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5 < 괴수 영화 <키메라> (2) >
141.
본격적인 새 영화 제작에 앞서,
내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올해 새로 투자할 영화를 최종 선정하는 일이었다.
최근 회사 규모가 커지면서 대부분의 일은 직원이나 해당 부서 차원에서 처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투자할 영화를 선정하는 일은 그렇지 않았다.
이 일만큼은 전적으로 내가 결정하고 있었다.
그 이유는,
‘내가 가지고 있는 전생의 기억 때문이지. 해마다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지는 영화 가운데 어떤 영화가 성공하고, 어떤 영화가 실패할지를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으니까.’
“이게......”
시나리오 책자를 잔뜩 손에 들고 사장실로 들어온 이레나를 향해 내가 물었다.
“이번에 우리 회사에 투자 의뢰를 해온 영화 시나리오들인가요?”
“네, 사장님.”
“꽤 많군요.”
“우리 회사만큼 영화 제작에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 영화사도 없으니까요. 게다가 제작에 대한 간섭도 적고요. 다른 영화사의 제작자는 감독에게 이런저런 요구사항이 많은데, 사장님은 꼭 필요한 부분을 제외하고는 전적으로 연출을 맡은 감독을 믿고 맡기잖아요. 그래서 영화감독들이 시나리오를 들고 가장 먼저 찾아오는 곳이 바로 우리 회사가 될 수밖에요.”
“원래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가는 법이니까요.”
“맞아요.”
이레나가 내 말에 동의한다는 듯이 빙긋 미소를 지어 보였다.
“사장님 바쁘실 테니 그럼 전 이만 나가볼게요. 아, 따뜻한 커피도 한잔 가져다드릴 테니까, 드시면서 천천히 시나리오 검토하시면 될 것 같네요.”
“역시 이레나 밖에 없군요. 말 안 해도 내가 뭘 필요로 하는지 잘 알고 있다니까요.”
“사장님과 제가 함께 한 시간이 얼마인데요, 호호.”
이레나가 가져다준 커피를 마시며,
내가 새롭게 투자할 만한 영화가 있는지를 살펴보기 시작했다.
굳이 시나리오의 내용까지 자세하게 들여다볼 필요는 없었다.
제목만 봐도 나는 그 영화의 성공 여부를 곧바로 알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디 보자......’
한동안 시나리오 책자를 살펴보던 내가,
눈이 번쩍 뜨일 만한 영화 시나리오 하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다이하드>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액션 영화 가운데 하나인 이 영화는,
브루스 윌리스라는 걸출한 할리우드 스타 배우를 배출한 영화이기도 했다.
특히 이 영화는 시나리오상의 ‘설정’이 완벽하기로 유명한 영화였다.
폐쇄된 빌딩,
이를 점령한 테러리스트,
그리고 이들에게 붙잡힌 아내를 구출하기 위해 홀로 처절한 싸움을 벌이는 경찰이라는 영화의 설정은 영화를 보는 관객들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는 긴장감을 불러일으키기 충분했다.
그 덕분에 영화 <다이하드>는 월드 박스 오피스 1억 4천만 달러라는 엄청난 흥행 성적을 기록했다.
‘올해는 아주 운이 좋군. 시작부터 <다이하드>라는 굵직한 히트 영화를 발견하게 되었으니 말이야.’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이레나가 가져온 시나리오 뭉치들 가운데 또 하나의 대작 시나리오를 발견하게 된 것이다.
그것은 바로,
<총알 탄 사나이>
데이비드 주커 감독이 연출한 이 영화는 코미디 영화로는 드물게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흥행을 기록한 영화이다.
1,2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무려 1억 4천만 달러의 관람료 수익을 올린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이어진 두 편의 속편들도 모두 1억 달러 이상의 흥행 성적을 거두면서 역대 가장 성공한 코미디 영화 가운데 하나로 기록되기도 한다.
‘다른 건 몰라도 <다이하드>와 <총알 탄 사나이>, 이 두 영화는 반드시 우리 Film Kim의 이름으로 제작이 이루어지도록 해야해. 왜냐하면 이 영화는 본편도 본편이지만, 이어지는 속편들도 하나같이 다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두게 되면서 족히 수십억 달러의 수익을 벌어드리게 될 영화니까 말이야.’
이처럼,
나에게 있어 영화 투자는 땅 짚고 헤엄치는 일보다 더 쉬운 일이었다.
덕분에 나는 가만히 앉아서도 해마다 수억 달러의 수익을 올릴 수가 있었고.
