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81화 (81/145)

# 81 < 또 한번의 트리플 크라운 (4) >

***

영화사 Film Kim.

오래간만에 사무실을 찾은 조지 루이스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정말 대단하다, 대단해. 요즘 같은 불황기에 무려 세 편의 영화를 연달아 히트시키다니 말이야. 그것도 올 한 해 만에.”

“조지도 소식 들었나 보네요.”

“나는 뭐 눈 없고, 귀 없는 줄 알아? 그래서......”

조지 루이스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이번 영화로 또 얼마의 수익을 벌어들인 거야?”

“영화 가 3억 달러, <터미네이터2>가 6억 달러, 가 4억 달러니까, 다 합쳐 13억 달러쯤 될 것 같네요.”

13억 달러.

우리 돈으로 무려 1조 원에 달하는 엄청난 금액이다.

물론 이 가운데 극장 배분 수익을 뺀 40%, 대략 4천억 정도가 우리 Film Kim이 가져갈 최종 몫이기는 했지만.

“허어, 단 세 편의 영화로, 그것도 1년 만에 벌어들인 수익이 13억 달러라니. 이거 완전 돈 찍어내는 은행이나 다름없구먼.”

“조지가 그런 말 할 입장은 아닌 것 같은데요? 영화 <스페이스 워즈> 덕분에 해마다 수억 달러의 수익을 올리는 사람이 바로 조지 아니었던가요?”

“그건 비디오 게임이나 TV 애니메이션 시리즈, 그리고 기타 상품 판매 수익을 모두 합친 거고. 반면 킴은 순수 관람료 수익만으로 벌어들인 돈이잖아.”

“그니까 조지가 더 나은 거죠. 다른 감독들처럼 매번 새로운 영화 시나리오 쓰느라 골머리 아플 일도 없을 거고요.”

“그런가?”

할리우드 영화 가운데,

<스페이스 워즈>만큼 큰 수익을 올린 영화도 없을 것이다.

총 누적 수익 230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34조 원에 달하는 수익을 올렸으니 말이다.

물론 여기에는 관람료 수익과 더불어 비디오, 책, 게임, 특히 캐릭터 상품 판매 수익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다.

영화 한 편으로 가히 영화 재벌의 지위에 오른 사람이 바로 조지 루이스였던 것이다.

“그나저나......”

조지 루이스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올해는 한번 기대해볼 수 있겠군.”

“기대해보다니, 뭘요?”

“아카데미 감독상 말이야. 이번에 킴이 만든 영화 의 반응이 장난이 아니잖아. 관객과 영화 평론가는 물론 심지어 다른 영화사 관계자들까지 이번 영화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고 있다더군.”

“글쎄요, 다른 영화제는 몰라도 아카데미는 좀 힘들지 않을까요? 전통적으로 아카데미는 저 같은 유색인종에 대해서는 매우 인색한 편이잖아요.”

“뭐, 그건 좀 그렇긴 하지만......”

조지 루이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다시 말했다.

“아 참, 킴. 언제 시간 나면 스티븐이랑 같이 식사 한번 하자고.”

“스티븐이라면......”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말이야. 그 왜, 일전에 영화 시사회장에서 몇 번 얼굴 마주친 적 있잖아?”

“그렇긴 하죠.”

“엊그제 내가 일 때문에 스티븐을 만난 적이 있는데, 그가 언제 킴을 한번 만나보고 싶다고 하더군. 그래서 내가 킴에게 한번 물어보겠다고 했지.”

내가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할리우드 최고의 흥행 감독인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무슨 이유로 나를 만나자고 하는지 무척이나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스필버그 감독님이 갑자기 왜 절 만나고 싶어 하신대요??”

“글쎄, 구체적인 이유는 직접 만나보면 알겠지만, 내 생각에는 스티븐이 Film Kim이 가지고 있는 CG 기술에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아. 스티븐이 얼마 전에 개봉한 영화 <터미네이터2>를 그렇게 칭찬하고 다니는 것을 보면 말이야. 심지어 그가 나에게 <터미네이터2>를 통해 할리우드 영화의 미래를 본 것 같다고 말하더라고.”

역시,

할리우드 최고의 흥행 감독답게 스티븐 스필버그의 안목은 남달랐다.

영화 <터미네이터2>를 통해 앞으로 할리우드 영화산업의 중심이 CG 영화로 바뀔 것이라는 사실을 단번에 깨달은 것이다.

‘나 또한 밑질 것 없지. 제임스 카메룬과 더불어 스티븐 스필버그까지 우리 영화사로 영입할 수 있다면, 앞으로 전 세계 영화산업을 완벽하게 장악할 수 있을 테니 말이야.’

속마음을 감추며 내가 조지 루이스에게 말했다.

