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74화 (74/145)

# 74 < 전쟁 영화 (2) >

122.

영화사 Film Kim.

내가 영화 의 시나리오를 최종 점검하고 있었다.

‘영화의 제목인 . 이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아군 참호와 상대편 참호 사이의 글자 그대로 ‘무인(無人) 지대’를 뜻하는 말이지. 이런 이름이 붙은 이유는 이곳에 살아 있는 것이라고는 사람 시신을 파먹는 쥐와 벌레밖에 없었기 때문이었고.’

1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과 독일군은 서로 참호를 파고 오랜 기간 대치를 계속했다.

문제는 참호의 상황은 그야말로 지옥이나 다름없었다는 것이다.

연일 계속되는 폭격과 독가스로 수많은 병사가 참호 속에서 죽어 나갔다.

보급조차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대다수 병사가 영양실조에 허덕였다.

비만 오면 진흙밭으로 변하는 참호 때문에 발이 썩어들어가는 ‘참호족’이라는 병에 시달리는 병사도 부지기수였다.

이로 인해 많은 병사가 이른바 쉘쇼크(Shellshock)라 불리는 정신적 공황 상태에 빠져 있었다.

‘영화 는 바로 이런 참호전의 비극적인 상황을 주인공 다니엘의 시선을 통해 적나라하게 보여줄 예정이고.’

문제는,

이번 영화가 지금까지 내가 연출한 그 어떤 작품보다 오랜 준비 기간이 필요한 영화라는 것이었다.

영화 전체가 ‘원 컨티뉴어스 숏’ 기법으로 촬영이 이루어질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수개월 간의 리허설 과정을 통해 배우들의 동선을 하나하나 정확하게 맞추고 촬영에 들어가야 했다.

실제 촬영 기간 또한 상당히 오래 걸릴 것으로 예상되었다.

컷이 적은 영화의 특성상 NG가 나면 최소 10분이 넘는 긴 씬을 처음부터 다시 촬영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여기에 인위적인 조명을 쓸 수도 없어 촬영 날짜도 매번 비슷한 날씨가 나타나는 날로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영화의 제작 소식을 전해 들은 조지 루이스는 고개부터 절레절레 흔들고 나섰다.

“어휴, 전쟁 영화? 웬만하면 다시 한번 생각해봐, 킴.”

“왜요?”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제작비는 제작비대로 깨지고, 그나마 흥행이라도 잘 되면 모르겠다만, 모든 영화 장르를 통틀어 가장 흥행 하기 어려운 장르가 바로 전쟁 영화잖아.”

“그래도 간간이 성공하는 영화들도 있잖아요?”

“킴이 말한 그대로 ‘간간이’일 뿐이야. 길 가는 사람 한번 붙잡고 물어봐. 지금 당장 떠오르는 전쟁 영화가 어떤 게 있는지. 아마 다들 <플래툰>이랑 <지옥의 묵시록> 말고는 딱히 다른 영화를 떠올리는 사람이 없을걸? 지금까지 수많은 전쟁 영화가 만들어졌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야.”

“<람보>도 있잖아요. 흥행 면에서는 그야말로 대박을 친.”

“그건 결이 조금 다른 영화고. 어쨌거나 난 이번 영화 제작의 반대에 한 표 던진다. 물론 최종 결정은 킴이 하겠지만.”

“이미 결정 내리고 하는 말이에요. 일부 스태프도 이미 계약이 끝난 상태고요.”

“읔! 그럼 뭐하러 나한테까지 굳이 이야기하는 건데?”

“조지에게 몇 가지 부탁할 일이 있어서요.”

“무슨 부탁?”

“조지도 알다시피 이번 영화는 제1차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배경으로 하는 영화잖아요? 그 때문에 당시 상황에 대한 정확한 고증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아요. 그래서 말인데 조지가 알고 있는 역사학자가 있으면 저에게 좀 소개해주세요. 되도록 현대사를 전공한 사람으로요.”

전쟁 영화에 있어 고증은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당시 사용했던 무기, 복장 등을 완벽하게 재현해내야지만 관객들에게 더 큰 몰입감을 선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에 많은 전쟁 영화들이 전문 역사학자들을 자문위원으로 영화에 참여시킨다.

