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 < 반전 영화 (8) >
115.
1984년 겨울.
드디어 영화 의 극장 개봉이 시작됐다.
이번 영화는 충격적인 결말을 가진 ‘반전 영화’이다.
하지만 오로지 반전 그 자체에만 초점을 맞춘 영화는 아니었다.
‘영화의 초점이 너무 반전에만 맞추어지다 보면 이야기 진행이 뒤틀리거나, 내용 자체가 부실해질 위험성이 있어. 반전 영화를 만드는 많은 감독이 실패를 경험하게 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고.’
실제 반전 영화의 대명사라 불리는 영화 <식스 센스>나 <유주얼 서스펙트>가 큰 성공을 거둔 것도 단순히 뛰어난 반전 결말을 가지고 있기 때문만은 아니었다.
충격적인 반전 결말과 더불어 흡입력 있는 이야기 진행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이 두 영화 모두 성공적인 반전 영화가 될 수 있었다.
전생의 경험 덕분에 이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던 나는,
이번 영화를 제작하면서 반전 결말만큼이나 이야기의 진행 과정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오로지 성공만을 쫓으며 살아왔으나,
오히려 그것이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 가장 중요한 요인이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주인공 닉.
유령을 보는 능력 때문에 주변 사람들로부터 괴물 취급을 받아왔으나,
닉의 도움으로 점차 이를 극복해나가는 어린 토미.
영화 에서는 이 두 주인공의 변화 과정을 심도 있게 그려내고 있었다.
‘또한 이는 일종의 맥거핀 역할도 충실히 수행하고 있지. 관객들의 관심을 반전이 아닌 등장인물의 문제 극복 과정에 쏠릴 수 있도록 하는. 그래야 마지막 반전 결말이 더욱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 있을 테니까 말이야.’
그 결과,
영화 은 개봉과 동시에 큰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흥행에도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약 두 달 가까운 상영 기간 내내 빈 자리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많은 관객이 극장으로 몰려든 것이다.
관련된 언론 보도로 연일 계속되고 있었다.
- 개봉과 동시에 북미 박스 오피스 1위에 등극한 영화 .
- 연일 계속되는 영화 의 흥행 신화, 과연 그 끝은 어디인가?
- 개봉 2주 만에 관람료 수익 2억 달러를 돌파한 영화 , 올 한해 최고의 흥행작이 될 것이 분명해.
평론가들의 호평도 이어졌다.
- 영화 은 지금까지 내가 본 영화 가운데 가장 충격적인 영화이다. 그 때문에 영화가 끝나고도 한동안 자리에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 영화 을 처음 봤을 때의 느낌은 충격 그 자체였다. 하지만 이 영화를 두 번째 봤을 때 느낌은 경외였다. 영화의 인물, 배경, 대사 하나하나가 모두 다 제작진의 치밀한 계산 하에 만들어졌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기 때문이다.
- 영화 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이다. 이유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면 안다.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 때문에 이 영화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할 수 없다는 것이 아쉬울 따름이다.
.
.
.
“원더풀! 어메이징! 브라보! 판타스틱!”
자신이 알고 있는 감탄사란 감탄사는 모조리 내뱉는 조지 루이스.
영화 의 엄청난 성공으로 그는 지금 무척이나 들떠 있었다.
“무려 4억 달러야, 킴. 이번 우리 영화의 흥행 수익이 무려 4억 달러를 기록했다고.”
“으, 귀청 떨어질 것 같으니 살살 좀 이야기해요, 조지. 그리고 그건 저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라고요.”
“하하, 내가 진즉에 알아봤다니까. 전에 하와이에서 킴이 이번 영화의 컨셉에 대해 이야기할 때부터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둘 줄 알았다고. 역시 킴은 천재야, 천재. 백 년, 아니 천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영화계의 천재.”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조지 루이스.
그런 그를 향해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보다, 조지.”
“응.”
“소송은 어떻게 돼 가고 있어요? 이번 영화의 흥행도 좋지만, 난 조지의 상황이 더 걱정되네요.”
살짝 굳어진 표정으로 조지 루이스가 대답했다.