‘하지만 내 손으로 직접 영화를 만드는 과정과 그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을 때 느낄 수 있는 희열에 비하면 투자 일은 몹시도 무미건조한 일이기는 하지.’
내가 영화 투자보다 영화 연출에 훨씬 더 큰 비중을 두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자, 그럼 투자할 영화 선정 작업도 마무리됐으니, 이제 본격적인 새 영화 제작을 한번 시작해볼까.’
142.
1987년 봄.
나의 여섯 번째 연출작이 될 영화 <키메라>가 프리 프로덕션에 들어갔다.
늘 그렇듯,
프리 프로덕션은 회의의 연속이었다.
각 팀별 회의,
감독급 스태프 회의,
여기에 외부 협력 업체와의 회의까지 더하면 하루에도 몇 번씩 회의가 열렸다.
그래도,
거듭된 이런 회의 덕분에 영화 제작과 관련된 많은 준비 작업이 차근차근 진행되어 갔다.
배우, 조명, 의상, 촬영장소 섭외, 세트장 제작 등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이번 영화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CG 작업이었다.
할리우드 영화 사상 최초로 100% CG로 만들어진 괴수가 영화에 등장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영화의 프리가 시작됨과 동시에 나와 특수 시각 효과 전문회사 ILM은 계속된 회의를 통해 영화에 등장할 괴수 ‘키메라’를 만드는 일에 매진하고 있었다.
“킴, 잠깐 저 좀 봐요.”
ILM의 수석 프로그래머 벤자민 파웰이 나를 찾았다.
그는 이번 영화 <키메라>의 CG 제작을 총책임지고 있었다.
“이게 그래픽 디자인 팀에서 제작한 괴수 ‘키메라’ 시안(試案)들인데......”
벤자민 파웰이 책상 위에 놓여있는 그림들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족히 수십 장은 되어 보이는 그림들.
이번 영화에 등장하는 괴수 키메라를 여러 가지 형태로 디자인한 것이었다.
“2천 장의 1차 시안 가운데 고르고 골라서 백 장 정도로 추렸어요. 이 가운데 10장에서 20장 정도를 다시 골라 최종 디자인 회의에 올릴 생각인데, 그렇게 해도 괜찮을까요?”
“초안은 누가 잡은 거예요?”
“랄프 맥쿼리 씨가요. 랄프가 의외로 괴수 디자인 쪽에도 소질이 있는 것 같더라고요.”
랄프 맥쿼리는 ILM 소속의 그래픽 디자이너였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영화 <스페이스 워즈>와 <체이스 오브 리벤지2> 등이 있었고.
“그렇군요.”
내가 디자인 시안들을 이리저리 살펴보며 말했다.
“전체적인 형상은 나쁘지 않은 것 같네요. 디자인 회의를 계속 거치다 보면 디테일도 더 살아날 테고요.”
“그럼 최종 시안 완성되는 대로 곧바로 킴에게 다시 이야기할게요.”
“그래요, 벤자민.”
***
각 팀별로 진행되고 있는 작업상황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사장실로 돌아왔다.
이번 영화 시나리오를 다시 한번 최종 점검해보기 위해서였다.
이번 영화는 CG가 무척이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영화였다.
그렇다고 스토리 적인 측면도 소홀히 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제아무리 뛰어난 CG 기술을 선보인 영화라고 해도, 영화의 설정과 내용이 허술하면 결국 그 영화는 실패하게 되지. 내가 전생에서 본 영화 처럼 말이야.’
영화 <키메라>의 시나리오를 손에 든 내가,
영화의 가장 처음을 장식할 오프닝 장면을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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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바이오 기업 ‘메타 바이오’ 본사.
미국 전역에서 몰려든 기자들로 회사는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오늘 이곳에서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할 중대 발표가 있을 예정이었기 때문이었다.
잠시 후,
- 번쩍! 번쩍!
- 찰칵! 찰칵!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으며 메타 바이오의 최고 경영자인 드레이크 회장이 모습을 드러냈다.
“최근 우리 메타 바이오에서는 인류의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동물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잠시 말을 끊은 드레이크 회장이 기자들을 향해 다시 말했다.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 만든 ‘슈퍼 카우(Super Cow)’입니다.”
“슈퍼 카우요?”
“슈퍼 카우에 대해 자세히 좀 설명해주시겠습니까, 회장님?”