일례로 영화 <트로이>에서는 트로이 전쟁 당시의 모습을 완벽하게 재현하기 위해 무려 7명의 전문 역사학자들을 영화에 참여시켰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증 부분에서 상당한 비판을 받아야 했지만.

“그야 뭐 어려운 일은 아니지. 이곳 할리우드에서는 시대물을 찍을 때 킴처럼 전문 역사학자의 자문받는 경우가 흔한 일이니까. 그래서 이런 일을 전문적으로 하는 교수들도 있으니, 마음만 먹으면 쉽게 찾을 수 있을 거야. 아, 내친김에 국방부 쪽 인사들도 좀 소개해줄까?”

“국방부요?”

“그래. 이번에 킴이 제작하는 영화가 전쟁 영화인 만큼 군(軍 )으로부터 장비나 전술 관련 도움을 받으면 촬영이 훨씬 수월해질 수 있잖아.”

“그래 주시면 저야 고맙죠.”

“대신에 영화 내용이 군의 위신을 떨어뜨리는 내용이면 곤란해. 그런 내용이면 군에서도 절대 협조해주지 않으려고 할 테니까.”

“그런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아요.”

“좋아, 그럼 내가 한번 알아보고 연락하도록 하지.”

“고마워요, 조지. 언제 제가 술 한잔 살게요.”

“술?”

조지 루이스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미안하지만 나 술 끊은 지 좀 됐거든. 그러니 술 대신 밥으로 하자고, 흐흐.”

123.

1985년 가을.

영화 의 프리 프로덕션이 시작됐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스태프 섭외인데......’

최근 들어 할리우드 영화계에서는,

팀 단위 계약보다 개인 계약이 늘어나는 추세였다.

배우나 감독 못지않게 스태프들도 커리어가 중요시되고 있었고,

이에 실력 있는 스태프를 팀에 합류시키기 위해서는 회사 직원들이 직접 발로 뛰며 계약을 성사시켜야만 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가장 중요한 촬영 감독 로저 디킨스의 섭외가 이미 이루어져 있다는 것이지. 이번 영화는 로저 디킨스 감독의 뛰어난 촬영 기술과 감각이 없다면 애초에 시작할 엄두조차 내지 못했을 테니까.’

뒤이어 다른 스태프들의 영입도 차근차근 이루어졌다.

영화의 소품, 배경, 세트 등을 담당할 프로덕션 디자이너,

출연 배우 섭외를 담당할 캐스팅 디렉터,

영화의 미장센을 담당할 아트 디렉터와 의상 디렉터 등이 그것이었다.

특수 효과와 CG는 ILM에서 담당하기로 했다.

‘휴, 이번 영화는 스케일이 큰 전쟁 영화답게 참여하는 스태프만도 대략 200명은 족히 되겠군. 여기에 출연 배우들과 엑스트라까지 합치면 무려 천명 가까운 인원이 한 번에 동원되는 경우도 생기게 되겠어.’

영화에 참여하는 스태프나 출연진의 숫자도 해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는 것은,

할리우드 영화산업이 갈수록 대형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할 수 있었다.

스태프 영입이 완료되자,

프리 프로덕션도 본 궤도에 오르게 되었다.

매일 각 부서별 회의가 진행되었고, 이를 통해 영화에 사용될 소품이나 의상, 장소, 출연 배우 등이 차례대로 결정되었다.

물론 부서에서 결정되는 사안들은 어디까지나 시안(試案)일 뿐이었고, 최종적인 결정은 온전히 감독인 나의 몫이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이 있다면 이번 영화에서는 나의 결정과 더불어 영화의 고증을 담당하고 있는 전문 역사학자들의 의견이 무엇보다 중시되고 있다는 점이지.’

앞서 조지 루이스의 도움으로,

나는 영화 의 고증을 담당할 전문 역사학자들을 섭외할 수 있었다.

총 4명으로 구성된 자문단은 시나리오의 전반적인 내용은 물론, 옷과 무기와 같은 소품, 영화의 주 촬영지가 될 참호 제작에까지 주도적으로 참여했다.

이들의 철저한 고증은 이번 영화의 사실감을 훨씬 더 높일 중요한 작업이었다.

더불어 영화에 출연하는 모든 배우에게 약 3개월간의 군사 훈련도 계획되어 있었다.

이를 통해 탄띠와 방탄모와 같은 복장 착용 방법은 물론 사격과 전술, 특히 참호에서 생활 방법 등이 철저하게 몸에 밸 수 있게 만들 생각이었다.

