적인 영화는 아니었나 보군요.”

“그래도 킴이라면 혹시 몰라서 제가 이야기하는 거예요. 킴은 다른 사람에 비해 영화를 보는 안목이 아주 뛰어나잖아요. 게다가 크리스 감독님이 꽤 실력 있는 영화감독이기도 하고요.”

“그래서......”

내가 레이첼을 향해 물었다.

“그 영화 제목이 뭐라던가요?”

“그게, 뭐라더라......”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레이첼이 이내 손뼉을 마주치며 말했다.

“아, 맞다. 그 영화 제목이 이라고 하더라고요.”

“!!!!!!”

순간 내가 너무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설 뻔했다.

‘? 지금 레이첼이 말한 영화가 정말로 내가 알고 있는 그 이란 영화라고?’

존 휴즈 각본, 크리스 콜롬버스 연출의 이란 영화는 가족의 실수로 집에 홀로 남겨진 꼬마 아이가 자신의 집에 침입한 두 명의 도둑을 물리치는 과정을 우스꽝스럽게 그린 코미디 영화이다.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1,800만 달러의 비교적 적은 예산으로 무려 5억 달러에 가까운 대흥행을 기록했다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매년 연말 시즌 때마다 각종 매체를 통해 재방송이 되면서 이후 30년 가까이 크리스마스 가족 영화의 대명사로 자리 잡게 된다.

‘그러고 보니, 원래 은 워너 브라더스가 제작을 맡았다가 도중에 20세기 폭스사로 제작사가 바뀌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 같군. 그 덕분에 20세기 폭스사는 그야말로 앉은 자리에서 돈벼락을 맞게 되었고.’

아마도 이번 생에서는,

나비 효과 때문인지 우리 Film Kim에 그 기회가 찾아온 것인듯했다.

‘절대 놓칠 수 없지. 이런 대작 영화를 제작할 기회를.’

속마음을 감추며 내가 레이첼을 향해 말했다.

“지금 당장 만나 뵙죠.”

“네?”

“크리스 콜롬버스 감독님 말이에요. 지금 제가 바로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요.”

“......또 킴의 그 신비한 예감이 발동한 건가요?”

“아마도요, 흐흐.”

***

그로부터 몇 시간 뒤.

레이첼을 대신해 흑갈색 머리의 남자 하나가 사장실에서 나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영화감독이자, 각본가이기도 한 크리스 콜롬버스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제임스 킴입니다.”

“크리스 콜롬버스입니다.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킴.”

서로 인사를 나누기가 무섭게 내가 본론부터 꺼내 들었다.

“듣자니 이번에 감독님께서 준비하고 있는 영화 의 제작이 무산될 위기에 처해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아무래도 이번 영화가 가족 코미디 영화인 만큼 천만 달러 정도의 제작비로도 충분히 제작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는데, 출연 배우 섭외 과정에서 개런티 협상 문제로 제작비가 다소 늘어나게 되었습니다. 문제는 투자사인 워너 브라더스 쪽에서 기존에 제시했던 제작비 이상의 지원을 거부하고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말인데......”

크리스 콜롬버스 감독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혹시 이번 영화의 제작비를 Film Kim에서 지원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듣기로 Film Kim에서는 가능성 있는 영화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고 하더라고요.”

“일단 시나리오부터 좀 볼 수 있을까요? 영화의 내용을 먼저 확인해 봐야 투자 여부를 결정할 수 있을 것 같아서요.”

“물론입니다.”

크리스 콜롬버스가 시나리오 책자 하나를 내 앞에 내려놓았다.

내가 시나리오부터 먼저 확인하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혹시나 이 영화가 이름만 같고 내용은 전혀 다른 영화가 아닐까 하는 노파심 때문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똑같군. 시나리오의 내용이 전생에서 내가 본 영화 과 완전히 똑같아. 그렇다면 전혀 투자를 망설일 필요가 없지. 이 영화는 제작비 대비 무려 30배의 수익을 기록할 흥행 대작 영화이니까 말이야.’

보고 있던 시나리오 책자를 내려놓으며 내가 크리스 콜롬버스를 향해 말했다.

“좋습니다. 이번 감독님의 영화, 워너브라더스를 대신해 우리 Film Kim에서 제작비를 지원하도록 하죠.”

“그게 정말이십니까?”

