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67화 (67/145)

# 67 < 반전 영화 (5) >

110.

1984년 봄.

영화 의 프리 프로덕션이 시작됐다.

이번 영화는 조지 루이스가 제작을, 내가 연출을 맡았다.

아울러 그동안 많은 영화 작업을 함께해온,

그래서 일명 ‘제임스 킴 사단’이라 불리는 스태프가 대부분 합류했다.

그 덕분에 이번 영화에 대한 할리우드 영화 관계자들의 관심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하지만.

영화의 내용은 철저히 베일에 가려져 있었다.

그 가운데에서도 가장 철저하게 보안이 유지되었던 것은 바로 영화 대본이었다.

오죽하면 감독급 스태프 가운데서도 온전한 영화 대본을 본 사람이 한 사람도 없을 정도였다.

“도대체 무슨 영화길래 그래?”

“난들 아나. 나도 다른 스태프와 똑같은 결말 없는 반쪽짜리 대본밖에 받지 못했는걸.”

“듣기로 대본의 내용을 모두 아는 사람은 제작자인 조지 루이스와 연출을 맡은 제임스 킴, 그리고 각본 회의의 참여한 소수의 각본가뿐이래.”

수군대는 스태프들.

그 가운데 눈치 빠른 몇몇의 사람도 있었다.

“아마도 이번 영화의 결말에는 엄청난 비밀이 숨겨져 있는 것이 틀림없어.”

“뭐 그런 거겠지. 예전의 <스페이스 워즈> 때처럼 주인공의 출생 비밀과 같은 깜짝 놀랄 반전이 숨어 있는. 그래서 일부러 공개하지 않는 거겠지.”

“나중에 엔딩 촬영 때는 또 소수의 스태프로 구성된 비밀 촬영팀이 꾸려지겠군. 비밀 유지 서약서까지 써가면서 말이야.”

하지만.

이번 영화의 결말은 이들이 예상하는 수준을 훨씬 뛰어넘는 충격적인 반전 내용이 숨어 있을 예정이었다.

‘전생의 <식스센스>나 <유주얼 서스펙트>같은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

영화 의 프리 프로덕션 기간은 대략 3개월이었다.

이 기간 동안은,

사무실은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할 정도로 정신이 없다.

연출팀, 촬영팀, 조명팀, 음향팀, 미술팀 등등,

각 팀별로 다양한 준비작업들이 진행되기 때문이다.

물론 중간중간 간부급 스태프 회의를 통해 전체적인 조율 과정도 이루어진다.

하지만 모르는 사람이 보면 이 팀들이 전부 하나의 영화를 만들기 위해 모인 사람인지 헷갈릴 정도로 여러 작업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진다.

물론 제작자인 조지 루이스와 감독인 나는,

작업 진행 상황 전반을 모두 파악하고 있었다.

각 팀별로 이루어진 작업은 모두 문서화되어 최종적으로 우리 두 사람에게 보고되기 때문이다.

“최종 예산안은 나왔어?”

“네, 조지.”

“예상 제작비가 얼마야?”

“총 3천만 달러 정도네요. 여기에 몇백만 달러 정도는 더 추가될 수 있고요.”

“그럼 투자 비율은 어떻게 할까?”

“루이스 필름과 Film Kim이 딱 절반인 천오백만 달러씩 부담하는 걸로 해요. 차후 발생하는 추가 비용도 마찬가지고요.”

“유니온 픽처스는? 이번 영화 제작에는 참여하지 않는 건가?”

“소식 못 들었어요, 조지?”

“무슨 소식?”

“지금 Film Kim과 유니온 픽처스가 한창 합병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는 소식요.”

“아, 맞다. 일전에 킴이 나에게 한번 이야기한 적이 있었지. 좀 있으면 두 회사가 Film Kim이라는 이름으로 통합될 예정이라고.”

“맞아요.”

“미안. 내가 요즘 깜박깜박해. 아무래도 술을 좀 줄어야겠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조지 루이스.

원래 애주가인 그였지만, 요즘 들어 그 양이나 횟수가 부쩍 늘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내가 다시 조지 루이스에게 물었다.

“요즘 알 피치노는 어때요, 조지?”

“우리가 잡아준 호텔에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오로지 대본 연습에만 몰두하고 있어. 역시 프로는 프로더군. 출연이 확정되기가 무섭게 몰입하는 모습을 보면.”

알 피치노는 이번 영화 의 주연 배우이다.

