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5 < 반전 영화 (3) >
106.
“어머, 사장님.”
사장실로 들어오던 이레나가 깜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퀭한 눈으로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한 탓이었다.
“설마 또 여기서 밤새우신 거예요?”
“시나리오 좀 쓰느라고요. 쓰다 보니 해 뜬 줄도 몰랐네.”
“으, 사장님은 다 좋은 데 그게 문제예요. 뭔가에 몰입하면 아예 끝장을 본다는 거.”
“시나리오가 얼른 완성되어야 영화 작업에 들어가죠. 그 때문에 좀 무리를 했어요.”
“그래서 시나리오는 완성하신 거예요? 사장님 표정을 보니 그런 것 같은데?”
“대략적으로는요. 세부적인 내용은 각본 회의 때 조금씩 수정해나가면 되니까요.”
“무슨 영화예요? 사장님이 이번에는 또 어떤 영화를 만들지 되게 궁금하네요.”
“차차 알게 될 거예요. 아, 그리고 다음 주부터 프리 들어갈 거니까, 직원들에게도 그렇게 전달해줘요.”
“그렇게나 빨리요?”
“네.”
내가 이레나를 향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인생은 짧은데, 만들 영화는 너무나 많아서요, 흐흐.”
***
사무실을 나온 나는,
곧바로 조지 루이스의 사무실로 향했다.
이번 영화 은 오래간만에 조지 루이스와 내가 손을 잡고 만들기로 약속했기 때문이었다.
“벌써 시나리오를 완성했다고?”
놀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조지 루이스.
그런 그를 향해 내가 말했다.
“네. 영화의 전체적인 내용은 이미 머릿속으로 구상하고 있던 터라 그런지, 막상 쓰기 시작하니까 금방 써지더라고요.”
말은 그렇게 했지만,
내가 불과 며칠 만에 이번 영화 시나리오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전생에서 이런 류(類)의 반전 영화를 수도 없이 봤기 때문이지. 그 때문에 어떤 결말이 가장 관객들에게 충격으로 다가올지, 이를 위해 영화의 중간중간 어떤 복선을 깔아야 할지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으니까.’
무엇보다 이런 반전 영화들은 흥행 성적 또한 뛰어났다.
일례로 최고의 반전 영화라 불리는 영화 <식스센스>의 경우 무려 7억 달러에 가까운 관람료 수익을 올리면서 반전 영화 역사상 최고의 히트 작품이 되기도 했다.
‘영화 <식스센스>의 성공으로 이후의 모든 반전 영화들은 모두 이 영화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게 되지. ‘식스센스 이후 최고의 반전 영화’와 같은 표현이 흔히 사용되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고.’
하지만 이번 생은 다를 것이다.
만약 이번에 내가 만든 영화가 흥행에 성공하게 되면 아마도 사람들은 뛰어난 반전 영화를 일컬을 때 다른 표현을 쓰게 될 것이다.
‘ 이후 최고의 반전 영화’라는 표현을.
“그럼 어디 한번 보자고. 시나리오 가져왔지?”
“여깄어요, 조지.”
내가 조지 루이스에게 영화 의 시나리오를 내밀었다.
한동안 집중해서 내가 쓴 시나리오를 살펴보던 조지 루이스가 다시 입을 열었다.
“허 참. 다른 건 몰라도 결말은 확실히 충격적이기는 하군.”
“이번 영화의 주요한 포인트는 결말이 공개되기 전까지 관객들이 절대 그 비밀을 눈치를 채지 못하게끔 해야 한다는 거죠. 물론 영화 곳곳에 복선은 깔면서요.”
“그럼 관객들이 나중에 영화를 다 보고 나서야 자신의 무릎을 치며 아, 그래서 그랬구나, 라고 깨닫게 되겠군.”
“네. 그게 바로 반전 영화의 묘미죠. 영화가 끝난 후에야 비로소 모든 상황이 하나로 연결되며 관객들이 큰 충격을 받게 되는.”
“확실히......”
조지 루이스가 감탄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기존에 만들어진 영화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참신한 소재이긴 해. 무엇보다 영화 상영 시간 내내 관객을 철저하게 속인다는 점이 말이야.”
“그래서 말인데, 이번 영화의 결말은 영화에 참여하는 스태프들에게도 공개되면 안 될 것 같아요.”
“일전에 내가 만든 <스페이스 워즈>에서 다스 베이더의 정체를 감춘 것처럼?”
“그렇죠.”
