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73화 (73/145)

# 73 < 전쟁 영화 (1) >

“기존의 영화 촬영방식과는 전혀 다른 실험적인 촬영 방법요? 그게 도대체 뭡니까?”

의아한 표정을 짓고 있는 로저 디킨스를 향해 내가 대답했다.

“그건 바로 원 테이크(One take) 촬영방식입니다.”

“원 테이크요?”

“예.”

원 테이크란 분할 촬영이나 편집 없이 한 번에 촬영을 끝내는 기법을 말한다.

주로 이야기 전개의 흐름을 유지할 필요가 있거나,

혹은 관객들에게 더 큰 몰입감을 주기 위해서 사용하는 기법이다.

문제는 원 테이크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는 기법이라는 점이었다.

이미 기존의 많은 영화가 이 기법을 사용해온 것이다.

실제 나의 첫 영화인 <체이스 오브 리벤지>의 추격씬도 대부분 이 원 테이크 기법을 활용해서 촬영이 진행됐다.

그러니 로저 디킨스의 표정이 더욱 의아해질 수밖에.

“하지만 킴. 원 테이크 기법은 이전의 영화에서도 많이 사용하던 기법이 아닙니까? 그래서 결코 새롭다거나 실험적이라고는 말할 수 없을 것 같은데요?”

“물론 그렇지요. 하지만 이번 영화가 다른 점은 중요한 몇 개의 씬만을 원 테이크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시작에서부터 끝까지, 영화 전체를 모두 원 테이크로 촬영한다는 것입니다.”

“!!!”

그제야 로저 디킨스도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적인 영화의 러닝타임은 2시간 내외.

이 긴 시간 동안 단 한 번도 카메라를 멈추지 않고 촬영을 계속 진행한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기 때문이다.

“킴도 참. 농담도 무슨 그런 농담을 하십니까? 영화 전체를 원 테이크로 찍는다니요.”

“농담이 아닙니다. 정말로 저는 이번 영화를 하나의 씬으로 촬영할 예정입니다.”

“......”

“물론 그렇다고 진짜 모든 촬영이 원 테이크로 진행되는 것은 아닙니다. 실제 촬영에서는 씬의 구분이 이루어지지만, 편집을 통해 이를 교묘하게 숨김으로써 관객들은 마치 모든 영화의 장면이 하나의 씬으로 이루어진 것과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만드는 것이지요.”

‘원 컨티뉴어스 숏’이라는 촬영기법이었다.

지금 내가 로저 디킨스에게 말하고 있는 촬영기법은.

물론 이는 공식적인 영화 용어는 아니었다.

최초로 이 기법을 사용해 영화를 만든 제작사가 영화 홍보를 위해 임의로 만들어낸 용어였다.

‘영화 <1917>. 원 컨티뉴어스 숏이라는 획기적인 촬영 기법을 최초로 사용한 영화이지. 그 덕분에 영화는 흥행은 물론 평론가들의 엄청난 호평을 받으며 다수의 영화제에서 큰 상을 받기도 했고 말이야.’

“그러니까......”

로저 디킨스가 나에게 물었다.

“지금 킴의 말은 이번 영화가 실제 촬영에서는 씬을 구분하지만, 영화 화면상으로는 하나의 씬으로 이루어진 것처럼 보이도록 만들겠다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어떻게요?”

“그게 지금부터 감독님과 제가 해결해나가야 할 문제입니다. 관객들이 전혀 눈치챌 수 없는 교묘한 편집 지점을 찾아내는 것, 그게 바로 이번 영화 촬영의 핵심이지요.”

내가 로저 디킨스에게 몇 가지 예시를 들어 보였다.

예를 들면,

큰 폭발이 있는 장면이라던지,

캐릭터의 등을 지고 이동하는 장면이라던지,

다른 인원을 스쳐 지나가거나, 건물의 벽을 타고 지나갈 때 등이 그것이었다.

“흐음. 킴의 말을 듣고 보니, 충분히 가능할 것도 같군요.”

“그리고 또 한 가지.”

내가 로저 디킨스를 향해 다시 말했다.

“이번 영화는 촬영 방법도 그렇지만, 특히 내용적인 측면에서 전쟁 영화에 걸맞는 리얼리티를 살릴 예정입니다. 그래서 영화의 첫 부분에 등장하는 전투씬을 아주 사실감 있게 묘사할 생각입니다.”

“구체적으로 어떻게요?”