“신경 쓸 필요 없어. 이미 다 끝난 문제니까.”
“끝나다뇨?”
“영화 <스페이스 워즈>의 판권, 그리고 아이들 양육권만 건드리지 않으면 원하는 대로 다 해준다고 했어.”
“......”
“마음 같아서는 한 푼도 안 주고 내쫓고 싶지만, 주(州)법이 그렇잖아. 대신 두 번 다시는 영화판에 발을 붙이지 못하게 만들겠어. 내가 가진 인맥을 총동원해서라도 더이상 영화 편집 일은 하지 못하도록 만들 거야.”
여자가 한을 품으면 오뉴월에 서리가 내린다던데,
남자도 그에 못지않은 모양이군.
“미안해요, 조지. 제가 괜히 쓸데없는 이야기를 꺼낸 것 같네요.”
“괜찮아. 우리가 이 정도 이야기 나누지 못할 사이도 아니고. 게다가 나 모르게 킴이 많이 노력했다는 사실, 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보다, 킴.”
“예, 조지.”
“내가 이번에 새로 회사를 하나 만들려고 하는데......”
“회사요?”
“그래. 내가 요즘 영화의 음향 효과 쪽에 새롭게 관심이 생겨서 말이야. 킴도 잘 알다시피 영화에서 있어 음향은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잖아? 영화의 현장감과 박진감을 살리기 위해서는 정교한 사운드 시스템이 필수적이라고 할 수 있지.”
“그러니까 조지의 말은 지금 영화 음향 기기 제조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를 만들겠다는 거예요?”
“그래. 어차피 ILM은 킴이 맡아서 운영하기로 했으니까, 나는 새로 음향 쪽 일을 한번 해보려고. 마침 이번 영화의 성공으로 자금 사정도 제법 넉넉해지게 생겼으니까 말이야, 하하하.”
사실 조지 루이스는,
영화 연출보다는 영화 외적인 분야에서 더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인물이었다.
실제로 그는 ILM을 창립해 영화 특수 효과와 CG 기술 발전에 큰 기여를 했고, 뒤이어 THX라는 회사를 만들어 영화의 음향 기술 발전에도 많은 역할을 했다.
‘역시 조지 루이스의 안목은 남다르군. 앞으로 영화관은 3D와 4D, 더 나아가 인간의 시각적 한계치까지 보여준다는 아이맥스와 같은 다채로운 기술들이 도입될 예정이지.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정교하고, 입체적인 사운드 기술이 반드시 필요하게 될 텐데, 벌써부터 그는 이를 꿰뚫어 보고 관련 사업을 준비하려 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속마음을 감추며 내가 조지 루이스를 향해 말했다.
“좋은 생각이네요, 조지. 뛰어난 사운드 시스템이 만들어지면 극장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관객들도 훨씬 현장감 있게 영화를 볼 수 있을 테니까요.”
“그렇지?”
“네. 게다가......”
사람이 바쁘게 움직이다 보면,
복잡한 머릿속도 쉽게 정리할 수 있을 테니까요.
“게다가, 뭐? 왜 말을 하다가 말아?”
“아무것도 아녜요, 조지.”
“사람 참 싱겁기는.”
“아, 그러고 보니 벌써 저녁 먹을 시간이네요. 같이 밥이나 먹으러 나가요.”
“그럴까? 킴 덕분에 내가 이번에 또 큰돈을 벌게 됐으니, 오늘 저녁은 내가 쏘도록 하지.”
“눈물 나도록 고맙네요, 흐흐.”
116.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ILM.
영화 특수 효과와 CG 기술을 전문적으로 개발하는 이 회사는 원래 루이스 필름이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내가 여러 차례에 걸쳐 ILM의 지분을 사들였고, 그 결과 이제는 Film Kim 산하의 자회사로 완전히 편입되었다.
사실 전생 초기부터,
나는 ILM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앞으로 세계 영화 산업의 판도를 바꿀 가장 중요한 기술이 바로 CG이기 때문이지. CG 분야에서 최고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는 회사가 바로 이곳 ILM이고.’
1912년 처음 영화 산업이 시작된 후,
불과 20년 만에 할리우드는 세계 영화 산업의 중심으로 떠오르게 된다.
