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76화 (76/145)

# 76 < 전쟁 영화 (4) >

실제 영화 촬영 현장에서는,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다양한 변수들이 수시로 생겨난다.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나 장비 고장, 배우의 부상 등이 그것이다.

이번 영화 도 마찬가지였다.

프리 프로덕션 기간 동안 진행된 수많은 회의 시간에도,

촬영 이전에 이루어진 수차례의 리허설 기간에도 전혀 발견하지 못했던 변수.

그것은 바로 ‘그림자’였다.

“그림자가 문제라니, 그게 대체 무슨 말입니까, 감독님?”

“그게......”

로저 디킨슨 감독이 대답했다.

“리허설 때는 미처 눈치채지 못했는데, 막상 촬영을 시작하고 보니 특정 각도에서 카메라나 조명 스태프들의 그림자가 화면에 잡히는 경우가 있더라고요.”

“그게 정말입니까?”

“예. 게다가 매일 미세하게 변하는 날씨와 그에 따른 그림자의 길이 차이는 나중에 후반 작업을 할 때 씬과 씬을 자연스럽게 이어붙이는 것을 어렵게 만들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영화는 2시간에 달하는 러닝타임 전체가 하나의 씬처럼 보이게 하는 ‘원 컨티뉴어스 숏’ 기법이 핵심이 되는 영화였다.

이를 위해 로저 디킨스 감독과 나는 촬영 현장을 수십 차례 오가며 관객들이 절대 눈치챌 수 없는 교묘한 편집 지점을 미리 구상해두고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정교하게 편집한다고 해도, 이어붙인 씬과 씬 사이의 미세한 날씨 변화나 그림자의 길이 차이가 발생하면 관객들도 이를 쉽게 눈치챌 수 있어. 그렇게 되면 이번 영화의 의미 또한 상당히 퇴색되게 될 테고.’

한 가지 다행스러운 것은 이번 영화의 촬영을 담당하고 있는 사람이 ‘영상의 마술사’라 불리는 로저 디킨스 감독이라는 점이었다.

그래서인지, 그는 문제 제기와 동시에 이미 그 해답까지 준비해놓고 있었다.

“그래서 말인데요, 감독님.”

“예.”

“차라리 흐린 날을 골라서 촬영을 진행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흐린 날요?”

“예. 제 생각에 흐린 날을 골라 촬영을 하는 것이 맑은 날에 촬영하는 것보다 훨씬 더 화면의 일관성을 유지하기 쉬울 것 같습니다. 햇빛이 없으니 당연히 그림자도 거의 생기지 않을 것이고요.”

“호오, 그거 아주 괜찮은 방법인 것 같은데요? 그럼 지금 당장 스태프들을 모아 회의를 한번 해보도록 합시다.”

126.

애초 계획했던 영화 촬영 일정이 대폭 수정되었다.

날씨 변화와 그림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다소 흐린 날을 골라서 촬영을 진행하기로.

대신 날씨가 맑은 날에는 리허설을 진행하기로 했다.

‘생각지도 못했던 변수로 인해 프로덕션 기간이 예상보다 길어지긴 하겠지만, 상관없어. 어차피 이번 영화는 다른 무엇보다 완성도가 가장 중요한 영화이니까.’

어쨌든 그 덕분에,

나도 촬영 스태프들도 아침에 일어나면 습관처럼 가장 먼저 하는 일이 숙소 창문을 열고 날씨를 확인하는 일이 되어 버렸다.

***

“자자, 얼른 서두릅시다.”

이른 아침부터 조감독이 스태프들을 재촉하기 시작했다.

오프닝 전투씬 촬영 이후 3일 만에 처음으로 촬영하기 적당한 날씨가 만들어진 탓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영화의 주 촬영지인 이곳 브리티시 컬럼비아 지역이 구름이 자주 끼는 지역이라는 것이지. 그래도 혹시 모르니 한번 촬영을 나갔을 때 최대한 많은 분량을 찍을 수 있도록 해야겠어.’

숙소에서 약 30분가량을 차로 달려,

드디어 영화 촬영장에 도착했다.

뒤이어 출연 배우들도 속속 모여들기 시작했다.

앞선 여러 번의 리허설을 통해 동선과 연기 방법을 모두 숙지하고 있는 상태.

그 때문에 촬영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어 갔다.

“카메라 스탠바이, 레디, 액션.”

메가폰을 타고 나의 음성이 흘러나오자,

본격적인 촬영이 시작되었다.

첫 장면은 주인공 다니엘이 지휘부 벙커를 나서는 모습이었다.