“전투 과정에서 나타날 수 있는 참혹한 장면들을 여과 없이 그대로 스크린에 재현해내는 것입니다. 감독님도 잘 아시다시피 기존에 만들어진 할리우드 전쟁 영화들은 실제 전투 장면과는 상당히 거리가 먼 주인공 위주의 카메라샷이나 다소 작위적인 연출이 대부분이었지 않습니까? 하지만 이번 영화는 다릅니다. 영화 도입부에 대규모의 전투가 치러지는데, 이때 카메라는 주인공에 포커스를 맞추는 것이 아니라, 전투 과정에서 죽어가는 병사들의 모습에 초점을 맞추게 되지요. 그것도 장면 하나하나가 모두 실제 관객들이 영화를 보면서 엄청나게 잔혹하다고 느낄 정도로 끔찍한 장면들로 말이지요.”

전쟁의 참상을 극단적으로 표현한 리얼한 오프닝 영상.

이는 전생에서 내가 본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모티브로 한 것이었다.

물론 이번 영화는 1차 세계대전 당시 참호전의 참혹함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차별점이 있기는 하지만.

‘영화 <1917>에서 사용된 원 컨티뉴어스 숏이라는 참신한 촬영기법, 여기에 전쟁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손꼽히는 <라이언 일병 구하기>와 같은 인상적인 오프닝 전투씬이 더해진다면, 제아무리 흥행이 힘든 전쟁 영화라는 장르라고 할지라도 큰 성공을 거두게 될 것이 틀림없어. 그리고 잘만 하면......’

매번 문턱까지 가서 실패했던,

아카데미 감독상 수상까지도 한번 노려볼 수 있을 것이었다.

“저기, 킴.”

“예.”

“매번 느끼는 거지만, 킴은 정말 영화적 감각이 탁월한 것 같습니다. 어떻게 이런 참신한 생각을 계속해낼 수 있는 것인지......”

“뭘요. 그보다 이번 영화도 감독님께서 저와 함께 해주시겠습니까?”

“물론입니다. 이런 획기적인 영화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저에게는 무척 영광입니다.”

“좋습니다. 그럼 먼저 시나리오부터 읽어보시고, 구체적인 촬영 계획을 함께 논의해나가면 될 것 같군요.”

내가 로저 디킨슨에게 시나리오 책자 하나를 내밀었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영화 제목이 적혀 있었다.

< No Man’s Land (무인 지대) >

121.

할리우드 인근의 레스토랑.

레이첼과 내가 늦은 저녁 식사를 함께 하고 있었다.

“새 영화요?”

레이첼의 물음에 내가 대답했다.

“예. 얼마 전에 제가 새로운 영화 시나리오를 완성했거든요.”

“하지만, 킴. 킴은 이미 두 편의 영화에 제작자로 참여하고 있잖아요. 지금 한창 촬영이 진행 중인 영화 <터미네이터2>와 곧 있으면 프리 들어갈 예정인 영화 말이에요.”

“제작은 제작이고, 연출은 연출이니까요. 그리고 이 두 영화 모두 굳이 제가 관여하지 않아도 훌륭한 두 분 감독님들이 알아서 잘하실 건데요, 뭐. 하하하.”

“어휴, 킴도 참. 영화에 대한 욕심 하나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라니까.”

레이첼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다시 말했다.

“그래서 이번 영화는 어떤 영화에요?”

“전쟁 영화예요. 특히 제1차 세계대전 과정에서 있었던 참호전의 실상을 다룬.”

“전쟁 영화는 좀 매니아틱한 장르가 아닌가요? 그래서 흥행이 결코 쉽지 않을 텐데요?”

“글쎄요, 그건 영화를 어떻게 만드느냐에 따라 달려 있는 거겠죠. 게다가 많은 명작 영화들이 전쟁이라는 소재와 밀접한 관련이 있으니까요. 그건 그 만큼 이 소재가 영화화하기 좋은 소재라는 뜻이고요.”

“하긴. 할리우드 최고의 흥행 감독인 킴이 만든 전쟁 영화라면 관객들도 저절로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겠네요. 그나저나 줄거리는 대충 어떤 거예요?”

“그게......”

내가 레이첼에게 영화 에 대한 대략적인 줄거리를 들려주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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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4년.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 암살 사건을 계기로 촉발된 전쟁은 인류 역사상 유례없는 대규모의 세계대전으로 확대된다.

이른바 제1차 세계대전이 발생한 것이다.

전쟁 초기 독일은 슐리펜 계획에 의거,

빠른 속도로 프랑스로 진격하여 동부 전선의 승기를 잡은 후, 곧바로 러시아를 침공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마른 전투에서의 패배로 독일의 이 속전속결 전략은 무위로 돌아가게 된다.

