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72화 (72/145)

# 72 < CG와 3D 애니메이션 영화의 시작 (2) >

119.

1985년 봄.

영화 <터미네이터2>가 본격적인 제작 준비에 들어갔다.

내가 기억하고 있는 영화의 실제 제작 시기보다 최소 3년 이상은 빠른 시기였다.

‘이게 다 그동안 나의 적극적인 투자로 인해 ILM이 보다 빠른 기술 개발을 이뤘기 때문이지. 그리고 이는 다른 유명 영화들도 마찬가지야. 다른 영화들도 실제 만들어진 시기보다 훨씬 빠른 시기에 만들어질 예정이지.’

<터미네이터2>의 예상 제작 기간은 최소 2년.

일반적인 할리우드 영화의 평균 제작 기간에 비하면 두 배는 더 긴 기간이었다.

그 이유는,

‘이번 영화에 다량의 CG 영상이 들어갈 예정이기 때문이지. 그것도 기존에 사용되던 것과는 차원이 다른 고퀄리티의 CG가.’

CG 영화의 제작 기간이 오래 걸리는 이유는 장면 하나하나가 모두 사람의 수작업을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

CG를 사용하면 4~5초짜리 컷 하나를 만드는데도 최소 한 달 이상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것도 숙련된 인력 수십 명이 동원되어서 말이다.

실제 CG 영화의 신기원을 열었다고 평가받는 영화 <아바타>의 경우 순수 제작 기간만 약 4년이 걸렸다고 하니, CG 영화가 얼마나 많은 인력과 비용을 필요로 하는 작업인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CG의 도입 덕분에 그동안 아날로그 특수 효과만으로는 구현하기 불가능했던 장면들이 제약 없이 만들어질 수가 있게 되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에 만들 영화 <터미네이터2>는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번 영화가 극장에서 본격적으로 상영되기 시작하면 할리우드 영화계가 또 한 번 발칵 뒤집히겠군. 그 누구도 이 정도 퀄리티를 가진 CG 영화가 만들어지리라곤 상상도 하지 못하고 있을 테니까. 더불어 영화 제작자인 나와 영화사 Film Kim의 명성 또한 한층 더 높아지게 될 테고 말이야, 흐흐.’

***

영화사 Film Kim.

<터미네이터2>의 각본 회의가 한창 진행되고 있었다.

이번 영화의 각본 작업에는 감독인 제임스 카메룬과 더불어 할리우드의 유명 각본가인 윌리엄 위셔가 공동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이 두 사람은 실제 영화 <터미네이터2>의 각본을 제작한 사람들이지. 따라서 굳이 내가 관여하지 않아도 전생과 같은 완성도 있는 각본을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을 테지.’

그렇다고,

내가 각본 제작에 전혀 관여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간혹 두 사람 사이의 의견 충돌이 생기거나, 영화의 핵심이 되는 장면들은 모두 나와의 상의를 거쳐 최종적인 결정이 이루어졌다.

가령 예를 들면,

“킴.”

제임스 카메룬이 사장실로 들어서며 나를 향해 말했다.

“잠깐 시간 좀 괜찮아요?”

“네. 근데 무슨 일이에요?”

“이번 <터미네이터2> 시나리오와 관련해서 킴과 상의할 일이 있어서요.”

“한번 말해봐요.”

“그게......”

이번 영화의 시나리오를 구상하면서,

제임스 카메룬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는 것이 두 가지가 있었다.

하나는 터미네이터 T-1000의 설정,

다시 말해 액체금속으로 만들어진 T-1000이 자신의 외형을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인간과 기계의 교감요?”

나의 물음에 제임스 카메룬이 대답했다.

“네. 이번 속편에는 전편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인간과 기계의 교감’이라는 내용을 넣어보려고요. 냉혹한 살인 기계인 터미네이터 T-800이 존 코너를 돕는 과정에서 인간만이 느낄 수 있는 슬픔이나 동정과 같은 감정의 의미를 서서히 깨달아 가는 거죠.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 장면에서 T-800은 존 코너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용광로 속으로 들어가서 최후를 맞는 선택을 하는 거죠. 그 이유는 자신의 몸속에 있는 칩이 인공지능 스카이넷을 만들어내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고요.”

“흠, 인간과의 교감으로 인해 내적인 변화를 보이는 터미네이터의 모습이라. 내가 보기에는 아주 괜찮은 생각인 것 같은데요?”

