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84화 (84/145)

# 84 < 괴수 영화 <키메라> (1) >

할리우드의 일명 ‘흥행보증수표’라 불리는 유명감독들도,

대게 흥행에 실패한 영화 하나쯤은 가지고 있기 마련이다.

가령 예를 들면,

<스페이스 워즈>를 통해 영화재벌이 된 조지 루이스의 경우에는 이라는 영화가,

<조스>를 통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 시대를 연 스티븐 스필버그의 경우에는 <아미스타드>라는 영화가 여기에 해당한다.

두 영화 모두 제작비조차도 제대로 건지지 못하고 흥행 참패를 기록한 것이다.

‘제아무리 뛰어난 감독도 신이 아닌 이상 모든 영화를 성공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법이니까.’

문제는 지금 제임스 카메룬이 나에게 보여준 영화 <어비스>의 시나리오도 이 경우에 속한다는 것이었다.

순수 제작비만 7천만 달러가 투입된 이 영화는 평론가들의 호평에도 불구하고 손익 분기점을 넘기지 못한 채 그의 유일한 흥행 실패작으로 남게 된다.

‘사실 이 영화는 내용적인 면에서는 꽤 잘 만들어진 영화였어. 그해 열린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여러 부문에 걸쳐 후보로 선정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대중적인 반응은 그렇게 좋지 못했고, 이는 결국 흥행 실패로 이어지게 되었지.’

“저기, 지미.”

내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전생의 기억 덕분에 영화 <어비스>의 흥행 성적이 좋지 않을 것이란 사실을 이미 알고 있는 나와 달리, 제임스 카메룬은 이 영화에 잔뜩 기대를 걸고 있을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일단 영화의 주제 자체는 무척 흥미로운 것 같아요. 우주와 심해를 배경으로 인간이 아닌 새로운 지적 생명체가 등장한다는 설정은 기존의 영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무척 신선한 내용이니까요.”

“그래요?”

“네. 게다가 미지나 다름없는 심해(深海)의 모습을 영상으로 구현하려는 시도를 한다는 점도 꽤 흥미롭고요.”

“하하, 앞선 <터미네이터>를 통해 봐서 킴도 잘 아시잖습니까? 제가 시각적인 연출과 관련해서는 나름 쓸만한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요.”

틀린 말은 아니었다.

제임스 카메룬은 속칭 ‘비주얼 깡패’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영화의 시각적인 연출은 타의 추종의 불허할 정로도 뛰어난 실력과 안목을 가지고 있었다.

문제는 이 영화가 딱 거기까지였다는 것이다.

뛰어난 시각 효과 외에는 그 어떤 심오한 철학도, 짜임새 있는 서사구조도 부재했다.

‘영화 <터미네이터>의 연속된 성공으로 자신감이 충만해진 제임스 카메룬의 눈에는 아마 이번 영화의 이러한 단점이 보이지 않는 것 같군. 하긴, 전생에서 나도 첫 영화가 칸 영화제 수상을 받은 직후에는 엄청나게 뛰어난 영화를 만들 수 있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에 충만해 있었으니까.’

하지만 이어진 나의 말에 제임스 카메룬의 얼굴도 서서히 굳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지미. 난 왠지 이 영화 시나리오가 너무 밋밋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네요. 초반에 설정된 단선적인 서사구조가 끝날 때까지 계속 이어지면서 지루한 느낌마저 들게 만드니까요. 그 때문에 영화의 작품성 면은 괜찮을지 몰라도 흥행성의 측면에서 많은 아쉬움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요.”

“......”

“그래서 말인데요, 지미. 이번 시나리오는 좀 아깝기는 하지만 그냥 접어두고 새로운 시나리오를 한번 써보는 게 어때요?”

잠시 미간을 찌푸리고 있던 제임스 카메룬이 입을 열었다.

“킴의 영화 고르는 안목은 저도 인정합니다. 지금까지 킴이 제작, 투자한 수십 편의 영화는 단 한 편도 실패하지 않고 모두 흥행에 성공했다는 사실은 이곳 할리우드 영화인이라면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니까요.”

“그래서 내가 지미에게 이런 진심 어린 조언을 하는 것이니, 너무 마음 상해하지 말고......”

“아뇨, 킴. 킴이 어떻게 생각하든 저는 이번 시나리오를 영화화하고 싶습니다.”

“예?”

내가 살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제임스 카메룬이 너무 단호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었다.

“아마 킴이 시나리오만 보고 판단해서 그런 것 같은데, 실제 이를 영상으로 구현하면 이야기는 달라질 것입니다. 가령 예를 들면......”

