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1 < CG와 3D 애니메이션 영화의 시작 (1) >
117.
영화 <터미네이터2>.
할리우드 영화사에 있어 절대 빼놓을 수 없는 영화 가운데 하나이다.
그 첫 번째 이유는 바로,
‘할리우드 역사상 최초로 제작비 1억 달러를 돌파한 영화이기 때문이지.’
영화 <조스>의 성공 이후,
할리우드에서는 막대한 제작비가 투입된 이른바 ‘블록버스터’ 영화 제작이 유행하고 있었다.
수천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 <슈퍼맨>, <스타트랙>, <에일리언>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그 어떤 영화도 1억 달러의 제작비를 넘긴 적이 없었다.
‘내가 기억하는 영화 <터미네이터2>의 총제작비는 1억 2천만 달러,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무려 1,000억에 가까운 어마어마한 돈이지. 이는 할리우드 빅식스(Bix Six) 영화사들도 감히 제작할 엄두를 내지 못할 정도로 엄청난 액수의 제작비라고 할 수 있어. 만에 하나 이번 영화가 실패할 경우, 엄청난 재정 부담을 떠안아야 하기 때문이지.’
물론 나는 이런 걱정을 전혀 할 필요가 없었다.
전생의 기억 덕분에 나는 이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무려 7억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흥행 수익을 올리게 된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이유는 바로,
‘영화 <터미네이터2>가 할리우드 특수 효과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꾼 영화이기 때문이지. 기존의 아날로그 특수 효과 방식에서 컴퓨터 그래픽 방식으로 말이야.’
물론 <터미네이터2> 이전에도 할리우드에서는 영화 제작에 CG를 사용하고 있었다.
하지만 영화의 일부 장면에, 그것도 부수적인 용도로만 사용했을 뿐,
이 영화만큼 CG가 중요한 제작 도구로 사용된 적이 없었다.
할리우드 CG 영화 시대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 영화.
그것이 바로 영화 <터미네이터2>가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영화로 평가되는 중요한 이유였다.
“그래서......”
ILM으로 향하는 차안.
내가 옆자리에 앉은 제임스 카메룬에게 물었다.
“현재 영화 <터미네이터> 속편 시나리오 작업은 어느 정도까지 진행된 거예요?”
“일단 트리트먼트는 완성되었고요, 이를 바탕으로 한창 시나리오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트리트먼트란 영화의 줄거리와 주요 장면, 등장인물 등을 압축해서 적은 글을 말한다.
통상 영화 시나리오는 이 트리트먼트를 기초로 여러 명의 전문 각본가들이 동원되어 이루어진다.
“내가 한번 봐도 될까요?”
“물론이죠, 킴.”
제임스 카메룬이 나에게 종이 뭉치를 내밀었다.
그가 구상하고 있는 <터미네이터2>의 내용은 대략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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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로스앤젤레스.
터미네이터 하나가 이곳으로 파견된다.
앞서 반란군 지도자 존 코너의 어머니인 사라 코너 살해에 실패한 인공지능 스카이넷이,
이번에는 존 코너를 직접 살해하기 위해 그를 보낸 것이다.
하지만,
이 사실을 알게 된 존 코너도 과거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또 다른 터미네이터를 이곳으로 보낸다.
중요한 것은,
존 코너의 살해에 동원된 터미네이터 T-1000이 최신 기종,
다시 말해 자신의 몸을 자유자재로 변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액체 금속형 로봇이라는 것이었다.
반면에,
존 코너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보낸 터미네이터는 구(舊)기종인 T-800이었다.
객관적인 성능만 놓고 볼 때, T-1000은 T-800에 비해 상대적으로 훨씬 뛰어난 전투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존 코너는 T-800의 헌신적인 도움으로 자신을 뒤쫓는 T-1000의 위협을 무사히 따돌린다.
더불어 인류의 멸망을 가져올 인공지능 스카이넷의 출현을 막기 위한 노력도 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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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일단 전체적인 줄거리는 괜찮은 것 같군요. 전편의 내용과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듯하고.”
“그런가요?”
“네. 중요한 것은 전편과는 훨씬 차별화되는 뛰어난 시각 효과를 보여줘야 한다는 것인데......”