이후 독일군과 연합군은 이른바 ‘참호’라는 것을 건설해 지리멸렬한 전투를 무려 4년간이나 계속 이어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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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레이첼이 나를 향해 말했다.

“영화의 시작은 바로 1차 세계대전이 참호전으로 바뀌게 되는 결정적인 사건인 마른 전투에서부터라는 거군요.”

“그렇죠. 이번 영화의 가장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1차 세계대전 당시의 참호전이 얼마나 참혹했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니까요.”

“그럼 스케일이 굉장하겠네요?”

“스케일도 스케일이지만 중요한 것은 이 전투씬이 전쟁의 참혹함을 여과 없이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입니다. 영화를 보는 관객이 진저리를 칠 정도로 말이죠.”

내가 이번 영화의 모티브가 될 <라이언 일병 구하기>의 도입부 전투 장면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연합국의 노르망디 상륙 작전을 배경으로 한 이 장면은 관객들이 실제 전투 현장에 있는 것과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킬 정도의 사실적인 연출로 개봉 당시 큰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전투에 참가한 병사들이 총에 맞아 피흘리며 쓰러지거나, 폭탄을 맞아 몸이 산산조각이 나는 모습, 그 가운데 일부는 떨어져 나간 자신의 신체 일부를 찾아 떠돌아다니는 모습, 여기에 폭음으로 귀가 먹먹해지는 사운드 효과까지 더해지면서 이 장면은 역대 전쟁 영화 사상 최고의 전투 장면으로 불리게 되었지. 실제 극장에서 이 장면을 본 참전 용사가 PTSD 증상을 보이기까지 했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으니 말이야.’

“그럼......”

레이첼이 다시 나에게 물었다.

“주인공은 언제 등장하는 거예요?”

“주인공은 첫 전투씬이 끝나고 나서 등장을 합니다. 이 전투를 끝으로 전쟁은 긴 참호전으로 접어들게 되는데, 영화는 주인공의 시선을 통해 참호전 당시의 상황이 얼마나 열악했는지, 참호 속에서 생활하는 병사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나날을 보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죠.”

내가 레이첼에게 다시 영화의 이어지는 줄거리를 설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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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합국 참호에서 수 킬로미터 떨어진 지하 벙커.

고위 장성들이 전략을 짜거나, 작전 지시를 내리는 일종의 야전 본부 역할을 하는 곳이었다.

“연대장님!”

중사(Sergeant) 한 명이 황급히 지휘관실로 들어왔다.

영화의 주인공인 ‘대니얼’.

그는 항공 사진 판독 전문가로 이번 전쟁에 자원입대한 인물이었다.

“무슨 일인가, 대니얼 중사?”

“오늘 아침에 본부에서 최전방에 위치한 2대대와 3대대에 공격 명령서를 하달했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게 무슨 문제라도 된단 말인가?”

“이걸 한번 보십시오.”

대니얼이 항공 사진 한 장을 탁자 위에 펼쳐 보이며 말했다.

“연대장님께서도 아시다시피 얼마 전 전방에서 독일군이 진지를 버리고 후퇴했다는 보고를 해왔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적진을 향해 대규모의 공격을 감행하기로 결정한 것이고요. 그런데 방금 우리가 전달받은 항공 사진에 따르면 이건 독일군이 파놓은 함정임이 틀림없어 보입니다.”

“함정?”

“예. 제 생각에 독일군의 후퇴는 기만전술이라고 생각됩니다. 여기 항공 사진에서 보이는 바와 같이 그들은 지금 새로운 전선을 짜두고 이곳으로 우리 부대를 유인해 집중포화를 퍼부어 섬멸하려는 작전을 짜고 있습니다.”

“그, 그런......”

“한시가 급합니다, 연대장님. 지금 당장 예하 부대에 공격 중지 명령을 내려야 합니다.”

“그건 불가능하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어제 있었던 폭격으로 지금 최전방과의 통신선이 모두 차단 되었네. 통신선이 복구되려면 최소 며칠은 걸릴 것인데......”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대니얼이 말했다.

“제가 가겠습니다.”

“뭐라고?”

“연대장님께서 공격 중지 명령서만 써주시면 제가 직접 2대대와 3대대가 주둔해 있는 곳으로 가서 전달하겠습니다. 지금 당장은 그 방법밖에 없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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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

레이첼이 나를 향해 물었다.

“이제부터는 주인공인 대니얼을 중심으로 영화의 스토리가 전개되어 나가겠군요?”

“그렇죠. 그리고 여기서부터 이번 영화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원 테이크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원 컨티뉴어스 숏 기법이 사용되는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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