“물론이죠. 슈퍼 카우는 서로 다른 두 동물의 유전자,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일생 동안 성장을 멈추지 않는 상어의 유전자를 기존의 소 유전자에 결합해서 만든 새로운 유형의 동물입니다. 만약 우리 회사의 슈퍼 카우가 세계 각지의 농장에서 본격적으로 사육되기 시작하면 인류는 질 좋은 소고기를 엄청나게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드레이크 회장이 의미심장한 웃음을 지으며 말을 이었다.
“슈퍼 카우는 기존의 소에 비해 무려 10배나 큰 덩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죠.”
“!!!”
모여 있던 기자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적인 소에 비해 무려 10배나 더 큰 크기의 소라니.
만약 드레이크 회장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는 엄청난 뉴스거리가 될 것이 틀림없었다.
“그게 정말 사실입니까, 회장님?”
“사실이라면 지금 이 자리에서 슈퍼 카우의 모습을 공개하실 수 있습니까?”
“물론입니다. 그러려고 여러분들을 이 자리에 모신걸요.”
드레이크 회장이 자신만만 표정으로 옆에 있던 부하 직원에게 신호를 보냈다.
그 순간,
드레이크 회장의 뒤쪽에 있던 하얀 천막이 떨어져 나가며, 커다란 유리창 안에 갇혀 있는 슈퍼 카우가 모습을 드러냈다.
“우워어!”
“저, 저게 뭐야?”
“정말로 엄청난 크기잖아?”
모여 있던 기자들이 저마다 탄성을 내뱉었다.
방금 전에 드레이크 회장이 한 말처럼,
보통의 소보다 무려 10배의 큰 크기를 가진 일명 ‘슈퍼 카우’가 실물로서 그들의 눈앞에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슈퍼 카우는......”
이때를 놓치지 않고, 드레이크 회장이 더욱 힘주어 말했다.
“현재 식량난을 겪고 있는 많은 국가의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획기적인 발명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앞으로 이 슈퍼 카우의 종자를 전 세계에 아주 싼 가격으로 공급할 예정이고, 그렇게 되면 이제 지구상에는 더 이상 굶주림으로 고통받는 인류가 없어지게 될 것이니까요.”
“우와아!”
“짝짝짝!”
큰 박수와 함께 또 한 번의 탄성이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엄청난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이 기술을 인류의 빈곤 문제 해결을 위해 사용하겠다는 드레이크 회장의 선언은 누가봐도 찬사받아 마땅한 일이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위험성은 없습니까?”
한 남자의 목소리가 기자들 사이에 흘러나왔다.
순간 드레이크 회장의 눈빛이 번뜩였다.
“뭐라고요?”
“슈퍼 카우가 위험하지는 않냐고요. 인위적인 유전자 편집은 인간이 예상치 못한 위험을 초래할 수 있다는 일부 과학자들의 우려처럼 말이죠.”
“실례지만 질문을 한 기자 분의 소속과 성함을 좀 알 수 있을까요?”
“워싱턴 포스트 지의 기자 제이슨 키츠입니다.”
제이슨 키츠.
열혈 기자인 그는 이 영화의 주인공이기도 했다.
“좋습니다, 키츠 씨. 당신은 방금 우리 메타 바이오 사의 슈퍼 카우가 혹시 위험하지는 않냐고 물었는데......”
어느새 다시 온화한 표정으로 돌아간 드레이크 회장이 자신의 뒤쪽에 있는 커다란 덩치의 슈퍼 카우를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한 번 보십시오. 슈퍼 카우는 그저 덩치만 클 뿐이지, 외형도 성격도 모두 우리가 알고 있는 소와 완전히 동일합니다. 여러분들도 아시다시피 소는 이 세상에서 가장 온순한 동물 가운데 하나가 아닙니까? 그러한 소의 특성을 가진 유전자는 그대로 둔 채로 그저 성장 속도와 크기만 빨라지게 만들었으니 당연히 전혀 위험하지 않지요.”
“......”
“내 생각에는 키츠 씨가 평소 공상 과학 영화를 즐겨 보시는 것 같은데, 제가 그런 키츠 씨의 기대감을 충족시켜 드리지 못한 것 같아서 미안하군요, 하하하.”
“하하하.”
드레이크 회장의 농담에 기자들도 다 같이 따라 웃었다.
그렇게,
제이슨 키츠 기자의 반론은 한낱 헤프닝 정도에 불과한 일로 묻히는 것처럼 보였다.
후에 찾아올 불행의 전조(前兆)는 전혀 짐작하지 못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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