제임스 카메룬이 한동안 열을 올리며 이번 영화의 제작 방향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미 할리우드의 미래를 훤히 꿰고 있는 나에게는 그저 공염불에 불과할 뿐이었다.

“지미가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는 나도 잘 알겠어요. 그리고 처음에 이야기했던 것처럼 영화의 주제나 설정은 무척이나 신선하고 흥미로워요. 지미의 시각 연출 능력 또한 충분히 알고 있고요. 하지만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흡입력 있는 이야기 구조예요. 그런 점에서 볼 때 이 영화는 다소 미흡한 부분이 있는 것이 사실이고요.”

“그럼 그 부분을 좀 더 보완하도록 하죠.”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에요. 설정 부분에도 상당한 구멍이 있어요. 시나리오에 보면 무려 600m나 되는 심해에서 사람들이 선외 유형을 한다든지, 얼음물에 가까운 온도에서 스킨 스쿠버를 한다든지 하는 장면들은 너무나도 비현실적인 모습이잖아요.”

“이 영화가 공상 과학 영화(SF)인 만큼 이 정도 영화적 상상력은 허용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게다가 배경도 먼 미래이니까.”

“그래도 나는 최소한의 과학적 상식선은 지켜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런 요소들이 자칫 영화의 개연성이나 몰입감을 깨뜨릴 위험성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한동안 계속된 나와 제임스 카메룬의 언쟁.

이는 할리우드 영화계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었다.

감독과 제작자 사이에 의견 대립이 발생해서 난상토론이 벌어지는 모습은 더 나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진통의 과정이었다.

물론 최종 승자는 돈을 대는 제작자인 경우가 훨씬 더 많았지만.

‘제임스 카메룬이 만든 영화 <어비스>. 흥행을 떠나 작품성의 면에서는 무척이나 뛰어난 영화이지. 영화의 미장센이나 시각 효과 또한 당시로서는 파격에 가까울 정도로 뛰어났고. 하지만 영화 제작자인 나로서는 흥행 성적을 최우선에 두지 않을 수가 없지. 실패할 것이 뻔한 영화의 제작을, 그것도 무려 7천만 달러의 제작비가 소요되는 영화의 제작을 알고도 모른 척할 수는 없으니까.’

하지만 이런 내 생각을 알 리 없는 제임스 카메룬은,

무척이나 자존심이 상한 듯한 표정으로 나에게 말했다.

“킴의 생각이 정 그렇다면 이번 영화만큼은 킴과 함께 할 수 없을 것 같군요.”

“지금 지미의 그 말은......”

“내가 영화감독으로 첫발을 내딛게 해준 킴에게 무척 감사한 마음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이번 영화는 킴과 나의 생각이 전혀 다른 듯하니 제가 다른 투자자를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그럼 그렇게 해요, 지미.”

“죄송해요, 킴.”

“아뇨, 괜찮아요. 이런 일은 뭐, 흔히 있는 일이니까. 대신에......”

잠시 말을 끊은 내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내가 필요하면 언제든지 다시 돌아와도 돼요. 영화를 함께 만들고 만들지 않고를 떠나, 우리 두 사람이 좋은 친구라는 사실은 영원히 변하지 않을 테니까요.”

140.

“예? 그게 정말이에요, 킴?”

레이첼의 놀란 목소리가 사무실 밖까지 울려 퍼졌다.

내가 밤 늦게까지 영화 시나리오 작업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직접 만든 간식까지 바리바리 싸 들고 온 레이첼.

그런 그녀가 나에게서 방금 전 제임스 카메룬과 있었던 일을 전해 듣게 된 것이다.

“사실이죠, 그럼. 아무렴 내가 레이첼에게 거짓말을 하겠어요?”

“흠, 지미가 우리 회사가 아닌 다른 영화사와 함께 영화를 만든다니,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네요.”

“지미 잘못이 아니에요. 내가 이번 영화만큼은 투자를 못 하겠다고 말했기 때문이에요. 그럼 감독은 새로운 투자자를 찾아 나서는 것이 당연하죠.”

“이번 시나리오가 그렇게 킴의 마음에 안 들었어요?”

“내용이나 설정은 좋은데 대중적인 요소가 많이 부족한 것 같아서요. 어디까지나 상업 영화인데 말이죠.”

“근데, 킴.”

레이첼이 신기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킴은 시나리오만 보고 영화가 실패할지 성공할지를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 거예요?”

“그냥 감이죠, 뭐.”

“에이, 100% 다 맞는 감이 어디 있어요? 그것도 한두 편이 아닌 수십 편의 영화를 그렇게 귀신같이 다 맞췄는데.”