1930년대 유성 영화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면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오즈의 마법사> 등과 같은 주옥같은 걸작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의 진정한 전성기는 1990년대 이후라고 할 수 있다.
이 시기 할리우드 영화에 CG가 본격적으로 도입되기 시작하면서 종래에는 기술적 제약으로 구현할 수 없었던 다양한 이야기들이 영상으로 구현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할리우드는 그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명실공히 세계 최대의 영화 산업 중심지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내가 ILM에 많은 돈을 투자하고 있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지. CG 기술이 본격화되어야만 마블 시리즈와 같은 히어로 영화, 반지의 제왕 같은 판타지 영화, 그리고 다른 대작 영화들을 우리 Film Kim이 먼저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니까.’
ILM이 가지고 있는 독보적인 CG 기술.
이를 가장 처음 선보인 영화가 바로 <터미네이터>였다.
이 영화의 오프닝에 약 5분가량의 풀 CG 영상이 삽입된 것이다.
<터미네이터>의 CG 영상은 영화를 본 관객들은 물론 할리우드 영화 관계자들에게도 엄청난 충격을 주었다.
그 덕분에 이 영화는 얼마 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특수효과상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시작에 불과했다.
나와 제임스 카메룬은 곧 제작에 들어갈 영화 <터미네이터2>를 통해 전편보다 훨씬 뛰어난 CG 기술을 선보이기로 계획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킴.”
영화 의 상영이 성공적으로 끝나갈 무렵,
제임스 카메룬이 나를 찾아왔다.
현재 그는 영화 <터미네이터>의 속편 시나리오를 준비 중에 있었다.
“아, 지미. 갑자기 어쩐 일이에요?”
“킴이랑 좀 상의할 일이 있어서요.”
“뭔데요?”
“그게, 제가 얼마 전에 <터미네이터> 속편 시나리오를 쓰다가 갑자기 떠오른 아이디어인데......”
대충 짐작 가는 부분이 있었지만,
내가 일부러 모른 척 물었다.
“뭔데요?”
“이번 속편에는 전편에 등장한 T-800보다 훨씬 진화한 로봇 병기 T-1000을 등장시키면 어떨까 해서요.”
“T-1000?”
“네. 중요한 것은 이 T-1000이 무엇으로든 변할 수 있는 일명 ‘액체금속’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거죠.”
“액체금속이요?”
“예. 제가 우연히 한 과학잡지에서 노벨상을 받은 필립 엔더슨이란 사람이 쓴 글을 보게 되었는데, 그 사람의 말에 따르면 먼 미래에는 액체금속이라는 것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네요. 액체금속의 가장 큰 특징이 바로 형태를 자유자재로 바꿀 수 있다는 것이고요.”
역시나,
제임스 카메룬의 말은 내 예상을 한치도 벗어나지 않고 있었다.
‘내 전생의 기억에 따르면 영화 <터미네이터2>가 세계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 획기적인 액체 금속형 로봇이 등장했기 때문이지.’
하지만 굳이 내 입으로 이 말을 하지 않은 것은,
내가 아니어도 제임스 카메룬은 자연스럽게 이 아이디어를 떠올릴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편이 훨씬 더 자신이 만드는 영화에 애착을 가질 수 있을 것이고.
“흠. 액체금속이라. 그거 꽤 괜찮은 아이디어인 것 같은데요?”
“그렇죠?”
“근데 문제는 그걸 기술적으로 어떻게 구현하느냐인데......”
“그래서 제가 이렇게 킴을 찾아온 거예요. ILM 쪽에 자문을 한번 구해보면 좋지 않을까 해서요. 만약 이게 불가능하다면 시나리오를 조금 수정해야 할 것 같고요.”
안 되지. 그건 절대 안 되지.
액체금속 로봇 T-1000이 등장하지 않는 영화 <터미네이터2>는 상상조차 하기 싫으니까.
“그럼, 지미.”
“네.”
“우리 말 나온 김에 같이 ILM에 한번 가보죠. 그게 가장 빠를 것 같으니까.”
“저야 대환영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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