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77화 (77/145)

# 77 < 도약을 위한 준비 >

127.

할리우드 인근의 한 레스토랑.

조지 루이스와 내가 오래간만에 같이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세트 제작 관계로 요 며칠은 촬영 일정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영화 는 처음부터 모든 세트를 제작하고 촬영에 들어간 것이 아니었다.

동선이 무엇보다 중요한 영화였기 때문에 하나의 씬이 완벽하게 끝나면 다시 새로운 세트를 제작하고 촬영을 재개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원 컨티뉴어스 숏’ 기법을 보다 완벽하게 구현해내기 위해서였다.

“어때? 촬영은 잘 돼 가고 있어?”

조지 루이스의 물음에 내가 대답했다.

“아직까지는요.”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아? 내가 몇몇 친한 감독에게 지금 킴이 시도하고 있는 영화 촬영 방법에 대해 이야기 했더니, 다들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들더군. 성공하기 힘든 방법이라면서 말이야.”

그런 반응이 나올 만도 하지.

두 시간 가까운 러닝타임 전체를 하나의 쇼트로 촬영한다는 건 누가 봐도 무모한 시도임이 분명해 보이니까.

하지만.

전생의 경험을 통해 나는 이 방법이 충분히 실현 가능하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그 구체적인 방법까지도 말이다.

물론 그때에 비하면 장비나 기술적인 측면에서 다소 불리한 면이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성공만 하면 그 충격은 실제 이 기법을 처음 사용한 영화 <1917>보다 더욱 클 것이 틀림없어. 영화 촬영 기술이 그때보다 훨씬 뒤떨어진 시대에 이 같은 고난이도의 촬영 기법을 선보일 수 있을 테니 말이야.’

속마음을 감추며 내가 조지 루이스에게 말했다.

“알잖아요, 조지. 실패할 것 같았으면 애초에 시작도 하지 않았을 거라는 걸.”

“으, 역시 킴의 그 자신감은 여전하구먼. 아 참, 킴. 그 소식 들었어?”

“무슨 소식요?”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영화사 가운데 하나인 콜롬비아 픽처스가 회사를 매각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는 소식 말이야.”

“콜롬비아 픽처스가요?”

“그래. 요즘 갈수록 경제 위기가 높아지고 있는데, 영화산업도 그 여파를 피해 가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지.”

콜롬비아 픽처스는 월트 디즈니, 유니버셜 픽처스, 워너 브라더스 등과 더불어 일명 ‘빅식스(Big Six)’라 불리는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영화사이다.

하지만 해마다 수천억을 영화 제작에 쏟아붓는 영화사의 특성상 대부분 재정 상태가 그리 좋지 못한 편이다.

‘겉으로 보기에는 빅식스(Big Six) 영화사들이 블록버스터급 영화를 통해 해마다 엄청난 수익을 올리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지. 그 이면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실제 흥행에 성공한 영화보다 실패한 영화의 숫자가 훨씬 더 많으니까.’

“컬럼비아 픽처스는 이미 코카콜라에 한 차례 매각되지 않았었던가요?”

“그랬었지. 근데 그 이후에도 여전히 재정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는가 봐. 그래서 이번에 다시 매각을 시도하려는 것이고. 문제는 요즘 경기가 날이 갈수록 악화 일로에 있어서 그렇게 쉽게 인수자가 나올 것 같지는 않다는 것이지.”

조지 루이스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킴도 조심하는 게 좋아. 킴처럼 그렇게 공격적인 투자를 계속하다가는 한순간에 회사 재정이 악화되는 수가 있어. 뭐, 지금까지는 매우 잘하고 있기는 하지만 말이야, 하하핫.”

“저기, 조지.”

“응.”

“가격이 대략 얼마나 될까요?”

“무슨 가격?”

“콜롬비아 픽처스 인수 가격 말이에요. 꽤 비싸겠죠?”

“그렇겠지. 못해도 삼사십 억 달러는 족히 되지 않을까? 근데 갑자기 그건 왜 물어? 설마, 킴......”

조지 루이스가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콜롬비아 픽처스를 인수할 생각을 하고 있는 거야?”

“가능하다면요.”

“크핫! 우리 킴이 요즘 영화 촬영 때문에 고생을 너무 많이 해서 그런지 머리가 아주 어떻게 돼버린 것 같네. 내 자세히는 모르겠다만, 그동안 킴이 아무리 많은 히트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도 콜롬비아 픽처스 같은 거대 영화사를 인수할 정도의 큰돈을 벌어들인 것은 아닐 텐데? 만약에 킴이 콜롬비아 픽처스를 인수하면 이건 그야말로 새우가 고래를 잡아먹는 격이라고.”

“죽은 고래는 새우 떼가 뜯어먹을 수도 있죠.”

“뭐, 뭐라고?”

