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6 < 괴수 영화 <키메라> (3) >
143.
Film Kim 사장실.
내가 한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앞서 연출한 영화 <프레데터>의 흥행 성공으로 유명세를 떨친 바 있는 존 맥티어넌 감독이었다.
그는 현재 우리 회사의 투자를 받아 새 영화 <다이하드>를 제작하고 있었다.
“어떻게, 영화 제작 준비는 잘 돼가고 있습니까?”
나의 물음에 존 맥티어넌 감독이 대답했다.
“킴 덕분에요. 킴이 3천만 달러에 달하는 큰돈을 제작비로 흔쾌히 지원해준 덕분에 아주 수월하게 영화 제작을 시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감독님의 연출 능력이야 전작을 통해 충분히 증명되었으니, 이번에도 충분히 좋은 영화를 만드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거는 기대가 아주 커요.”
“그렇게 말씀하시니 왠지 모르게 부담되는데요? 하하하.”
“아 참. 이번 영화의 주인공인 맥클레인 형사 역을 맡을 배우는 섭외하셨습니까?”
앞서 영화 시나리오를 검토할 때,
나는 이번 영화 <다이하드>의 내용이 전생에서 내가 본 그것과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메가폰을 잡은 감독도 동일하니, 연출된 화면 또한 전생의 그것과 같을 것이 분명했다.
‘그렇다면 이제 남은 것은 배우 브루스 윌리스를 이번 영화의 주인공으로 캐스팅 하는 것. 이것만 이루어지면 영화 <다이하드>는 더 이상 내가 신경 쓸 필요가 없게 되지.’
“그게......”
존 맥티어넌 감독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조금 문제가 있습니다.”
“문제요?”
“예. 사실 제가 처음부터 이번 영화의 주인공으로 염두에 두고 있던 배우가 있었는데,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실베스타 스탤론이 바로 그들입니다.”
‘아놀드 슈워제네거와 실베스타 스탤론? 브루스 윌리스가 아니고? 하긴. 현재 이 두 사람은 각각 <터미네이터>와 <람보>라는 영화로 할리우드 최고의 액션 배우로 한창 주가를 올리고 있어서 액션 영화를 만드는 감독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탐을 낼 만한 배우이기는 하지. 하지만......’
이번 영화의 주인공에는 반드시 브루스 윌리스를 캐스팅해야 했다.
그가 가진 특유의 입담과 여기에서 기인하는 캐릭터성이 영화 <다이하드>의 성공을 가져온 가장 중요한 이유라는 것을 나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그들 모두 저의 영화 출연 제의를 거절했다는 것이지요. 차선책으로 생각한 윌리엄 포드나 리처드 기어 두 사람도 마찬가지고요.”
“그럼 또 다른 배우를 찾아봐야겠군요?”
“예. 아, 혹시 킴이 추천해줄 만한 배우가 없습니까? 킴의 배우 보는 안목은 할리우드 내에서 소문나 있으니까 말이에요. 인맥 또한 상당하고.”
“음......”
잠시 고민하는 척을 하던 내가 곧바로 정답을 꺼내놓았다.
“브루스 윌리스는 어떻습니까? 요즘 TV 브라운관에서 꽤 큰 인기를 얻고 있는 배우인데.”
“아, 브루스 윌리스라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블루문 특급>이라는 드라마가 미국 전역에서 큰 화제가 되면서 요즘 그의 인기도 덩달아 높아졌다지요. 그런데......”
존 맥티어넌이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브루스 윌리스는 다소 코믹한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배우라서 이번 같은 액션 영화에는 잘 안 어울리지 않을까요?”
“제 생각에는 오히려 그 점이 더 큰 강점으로 작용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사실 이번 영화의 주인공은 초인적인 능력을 가진 불세출의 영웅이 아니라 지극히 평범한 일반인에 불과하잖아요. 그런 주인공이 자신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을 극복하고, 끝끝내 적들을 해치우는 모습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큰 공감을 얻어낼 수 있을 테니까요. 게다가......”
내가 전생에서 스크린을 통해 본 영화 <다이하드>의 주인공 ‘맥클레인 형사’의 모습을 자세하게 묘사하기 시작했다.
구르고, 다치고, 쓰러질지언정 절대 포기하지 않고 버티면서, 마침내 적을 해치우는 지극히 현실적이고 인간적인 모습.
게다가 외모도 기존의 액션 영화 주인공과 같은 우락부락한 근육질이 아니라 살짝 배마저 나온 것 같은 아주 평범한 소시민의 모습.
여기에 제아무리 위급한 순간에도 결코 위트를 잃지 않고, 긍정적으로 상황을 헤쳐나가는 모습.
