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75화 (75/145)

# 75 < 전쟁 영화 (3) >

현재 미국에는 지역별로 꽤 많은 수의 한인회가 존재하고 있었다.

LA, 뉴욕, 필라델피아, 아틀랜타 등등, 한인이 거주하는 지역에는 예외 없이 모두 한인회가 조직되어 있었다.

미주한인회총연합회는 바로 이 같은 미국 내 한인회를 총괄하는 단체였다.

그 정점에 있는 것이 바로 한인총연합회장이었고.

“한인총연합회장 선거요?”

나의 물음에 아버지가 대답했다.

“그래. 도훈이 네 덕분에 아버지가 미국 한인 사회에서 꽤 유명 인사가 됐잖냐? 그래서 사람들이 나보고 한인총연합회장 선거에 나와달라고 어찌나 성화인지, 이건 뭐 말만 선거일 뿐이지 거의 나를 회장직에 추대하려는 분위기야.”

충분히 그럴 만도 했다.

아버지가 LA 한인회장에 선출되고 난 이후, LA 한인 사회는 한흑갈등 해결과 더불어 특히 경제적으로 많은 혜택을 누리게 되었다.

아버지가 소유하고 있는 재단 ‘Kim′s Foundation’이 LA 지역 한인들을 위해 여러 가지 사회사업을 진행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이 지역 한인들은 우리 Film Kim이 제작하는 영화 투자에도 간접적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아마 다른 지역의 한인들도 이런 경제적인 혜택을 누리고 싶은 거겠지. 그래서 아버지에게 한인총연합회장 선거 출마를 종용하고 있는 것이고.’

나쁘지 않은 상황처럼 보였다.

아버지를 중심으로 한인 사회가 하나로 뭉치게 되면 현재 미국 사회에서 이방인 취급을 받고 있는 한인들의 지위도 그만큼 높아지게 될 테니까.

무엇보다 한인들이 LA 폭동과 같은 사회 문제의 희생양이 되는 것을 막을 수도 있을 것이었다.

“괜찮은 생각인 것 같네요, 아버지.”

“그래?”

“네. 아버지만큼 진심으로 한인 사회 발전을 위해 노력하는 분도 없을 테니까요. 그러니 저도 앞으로 아버지가 하시는 일에 적극적인 도움을 드리도록 할게요.”

124.

약 5개월 간의 프리 프로덕션 과정을 거쳐,

드디어 영화 가 크랭크 인 됐다.

주 촬영 장소는 캐나다 서부의 브리티시 컬럼비아.

이전부터 할리우드 영화 촬영지로 자주 애용되는 곳이었다.

세련된 도시와 풍부한 자연환경, 상대적으로 저렴한 물가와 가까운 거리, 여기에 미국과 비슷한 영미권 문화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보다 더 중요한 점은,

‘전쟁 영화 촬영지로 브리티시 컬럼비아만큼 적격인 곳도 또 없다는 점이지. 주변에 산악, 초원, 수풀 지대가 골고루 분포되어 있고, 특히 긴 참호 건설에 필요한 넓은 평원도 산재해 있으니까 말이야.’

가장 먼저 촬영할 장면은 영화의 오프닝을 장식할 ‘마른 전투’ 장면이었다.

이 전투에서 독일군은 연합군에게 처음으로 패배하게 되고, 그 결과 전쟁은 서로 참호를 파고 대치하는 장기전의 양상으로 변화하게 된다.

‘이번 영화의 오프닝 전투씬의 핵심은 리얼리티(Reality), 다시 말해 전쟁의 참혹함을 고스란히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라 할 수 있지.’

기존 할리우드 전쟁 영화의 전투씬들은 일정한 패턴이 있었다.

가령 예를 들면,

카메라는 늘 주인공을 따라 움직였고, 사상자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방식도 제한적이었다.

촬영 또한 관객들을 혼란스럽게 만들지 않기 위해 카메라의 흔들림을 최소화하는 방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관객들은 제삼자적 관점에서 전쟁을 지켜보는 관찰자의 위치에 있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이번 영화 의 전투씬은 기존의 전쟁 영화들이 가지고 있는 이 같은 진부한 클리셰를 완전히 깨부술 예정이지. 그 구체적인 방법은......’

먼저 흔들림이 심한 핸드헬드 카메라를 주로 사용할 예정이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병사들과 함께 실제로 전투를 벌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현장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또한 전투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상자들의 모습을 거의 고어(gore)물 수준으로 잔혹하게 묘사할 예정이었다.

