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61화 (61/145)

# 61 < 트리플 크라운 (4) >

100.

영화 <터미네이터>에 이어,

Film Kim이 제작한 또 한 편의 영화가 극장에서 상영되기 시작했다.

인종 차별에 대한 비판적 성격 가진 영화 가 그것이었다.

‘인종 차별이라는 주제는 영화계에서는 흔하디흔한 주제이지. 당장 기억 나는 영화만 해도 <그린북>, <히든 피겨스>, <노예 12년>, <타임 투 킬> 등등 수십 편이니까 말이야.’

하지만 이 작품들은 대부분 인종 차별 개선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1990년대 이후에 만들어진 것이었다.

반면 지금 내가 사는 1980년대는 백인들의 유색 인종 차별이 여전히 횡행하던 시대이다.

이런 시기에 내가 만약 인종 차별을 주제로 한 영화를 만들었다가 자칫 그동안 쌓아온 나의 명성이 한순간에 무너질 위험성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영화 를 제작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이 시기 만들어진 한 편의 영화 때문이었다.

그것은 바로,

‘1985년에 만들어진 영화 <컬러퍼플>이지. 놀랍게도 이 영화는 상업 영화계의 거장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연출을 맡은 영화이고.’

<컬러퍼플>은 미국 흑인 여성 작가인 앨리스 워커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였다.

1,500만 달러의 제작비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무려 1억 달러가 넘는 흥행 수익을 올렸다.

또한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등 무려 11개 부문의 후보로 노미네이트 되기도 했다.

‘이 시기 <컬러퍼플>이라는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다는 것은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미국 사회의 인종 차별 문제에 공감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지. 따라서 내가 만든 란 영화도 충분히 관객이나 영화 관계자들에게 인정받을 수 있을 거야.’

결론적으로 이야기하면,

영화 의 개봉 첫 주 성적은 그리 좋지 못했다.

배급사인 유니온 픽처스와 오래 거래해온 극장주들 입에서조차 ‘조기 상영 중지’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

그런데.

개봉 2주 차에 접어들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한산하던 의 상영관이 갑자기 사람들로 붐비기 시작하더니,

급기야 몇몇 극장에서는 영화표가 매진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그 이유는,

“사장님!”

여직원 이레나가 사장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왔다.

“끙. 우리 회사 직원들은 다들 노크하는 법을 모르는 것 같군요. 지미도 그렇고, 이레나도 그렇고.”

“아이, 참 사장님도. 지금 노크 따위가 문제가 아니라고요.”

“그럼 뭐가 문젠데요?”

“갑자기 사람들이 우리 영화 를 보기 위해 극장으로 몰려들기 시작했어요.”

“예? 그게 정말이에요?”

“네. 방금 막 유니온 픽처스로부터 관객 수가 급증하고 있다는 연락이 왔어요. 저녁 황금 시간대는 표가 매진되는 바람에 구할 수조차 없다고 하더라고요.”

때마침 책상 위에 놓인 전화기가 울렸다.

내가 수화기를 들자, 이레나 만큼이나 잔뜩 흥분한 레이첼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소식 들었어요, 킴?”

“영화 의 관객 수가 급증하고 있다는 소식 말인가요?”

“네.”

“방금 막 이레나에게 들었습니다. 근데 도대체 이유가 뭡니까? 갑자기 이렇게 관객 수가 급증한 이유가.”

“그게......”

레이첼의 말에 따르면,

현재 영화 의 상영관을 찾는 관객들 대부분은 흑인들이라고 한다.

사실 할리우드에서는 흑인이 주연을 맡은 영화도, 흑인들이 무언가를 이루어 내는 내용의 영화도 극히 드물었다.

이에 흑인들은 모처럼 접하는 자신의 승리담에 열광하며 극장 앞에 긴 줄을 늘어선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수화기 너머의 레이첼을 향해 말했다.

“이번 영화가 미국 흑인들 사이에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고, 그래서 극장을 찾는 관객 수가 갑자기 늘어났다는 뜻입니까?”

“네. 흑인들이 지금 우리 영화를 ‘흑인이라면 반드시 봐야 할 영화’라고 말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하고 있어요. 그 덕분에 많은 흑인이 극장으로 향하고 있고요.”

“충분히 그럴 수 있겠군요. 영화의 내용상 흑인들이 통쾌함을 느낄 부분이 분명히 있으니까요.”

“그 덕분에 지금 언론과 잡지사에서 인터뷰 요청도 쇄도하고 있어요. 아마 조만간 Film Kim 쪽에도 연락이 가지 싶어요. 기자들 입장에서는 인종 문제와 같은 주제들이 보도하기 굉장히 좋은 주제잖아요.”