“그렇죠?”

제임스 카메룬이 반색을 하며 말했다.

“근데 함께 각본 작업을 하는 윌리엄은 이런 점이 냉혹한 살인 기계라는 터미네이터의 기본 설정과 어긋나고, 또 자칫 영화를 유치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다며 반대하더라고요. 오히려 터미네이터는 절대 인간과 같은 감정을 학습할 수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편이 영화의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더 효과적이라면서 말이죠.”

영화 <터미네이터>의 주제는 인간과 기계의 대결이다.

기계가 인간과 같은 지능을 가지게 되면 얼마나 위험한 결과가 나타나는지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터미네이터가 인간의 감정을 이해하고, 또 반드시 따라야 할 존 코너의 명령마저 무시하고 행동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분명 설정 오류가 될 수도 있는 장면이었다.

그 때문에 각본가인 윌리엄 위셔가 제임스 카메룬의 의견에 반대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존 코너 덕분에 냉혹한 살인 기계에 불과했던 T-800이 서서히 인간적으로 변화해가는 과정, 이는 화려한 CG 효과와 더불어 이 영화를 명작의 반열에 올려놓은 중요한 요소라고 할 수 있지. 실제 영화를 본 많은 관객이 용광로 속에서 스스로 최후를 맞이하는 T-800의 모습을 지켜보며 감동을 받았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고.’

따라서 이 내용은 절대 시나리오에서 빠져서는 안 되는 부분이었다.

“내가 지금 바로 윌리엄을 만나서 한번 설득해볼게요.”

“그래요, 킴. 다른 사람은 몰라도 킴의 말이라면 윌리엄도 곧바로 수긍할 테니까요.”

***

영화 <터미네이터2> 제작에 있어서,

또 하나 중요하게 내가 챙겨야 할 것은 바로 영화에 들어갈 CG 효과였다.

그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액체 금속형 로봇 T-1000의 모습을 영상으로 완벽하게 구현해내는 것이었다.

이를 위해 나는 촬영 기간 내내 주기적으로 ILM을 방문하며 작업 진행 상황을 확인했다.

이번 영화의 특성상 촬영과 CG 작업이 병행되어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작업은 잘 진행되고 있어요?”

나의 물음에 이번 영화의 CG 제작 총책을 맡고 있는 벤자민 파웰이 말했다.

“저나 직원들 모두 최선을 다하고 있어요. 매일 밤을 세우다시피 하면서요. 아! 온 김에 킴도 직접 한번 확인해보실래요? 마침 작업을 끝낸 영상이 몇 개 있어서요.”

“그럼 저야 좋죠. 그나저나 기대한 만큼 영상은 잘 나왔어요?”

“그건......”

벤자민 파웰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킴이 직접 눈으로 보고 확인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네요.”

“그러죠.”

벤자민 파웰과 내가 곧장 영사실로 이동을 했다.

그가 보여준 영상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담겨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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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른 문을 닫아요, 얼른!”

자신을 뒤쫓아 오는 T-1000의 추격을 피해 황급히 엘리베이터에 오른 존 코너의 일행.

다행스럽게도 엘리베이터 문은 T-1000을 코앞에 두고 완전히 닫혔다.

그런데.

- 스으윽!

날카로운 칼처럼 변한 T-1000의 손이 엘리베이터 문틈으로 들어오더니, 다시 문을 열어버리고 만 것이다.

이를 본 T-800이 손에 들고 있는 장총을 급히 들어 T-1000의 얼굴에 발사했다.

- 탕!

두 조각으로 갈라진 T-1000의 얼굴.

이틈을 타 존 코너의 일행은 무사히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갈 수 있었다.

그런데.

- 스르르르.

갈라졌던 T-1000의 얼굴이 다시 하나로 합쳐지기 시작했다.

그것도 흠집 하나 없이 처음 모습 그대로.

액체금속이라는 특성 덕분에 T-1000은 신체 일부가 훼손되어도 다시 원상태로 회복할 수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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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이어 또 한편의 영상이 재생되었다.

마찬가지로 15초 내외의 짧은 영상에는 또 다른 T-1000의 모습이 담겨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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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콰콰쾅!

대형 탱크로리가 폭발하며, 거대한 불꽃이 치솟아 올랐다.

폭발한 차의 운전석에는 존 코너를 뒤쫓는 T-1000이 탑승하고 있었다.

“됐어요! 우리가 놈을 해치웠어요!”