‘바로 이것이 전생에서 많은 관객이 <다이하드>라는 영화에 열광한 이유이지. 폐쇄된 빌딩이라는 한정된 공간 설정과 더불어서 말이야.’
한참 동안 내 의견을 듣고 있던 존 맥티어넌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듣고 보니 킴의 말이 일리가 있군요. 앞서 흥행에 성공한 <비버리 힐스 캅>의 에디 머피와 같은 입담 좋은 백인 남성 경찰, 그런 주인공 역할에는 브루스 윌리스 그 사람이 딱 맞겠군요.”
“물론입니다.”
“그럼 제가 브루스 윌리스 쪽과 직접 접촉을 한번 해보겠습니다. 그러고 나서 킴과 다시 한번 상의하도록 하죠.”
“예, 감독님.”
***
그로부터 며칠 뒤.
존 맥티어넌 감독이 다시 나를 찾아왔다.
영화 <다이하드>의 주인공으로 브루스 윌리스를 캐스팅하는 데 성공했다는 소식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500만 달러요?”
내가 살짝 놀란 얼굴로 말했다.
그도 그럴 것이,
500만 달러의 출연료는 영화 전체 제작비의 4분의 1에 해당하는 큰 금액이었다.
더군다나 이는 할리우드의 웬만한 인기 영화배우들의 출연료와 동일한 수준이었다.
최근 브루스 윌리스가 브라운관의 스타로 급부상하긴 했어도,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신인 배우나 다름없는데도 말이다.
‘영화 <다이하드>에 출연한 배우들이 왜 죄다 무명이었는지, 심지어 가장 비중 있는 악당 두목 역할조차도 무명 배우를 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군. 애당초 출연료 예산의 대부분을 브루스 윌리스에게 몰빵했기 때문이었어.’
가끔 이런 할리우드 영화 제작 과정에서 있었던 숨겨진 비화(祕話)를 알게 되는 것도,
전생 이후 내가 누릴 수 있는 큰 재미 가운데 하나였다.
“지급하죠.”
“네?”
“500만 달러의 개런티, 브루스 윌리스 측에서 원하는 대로 한푼도 깎지 않고 그대로 지급하는 것으로 하죠. 내가 볼 때, 브루스 윌리스는 그 정도 금액을 투자할 만한 가치가 있는 배우니까요.”
“알겠습니다. 아, 혹시......”
존 맥티어넌 감독이 농담조로 덧붙여 말했다.
“그것 때문에 제작비가 부족해지면 어떡하죠? 설마 킴이 제 연출비를 깎거나 하지는 않겠죠?”
“하하, 설마 그럴 리가요.”
144.
샌프란시스코의 ILM.
영화 <키메라>에 사용될 CG 영상 제작 준비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이번 영화의 CG 작업에는 총 70명의 전문 인력이 동원되고 있었다.
이는 앞선 영화 <터미네이터2>의 CG 작업에 동원된 인원의 두 배가 넘는 숫자이다.
하지만 워낙 손이 많이 가는 CG 작업의 특성상 이 정도 인원으로도 부족했다.
이에 ILM에서는 관련 학과 졸업생들을 대상으로 ATD 인턴 제도라고 불리는 테크니컬 디렉터 보조를 고용하였고, 단순 반복 작업은 대부분 이들이 도맡았다.
그 결과 가장 많을 때는 최대 200명에 가까운 인력이 한 번에 CG 작업에 동원되기도 했다.
‘이번 영화는 흥행도 흥행이지만, ILM의 CG 제작 역량을 이전보다 더욱 강화시키는 것도 중요한 목표 가운데 하나이지.’
영화 <터미네이터2> 이후 할리우드에는 많은 CG 전문 제작 스튜디오들이 만들어졌다.
앞으로 영화산업에서 CG가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더 높아질 것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탓이었다.
따라서 우리 ILM이 이 분야에서 지금과 같은 독보적인 지위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다른 회사들과는 차별되는 기술력과 제작 능력을 기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이번 영화 <키메라>는 이를 위한 아주 중요한 기회가 될 것이고.’
어쨌거나,
많은 자금과 인력이 투입된 덕분에,
영화 <키메라>의 CG 작업은 생각보다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다.
“어떻습니까, 킴?”
벤자민 파웰이 손가락으로 컴퓨터 모니터를 가리키며 물었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이번 영화에 등장할 괴수 ‘키메라’의 모습이 컴퓨터 그래픽으로 구현되어 있었다.
아직 랜더링(Rendering)을 거치지 않은 모델링(Modeling) 단계라서 그런지 다소 투박한 모습을 하고 있기는 했지만.