전생에서 그의 연기를 무척이나 인상 깊게 본 나는 이번 영화에 그를 전격 캐스팅한 것이다.

아마도 그의 뛰어난 연기력과 캐릭터 창조 능력은 이번 영화의 완성도를 더욱 높여줄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는 알 피치노 만큼이나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배우가 또 한 사람 있었다.

그는 바로......

“아 참, 조지. 아역배우는요?”

“일단 섭외는 완료됐고, 대본 전달해서 오늘 오후에 카메라 테스트 한번 진행해보기로 했어. 근데, 킴.”

“네.”

“진짜 그 아이를 쓸 거야? 걘 연기 경험이 거의 전무한 아이잖아. 기껏해야 CF나 TV 드라마 몇 편, 그것도 단역으로 출연한 것이 전부던데? 그보다는 차라리 내가 전에 이야기한 아역배우를 쓰는 것이 어때? 킴이 굳이 남자아이를 고집하지 않는다면 말이야.”

이번 영화의 아역으로,

처음부터 조지 루이스가 강력하게 추천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바로 앞서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영화 에 출연했던 ‘드루 베리무어’였다.

‘드루 베리무어. 전생에서 너무나도 유명했던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여배우 가운데 하나이지. 그러고 보니, 드루 베리무어가 영화 에서 주인공인 엘리엇의 여동생 역할로 나왔었군. 영화가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면서 그녀도 소위 미국의 국민 여동생이 되었고 말이야.’

조지 루이스가 이번 영화의 아역으로 드루 베리무어를 추천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이었다.

적어도 인지도 면에서는 그녀만큼 괜찮은 아역배우를 찾기도 힘들 것이기에.

“생각해봐, 킴. 우리가 영화 로 유명해진 드루 베리무어를 출연시키면 나중에 영화 홍보에 있어서도 상당히 유리한 측면이 있지 않겠어?”

“조지의 말도 틀린 건 아니에요. 하지만 애초부터 이 영화의 아역은 남자아이로 설정되어 있었잖아요. 그러니 일단 내가 이야기한 그 아이의 카메라 테스트부터 한번 진행해보고 다시 이야기하는 걸로 해요.”

“뭐, 킴의 생각이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만......”

못내 입맛을 다시는 조지 루이스.

영화에서 출연 배우의 섭외는 그 어떤 것보다 가장 중요한 문제이다.

그 때문에 제작자와 감독 사이에 배우 섭외 문제를 놓고 의견충돌을 빚는 경우는 허다하게 발생한다.

일전에 영화 <레이더스> 촬영 때도 주인공 인디아나 존슨 역을 맡을 배우 섭외를 놓고 한바탕 소동이 벌어지기도 했었다.

하지만.

‘기다려봐요, 조지. 할리우드 배우들에 관해서 나만큼 잘 알고 있는 사람도 또 없으니까. 그래서 이번 영화에 내가 할리우드를 뒤흔들 정도로 유명한 배우로 성장할 아역 하나를 점찍어 두고 있으니까요, 흐흐.’

***

그날 오후.

한 아이가 부모의 손을 잡고 우리 Film Kim 사무실을 방문했다.

대략 10살 남짓 정도로 보이는 아이는 금발 머리에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진 꽤 잘생긴 남자아이였다.

“안녕하세요? 제가 영화는 처음인데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카메라 앞에 선 아이가 똘망똘망한 눈빛과 표정으로 스태프들을 향해 인사했다.

그런 아이의 모습을 보며 내가 속으로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 아이가 앞으로 할리우드를 뒤흔들 최고의 영화 배우로 성장할 것이라는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어. 아역배우 시절을 거쳐 성장한 그는 추후 <로미오와 줄리엣>, <타이타닉>, <인셉션> 등과 같은 영화를 통해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영화 배우로 자리 잡게 되지.’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출중한 외모에 버금가는 훌륭한 연기력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다.

그 때문에 내가 이번 영화 의 아역배우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어를 지목한 것이었다.

“자, 그럼 카메라 테스트 시작하겠습니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어가 준비한 연기를 지켜보며,

내가 영화에서 처음 그가 등장하는 장면을 머릿속으로 떠올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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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기 사고가 발생하고 약 1년 후.

주인공 닉(Nick)이 한 아이와 마주 앉아 있었다.

정신과 상담을 위해 그를 찾아온 ‘토미’라는 아이였다.

“선생님이 믿으실지 모르겠지만, 제 눈에는 유령이 보여요.”