멀찌감치 서서 이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존 코너가 환호를 질렀다.

하지만 T-800의 반응은 냉담했다.

T-1000의 성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그는 이 정도로 그를 제거할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있었다.

“아직 안심하긴 일러. 그러니 얼른 이곳을 벗어나야 해.”

서둘러 자리를 뜨는 존 코너 일행.

그런데.

잠시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활활 타오르는 불꽃 속에서 T-1000이 뚜벅뚜벅 걸어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동시에 은빛 액체 상태의 그의 몸이 서서히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변화하기 시작했다.

액체금속으로 만들어진 T-1000의 위력이 또 한 번 발휘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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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방금 확인한 두 편의 영상,

이는 모두 최신 CG 기술을 이용해 만들어진 영상이었다.

그것도 이전에 사용된 기술과는 차원이 다른 고퀄리티의 사실감 있는 화면이었다.

“멋진데요?”

“다행이군요. 킴의 눈높이를 맞출 수 있어서.”

“그나저나, 이거 대체 어떻게 만들어진 겁니까?”

“그게......”

벤자민 파웰의 설명에 따르면,

ILM에서는 가장 먼저 레이저 스캐너를 이용해 T-1000 역할을 맡은 배우의 외형을 디지털화했다고 한다.

그리고 이를 컴퓨터 작업을 통해 영화에서 필요로 하는 장면으로 바꾸는 것이다.

“레이저 스캐너, 그리고 이번에 새롭게 개발한 그래픽 소프트웨어가 없었더라면 아마 이런 장면을 구현하는 것이 불가능했을 것입니다. 이 두 장치는 모두 현실의 물체를 3차원 공간에서 조작하는 것을 가능하게 만들어주었으니까요.”

“그렇군요.”

“이건 아직 시작에 불과합니다. 만들어야 할 다른 영상이 아직 많이 남아 있고, 또 이미 만들어진 영상도 디테일을 살리기 위해서는 계속 수정 작업을 해나가야 하니까요.”

내가 벤자민 파웰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번 영화의 CG 작업은 전적으로 벤자민만 믿을게요. 잘 좀 부탁드립니다.”

“걱정일랑 붙들어 매세요, 킴.”

120.

영화 <터미네이터2>의 촬영이 안정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것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새 영화 제작에 들어갔다.

‘굳이 내가 적극적으로 관여하지 않아도, <터미네이터2>는 제임스 카메룬에 의해 훌륭하게 완성될 테니까.’

이번에 내가 새로 만들 영화는 ‘전쟁 영화’였다.

그것도 각본, 감독, 제작 모두를 내가 직접 담당한.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번 영화에 지금까지 한 번도 시도되지 않은 새로운 촬영 기법이 도입될 예정이라는 것이었다.

그것은 바로......

“전쟁 영화요?”

로저 디킨스 감독이 나를 향해 물었다.

할리우드의 유명 촬영 감독인 로저 디킨스는 나의 첫 영화인 <체이스 오브 리벤지>를 비롯한 많은 영화 작업을 함께 해오고 있는 할리우드의 유명 촬영 감독이었다.

“예. 제가 이번에 새로 전쟁 영화에 한 번 도전해 보려고요.”

“허어......”

살짝 의외라는 표정을 짓는 로저 디킨스.

그도 그럴 것이,

전쟁 영화는 공포 영화와 더불어 흥행이 쉽지 않은 대표적인 영화 장르 가운데 하나이다.

장르적 특성상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모든 전쟁 영화가 흥행에 실패하는 것은 아니지. 내 기억에 따르면 <라이언 일병 구하기>나 <덩케르트> 같은 영화는 모두 수억 달러의 관람료 수익을 올리며 흥행과 작품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은 영화이니까.’

“설마, 킴......”

로저 디킨스가 나를 향해 물었다.

“아카데미 수상을 의식해서 그러는 겁니까? 뛰어난 흥행과 연출에도 불구하고 킴이 여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지 못한 것은 너무 오락적 요소가 짙은 영화를 만들어서라고 다들 그러던데......”

“글쎄요, 저도 한 사람의 영화감독으로서 아카데미 감독상이 전혀 욕심나지 않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이유는 이번 영화의 촬영 방법이 기존의 영화 촬영 방식과는 전혀 다른 획기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나름대로 실험적인 성격의 영화를 한번 만들어 보고 싶은 생각 때문에 이번 영화를 계획하게 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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