“좋은 생각이야. 내가 볼 때 이런 종류의 영화는 결말을 알고 보면 지루하기 짝이 없는 영화가 될 수도 있을 테니까 말이야.”
조지 루이스가 다시 물었다.
“그나저나 주연 배우는 누구를 캐스팅할 예정이야? 이번 영화는 특성상 주연 배우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할 것 같은데?”
“일단 생각해 둔 배우가 한 사람 있기는 해요.”
“누군데?”
잠시 뜸을 들이던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탈리아 출신의 배우 알 피치노요.”
알 피치노.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전설적인 영화배우였다.
연극배우 출신인 그는 영화 <대부>를 통해 최고의 영화배우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이후에는 그는 <여인의 향기>, <히트> 등의 영화에 출연하며 그 명성을 이어나갔다.
‘알 피치노, 그는 전생에서 나도 무척이나 좋아했던 배우 중의 한 사람이지. 그래서 만약 내가 세계적인 감독이 된다면 꼭 한번 작업을 같이해 보고 싶었고. 어쩌면 전생에서 이루지 못한 꿈을 이번 생에서 이루게 될지도 모르겠군.’
“알 피치노라면......”
조지 루이스가 말했다.
“영화 <대부>에서 마이클 콜레오네 역을 맡았던 배우를 말하는 거야?”
“네.”
“뭐, 알 피치노가 이번 영화의 주연을 맡게 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이 되겠지. 다른 건 몰라도 알 파치노가 연기 하나는 할리우드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운 배우니까. 무엇보다 시나리오에 나오는 주인공 닉의 분위기와도 잘 어울리고.”
“맞아요.”
“문제는 캐스팅이 쉽지 않다는 거야. 영화 <대부>가 엄청난 히트를 기록하면서 알 피치노도 덩달아 할리우드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배우가 됐으니까 말이야. 게다가 요즘은 영화보다는 브로드웨이 연극 무대에서 주로 활동을 한다던데?”
“그건 제작자인 조지의 역량에 달려 있는 거겠죠. 조지가 한번 그를 만나서 잘 설득해보세요. 할리우드 최고의 영화 제작자인 조지가 영화의 취지를 충분히 설명하고, 또 그의 명성에 걸맞은 대우를 해준다고 약속하면 아마 알 피치노도 선뜻 출연 승낙을 하게 될지도 모르니까요.”
“읔! 이건 누가 제작자고, 누가 감독인지 모르겠군.”
“제작자와 감독 관계를 떠나서 우린 좋은 파트너잖아요. 영화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는, 흐흐.”
내가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
“다음 주부터 바로 영화 프리 들어갈 예정이니까, 캐스팅 문제도 서두르는 것이 좋을 거예요.”
“알았어. 근데 벌써 가려고?”
“시나리오 쓰느라 어제 밤을 꼴딱 샜거든요. 집에 가서 씻고 눈 좀 붙여야 할 것 같아요.”
“그래. 그럼 가서 푹 쉬어. 아 참, 낼모레 있는 아카데미 시상식에는 참석할 생각이지?”
“그럼요.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 우리 Film Kim이 만든 영화가 많은 부문의 수상 후보로 올랐으니까요.”
“그래? 그럼 시상식장에서 다시 보게 되겠군.”
“네. 나중에 봐요, 조지.”
107.
Film Kim의 새 영화 의 프리 프로덕션을 며칠 앞두고,
제56회 아카데미 시상식이 개최되었다.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은 우리 Film Kim에서도 무척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앞서 Film Kim의 이름으로 제작된 두 편의 영화 <터미네이터>와 가 여러 부문에 걸쳐 수상 후보로 노미네이트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중에서도 영화 관계자들의 가장 큰 관심을 끈 것은,
‘그야 당연히 남우 주연상이지. 왜냐하면 영화 에 출연한 흑인 배우 모건 프리먼이 수상 후보로 당당히 이름을 올렸으니까.’
만약 이번 시상식에서 모건 프리먼이 실제 남우 주연상을 받게 된다면,
‘1964년 <들백합>이라는 영화로 흑인 배우 최초로 아카데미 남우 주연상을 받은 시드니 포이티어에 이어 두 번째 흑인 남우 주연상의 주인공이 되겠지. 그것도 무려 20년 만에 말이야.’
그리고 또 한 가지 영화 관계자들이 큰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바로 감독상이지. 왜냐하면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는 영화 를 연출한 레이첼이 감독상 후보로 올랐기 때문이지. 만약 그녀가 실제 수상을 하게 된다면 아카데미 역사상 최초의 여성 감독상 수상자가 될 테니까.’