이처럼,

영화 의 프리가 시작된 이후로는 하루하루가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쁘게 지나가고 있었다.

***

“어, 도훈아.”

한인회 사무실로 들어서는 나를 본 아버지가 무척이나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네가 여긴 어쩐 일이냐?”

“일 끝나고 집에 가는 길에 아버지랑 맥주나 한잔하고 들어가려고요. 드릴 말씀도 있고요.”

“잘됐네. 마침 나도 퇴근할 참이었는데. 근데 도훈이 너 요즘 살 빠진 거 같다?”

“그런가요?”

내가 사무실 벽에 걸린 거울을 힐끔거리며 말했다.

“요즘 새 영화 프리 들어가서 좀 바빠서 그런가 봐요.”

“좀 쉬엄쉬엄해. 할리우드에 어디 영화감독이 너 하나밖에 없는 것도 아니고.”

“그러는 아버지도 좀 야위신 거 같은데요?”

“내가?”

“네. 요 며칠 못 보는 사이 볼살이 쏙 들어간 것 같은데......”

“나도 요즘 한인회 일에다 재단일까지 겹쳐서 바쁘잖냐. 하하.”

최근 아버지는 이란 재단을 설립했다.

앞서 내가 준 영화 의 수익금 3천만 달러의 운용을 위해 만들어진 이 재단은,

주로 LA 지역의 한인과 흑인들의 교육과 복지와 관련된 일을 중점적으로 하고 있었다.

그 덕분에 요즘 이 지역에서의 아버지의 위상은 꽤나 높아져 있었다.

‘아버지와 한인회의 노력 덕분에 이곳 LA에 살고 있는 한인과 흑인과의 관계가 많이 개선되었지. 재단 설립 이후에는 복지나 생활 수준도 제법 높아지게 되었고.’

하지만 그렇다고,

내가 기억하고 있는 ‘LA 폭동’의 불씨가 완전히 사라졌다고 볼 수만은 없었다.

조지 루이스의 사례에서 봤듯이, 일어날 일은 결국 일어나고야 마는 법이니까.

“저기, 아버지.”

내가 아버지를 향해 물었다.

“한인회 일은 언제까지 하실 거예요?”

“안 그래도 지금 하고 있는 일만 마무리되면 후임자에게 넘겨주고, 난 재단 일에만 전념하려고. 요즘 한인회에서 LA 한인들을 대상으로 일명 ‘시민권 획득 운동’을 벌이고 있잖냐.”

“시민권 획득 운동요?”

“그래. 지금 LA에 사는 한인들의 숫자가 대략 3만 명 정도가 되는데, 이 가운데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보다 시민권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의 숫자가 더 많아. 다들 영주권만 가지고 있을 뿐이지. 어차피 이들은 평생을 한인타운 내에서만 생활하기 때문에 시민권에 대한 별 다른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것이지. 근데 내가 볼 때 이건 매우 잘못된 생각이야.”

“어째서요?”

“시민권이 없다는 것은 투표권이 없다는 뜻이야. 투표권이 없다는 것은 정치가들이 우리 한인들에 대해 별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미국에 거주하고 있는 한인들의 여건이 이민 초창기와 비교해볼 때 하나도 나아진 측면이 없어.”

“그래서 아버지는 지금 LA 한인들 대다수가 시민권을 획득해서 미국 정치가들이 한인들에게도 관심을 갖도록 만들겠다는 뜻이에요?”

“그렇지. 우리 한인회가 정치적인 역량을 갖추지 않는 이상 백인들도 예전처럼 계속 우리를 무시하게 될 거야. 그래서 내가 이런 운동을 벌이고 있는 거고.”

“으, 우리 아버지 이러다 조만간 정계에도 진출하시겠네.”

농담처럼 던진 말이었는데,

되돌아오는 아버지의 반응은 뜻밖이었다.

“못할 것도 없지. 우리 아들이 동양인 최초의 할리우드 영화감독인데, 나라고 동양인 최초의 의원이 되지 말란 법 있냐?”

“예?”

“그래서 말인데 도훈아.”

아버지가 나를 향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올해는 아버지가 미주한인회총연합회 회장 선거에 한 번 출마해보려고 하는데, 네 생각은 어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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