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8 < 콜롬비아 픽처스 인수 (1) >
147.
샌프란시스코의 ILM 사무실.
조지 루이스와 내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벌써 몇 달째 계속된 영화 <키메라>의 로케이션 촬영으로 인해 우리 두 사람이 서로 얼굴을 마주한 것도 무척이나 오래간만의 일이었다.
“킴, 요즘 영화 촬영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다며?”
“우리 일이란 게 원래 그렇죠, 뭐. 바쁠 때는 지독하게 바쁘고, 한가할 때는 또 아주 한가하잖아요.”
영화 제작 일만큼 성수기와 비수기가 뚜렷한 일도 드물 것이다.
평소에는 무척이나 한가하지만, 막상 프리만 들어가도 정신없이 바빠지는 것이 바로 영화 일이다.
물론 인력을 갈아 넣다시피 하는 전생의 충무로 시스템에 비하면 할리우드는 그나마 인간적인 편이긴 하지만.
“킴이나 나나 좋아서 하는 일이 아니라면 절대 이 일 오래 못할 거야. 시나리오 구상에서부터 영화가 최종적으로 스크린에 걸릴 때까지, 그야말로 피를 말리는 작업의 연속이잖아?”
“그러게 말이에요.”
“특히 킴은 더한 편이지. 영화 연출뿐만이 아니라 제작과 투자 일까지 병행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사실 그 정도로 능숙하게 일 처리를 하려면 영화판에서 최소 몇십 년은 굴러야 그나마 흉내 정도 낼까 말까인데, 암만 생각해도 킴은 참 대단한 사람인 것 같아.”
몇십 년을 굴렀지.
비록 전생에서 있었던 일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너무 비행기 태우지 마세요, 조지. 그러다 저 진짜로 날아갈지도 모르니까요, 흐흐.”
“비행기 태우려고 하는 말이 아니라, 진짜 진심으로 하는 말이야. 그나저나 영화 <키메라> 촬영은 어떻게 되가고 있어? 요즘 그 영화 때문에 할리우드에 때아닌 괴수 영화 제작 붐이 불고 있는 거 알아?”
예전부터 할리우드 영화 제작사들은,
다른 회사에서 어떤 영화를 만든다는 정보를 입수하면 곧바로 비슷한 소재의 영화를 만들어내곤 했다.
운이 좋으면 생각지도 못한 흥행 성적을 거둘 수도 있고, 못해도 최소한 경쟁사가 만드는 영화에 초를 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 <키메라>는 할리우드 영화사상 최초로 CG 기술로 재현된 괴수가 등장하는 영화이지. 그렇기 때문에 다른 영화사에서 따라 만들고 싶어도 절대 따라 만들 수가 없지. 왜냐하면 그들의 CG 기술은 우리 ILM에 비하면 거의 걸음마 수준이라고 할 수 있으니까 말이야.’
내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잘됐네요. 원래 장사도 한데 모여서 하면 더 잘 된다고, 다른 영화사들이 괴수 영화 붐을 일으켜주면 우리 영화도 덩달아 관객들의 큰 관심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그러다 다른 회사에서 만든 영화가 더 인기를 끌게 되면 어떻게 하려고 그래? 먼저 시작한 건 Film Kim인데, 개봉이 더 늦어 아류작 소리를 들으면 억울하잖아?”
“걱정하지 마세요, 조지. 다른 영화사들이 만드는 괴수 영화야 안 봐도 뻔하잖아요. 보나 마나 예전과 같은 스톱 모션 기술을 이용해 부자연스럽게 움직이는 괴수 따위나 만들어내겠죠.”
“하긴. 이번에 킴이 만드는 영화 속의 괴수는 100% CG로 만들어질 예정이니, 기존의 괴수 영화들과는 차원이 다른 퀄리티를 가진 영화가 될 수 있겠지.”
“기왕 말 나온 김에 한번 보실래요, 조지?”
“그럼 나야 좋지.”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리 두 사람은 곧바로 영사실로 자리를 옮겼다.
이미 CG 작업이 끝난 영화 <키메라>의 일부 장면을 함께 감상하기 위해서였다.
***
대부분의 CG 영화가 그렇듯이,
이번 영화 <키메라>도 현장 촬영과 CG 작업이 병행되고 있었다.
내가 현장에서 실사로 찍은 영상을 넘기면 ILM에서는 곧바로 영상에 CG를 입히는 작업에 들어갔다.
하지만 ILM이 내 기준을 충족시킬 만한 CG 영상을 만들어내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다.