이처럼,
내가 만든 영화 는 앞선 영화 <레이더스>만큼이나 그동안 ‘백인 남자’들만의 잔치였던 아카데미의 전통 아닌 전통을 송두리째 뒤흔들며 큰 화제가 되고 있었다.
물론 실제 수상으로 이어질지는 아직 미지수이긴 하지만.
“Ladies and Gentlemen, 지금부터 제56회 아카데미 시상식의 화려한 막을 올립니다!”
사회자의 격앙된 멘트를 시작으로 본격적인 시상식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결과는,
‘역시나, 내가 예상했던 대로 아카데미는 아직 유색인종이나 여성들에게 문을 열 준비가 완벽하게 되지는 않았군.’
남우 주연상 후보에 오른 모건 프리먼도,
감독상 후보에 오른 레이첼도,
모두 실제 수상으로는 이어지지 못했던 것이다.
‘하긴. 지난 수십 년간 이어져 온 아카데미의 편견이 그렇게 쉽게 깨어질 리 없겠지. 하지만 지난 영화 <레이더스> 때도 그렇고, 이번 영화 때도 그렇고, 점점 유색인종과 여성이 아카데미 시상식의 메인을 장식하고 있다는 것은 굳건했던 아카데미의 편견의 벽도 점점 허물어져 가고 있다는 뜻이 분명해.’
물론 그 중심에는,
앞으로 나와 영화사 Film Kim이 만들어 낼 수많은 히트 영화들이 있을 것이었고.
***
“흠, 이런 기분이었네요.”
아카데미 시상식을 마치고 돌아가는 차 안.
레이첼이 나를 향해 말했다.
“무슨 기분요?”
“감독상 수상 문턱까지 갔다가 미끄러지는 기분요. 덕분에 나도 예전 영화 <레이더스>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을 ‘뻔’했던 킴의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네요.”
유난히 ‘뻔’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하는 레이첼.
이건 분명......
“읔, 레이첼 지금 나 놀리는 거죠?”
“호호. 설마요.”
“어쨌거나 좀 아쉽기는 하네요. 이번 영화는 작품성으로 보나 흥행 성적으로 보나 충분히 감독상을 수상할 만했는데.”
“그래도 전 충분히 만족해요. 킴이 저에게 좋은 시나리오를 써준 덕분에 제가 영광스러운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 자리까지 오르게 되었으니까 말이에요.”
“레이첼이 만들 다음 영화도 이번 영화만큼 좋은 관객들의 반응을 얻게 되면, 그때는 아마 지금보다 훨씬 좋은 결과를 얻게 될 수 있을 거예요. 아 참,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내가 레이첼을 향해 물었다.
“새 영화 준비는 잘 돼가고 있어요?”
“NASA 최초의 흑인 여성 엔지니어인 메리 잭슨을 주제로 한 영화 말이에요?”
“네.”
“일단 본인을 주제로 한 영화를 만들고 싶다는 우리 쪽 의사를 전달했더니, 꽤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긴 하더라고요. 그래서 조만간 만나서 인터뷰를 해 볼 생각이에요.”
“잘됐군요.”
내가 전생에서 본 영화 <히든 피겨스>를 머릿속으로 떠올리며 말했다.
“주제가 주제인 만큼 아마 흥미로운 이야깃거리가 아주 많이 나올 겁니다. 물론 이걸 어떻게 영화적으로 엮어낼지는 온전히 레이첼의 몫이고요.”
“너무 그렇게 부담 주지 말아요, 킴. 나름 최선을 다하고 있으니까.”
“부담 팍팍 줄 거예요. 이번 영화는 내가 제작비를 대는 영화니까요.”
“으, 쫌생이 킴.”
“하하, 농담이에요, 농담.”
레이첼과 내가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는 사이,
어느새 우리 두 사람을 태운 차량이 목적지에 도착했다.
할리우드 인근의 한 고급 레스토랑.
오늘 이곳에서 나는 회사 합병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유니온 픽처스 최대 주주인 레이첼의 아버지를 만나기로 약속되어 있었다.
“들어가서 입구에 있는 직원에게 제 이름 말하면 곧장 자리로 안내해 줄 거예요.”
“레이첼은 같이 안 들어갈 생각이에요?”
“우리 아버지가......”
레이첼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킴을 단둘이서만 만나보고 싶다네요.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
“전 지하에 있는 바(Bar)에서 기다리고 있을 테니, 끝나고 그리로 와요, 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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