“제 생각도 그래요, 킴. 앞선 <터미네이터> 1편이 아카데미 시각 효과상을 받을 정도로 뛰어난 기술을 선보인 덕분에 이번 속편에 대한 관객들의 기대치도 이전보다 훨씬 높아질 테니까요.”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지미. 그동안 ILM이 축적한 CG 제작 기술을 총동원하면 관객들이 깜짝 놀랄 정도로 뛰어난 시각 효과를 반드시 만들어낼 수 있을 테니까.”
“정말 그럴까요?”
“물론이죠. 그러니 기술적인 부분은 전적으로 ILM을 믿고 맡겨 두면 돼요.”
내가 제임스 카메룬에게 이렇게 자신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전생의 기억 덕분에 나는 영화 산업에서 CG 기술이 얼마나 중요한 요소가 될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지. 그래서 지난 10년 가까운 세월 동안 막대한 액수의 돈을 ILM에 쏟아부으며 관련 기술 개발에 매진했고 말이야.’
그 때문에 나는,
현재 ILM이 가진 기술력으로도 충분히 전생에서 내가 본 <터미네이터2>와 동일한 영상을 구현해낼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
“액체금속이요?”
벤자민 파웰이 살짝 당혹스러원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는 현재 ILM의 CG 기술 개발을 총책임지고 있는 수석 엔지니어였다.
“네. 이번에 제작할 영화 <터미네이터> 속편에 액체 금속형 로봇이 등장할 예정인데......”
내가 제임스 카메룬을 대신해,
영화에 등장할 액체금속 로봇 T-1000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했다.
사실,
T-1000에 대해 나만큼 정확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도 없을 것이었다.
왜냐하면 전생에서 나는 T-1000의 모습을 실제 눈으로 보고 온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한참 동안 내 설명을 듣고 있던 벤자민 파웰이 다시 물었다.
“지금 킴은 형태를 자유자재로 변화시키는, 그래서 다른 사람의 모습으로도 막 변하고, 금속 철문도 마음대로 드나들 수 있는 그런 형태의 로봇을 CG로 만들겠다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어떻게 기술적으로 가능하겠습니까?”
“글쎄요......”
잠시 생각에 잠겨있던 벤자민 파웰이 다시 말했다.
“일단 제 생각에는 3D 스캐너를 활용하면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3D 스캐너요?”
“예. 최근 기업에서 제품 디자인 개발을 위해 3D 스캐너를 활용하는 경우가 많아졌거든요. 3D 스캐너를 이용해 현재 판매하고 있는 제품을 컴퓨터상에서 여러 형태로 바꾸면서 가장 나은 새 디자인을 찾아내는 것이지요. 우리도 이 3D 스캐너를 이용해 배우의 외형을 본뜬 후, 컴퓨터 그래픽 작업을 거치면 원하는 영상을 만들어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쉬운 작업은 아니지만요.”
“일단 가능은 하단 뜻이군요?”
“예. 물론 얼마나 자연스러운 영상이 만들어질지는 일단 한번 시도를 해봐야 알겠지만요. 무엇보다 비용과 시간이 무척이나 많이 소요될 것 같고요.”
“그 점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영화의 퀄리티만 확보될 수 있다면 비용은 얼마든지 지불할 용의가 있으니까요.”
“킴의 생각이 그렇다면 시도는 한번 해보겠습니다. 일단 샘플 영상을 한번 만들어 본 후, 영화적으로 사용 가능한지 아닌지는 킴이 지미와 함께 판단하면 될 것 같고요.”
“알겠습니다.”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벤자민 파웰을 향해 말했다.
“내가 벤자민에게 자꾸 어려운 숙제만 내주는 것 같아 괜히 미안하네요.”
“뭘요, 그게 제 일 인걸요.”
118.
ILM을 나온 나는,
곧바로 근처에 있는 픽사 애니메이션에 들렀다.
픽사 또한 ILM과 마찬가지로 우리 Film Kim 산하의 자회사였다.
“킴이 연락도 없이 갑자기 여긴 어쩐 일입니까?”
사무실에 들어서자,
찰스 레인 사장이 반가운 목소리로 나를 맞았다.
“새 영화 제작 문제로 ILM에 올 일이 있어서, 겸사겸사 들렀습니다.”
“새 영화요?”
“예. 조만간 <터미네이터> 속편 제작이 시작될 예정이거든요. 그래서 관련 기술 문제를 좀 상의하려고요.”
“<터미네이터>라면 저도 아주 인상 깊게 본 영화입니다. 그런 영화가 속편이 제작된다고 하니, 저도 무척 기대되는데요?”