“다음 주에 아카데미 시상식이 있으니까, 시상식 끝나고 어때요? 저와 조지는 물론 스필버그 감독님도 어차피 시상식에는 참석할 테니까요.”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 그럼 스티븐에게도 그렇게 전달하도록 하지.”

“그래요, 조지.”

“아, 그리고 혹시......”

조지 루이스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다시 나에게 물었다.

“차기작 준비하고 있는 거 있어?”

“차기작요?”

“그래. 혹시 있으면 이번에는 나도 투자에 참여를 한번 해볼까 해서. 흥행 100% 보증수표인 제임스 킴 감독의 영화를 그냥 손 놓고 지켜보기가 너무 아까워서 말이야.”

“조지도 참.”

내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안타깝지만 아직은 없네요. 당분간은 좀 쉬면서 재충전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서요.”

“하긴 지난 영화가 유독 촬영이 힘든 영화였으니, 킴도 좀 쉬어야겠지. 그래도 너무 오래 쉬지는 말아. 킴과 같은 인재가 일을 하지 않는 건 국가적으로도 큰 손해니까 말이야, 하하.”

135.

LA 중심가의 한 호텔.

고급 세단 한 대가 입구에 멈춰 섰다.

차에서 내린 이는 아버지와 나 두 사람이었다.

“어떠냐?”

차 유리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가며 넥타이를 고쳐 매던 아버지가 나에게 물었다.

“멋있어요. 포스만 보면 딱 회장님 같으세요.”

“그래?”

아버지가 싱긋 웃었다.

오늘은 아버지의 미주한인총연합회장 취임식이 있는 날.

이를 위해 나는 특별히 LA의 가장 고급 호텔 연회장을 빌렸다.

물론 아버지는 쓸데없는 낭비라며 극구 만류하긴 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호텔 연회장을 빌린 건 너무 오바인데. 누가 보면 한인회장이 아니라 대기업 회장 취임식이라도 하는 줄 알겠다.”

“그래도 아버지가 명색이 미국 최고 영화사 사장을 아들로 둔 사람이잖아요. 그러니 이 정도는 괜찮아요. 이참에 아버지 지인분들께 근사한 식사도 한 끼 대접하고요.”

“근데 여기 되게 비싸지 않냐? 못해도 몇천 달러는 족히 줬지 싶은데.”

“으, 우리 아버지 궁색 맞기는. 한 해에 수억 달러씩 버는 아들 뒀으면 이 정도 호사는 충분히 누리셔도 돼요.”

“인마, 난 자식한테 신세나 지는 그런 못난 아버지 아니다. 영수증 끊어서 나중에 나한테 비용 따로 청구해.”

“아버지도 참. 근데......”

내가 연회장 입구를 둘러보며 말했다.

아까부터 그곳에 서 있는 여러 명의 흑인 무리들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저 덩치 큰 사람들은 뭐예요?”

“아, 쟤들?”

아버지가 대답 대신 흑인들 앞으로 다가섰다.

“헤이, 말릭!”

“와우, 킴. 오늘 멋진데요?”

“로건 회장님은?”

“벌써 와서 안에 들어가 계세요.”

“자네들도 여기 이러고 있지 말고 들어가서 뭐라도 좀 먹지.”

“알잖아요, 킴. 오늘 우리 역할은 킴 보디가드(Bodyguard)라는 거. 입구는 우리가 꽉 지키고 있을 테니, 킴은 아무 염려 말고 행사나 잘하세요.”

“그래, 땡큐, 말릭.”

다시 곁으로 온 아버지를 향해 내가 물었다.

“뭔 소리예요? 갑자기 저 흑인들이 아버지 보디가드라니?”

“아, 그게......”

아버지가 웃으며 말했다.

“LA 흑인단체에서 사람들을 좀 보내줬어. 내가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는데도 기어코 저기서 저러고 있네.”

“......”

“도훈이 너도 알잖아? 얼마 전에 우리 한인회와 흑인단체가 결연 맺은 거. 그래서 오늘 취임식에 흑인단체 회장님도 참석하기로 했어.”

언제는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더니.

아버지가 LA 한인회장에 취임하고 이곳 분위기가 많이 달라지긴 달라진 모양이었다.

‘그래도 다행이네. LA 폭동이 일어나기 전에 이 지역의 한인과 흑인 사이의 갈등이 어느 정도는 해소되었으니 말이야. 이 정도면 실제 LA 폭동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순 없어도, 최소한 그 과정에서 이곳 한인들이 피해 보는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

잠시 후,

본격적인 취임식 행사가 시작되었다.

얼마 전에 있었던 선거에서 압도적인 표 차이로 미주한인총연합회장에 당선된 아버지.

오늘 행사는 바로 아버지의 당선을 축하하기 위해 미주 전역에 있는 한인회 대표들이 참석한 채로 진행되고 있었다.