벙커 내부에서 상관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은 별도의 세트에서 이미 촬영을 끝마친 상태였다.

사실 이번 영화의 서사 구조는 무척이나 단순했다.

독일군이 파놓은 함정에 빠져 전멸할 위기에 처한 아군 병사들을 구하기 위해 주인공 다니엘이 직접 전방에 주둔하고 있는 부대에 지휘관의 공격 중지 명령서를 전달하는 아주 단순한 줄거리를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는 서사보다 주인공 다니엘이 목격하는 상황이 더욱 중요하지. 이번 영화에 사용된 ‘원 컨티뉴어스 숏’ 기법 덕분에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주인공에 완전히 몰두해서 주인공이 보는 모든 광경을 실시간으로 인지하게 되고, 이 과정을 통해 1차 세계대전 당시에 진행된 참호전의 참혹함을 온몸으로 느끼게 될 테니까 말이야.’

다니엘이 사전에 약속된 동선을 따라 카메라 앞을 스쳐 지나갔다.

배우와 스태프들의 위치가 자연스럽게 바뀌면서 이제는 촬영 스태프들이 그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덕분에 카메라에는 다니엘의 주변 풍경이 적나라하게 비춰졌다.

미술팀이 사전에 철저한 준비를 해둔 덕분에 그가 지나가는 지역은 실제 전쟁터와 같은 황폐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한참을 걸어가던 다니엘의 눈앞에,

드디어 아군 참호로 통하는 입구가 하나가 나타났다.

다니엘이 경계를 서고 있는 병사 하나를 붙잡고 물었다.

“이봐, 맥도웰 중령님은 어디 계신가?”

“맥도웰 중령님요?”

“그래. 본부의 명령서를 가지고 왔어.”

“참호 가장 끝에 있는 진지로 가보십시오. 아마 거기 계실 겁니다.”

병사가 가르쳐준 방향을 향해 다시 발걸음을 옮기는 다니엘.

비가 내린 탓인지, 참호 속은 흙탕물이 흥건하게 고여 있었다.

그런데.

참호 속에 있는 병사들의 상태가 심상치 않았다.

앞서 한 차례의 전투가 있었는지, 심각한 부상을 입은 병사들이 꽤 많이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다.

이러한 병사들의 모습 하나하나는 다니엘의 뒤를 따르는 촬영 스태프들에 의해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기고 있었다.

‘연합군과 독일군 모두에게 인간 지옥의 극치를 보여준 참호전. 참호전의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병사들이었지. 수시로 쏟아지는 적군의 포탄 공격과 독가스, 여기에 비만 내리면 참호 속은 진흙밭으로 변했고, 곳곳에 미처 수습하지 못한 병사들의 시체와 절규를 내뱉는 부상자들의 목소리는 쉴새 없이 쏟아져 나오는 곳이 바로 참호였으니까.’

주인공 다니엘의 뒤를 따르는 촬영 카메라는,

이 같은 참호의 실상을 낱낱이 필름으로 담아내고 있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장면이,

중간에 끊기는 부분 없이 하나의 긴 씬으로 연결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이번 영화 촬영을 위해 사전에 10km에 달하는 긴 참호를 건설했기 때문이지. 영화의 주인공인 다니엘은 이 참호를 따라 이동하며 전쟁에 참여한 병사들의 열악한 상황을 관객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고.’

참호 속을 한참을 걸어온 다니엘이,

드디어 맥도웰 중령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진지 입구에 도착했다.

“맥도웰 중령님 안에 계신가?”

다니엘이 진지 앞에 서 있는 병사에게 물었다.

“맥도웰 중령님요?”

“그래. 본부의 명령서를 가지고 왔다.”

“아마 계실 겁니다.”

다니엘이 곧장 진지 입구로 들어섰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이,

첫 번째 편집 지점이 되는 곳이었다.

다니엘이 진지 입구로 들어서면서 화면이 어두웠다가 다시 밝아지면서 진지 내부에 있는 맥도웰 중령을 목격하는 장면.

영화상에서는 하나의 씬으로 자연스럽게 연결된 장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각각 촬영된 개별 씬을 서로 이어붙일 예정이었다.

‘이를 위해서는 밀리미터 단위까지 정확하게 계산된 동일한 카메라 앵글로 촬영이 이루어져야 하고.’

“컷!”

나의 음성을 끝으로,

드디어 씬 하나의 촬영이 끝이 났다.

하지만 모니터 과정에서 몇몇 장면의 문제점이 발견되었고,

결국 세 차례나 더 재촬영 과정을 거치고 나서야 비로소 나는 ‘오케이’를 외칠 수 있었다.