※ 모델링: 3D로 만들 대상의 기본적인 골격을 만드는 과정
※ 랜더링: 대상의 골격 표면을 처리하는 과정
“기본적인 형상은 내가 생각하고 있는 괴수 ‘키메라’의 모습에 상당히 근접한 것 같군요.”
“추후 랜더링 과정을 통해 세부적인 디테일을 살리면 지금보다 훨씬 더 만족스러운 모습이 될 것입니다.”
“동작 구현은 언제쯤 가능해질 것 같습니까?”
“영화가 크랭크 인 될 때쯤이면 아마 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터미네이터2> 작업 때처럼 실사 촬영과 CG 작업을 병행해나갈 수 있을 것이고요. 그나저나, 킴.”
“네.”
“정말로 괴수 ‘키메라’의 첫 등장 장면을 밤이 아닌 낮으로 설정하실 생각입니까?”
“그렇습니다. 근데 왜,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문제라기보다는 그렇게 할 경우 제작 비용이 몇 배는 더 늘어날 것 같아서요. 킴도 알다시피 밝은 장면에서 CG를 합성하는 것과 어두운 장면에서 CG를 합성하는 것은 시간이나 비용 면에서 아주 큰 차이를 보이지 않습니까?”
벤자민 파웰의 말마따나,
밝은 장면에서 CG를 합성하는 것은 어두운 장면에서 CG를 합성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간다.
밝은 장면일수록 더욱 세밀한 작업을 통해 해당 장면의 빛과 색을 완벽하게 통제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CG 기술이 별로 발전하지 않았던 초창기 할리우드 영화들은 대부분 야간 씬에 CG를 합성했다.
“비용 문제는 전혀 걱정하지 마십시오. 내가 늘 이야기하지만 영화의 퀄리티만 확보되면 제작비는 얼마가 들어가도 상관없으니까요.”
“으, 역시 킴은 언제봐도 화끈하시네요. 하긴, 킴의 그런 과감한 투자 덕분에 Film Kim을 단기간에 할리우드 중견 영화사로 성장할 수 있었겠죠.”
‘중견 영화사?’
내가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내 예상대로라면,
올해 미국 경제를 뒤흔들 일명 블랙 먼데이가 발생하게 될 것이고, 이 상황을 잘 이용해 내가 콜롬비아 픽처스를 헐값에 인수하기만 하면......
‘우리 Film Kim은 기존의 할리우드 빅식스(Big Six) 영화사에 버금가는 대형 영화사로 탈바꿈하게 될 테니까.’
속마음을 감추며 내가 벤자민 파웰을 향해 말했다.
“그럼 계속 좀 수고해주세요, 벤자민.”
“여부가 있겠습니까, 킴.”
***
ILM의 CG 제작 상황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사무실로 돌아와 시나리오 검토 작업을 계속해나갔다.
사전에 완벽하게 준비된 시나리오와 이를 바탕으로 한 스토리 보드 작성.
이는 영화 제작의 가장 기본이 되는 몹시도 중요한 작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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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 바이오’가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 만든 슈퍼 카우.
사실 이는 인류의 식량 문제 해결이라는 고귀한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었다.
유전자 조작 기술을 둘러싼 윤리적, 법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일종의 여론 형성 수단에 불과했다.
실제 메타 바이오의 목적은 바로......
“아이고, 회장님. 벌써 와 계셨군요.”
기자 회견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 드레이크 회장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 중년의 남자를 향해 다소 과장된 목소리로 말했다.
남자의 정체는 미국 최고의 무기 제조회사인 ‘오리진’사의 대표 칼 퍼거슨 회장이었다.
“오래 기다리게 해서 죄송합니다. 생각했던 것보다 질문이 훨씬 더 많아서요.”
“어떻게, 기자 회견은 잘 끝났습니까?”
“물론입니다. 조만간 언론을 통해 슈퍼 카우에 대한 기사가 나가면 그동안 불리했던 여론이 일시에 반전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시끄럽게 떠들어 대던 시민단체나 인권단체들도 입을 다물게 될 것이고요. 그렇게 되면 오랫동안 국회에 계류 중이던 유전자 기술 관련 법 또한 쉽게 통과될 것이 분명합니다.”
“당연히 그래야겠지요. 우리가 이번 프로젝트에 쏟아부은 돈이 얼마인데.”
칼 퍼거슨이 말하고 있는 프로젝트.
이는 일명 ‘키메라 프로젝트’라 불리는 신무기 개발 프로젝트였다.
그것도 각종 동물이 가지고 있는 초능력에 가까운 기술들을 조합해서 만든 신종(新種)의 동물을 무기화하는 실로 엄청난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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