그동안의 전쟁 영화들이 보여주지 않은 실제 전쟁의 참혹한 실상과 공포를 관객들이 고스란히 느낄 수 있게 만들기 위함이었다.

주연과 조연, 적과 아군의 구분 없이 펼쳐지는 대략 10분가량의 참혹한 오프닝 전투씬.

이를 통해 나는 관객들에게 진짜 전쟁이란 이런 것이다, 라는 인식을 명확하게 심어줄 예정이었다.

***

영화 촬영은 이른 아침부터 시작됐다.

동이 틀 무렵 이미 스태프와 배우들의 소집이 완료됐고,

곧바로 촬영 브리핑도 시작됐다.

뒤이어 카메라, 조명, 마이크 등이 연달아 세팅되기 시작했고, 폭약 설치를 위한 특수효과팀도 현장에 투입되었다.

약 두 시간에 걸친 리허설을 통해 500명에 달하는 엑스트라의 동선 확인도 세세하게 이루어졌다.

“자, 그럼 본 촬영 시작합니다. 각 팀별로 스탠바이 상황을 무전으로 회신 바랍니다.”

무전을 통해 나의 음성이 흘러나오자, 각 팀의 감독급 스태프들이 제각각 준비 상황을 알려왔다.

현장이 워낙 넓고,

동원된 인원도 무척 많아서,

모든 의사소통은 감독급 스태프들의 손에 들린 무전기를 통해 이루어지고 있었다.

무전을 통해 모든 촬영 준비가 끝난 것을 확인한 내가 메가폰을 들고 소리쳤다.

“제1씬 촬영 시작합니다. 스탠바이, 레디, 액션!”

대망의 첫 촬영이 시작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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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동부 마른 강 인근의 숲속.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 소리, 풀 소리를 제외하고는 쥐죽은 듯한 고요함만이 주변을 감돌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 푸드득!

갑자기 새 한 마리가 정적을 깨뜨리며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뒤이어,

완전 무장을 한 군인들이 대거 모습을 드러냈다.

후퇴하는 영국군의 뒤를 바짝 뒤쫓는 독일 제1군 소속의 병사들이었다.

“왜 갑자기 작전이 바뀐 거야? 당초 계획은 정면의 프랑스군을 격파하고 파리까지 그대로 진격하는 것이 아니었나?”

한 독일군 병사의 물음에 옆에 있던 또 다른 병사가 대답했다.

“난들 아나. 상부에서 내린 명령이니 우린 그냥 따르는 수밖에.”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배후의 영국군을 먼저 공격하기 위해 남쪽으로 이동한다는 것 같던데?”

“지휘부가 미친 것이 분명해. 보급도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상황에서 갑자기 우회를 지시하다니 말이야. 괜히 영국 놈들이 매복이라도 하고 있으면 어쩌려고.”

“내 말이. 그래도 어쩌겠나. 우리 같은 하급 병사들은 시키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병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 퍽!

자신과 대화를 나누던 동료의 얼굴이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짓이겨졌다.

갑자기 어디선가 총알 한 발이 날아와 그의 얼굴에 그대로 박힌 것이었다.

살아남은 병사가 놀란 목소리로 소리쳤다.

“저, 적이다! 적이 매복하고 있다!”

동시에,

- 쾅! 콰쾅! 콰콰쾅!

여기저기서 포탄이 날아들기 시작했다.

매복해 있던 프랑스군 포병 부대가 일제히 포 사격을 실시한 것이다.

- 펑!

- 콰쾅!

- 으악!

여기저기서 터지는 포탄과 비명 소리.

주변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해갔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독일군과 영국군 부대 간의 치열한 총격전이 벌어진 것이다.

- 탕! 타탕!

- 퓨슝!

- 콰광!

대략 7일 가까이 이어진 마른 전투.

독일군과 영국군 양측 모두 수십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대혈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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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컷! 오케이!”

무전을 타고 나의 지시가 다시 전 스태프들에게 전달됐다.

“풀 샷은 이 정도면 됐고, 다음으로 쇼트 들어갑니다. 특수효과팀과 분장팀 준비 시작하세요.”

앞서도 말했다시피,

이번 영화의 오프닝 전투씬은 실제 전투 과정의 참상을 그대로 스크린에 재현하는 것이 목표였다.