127.

이번 영화의 주인공 다니엘 역은 영화 <탑건>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영화 배우 톰 크루즈였다.

<탑건> 투자자로 처음 나와 인연을 맺은 톰 크루즈는 이번 영화에 무척이나 적극적이었다.

시나리오를 받자마자 곧바로 이번 영화의 출연을 결정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는 톰 크루즈 외에도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들이 일종의 카메오로 출연을 하게 되지. 그들은 모두 앞선 영화 촬영을 통해 나와 인연을 맺은 배우들이고.’

가장 먼저 등장한 것은,

내가 만든 영화 <레이더스>의 주인공인 인디아나 존슨 역을 맡았던 윌리엄 포드였다.

그는 이번 영화에서 본부 지휘관 토마스 대령 역을 맡아 주인공 다니엘에게 공격 중지 명령서를 써주며 위기에 처한 아군을 구하는 임무를 맡기게 된다.

‘내가 윌리엄 포드에게 이번 영화에 조연으로 깜짝 출연을 부탁하자, 그는 이를 아주 흔쾌히 수락했지. 내가 그를 <레이더스>의 주인공으로 적극 추천한 덕분에 지금의 위치까지 오게 되었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지.’

또 한 사람은 맥도웰 중령 역을 맡은 안소니 홉킨즈였다.

영국의 유명 배우 출신인 그는 할리우드 진출 이후에는 큰 빛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만든 영화 <체이스 오브 리벤지2>에 출연하면서 새롭게 연기력을 주목받게 되었다.

그 인연 때문에 이번 영화에 흔쾌히 출연 결정을 한 것이었고.

‘마지막으로 출연할 또 한 명의 카메오는 바로 영화의 가장 마지막에 주인공 다니엘이 만나게 될 데이비드 대위이지. 데이비드 대위는 <체이스 오브 리벤지> 출연 이후 할리우드 최고의 액션 배우가 된 배니 스콧이 우정 출연할 예정이고.’

이처럼 영화 는,

장면 곳곳에서 깜짝 등장하는 할리우드 유명 배우의 모습을 찾아보는 재미도 더불어 관객들에게 제공할 예정이었다.

***

맑은 날씨로 인해,

오늘은 별도의 실내 세트장 촬영이 진행됐다.

이번 씬은 주인공 다니엘이 맥도웰 중령에게 본부에서 하달받은 공격 중지 명령서를 전달하는 장면이었다.

------

“유인작전?”

맥도웰 중령이 놀란 목소리로 다니엘에게 물었다.

“예, 중령님. 지금 독일군은 미리 파놓은 함정으로 아군을 유인하기 위해 일부러 후퇴 작전을 펴고 있습니다. 항공 사진을 통해 이를 확인한 토마스 대령님이 직접 예하 부대에 공격 중지 명령서를 전달하라고 하셨습니다.”

“다행이군. 하마터면 독일 놈들의 함정에 걸려들 뻔했으니 말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맥도웰 중령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근데 한가지 문제가 있어.”

“문제라니요?”

“서부 지역에 전진 배치되어 있는 2대대와 3대에도 이 사실을 알려야 하는데, 문제는 지금 명령서를 전달할 마땅할 사람이 없다는 것이지. 독일 놈들이 후퇴 직전에 우리 쪽으로 대규모의 공격을 감행하는 바람에 이곳 부대 상황이 말이 아니거든. 게다가 지금 통신선도 완전히 마비되어버렸고.”

“......”

“그래서 말인데, 다니엘 중사 자네가 직접 가줄 수 없겠나? 내가 별도로 이곳 지리를 잘 알고 있는 사병을 하나 붙여줄 테니까 말이야.”

다니엘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맥도웰이 진지 입구를 향해 크게 소리쳤다.

“브라이언! 밖에 있나? 안으로 한번 들어와 보게.”

“예, 대대장님.”

사병 하나가 진지 안으로 들어왔다.

맥도웰이 이곳으로 들어올 때, 경계를 서고 있던 병사 가운데 하나였다.

“브라이언 자네는 지금 바로 여기 있는 다니엘 중사와 함께 2대대와 3대대가 주둔하고 있는 최전방 참호로 이동한다. 시간이 없으니 이유는 가면서 듣는 것으로 하고.”

졸지에 계획에도 없던 최전방 행을 하게 된 다니엘.

하지만 자신의 손에 천 명이 넘는 아군의 목숨이 달려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는 그는 어쩔 수 없이 명령을 수행하기로 결정한다.

------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