“충분히 기대하셔도 좋을 겁니다, 하하.”
내가 다시 찰스 레인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요즘 픽사는 좀 어떻습니까?”
“말씀드리기 죄송스럽지만, 여전히 재정 적자가 개선되지 않고 있는 상황입니다. 킴도 알다시피 애니메이션 기술 개발이 워낙 연구 개발비가 많이 드는 분야라......”
“제가 궁금한 건 재정 문제가 아니라 기술 개발 현황입니다. 어떻게 기술 개발은 원활하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기술적인 부분은 특히 최근 들어 상당한 발전을 이루어냈다고 자부할 수 있습니다. 작년에 우리 회사에서 제작한 애니메이션 <룩소 2세>보다 훨씬 나은 수준의 작품을 만들 수 있을 정도로요.”
<룩소 2세>는 픽사 애니메이션이 만든 첫 단편 애니메이션의 제목이었다.
러닝타임이 불과 2분에 불과했고,
해상도 또한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었지만,
기존의 CG 애니메이션 특유의 부자유스러운 동작과 질감 문제를 해소했다는 측면에서 매우 의미가 있는 작품이었다.
‘그러고 보니, 작년에 <룩소 2세>를 보면서 한 가지 떠오른 것이 있었지. <룩소 2세>에 등장하는 미니 스탠드 형상의 주인공 캐릭터는 픽사의 마스코트가 되어 추후 만드는 모든 애니메이션 영화의 로고에 등장하게 된다는 사실 말이야.’
“그렇다면......”
내가 시나리오 책자 하나를 찰스 레인 앞에 내려놓았다.
시나리오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이 적혀 있었다.
[ 틴 토이(Tin Toy) ]
“올해는 이 시나리오로 애니메이션을 한번 만들어 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누가 쓴 시나리오입니까?”
“제가요. 제가 시간 나는 틈틈이 한번 써봤습니다. 분량은 대략 5분 내외 정도가 될 것 같고요.”
“지금 한번 읽어봐도 되겠습니까?”
“물론입니다. 회사 애니메이터들에게 부탁해서 만든 콘티도 같이 첨부했으니, 아마 그걸 보시는 편이 훨씬 더 편할 겁니다.”
찰스 레인이 잠시 내가 준 시나리오 내용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장난감과 관련된 이야기군요?”
“예. 어렸을 때 저는 가끔 그런 상상을 하곤 했습니다. 내 장난감들이 나 몰래 살아 움직일 수도 있다는 아주 엉뚱한 상상 말이죠. 그래서 가끔 불시에 방문을 열어보곤 했는데, 애석하게도 단 한 번도 현장을 잡은 적이 없었지요. 하하.”
“하하. 그러고 보니, 저도 어렸을 때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번 시나리오는 바로 어렸을 때의 그 엉뚱한 상상을 바탕으로 만든 것입니다. 괜찮으시다면 올해 애니메이션은 제가 쓴 시나리오로 한번 만들어 주셨으면 하는데......”
“우리야 대환영이죠. 안 그래도 직원들이 올해는 어떤 주제로 애니메이션을 만들까 하고 한창 고민하는 중이었데, 마침 아주 잘 됐습니다.”
“그럼 그렇게 알고 저는 이만 일어나보겠습니다.”
“벌써 가시게요?”
“요즘 회사 합병 문제로 해야 할 일이 좀 많아야죠. 언제 날 잡아서 식사 자리 한번 마련하겠습니다.”
“그렇게 해요, 킴.”
사무실을 나서며,
내가 속으로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 픽사에서 만들 5분짜리 단편 애니메이션 영화 <틴 토이>. 이 영화는 픽사라는 회사를 세계 애니메이션 시장의 선두 주자로 만든 <토이 스토리>라는 영화의 모티브가 되는 작품이지. 만약 픽사가 <틴 토이>를 성공적으로 만들어낼 수 있다면, <토이 스토리>도 충분히 만들어 낼 수 있을 테고. 물론 이전보다 훨씬 많은 시간과 인력이 필요하겠지만 말이야.’
Film Kim이 올해 제작할 <터미네이터2>와 <틴 토이>.
이 두 영화는 할리우드 CG 영화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임을 알리는 신호탄과도 같은 작품이었다.
그것도 전생에 비해 무려 5년 가까이나 더 빠른 시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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