“그럴 수도 있죠.”

“좋아요, 그럼 어디 한번 맞춰봐요. 지금 내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으, 내가 점술가도 아니고 그걸 어떻게 맞춰요? 영화 흥행은 시나리오라는 단서가 있어서 가능한 거지.”

“그럼 내가 한번 맞춰볼게요. 지금 킴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토끼처럼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잠시 내 얼굴을 이리저리 훑어보던 레이첼이 다시 말했다.

“오케이, 알아냈어.”

“뭔데요?”

“킴이 다음번에 제작할 영화 <키메라(Chimera)>에 대해 생각하고 있죠?”

“헛! 도대체 레이첼이 그걸 어떻게 안 거예요?”

“어떻게 알긴요. 킴의 머릿속은 항상 영화 생각으로만 가득하니까 그렇죠.”

“그게 아니라, 영화 제목 말이에요. 이번에 내가 시나리오를 쓰고 있는 영화 제목이 <키메라(Chimera)>라는 것을 어떻게 알았냐고요.”

“그냥 감으로요. 마치 킴이 흥행에 성공할 영화를 귀신같이 감으로 찾아내는 것처럼요.”

“말도 안 돼. 나야 시나리오를 보고 판단하는 거니까 그렇다 쳐도, 레이첼은 아무 정보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문득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는 생각에,

내가 재빨리 뒤를 돌아 내 책상 위를 바라보았다.

그곳에는 내가 쓰다만 영화 시나리오가 놓여 있었다.

“으, 하마터면 깜박 속아 넘어갈 뻔했네.”

“호호, 아까 들어오면서 곁눈질로 살짝 봤죠. 킴이 이번에는 또 어떤 엄청난 영화를 만들어낼지 궁금해서.”

“레이첼도 참.”

“그래서, 이번 영화는 어떤 영화에요? 나한테만 살짝 알려줄 수 없어요?”

“괴수영화예요.”

“괴수?”

“네. 그것도 100% CG로 만들어진 괴수가 등장하는 영화요.”

내가 레이첼에게 이번 영화의 시나리오를 간략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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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2030년 먼 미래.

세계적인 바이오 기업 ‘메타 바이오’가 유전자 편집 기술을 이용해 만든 새로운 동물을 선보였다.

일명 ‘슈퍼 카우(Super Cow)’라 불리는 이 소는 보통의 소에 비해 몸집이 무려 10배 가까이나 컸다.

평생 성장을 멈추지 않는 상어의 유전자를 뽑아 기존의 소 유전자에 결합시킨 결과였다.

슈퍼 카우(Super Cow)의 개발은 인류의 식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단초를 제공해주고 있었다.

슈퍼 카우를 만드는데 사용된 유전자 편집 기술을 다른 동식물에 적용할 경우 생산 단가를 크게 낮출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신의 영역에까지 도전한 인간의 오만함은 결국 큰 화를 불러오고 말았다.

메타 바이오가 개발한 유전자 편집 기술의 남용은 결국 거대한 괴수 ‘키메라’의 탄생을 가져오고 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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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메라라면......”

레이첼이 나를 향해 말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나오는 전설 속의 동물을 말하는 거 아닌가요? 머리가 셋이나 달려 있는 사자처럼 생긴 동물.”

“맞아요. 그런데 키메라는 생물학적 용어로 사용되기도 해요. 예를 들면 단일 생물 개체에 기생 혹은 공생 관계가 아닌 전혀 다른 유전자가 혼재해 있는 경우 이를 키메라라고 부르기도 하죠.”

“으, 생물학 지식이 부족한 저로서는 킴의 말이 잘 이해가 가질 않네요.”

그렇겠지.

현재의 유전공학 기술은 전생에 내가 살던 시대에 비하면 현저하게 낮은 수준이니까.

‘내가 살던 시대에서는 ‘게놈’이니, ‘유전자 편집’이니 하는 용어가 아주 익숙하게 사용되던 시대였어. 실제 ‘유전자 가위’라 불리는 유전자 편집 기술의 성공 사례가 언론을 통해 보도된 적도 있었으니까. 그 덕분에 이 같은 유전공학을 소재로 한 영화가 제법 많이 만들어지기도 했었지. <가타카>나 <아일랜드> 같은 영화가 그 대표적인 사례이고.’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이 같은 유전공학에 대한 생소함이 오히려 이번에 내가 만들 영화 <키메라>를 더욱 신선하게 만들어줄 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1980년대 중반의 대중들 상식으로는 유전공학의 잘못된 결과물로 인간의 생존을 위협할 괴수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상상조차 하기 어려울 테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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