이를 위해서는 풀샷으로 찍은 전투 장면과 더불어 사상자들의 모습을 담은 개별 쇼트가 필요했다.

총을 맞고 쓰러져 죽어가는 병사,

포탄을 맞아 몸이 산산 조각 난 병사,

울부짖으며 자신의 잘려 나간 팔다리를 찾는 병사,

심지어는 포격으로 머리통이 뭉개지거나, 몸속의 내장이 밖으로 튀어나온 병사의 모습까지도 고스란히 카메라에 담겨질 예정이었다.

‘이러한 장면은 지금까지의 할리우드 전쟁 영화에서는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었지. 그 때문에 이번 영화가 본격적인 상영을 시작하면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킬 것이 틀림없어. 특히 오프닝 영상을 통해 받은 관객들의 충격은 이후 나올 영화의 내용에도 깊게 몰입할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을 테지.’

기존의 할리우드 전쟁 영화와는 차원이 다른 리얼리티를 가진 오프닝 전투씬.

이는 원 컨티뉴어스 숏이라는 독특한 촬영 기법과 더불어 이번 영화의 흥행을 가져올 중요한 요소였다.

125.

총 3일간에 걸쳐 진행된 영화 의 오프닝 전투씬 촬영이 모두 끝났다.

이후부터는 주연 배우들의 합류와 더불어 본격적인 ‘원 컨티뉴어스 숏’ 촬영이 진행될 예정이었다.

‘이번 영화에는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들이 대거 출연할 계획이지. 그동안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쌓아온 나의 인맥을 바탕으로 말이야.’

가장 먼저 주인공 ‘다니엘’역을 맡은 배우는 최근에 개봉한 영화 <탑건>으로 일약 스타덤에 오른 배우 톰 크루즈였다.

<탑건>은 우리 Film Kim이 최대 투자자로 참여한 영화이기도 했다.

‘전생의 기억 덕분에 영화 <탑건>이 흥행에 큰 성공을 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나는 이 영화의 시나리오를 접하자마자 곧바로 투자에 참여를 했지. 그때의 인연 덕분에 톰 크루즈도 이번 내 영화에 흔쾌히 출연 결정을 하게 됐고.’

출중한 외모만큼이나 뛰어난 연기력,

여기에 모든 액션 연기를 대역 없이 소화할 정도로 연기에 대한 열정이 뛰어난 톰 크루즈의 출연은 이번 영화의 성공을 가져올 중요한 요소 가운데 하나임이 틀림없었다.

“오래간만입니다, 감독님.”

오프닝 전투씬 촬영이 끝나고, 곧바로 촬영장에 합류한 톰 크루즈.

그런 그가 내민 손을 맞잡으며 내가 대답했다.

“아, 톰. 그동안 별일 없으셨죠?”

“그럼요.”

“컨디션은 좀 어때요? 영화 <탑건> 촬영 끝나고 제대로 쉬지도 못했을 텐데.”

“괜찮습니다. 무엇보다 이런 훌륭한 영화를 놓치면 앞으로 두고두고 후회할 것 같아서 말이죠, 하하.”

“하하. 톰이 그렇게 이야기해주니 나도 무척 기쁘네요. 자, 그럼 준비 끝나는 대로 최종 리허설 진행하고, 별문제 없으면 곧바로 촬영 들어가겠습니다.”

“예, 감독님.”

***

주인공 다니엘 역을 맡은 톰 크루즈의 첫 등장씬은 대략 10분 가까이 이어지는 긴 촬영이었다.

주인공 다니엘이 지휘관과 대화를 나누는 장면.

이를 통해 현재 영국군이 큰 위기에 빠져있음을 알리는 장면.

지휘관으로부터 공격 중지 명령서를 받아든 다니엘이 지하 벙커를 나와 독일군과 대치를 벌이고 있는 아군 참호를 향해 이동하는 장면.

이 모든 장면이 중간에 끊기는 부분 없이 연속적으로 촬영되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다니엘이 영국군 3대대가 주둔하고 있는 참호에 도착하는 장면까지 계속 이어질 예정이었다.

그런데.

“컷!”

촬영 감독 로저 디킨스의 사인을 받은 내가 도중에 촬영을 멈추었다.

리허설 과정에서는 발견하지 못했던 중요한 문제가 하나 발생했기 때문이었다.

“왜요? 촬영에 무슨 문제라도 생겼습니까?”

“그게......”

촬영 감독 로저 디킨스가 대답했다.

“그림자 때문에요.”

“그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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