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7 < 괴수 영화 <키메라> (4) >
145.
1987년 여름.
나의 새 영화 <키메라>가 크랭크인 됐다.
이번 영화는 출연 배우들이 대부분 무명 배우들이었다.
영화의 장르가 ‘괴수(怪獸)물’인 만큼, 관객들의 시선을 괴수에게 집중시키기 위함이었다.
더불어 CG 제작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절감된 배우들의 출연료로 충당하는 효과도 있었다.
그런데.
실제 영화 촬영은 생각보다 녹록지 않았다.
영화가 크랭크인 되고, 꽤 오랫동안은 계속된 시행착오의 과정을 겪어야만 했다.
1980년대 후반의 할리우드는 아직 CG를 사용한 영화 제작이 흔치 않은 시기였고, 그 때문에 이번 영화 작업은 거의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것이나 다름없었다.
***
영화 <키메라> 촬영 현장.
출연 배우들이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연신 촬영장 주변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도대체 이게 뭐야?”
“진짜 여기서 촬영을 하는 거야?”
“이런 영화 촬영 현장은 또 난생처음이네.”
게다가,
“컷! 처음부터 다시 갑니다.”
“컷! 다시.”
“컷! 컷!”
촬영 시작과 동시에 연달아 계속 NG가 이어지고 있었다.
이미 다섯 편의 흥행작을 가지고 있는 베테랑 영화감독인 내가 지휘하는 현장답지 않게,
촬영 현장의 분위기가 무척이나 어수선했던 것이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일반적인 영화 촬영 현장과는 사뭇 다른 이번 현장의 독특함 때문이지.’
영화 촬영 현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하나는 흔히 로케이션이라 부르는 외부 촬영 현장이고, 또 하나는 임의로 만든 세트에서 이루어지는 실내 촬영이다.
사실 영화 제작에 있어 촬영 장소의 선정은 무척이나 중요한 요소이다.
간혹 영화의 내용이나 출연 배우들보다 영화에 등장하는 촬영 장소가 더 큰 화제가 되는 경우도 있을 정도이다.
이 때문에 영화의 내용과 분위기를 전달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를 찾기 위해 스태프들은 프리 프로덕션 시작과 동시에 수많은 지역을 돌아다니며 이른바 로케이션 헌팅이라는 것을 한다.
그런데.
‘이번 <키메라>의 촬영 현장은 일반적인 영화 촬영 현장과는 달리 주변이 온통 푸른 천으로 둘러싸여 있을 뿐이지.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기가 2030년의 먼 미래인 만큼, 배경 또한 많은 부분이 CG로 처리될 예정이니까.’
‘크로마키’라고 부르는 것이었다.
촬영장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푸른 천의 정체는.
크로마키란 화면 합성 등의 특수효과를 사용하기 위해 만든 배경을 말한다.
대부분의 CG 영화 촬영장을 가보면 배경이 온통 한 가지 색 천으로 가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크로마키이다.
즉, 촬영 과정에서 배우들은 이 단색의 크로마키 배경 앞에서 연기를 하고, 추후 편집 과정에서 단색 배경 부분을 다른 배경으로 바꾸면 실제 영상에서는 마치 바뀐 배경에서 연기한 것과 같은 장면이 연출되는 것이다.
‘기존의 영화 촬영장과는 전혀 다른 촬영장 상황에 출연 배우들이 낯설어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지. 이들 대부분은 아직 CG 영화 촬영 현장을 제대로 경험해보지 못했으니까 말이야.’
크로마키 배경과 더불어,
촬영을 원활하지 못하게 만드는 요소가 또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배우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가상의 상대를 두고 연기를 해야 한다는 점이지. 가령 예를 들어 오늘같이 괴수에게 쫓기는 장면을 촬영할 경우, 실제 촬영 현장에서는 괴수가 등장하지 않지. 하지만 배우들은 마치 자신의 눈앞에 진짜 괴수가 있는 것처럼 연기를 해야 해. 이것이 지금 배우들이 촬영에 몰입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NG를 내는 가장 큰 이유이고 말이야.’
CG 영화에 출연하는 배우들은 대부분 허공을 향해 연기를 해야 한다.
이 때문에 실제 촬영 현장에서 배우들이 연기하는 모습을 보면 우스꽝스럽기 그지없다.
거의 혼자 원맨쇼를 하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CG 영화에 자주 출현하는 한 유명 배우가 인터뷰에서 ‘CG 영화를 찍을 때 가장 중요한 건 스스로 민망하게 느끼지 않는 것’이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할리우드에서 이 정도로 CG가 많이 사용되는 영화는 이번 영화 <키메라>가 거의 최초라고 할 수 있지. 이 때문에 이 정도 시행착오는 내가 충분히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고.’
하지만.