“일전에 제가 조지한테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죠. 제 목표는 Film Kim을 빅식스(Big Six) 영화사에 버금가는 규모의 세계적인 영화사로 성장시키는 것이라고. 이번 콜롬비아 픽처스의 인수는 그 계획을 실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 같고요.”

“말도 안 돼!”

조지 루이스가 기가 막힌다는 표정으로 고개까지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데.

이는 결코 빈말은 아니었다.

앞서 Film Kim은 투자 배급사인 유니온 픽처스와의 합병을 통해 한 차례 회사의 규모를 키운 적이 있었다.

하지만 이 사실은 사람들의 큰 이목을 끌지는 못했다.

Film Kim이 비상장 회사인 탓에 사람들이 회사의 자산 규모를 정확하게 알지 못했고, 그 때문에 그저 일반적인 회사 합병 정도로 치부되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콜롬비아 픽처스의 인수 합병은 이야기가 다르지. 할리우드 영화계를 대표하는 빅식스(Big Six) 영화사 가운데 하나인 콜롬비아 픽처스를 우리 Film Kim이 인수하게 되면, 사람들도 우리 Film Kim을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될 테니까 말이야.’

문제는 자금이었다.

그동안 영화 제작으로 번 돈 그리고 유니온 픽처스와의 합병으로 확보된 자금을 합친다 해도,

회사의 자본금은 20억 달러를 조금 웃도는 수준일 뿐이었다.

지금 당장 회사를 팔아도 콜롬비아 픽처스 인수금의 절반도 마련할 수 없는 상황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우리 Film Kim이 콜롬비아 픽처스를 인수하는 것이 완전히 허황된 꿈만은 아니지. 물론 지금 당장은 불가능하지만, 몇 년 내로 좋은 기회가 찾아올 것이니까. 그 구체적인 해법은 바로 내가 전생에서 아주 인상 깊게 본 영화 <첨밀밀>에 담겨 있고.’

“이봐, 킴. 무슨 생각을 그렇게 골똘하게 하는 거야?”

“아무것도 아니에요, 조지.”

“내 노파심에서 하는 말인데, 괜한 생각 하지 말고 지금처럼 영화나 열심히 만들어. 콜롬비아 픽처스 같은 회사의 인수는 앞으로 10년, 아니 20년 정도 지난 후에 어느 정도 자금이 확보되면 그때 다시 한번 생각해보라고. 괜히 어설프게 나섰다가 죽도 밥도 안 되는 상황이 될 수 있으니까 말이야.”

엄포 아닌 엄포를 놓는 조지 루이스.

하지만 머잖아 그도 목격하게 될 것이다.

‘정말로 새우가 고래를 잡아먹는 모습을 말이야, 흐흐.’

128.

조지 루이스와의 저녁 식사가 끝나고, 내가 다시 Film Kim 사무실에 들렀다.

할리우드에 온 김에 레이첼의 얼굴도 한번 보고 가기로 한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두 사람 얼굴 본지도 꽤 오래됐군. 나는 나대로 영화 의 촬영 때문에 바쁘고, 레이첼은 레이첼대로 영화 의 촬영 때문에 바빠서 말이야.’

사무실에 들어서자,

“어머, 킴.”

레이첼이 반가운 목소리로 나를 맞아 주었다.

“어쩐 일이에요? 지금 캐나다에 있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이번 주는 촬영이 없어서요. 루이스 감독님과 약속도 있고, 또 레이첼 얼굴도 볼 겸, 겸사겸사 오게 됐어요.”

“그렇구나.”

“레이첼 집으로 바로 가려다 혹시나 해서 회사에 연락해봤는데, 여기 있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놀라게 해주려고 일부러 몰래 왔어요, 하하.”

내가 다시 물었다.

“근데 이 시간까지 퇴근도 안 하고 뭐 하고 있었던 거예요?”

“오늘 촬영한 영상 좀 확인하느라고요.”

“어때요? 촬영은 별문제 없이 잘 진행되고 있어요?”

“그럼요. 킴이 보기에는 아직 햇병아리겠지만, 저도 나름 두 편의 히트 영화를 가진 중견 감독이라고요.”

“아, 예, 그러시구나.”

“으, 저 영혼 없는 대답 좀 봐. 킴. 지금 저 비웃는 거죠?”

“하하. 그럴 리가요. 그보다 작업은 언제 끝나요? 나 오늘 레이첼이랑 같이 술 한잔할까 생각 중인데. 할 얘기도 좀 있고요.”

“금방 끝나요. 사장실에서 기다리고 있으면 제가 그리로 갈게요.”

“그래요, 레이첼.”

***

잠시 후, 회사 인근의 고급 바(Bar).

레이첼과 내가 마주 앉아 칵테일 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많이 힘들죠? 이번 영화가 해외 올 로케 촬영이라서요.”

레이첼의 물음에 내가 대답했다.