전생에서 지금보다 훨씬 뛰어난 CG 영화를 많이 접해본 나에게 현재 ILM이 만드는 CG 작업이 성에 찰리 만무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ILM의 작업 팀은 매번 나의 깐깐한 확인 작업을 거치며 여러 번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고 나서야 겨우 나에게서 오케이 사인을 받아낼 수 있었다.
‘그래도 나의 이런 까다로운 기준이 영화의 퀄리티를 훨씬 높일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 될 테니까.’
“자, 그럼 시작합니다.”
내가 버튼을 누르자, 영사실의 대형 화면에는 갓 작업을 끝마친 따끈따끈한 영상 하나가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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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작스러운 괴수 ‘키메라’의 출몰로 일순간에 아수라장이 된 뉴욕 도심.
무너져 내린 건물 잔해,
여기저기 뒤집힌 채 불타오르는 자동차,
미처 화를 피하지 못하고 죽거나 다친 사람들로 주변은 그야말로 전쟁터를 방불케 했다.
‘이,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멀쩡한 도심 한복판에 저런 거대한 괴수의 출몰이라니......’
괴수 ‘키메라’의 공격을 피해 건물 한구석으로 겨우 몸을 숨긴 주인공 제이슨이 자신의 손에 들린 카메라로 현재 벌어지고 있는 상황을 낱낱이 화면에 담아내고 있었다.
그런데.
- 두두두두두!
갑자기 눈앞에 완전무장을 한 헬기 한 대가 모습을 드러냈다.
뒤이어 전차를 앞세운 군부대도 나타났다.
긴급 상황을 맞아 주 방위군이 현장에 투입된 것이었다.
- 퓨숭! 퓨숭!
- 쾅! 콰앙!
- 두두두두!
한동안 무차별적인 폭격이 괴수 ‘키메라’를 향해 가해졌다.
하지만.
- 키에에엑!
고막을 찢을 듯한 날카로운 괴성과 함께 괴수 ‘키메라’의 반격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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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대한 괴수가 도시를 파괴하고, 현대식 화기로 무장한 군인들이 이를 막아내는 모습은 괴수 영화에서는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골 장면이라 할 수 있어. 하지만 이번 영화 <키메라>가 기존의 괴수 영화와 다른 점은 괴수가 등장하는 모든 장면이 완벽한 CG로 구현이 되었다는 점이지. 그것도 진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사실적이고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가진 괴수의 모습을 말이야.’
기껏해야 미니어처 형식으로 만들어진 세트장에서,
그것도 툭툭 끊기는 스톱모션 아날로그 괴수들의 움직임만을 보아오던 관객들이 만약 이번 영화를 보게 된다면 엄청난 충격을 느끼게 될 것이 틀림없었다.
그리고 이 CG 기술은,
영화 <키메라>와 더불어 우리 Film Kim에서 올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하고 있는 또 다른 영화 <쥐라기 공원>도 적용될 예정이었다.
‘<터미네이터>에 이어 할리우드 CG 영화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영화 <쥐라기 공원>, 여기에 새로 내가 만든 영화 <키메라>까지 더해지면, 우리 Film Kim과 ILM은 명실공히 할리우드 최고의 CG 영화 제작사로 거듭나게 되겠지.’
“허, 이럴 수가. ILM의 CG 기술력이 어느새 이 정도까지 온 거야?”
10분 가량의 짧은 영상이지만,
영상이 재생되는 내내 벌어진 채 다물어지지 않고 있는 조지 루이스의 입이 이를 방증하고 있었고.
148.
영화 <키메라>의 촬영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무렵,
Film Kim의 외적인 변화를 가져온 중요한 사건이 하나 발생했다.
그것은 바로,
전 미국 사회를 강타한 일명 ‘블랙 먼데이’라 불리는 경제 위기,
그리고 이를 기회로 한 우리 Film Kim의 콜롬비아 픽처스 인수 합병이 바로 그것이었다.
***
1987년 10월 19일.
세계 금융의 중심지인 미국 월가의 주가가 대폭락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주식 시장 개장 단 하루 만에 주가지수가 무려 22%나 떨어진 것이다.
이는 미국 증시 개장 이래 최대 규모의 하락률이었다.
하지만.
‘위기는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기회이기도 하지. 특히 우리 Film Kim과 같이 다른 회사를 인수해 규모를 키우려고 했으나 자금 부족으로 그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있던 회사 같은 경우에는 더더욱 말이야.’
이미 지난해부터 우리 Film Kim은,
할리우드 최고의 영화사 가운데 하나인 콜롬비아 픽처스를 인수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인수 자금을 확보하는 것은 물론 콜롬비아 픽처스의 모회사인 코카콜라 측과 끊임없이 접촉을 시도한 것이다.