시간이 약이고, 경험이 스승이라는 말처럼,
첫 촬영 때는 낯선 촬영 환경에 다소 어색해했던 배우들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적응을 해나가기 시작했다.
덕분에 프로덕션 과정도 서서히 본 궤도에 오르기 시작했다.
“자, 준비 끝났으면 바로 촬영 들어갑니다. 카메라 스탠바이, 레디, 액션!”
메가폰을 타고 나의 목소리가 흘러나오자,
본격적인 영화 촬영이 시작되었다.
오늘 촬영할 씬은 영화에서 괴수 ‘키메라’가 처음 등장하는 장면이었다.
가장 먼저 지미집 카메라가 도로 한 복판에 늘어선 차량의 모습을 풀샷으로 촬영했다.
출근길 러시아워로 꽉 막힌 뉴욕 중심가 도로.
바로 이곳을 괴수 ‘키메라’가 습격한다는 설정이었다.
“컷, 오케이.”
다음으로 차에 타고 있는 주인공의 모습을 연속된 쇼트로 촬영했다.
연극 무대에서 잔뼈가 굵은 배우라서 그런지 주인공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는 꽤나 괜찮은 편이었다.
그 덕분에 단번에 오케이를 받아낼 수 있었고.
뒤이어 지미집 카메라가 또 한 번 현장에 투입됐다.
괴수 키메라의 공격으로 아수라장이 된 도시,
그리고 이를 피해 달아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풀샷으로 담아내기 위해서였다.
“스탠바이, 레디, 액션!”
신호가 떨어지자,
- 다다다다다!
대기하고 있던 수십 명의 단역 배우들이 일제히 사전에 약속된 방향으로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중간중간 특수효과팀이 설치한 폭약도 터졌다.
동선 문제로 몇 번의 NG가 발생하기는 했지만, 최종 촬영에서는 그래도 내가 생각했던 그림이 완벽하게 화면으로 연출되었다.
“오케이. 다음은 개별 쇼트(Shot) 촬영 들어갑니다.”
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핸드헬드 카메라가 현장에 투입되었다.
괴수 ‘키메라’의 습격을 피해 달아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훨씬 더 현장감 있게 담아내기 위해서였다.
“스탠바이, 레디, 액션!”
신호가 떨어지자,
- 다다다다다!
대기하고 있던 수십 명의 단역 배우들이 또 한 번 달음박질을 시작했다.
앞서 지미집 카메라로 촬영한 것과 동일한 장면이지만, 디테일은 이번 촬영이 훨씬 더 살아 있었다.
괴수 키메라의 공격을 받아 다치거나 죽는 사람들의 모습을 여러 형태로 카메라에 담아낼 것이기 때문이다.
‘영상으로 보면 하나로 보이는 씬(scene)도 사실은 지금처럼 여러 번에 걸쳐 나누어 촬영된 개별 쇼트(Shot)가 합쳐져서 만들어지는 것이 대부분이지. 실제 오늘 촬영된 개별 쇼트들을 조합해서 괴수 키메라의 첫 등장 씬이 완성될 예정이고.’
내가 머릿속으로,
오늘 촬영한 영상의 최종 완성본을 떠올려 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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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시내.
출근 시간이라 그런지 도로는 차들로 꽉 막혀 있었다.
그 안에는 주인공인 제임스 키츠가 탄 차도 포함되어 있었다.
“제길. 오늘도 지각하면 편집장이 아주 날 잡아먹으려고 들 텐데......”
운전석에 앉아 있는 제임스가 불평을 늘어놓았다.
회사가 도심 한가운데 위치해 있어서 평소에도 지각이 잦은 그였다.
그런데.
- 쾅!
- 콰쾅!
갑자기 도로 앞쪽에서 큰 폭발음과 함께 불꽃이 일기 시작했다.
곳곳에서는 검은 연기도 피어올랐다.
“뭐, 뭐야?”
제이슨이 당혹스러운 표정으로 바깥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교통사고라도 난 건가? 아니면 테러라도 발생한 거야?”
기자라는 직업 때문에,
습관적으로 손에 카메라부터 챙겨 든 제이슨이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 차에서 내렸다.
그 순간.
“악!”
“으아악, 살려줘.”
“도망쳐! 다들 살고 싶으면 도망쳐!”
비명소리와 함께 갑자기 사람들이 차에서 내려 뒤쪽으로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런데.
갑자기 주인공인 제임스의 눈앞에 커다란 괴수 한 마리가 등장했다.
- 키에에엑!
고막이 떨어져 나갈 듯한 날카로운 괴성과 함께 괴수 키메라가 닥치는 대로 사람들을 도륙하기 시작했다.
충격으로 건물과 차량도 부서져 내렸다.
이로 인해 평온했던 도시는 일순간에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의 참혹한 모습으로 변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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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6.
영화사 Film Kim.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나를 찾아왔다.