“예. 대신에 몇 가지 조건이 있습니다.”

“그게 뭡니까?”

“이번 영화가 흥행에 성공을 거두면 이어지는 속편도 우리 Film Kim과 함께 제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 사항은 계약서에 포함될 예정이고요.”

“속편......까지도요?”

크리스 콜롬버스가 다소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아직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지 실패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벌써부터 속편 이야기를 꺼내는 내가 그에게는 무척이나 이상하게 보일 만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전생의 기억 덕분에 나는 분명하게 알고 있지. 영화 은 전편의 인기에 힘입어 속편까지 모두 흥행에 성공을 거두게 된다는 것을. 따라서 이번 영화는 속편까지도 미리 선점해둘 필요가 있어.’

“그야 당연히 그렇게 해야지요.”

현재로서는 전혀 손해 볼 것이 없는 크리스 콜롬버스가 흔쾌히 내 조건을 수락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영화의 배급은 물론 판권까지 우리 Film Kim이 소유한다는 것입니다. TV와 케이블 사업은 물론 VHS와 CD 제작 전반과 관련해서요. 대신에 이번에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 경우 연출료와 인센티브, 그리고 다음 영화 제작 지원까지 감독님이 섭섭하지 않을 만큼 지원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저야 이번 영화를 무사히 제작할 수만 있다면 어떤 조건이든 상관없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해당 부서에 이야기해서 곧바로 계약을 진행하도록 하죠.”

“감사합니다, 킴.”

이로써,

해마다 안방극장을 지겹도록 장식할 전설의 영화 도 우리 Film Kim의 이름으로 제작하게 됐다.

‘아마 내년 연말쯤 되면, 워너 브라더스 관계자들도 속 꽤나 쓰리게 되겠군. 영화 이 전 세계적으로 히트를 치면서 엄청난 흥행 수익을 올리게 될 테니까 말이야, 흐흐.’

호박이 넝쿨째 굴러들어온다는 말은, 아마도 이럴 때 쓰는 표현인 듯했다.

150.

1988년 여름.

약 1년간에 걸친 영화 <키메라>의 촬영이 모두 끝이 났다.

하지만 영화가 실제 극장 스크린에 걸리기까지는 아직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이번 영화가 할리우드 최초로 CG를 이용해 만든 괴수가 등장하는 영화인 만큼 후반 작업이 무척이나 길어질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영화 <키메라>는 1억 5천만 달러라는 할리우드 영화 사상 전무후무한 제작비가 투입된 초특급 블록버스터 영화이지. 제작 기간만도 무려 3년 가까이 소요될 예정이고.’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CG 작업은 ILM에서 전담하고 있었기 때문에 현장 촬영이 끝난 이후부터는 감독인 나의 손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점이었다.

내가 할 일은 그저 작업이 끝난 영상을 확인하고 세부적인 보완 사항을 지시하는 것,

그리고 재촬영이 필요한 부분이 생기면 따로 스케줄을 잡아 촬영을 진행하는 것뿐이었다.

‘그렇다면 이번 기회를 이용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을 맡고 있는 영화 <쥐라기 공원> 촬영 현장을 한번 다녀올 필요가 있겠군. 그래도 명색이 내가 이번 영화의 공동 투자자인데 가끔은 현장에 들러 촬영 진행 상황을 직접 점검해볼 필요도 있으니까.’

***

미국 하와이의 쿠알로아 랜치.

영화 <쥐라기 공원>의 로케이션 촬영이 이루어지는 곳이었다.

이번 영화는 각양각색의 공룡들이 드넓은 초원을 뛰어다니는 ‘공룡 테마파크’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이다.

이를 위해 제작진들은 3개월에 걸쳐 대규모의 세트장을 이곳 쿠알로아 랜치에 건설했다.

‘매번 현장에 올 때마다 늘 드는 생각이지만, 전생에서 극장 스크린으로만 봐왔던 유명 영화의 촬영 현장을 내 눈으로 직접 볼 수 있다니, 정말이지 감동 그 자체이군.’

투자자인 내가 굳이 촬영 현장을 찾는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다.

내가 촬영장에 들어서자,

한창 영화 촬영에 열을 올리고 있는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과 여러 스태프, 배우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 그들에게 혹시 방해라도 될까 봐, 내가 조용히 촬영 현장을 지켜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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