‘어쩌면 잘된 일인지도 모르겠군. 아버지나 나나 어차피 앞으로 계속 미국에서 살게 될 텐데, 이곳 한인들이 똘똘 뭉쳐 역량을 키운다면 백인들도 더 이상 우릴 함부로 대하지 못할 테니까. 미국 사회에서 강력한 힘을 발휘하는 유대인만큼은 아니더라도 최소한 불합리한 대접을 받는 일은 많이 줄어들게 되겠지.’

과거로 회귀한 지 약 10년이 지난 지금,

많은 것들이 변했다는 사실을 나는 새삼 깨닫게 되었다.

단상에 서서 한인 사회의 발전 방향에 대한 일장 연설을 늘어놓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더욱더.

***

“늦어서 미안해요, 킴.”

행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레이첼이 내가 앉아 있는 자리로 다가왔다.

예정된 TV 인터뷰가 다소 늦게 끝나는 바람에 뒤늦게 이곳에 도착한 것이다.

“괜찮아요. 아버지도 지금 정신없으시니까, 나중에 끝나고 인사하면 돼요.”

“그나저나 소식 들었어요, 킴?”

“무슨 소식요?”

“올해 아카데미 시상식에 이번에 개봉된 우리 회사 영화 세 편이 모두 다 후보작에 올랐다는 소식이요.”

“아뇨, 전 아직 못 들었는데......”

“킴이 연출한 영화 는 아카데미 감독상과 촬영상에, 지미가 연출한 <터미네이터2>는 특수효과와 음향상에, 제가 연출한 는 각본상에 각각 후보로 올랐대요. 물론 그 외 부분에도 다수 후보로 올랐고요.”

“이거 완전 겹경사네요. 흥행은 흥행대로 하고, 상은 상대로 타고.”

“그러게요. 지금 할리우드 영화 관계자들이 다들 우리 Film Kim을 주목하고 있대요. 불과 10년도 안 된 회사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다른 메이저 영화사들보다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다고 말이에요.”

“제가 복이 많은가 봐요. 주변에 훌륭한 감독들이 많아서 회사도 더불어 크게 성장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건 전적으로 킴의 뛰어난 영화적 재능 때문이에요. 나와 지미를 발탁한 것도 킴이고, 지금 할리우드의 주름잡고 있는 유명 배우들도 수없이 킴이 발굴했잖아요.”

“하하, 너무 비행기 태우지 마요, 레이첼. 오늘 주인공은 내가 아니라 저기 있는 우리 아버지니까.”

내가 다시 레이첼을 향해 말했다.

“아, 그리고 레이첼.”

“네.”

“행사 끝나고 나랑 얘기 좀 해요. 어차피 오늘 아버지는 손님 접대하느라 정신없을 테니까, 우리 둘이 근처에 가서 술 한잔하면서 이야기하면 될 것 같아요.”

“무슨 중요한 할 말이라도 있는 거예요?”

“전에 이야기했던 콜롬비아 픽처스 인수 건 때문에요. 오늘 오기 전에 조지를 만났는데, 콜롬비아 픽처스가 아직 새 주인을 찾지 못했다네요.”

“그렇겠죠. 요즘 경기가 워낙 나쁘다 보니, 콜롬비아 픽처스 같은 큰 회사를 인수하려고 나서는 기업이 잘 없을 거예요. 근데, 킴.”

레이첼이 살짝 염려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

“정말로 콜롬비아 픽처스를 인수할 생각이에요?”

“네. 콜롬비아 픽처스의 인수는 현재 영화의 투자, 제작, 배급에만 한정되어 있는 우리 Film Kim의 사업 영역을 확장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될 테니까요.”

“물론 그렇기는 하죠. 문제는 인수 자금인데......”

“그 문제는 이따가 나가서 따로 이야기해요. 지금 아버지가 절 찾고 계시는 것 같으니까.”

내가 멀리서 손짓으로 나를 부르는 아버지의 곁으로 다가갔다.

아버지의 곁에는 단정하게 정장을 갖춰입은 중년의 남자 하나가 서 있었고.

“아, 도훈아.”

“부르셨어요, 아버지?”

“그래. 내가 도훈이 너한테 소개해 줄 사람이 있어서.”

아버지가 옆에 있는 남자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분은 얼마 전에 새로 오신 박동진 대사님이신데, 대사님이 도훈이 널 꼭 좀 만나 보고 싶어 하시네. 그래서 오늘 직접 이곳에 어려운 걸음 하셨고.”

대사(大使).

미국 주재 한국 대사관의 총책임자를 가리킨다.

직급으로 따지면 장관급에 해당하는 높은 신분이었다.

그런데.

‘왜 한국 대사가 갑자기 날 만나러 온 거지?’

“만나서 반갑소. 박동진이요.”

“처음 뵙겠습니다. 제임스 킴, 아니 김도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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