오늘은 내가 촬영 스케줄이 없는 날이었고, 이에 우리 두 사람은 영화 <쥐라기 공원>의 제작 방향에 대해 서로 의논하기로 약속한 것이다.
영화 <쥐라기 공원>은 우리 Film Kim과 루카스 필름이 공동으로 투자하고,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메가폰을 잡기로 했다.
물론 아직은 영화의 제목만 결정됐을 뿐, 출연 배우는 물론 세부적인 줄거리조차 제대로 정해진 것이 없었다.
“이게......”
내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을 향해 말했다.
“이번 영화의 트리트먼트인가요?”
“네. 킴의 말을 듣고 영화의 줄거리와 주요 장면, 등장인물 등을 압축해서 한번 적어봤습니다.”
내가 잠시,
스티븐 스필버그가 쓴 영화의 대략적인 줄거리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역시나 내가 예상했던 대로군.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하지 않아서 그런지 지금 스티븐 스필버그가 쓴 영화의 내용은 전생에서 내가 본 영화 <쥐라기 공원>과 완전히 다른 내용이야.’
“저기, 스티븐.”
“예.”
“사실 제가 처음 스티븐에게 공룡 영화를 한번 만들어 보자는 제안을 했을 때 생각했던 영화의 내용은 이런 형식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구상한 것은 온 가족이 함께 볼 수 있는 가족 오락 영화, 마치 스티븐이 일전에 만든 와 같은 다소 가벼운 분위기의 영화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스티브가 구상하고 있는 건 보다는 <죠스>쪽에 더 가까운 것 같군요.”
“조금만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시겠습니까?”
“그게......”
내가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내 머릿속에 들어있는 영화 <쥐라기 공원>에 대한 대략적인 줄거리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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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타리카 서해안의 한 섬.
세계 최초의 공룡 테마파크 ‘쥐라기 공원’이 설립됐다.
이곳에는 최신 DNA 복제 기술로 되살아난 다양한 공룡들이 활보하고 있었다.
쥐라기 공원의 본격적인 개장에 앞서,
각계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안전 진단 투어가 실시된다.
여기에는 고생물학자인 앨런과 엘리, 수학자인 이언, 그리고 설립자인 존 해먼드의 손자와 손녀까지 참여한다.
그런데.
예기치 못한 컴퓨터 오류로 보안 시스템 작동이 중단되면서 공룡들이 제한구역에서 벗어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된다.
육식 공룡계의 최상위 포식자인 티라노사우루스의 출현,
날렵하고 포악한 벨로키랍토르의 추격,
여기에 태풍까지 몰려들면서 투어는 점점 생존을 위한 사투로 변해가게 된다.
공룡을 피해 도망다니던 주인공 일행은 마지막 수단으로 시스템을 리셋하게 된다.
다행히 재부팅 이후 보안 시스템은 정상으로 돌아왔고, 살아남은 사람들은 헬기를 타고 섬을 탈출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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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지금 킴의 말은......”
스티븐 스필버그가 나를 향해 물었다.
“영화에 포악한 공룡이 등장하기는 하지만 <죠스>와 같은 공포스러운 분위기보다 와 같은 가족적, 오락적 요소를 더 가미하자는 뜻이군요?”
“예. 여기에 <인디아나 존스>와 같은 모험적인 요소도 같이 곁들이면 좋을 것 같고요.”
“흐음.”
잠시 생각에 잠기는 스티븐 스필버그.
하지만 <쥐라기 공원>이 원작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인 만큼 내가 설명해준 대략적인 줄거리로는 혼자 영화 전체의 시나리오를 쓰기 힘들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내가 준비한 것이 하나 있었으니,
“너무 혼자 고민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스티브. 제가 이번 영화 각본 제작에 참여할 또 한 사람의 각본가를 모셔두었으니까요.”
“그게 누굽니까?”
“영화 제작자이자, 시나리오 작가인 마이클 크라이튼입니다. 앞으로 <쥐라기 공원> 각본 작업은 크라이튼 씨와 함께 진행하면 될 것입니다. 아, 저도 영화 촬영 틈틈이 시간 내서 각본 회의에 참석할 예정이고요.”
“좋습니다, 킴. 지금부터 제대로 한번 해보죠.”
영화 <쥐라기 공원>의 실제 연출가와 각본가인 스티븐 스필버그와 마이클 클라이튼.
이 두 사람의 조합이면 전생에서 내가 본 영화 <쥐라기 공원>을 그대로 재현해내는 것은 일도 아닐 것이다.
‘여기에 나의 새로운 아이디어와 ILM의 CG 기술력이 더해진다면 <쥐라기 공원>은 더욱 완벽한 모습으로 재탄생하게 될 것이 분명해. 영화의 흥행 또한 당연히 성공을 거두게 될 것이고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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