왠지 낯익은 아이의 증상.

아내인 소피아,

그리고 자신을 원망하며 자살한 환자 패트릭과 같은 증상이었다.

예전의 닉이었다면,

그냥 정신 착란이나 망상증 정도로 가볍게 생각하고 말았을 것이다.

하지만 앞서 패트릭의 전례가 있어서인지,

이번에는 닉이 좀 더 아이를 자세히 살펴보기로 마음먹었다.

“유령이 보인다고?”

“네. 그들이 죽었을 당시의 모습 그대로요.”

“......그래서 무섭니?”

“무서워요. 너무나도 끔찍해요.”

“그럴 땐 어떻게 하지?”

“눈을 감아요. 그리고 손으로 귀를 꼭 막아요.”

“귀를 막는다는 건 유령이 너에게 뭔가를 이야기한다는 뜻이니?”

“네.”

“뭐라고 이야기하는데?”

“도와달라고......”

“유령이 너에게 도움을 요청하고 있다고?”

“네.”

“어떤 도움을?”

“몰라요. 제가 너무 무서워서 눈과 귀를 꼭 틀어 막아버려서요.”

“있잖아, 토미.”

닉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토미를 향해 말했다.

“앞으로는 선생님이 널 도와줄 거야. 선생님은 의사니까 충분히 네 병을 고쳐줄 수 있어. 하지만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네 증상을 명확하게 알아야 해. 그러니 우리 이렇게 한번 해 보자.”

“어떻게요?”

“지금부터 유령이 너에게 무슨 말을 하는지를 한번 들어봐. 그리고 유령이 하는 말을 나에게 그대로 이야기해줘. 되도록 자세하게 말이야. 그럼 내가 토미 네 상태를 보다 정확하게 알 수 있을 테니까.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토미?”

말없이 고개를 끄덕이는 토미.

그날 이후 그는 유령들이 하는 말을 모두 닉에게 전달해주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닉은 놀라운 사실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말도 안 돼. 망상이라는 것도 결국 그 사람의 지적 수준이나 경험을 반영해서 나타나기 마련인데, 이제 겨우 10살짜리 아이가 이런 이야기들을 상상만으로 꾸며냈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가 않는군.’

그때부터 닉은 토미의 상태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닉은 또 한 가지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맙소사! 토미가 유령에게서 들었다는 이야기들, 이거 전부 실제 있었던 일이잖아?’

놀랍게도,

토미는 실제 유령의 모습을 보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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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요, 조지?”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어의 카메라 테스트를 지켜보고 있던 내가 조지 루이스를 향해 물었다.

확실히 그의 연기는 평범한 아역배우라고 하기에는 뭔가 독특한 무언가가 있었다.

“흠. 생각보다 나쁘지 않은데?”

“그렇죠?”

“응. 일단 외모적으로는 관객들을 빠져들게 만들기 충분해. 연기도 저만하면 아역치고는 좋은 편이고. 조금만 잘 다듬으면 아주 괜찮은 아역 연기자가 또 하나 탄생할 수 있겠는데?”

“거봐요, 내가 뭐랬어요. 드루 베리무어인지 하는 걔보다 이 아이가 이번 영화에 더 잘 어울릴 거라고 했잖아요.”

“거참, 킴은 아주 신기한 구석이 있어. 어떻게 이렇게 괜찮은 배우들을 잘 찾아내는 거야? 매번 영화를 찍을 때마다 말이야.”

“술 좀 작작 마시고 저처럼 공부 좀 하세요, 공부. 잘 찾아보면 아직도 뛰어난 연기력을 가진 배우들이 드라마나 영화의 단역을 전전하고 있으니까. 우리 같은 영화감독이 해야 할 일이 바로 이런 숨은 보석들을 찾아내는 일 아니겠어요?”

내가 조지 루이스를 향해 농담을 던졌다.

그런데.

웬일인지 그가 내 농담을 진담으로 받았다.

“그래야겠군. 진짜 술 좀 줄여야겠어. 나도 이제 좀 달라져야지.”

“갑자기 사람 무안하게 왜 이래요, 조지? 농담한 건데.”

“말이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킴 우리 오늘 마지막으로 딱 한 잔만 어때? 내가 킴에게 아주 진지하게 할 말도 있고 말이야.”

“......”

왠지,

그가 나에게 무슨 말을 할지 어렴풋이 짐작이 가는 것은 나만의 착각인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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