하지만 협상은 좀처럼 진전되지 않고 있었다.
코카콜라가 콜롬비아 픽처스 매각 대금으로 35억 달러를 요구해왔는데, 이는 현재 우리 회사의 재정 상황으로는 도저히 수용하기 힘든 금액이었다.
그런데.
‘드디어 기회가 찾아온 것이지. 일명 블랙 먼데이라 불리는 이번 주가 대폭락 사건으로 기존의 웬만한 회사들의 가치가 최대 3분의 2 이상은 하락해버렸으니 말이야.’
“킴!”
레이첼이 잔뜩 흥분한 표정으로 사장실 문을 열고 들어왔다.
그녀 또한 오늘 월가에서 발생한 주가 대폭락 소식을 전해 들은 것이다.
“킴도 들었죠? 오늘 월가에서 발생한 주가 대폭락 소식 말이에요.”
“네.”
“갑자기 이게 무슨 날벼락이래요?”
“글쎄요, 전문가들도 아직 명확하게 그 이유를 밝히지 못했다고 하더군요. 그보다......”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어쩌면 우리에게는 이번 일이 좋은 기회가 될지도 모르겠군요.”
“기회요?”
“네. 이번 사태로 우리가 인수 협상을 진행하고 있는 콜롬비아 픽처스는 물론 모회사인 코카콜라의 주가도 급락하게 되었잖아요. 덕분에 기존보다 훨씬 싼 가격에 우리가 콜롬비아 픽처스를 인수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번 일로 인해 자금 사정이 악화된 코카콜라가 유동성 확보를 위해서라도 콜롬비아 픽처스의 매각을 서두를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그, 그런......”
“내가 전에 레이첼에게 그런 이야기를 한 적 있죠? 물건의 가격은 상황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만반의 준비를 하고 기다리다 보면 반드시 우리에게 기회가 올 것이라고. 내 생각에 이번 사건이 우리 Film Kim이 콜롬비아 픽처스를 인수할 절호의 기회인 것 같아요.”
“그럼 지금 당장 코카콜라 쪽에 연락을 해볼까요?”
“아뇨. 조금만 더 기다려보죠.”
내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지금 급한 건 우리가 아니라 코카콜라 쪽이니까요.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 콜롬비아 픽처스를 인수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회사는 우리밖에 없을 테니까요.”
역시나,
내 예상은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그동안 35억 달러에서 단 1달러도 깎아줄 수 없다며 콧대를 높이던 코카콜라가 먼저 가격 협상 제안을 해온 것이었다.
갑작스럽게 발생한 경제 위기 속에서 콜롬비아 픽처스를 붙잡고 있다가는 모회사인 코카콜라마저도 위험해질 수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덕분에 인수 협상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협상에 나선 우리 회사의 협상단은 기존의 35억 달러에서 거의 30% 이상 빠진 22억 달러에 콜롬비아 픽처스를 인수하게 된 것이다.
Film Kim의 콜롬비아 픽처스 인수는 세간의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대공황 이후 최대의 경제 위기라 불리는 지금의 시기에 수십억 달러의 공격적인 투자를 감행한 Film Kim의 대범함, 특히 미국 내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큰 영화사를 인수할 정도로 엄청난 Film Kim의 자금 동원 능력에 다들 깜짝 놀란 것이다.
관련 소식이 연일 언론을 통해 대서특필 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 영화사 Film Kim, 할리우드의 빅식스(Big Six) 영화사 가운데 하나인 콜롬비아 픽처스를 인수하다!
- 반세기가 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콜롬비아 픽처스, Film Kim이라는 새로운 주인을 만나다.
- 영화 관계자들, 이번 Film Kim의 콜롬비아 픽처스 인수는 앞으로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판도를 바꿀 정도로 엄청난 변화라고 입을 모아 말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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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콜롬비아 픽처스의 인수로,
할리우드 내에서 우리 Film Kim의 입지가 한층 높아지게 되었다.
사업 영역 또한 더욱 확장되었다.
영화의 투자, 제작, 배급과 더불어 TV와 케이블 사업, 음악, 게임 등의 사업에도 진출하게 된 것이다.
더불어 기존에 콜롬비아 픽처스가 가지고 있던 영화의 판권들도 모두 우리 Film Kim으로 귀속되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점은 이제 더 이상은 극장에서 콜롬비아 픽처스의 상징이었던 일명 횃불 든 여인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이지. 앞으로 그 자리는 우리 Film Kim의 로고가 대신하게 될 테니까 말이야,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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