“얼마 멀지도 않은 거린데요, 뭐.”

“촬영 진행 상황은 어때요? 별 문제 없이 잘 진행되고 있어요?”

“그게......”

내가 지금까지 진행된 촬영에 대해 설명하기 시작했다.

오프닝 전투씬 촬영에서부터,

참호에서 진행된 촬영,

그리고 카메라에 그림자가 잡히는 문제로 한바탕 소동이 있었다는 사실까지.

“역시나 쉽지 않은 작업이네요. 저 같으면 애초에 시도할 생각조차 못 했을 촬영 방법인 것 같아요.”

“이런 시행착오들이 쌓여서 영화산업이 발전하는 거죠. 그보다 레이첼.”

“네.”

“현재 우리 회사가 동원 가능한 자금이 얼마나 돼요?”

영화감독이자,

회사의 CFO(재무담당 최고 책임자)직을 겸하고 있는 레이첼은 Film Kim의 재정 상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갑자기 그건 왜요?”

“아까 루이스 감독님 만났을 때 들은 이야기인데, 요즘 콜롬비아 픽처스가 회사 매각을 시도하고 있다고 하더라고요.”

“콜롬비아 픽처스요?”

“네. 최근 투자한 영화들이 연달아 실패를 거듭해서 그런지, 회사 재정이 많이 안 좋은가 보더라고요. 그래서 모회사인 코카콜라가 영화산업에서 손을 뗄 모양이더라고요.”

“그렇구나. 근데 갑자기 그 이야기는 왜 하는 거예요? 설마 킴......”

아까 전의 조지 루이스만큼이나 놀란 표정으로 레이첼이 말했다.

“콜롬비아 픽처스를 인수할 생각을 하고 있는 거예요?”

“맞아요. 그렇게 되면 현재 콜롬비아 픽처스가 보유하고 있는 영화 판권과 더불어 그동안 콜롬비아 픽처스가 구축해온 인프라를 한 번에 우리 Film Kim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테니까요. 이건 단순히 회사 하나를 사는 의미가 아니라 몇십 년의 시간을 사는 거죠.”

“......”

레이첼이 잠시 생각에 잠겼다.

무려 6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콜롬비아 픽처스.

영화사 관계자라면 누구나 탐을 낼만 한 회사이다.

문제는 인수 자금이겠지만.

“현재 회사의 유보금, 그리고 기존 투자금을 모두 회수하면 10억 달러 정도는 마련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여기에 조금 무리해서 융자까지 내면 20억 달러 정도, 최대 20억 달러 정도는 어떻게 해볼 수 있겠네요.”

레이첼이 덧붙여 말했다.

“하지만 이정도 돈으로 콜롬비아 픽처스 같은 거대 영화사를 인수하는 건 무리겠지만.”

“20억 달러라......”

“아버지에게 부탁해볼까요? 킴에 대해 잘 아는 아버지라면 충분히 믿고 돈을 빌려주실 것 같은데.”

“아뇨, 굳이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아요. 레이첼 아버지의 도움을 받는 건 앞선 회사 인수 합병 때만으로도 충분하니까요.”

내가 다시 레이첼을 향해 말했다.

“있잖아요, 레이첼.”

“말해요, 킴.”

“나 믿죠?”

“에? 갑자기 그게 무슨......”

“레이첼도 알다시피 제가 지금까지 만든 영화 가운데 단 한 번도 흥행에 실패한 적이 없었잖아요.”

“그렇죠. 근데 새삼스럽게 왜 그런 말을 하는 거죠?”

“이번에도 날 한 번 더 믿어달라고요. 콜롬비아 픽처스 인수 건과 관련해서 말이죠. Film Kim은 레이첼과 내가 회사 지분 전부를 가지고 있는 회사니까, 레이첼만 동의하면 어떤 의사 결정도 마음대로 내릴 수 있으니까요.”

“저야 킴의 결정이라면 무조건 믿고 따를 생각이지만, 이건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요. 일단 가장 큰 인수 자금 문제부터 걸림돌이 될 텐데......”

“일단 그 문제는 제가 좀 더 알아보고 나중에 다시 이야기할게요. 만약 그때 가서 내가 어떤 의사 결정을 내리든 레이첼은 날 믿고 따라줄 수 있느냐만 이야기해주면 돼요.”

“그러다 설마 회사 망하는 건 아니겠죠?”

“망하면 우리 아버지가 운영하는 슈퍼마켓 가서 둘이 같이 일하죠, 뭐.”

“에?”

“하하, 농담이에요, 농담. 절대 그럴 일 없으니까 안심해도 돼요.”

“킴도 참.”

레이첼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근데 생각해보니 그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네요.”

“뭐가요?”

“킴이랑 같이 도란도란 슈퍼마켓 운영하는 것도요. 왠지 재밌을 것 같지 않아요?”

“......”

“호호, 저도 농담이에요,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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