“어쨌든 우리 입장에서는 아주 잘된 일이네요. 전 이대로 영화가 조기 종영되면 어쩌나 걱정하고 있었는데.”

“그러게요. 아 참, 킴. 저 지금 잡지사 인터뷰 시작해야 해서 그만 전화 끊어야 할 것 같아요. 이따 제가 시간 내서 킴을 한번 찾아갈게요.”

“그래요, 레이첼.”

***

영화 의 흥행 성공을 이끈 것은 영화관을 찾은 절대다수의 흑인들이었다.

여기에 미국 사회의 다양한 유색인종들도 가세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백인들조차도 의외로 이번 영화에 긍정적인 평가를 했다는 것이다.

그 이유는,

‘영화의 엔딩 장면, 다시 말해 변호사 초이가 마지막 최후 변론을 통해 배심원들의 마음을 움직여 무죄 판결을 받아내는 장면은 인종 차를 떠나 영화를 본 모든 관객에게 매우 큰 감동을 안겨주었기 때문이지.’

내가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영화 의 마지막 장면을 머릿속으로 떠올려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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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슨 살인 사건 공판 마지막 날.

최종 변론을 마친 검사 마크 루비오가 자리에 앉았다.

입가에 번져 있는 그의 미소는 방금 전 자신의 변론이 무척이나 만족스러웠고,

그 덕분에 피고인의 유죄 판결을 확신하고 있는 듯 보였다.

“변호인, 최종 변론하세요.”

판사의 말에,

초이가 자리에서 일어나 배심원들 앞에 섰다.

“존경하는 재판장님. 그리고 친애하는 배심원 여러분. 저는 오늘 무척이나 무거운 마음으로 이 자리에 섰습니다.......”

담담한 초이의 어투.

하지만 변론이 계속되어 갈수록, 점점 그의 목소리에는 설명할 수 없는 강한 힘이 느껴졌다.

“보시다시피 지금 이 법정에는 다양한 피부색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습니다. 배심원 여러분들과 같은 백인, 피고인과 방청석에 앉아 있는 흑인, 그리고 저 같은 황인들이 그것입니다. 하지만 이는 단지 차이일 뿐입니다. 이런 차이가 결코 차별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뜻이지요. 따라서 지금부터 배심원 여러분들은 저기 피고석에 앉아 있는 남자를 여러분들과 똑같은 피부, 똑같은 감정을 가진 한 사람의 인간으로 생각하고 저의 이야기를 들어주십시오.”

잠시 말을 끊은 초이가 다시 말을 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 계시는 배심원 여러분들도 아마 다들 자식이 있을 것입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소중한 자식이요. 그런데 만약 그 아이가 길을 가다 누군가에 의해 성폭행을 당했고, 여기에 반항한다는 이유로 심한 폭행까지 당했다면 부모로서 그 심정이 어떻겠습니까? 아마도 무척이나 가슴 아팠을 것입니다. 그 어떤 말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고통으로 몸부림치다 겨우 잠든 아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많은 눈물도 흘렸겠지요.”

초이가 심슨을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지금 저 자리에 앉아 있는 피고도 아마 처음에는 지금 배심원 여러분들이 느끼는 것과 똑같은 감정을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딸을 그렇게 만든 범인들이 집행유예를 받고 풀려나 조만간 다시 거리를 활보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딸이 매일 다니는 거리를, 딸이 가끔 들르는 상점을, 딸이 자주 타는 버스를, 조만간 그 범인들도 같이 걷고 들르고 타게 될 거라, 이 말입니다. 배심원 여러분들이 만약 이런 상황이라면 또한 어떤 생각이 들 것 같습니까? 그동안 믿어 왔던 법이 나를, 내 딸을 지켜주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여러분들은 과연 어떤 행동을 하게 될 것 같습니까?”

흔들리는 배심원단의 눈빛,

이를 놓치지 않고 초이가 더욱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미국 수정 헌법 제2조, 무기를 소장하고 휴대하는 국민의 권리는 침해할 수 없다! 이는 모든 미국 시민의 자위권을 보장한다는 뜻입니다. 또한 미국 속담에는 이런 말이 있죠. A man′s home is his castle(사람의 집은 그의 성이다). 즉, 집주인의 허락 없이 들어온 무단 침입자를 총으로 쏴 죽이는 것은 정당방위일 뿐, 죄가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초이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마도 이런 의문을 가지는 배심원분이 있을 것입니다. 피고가 범인들을 총으로 쏜 곳은 집이 아니지 않느냐고. 맞습니다. 피고인은 집행유예 판결을 받고 법정을 나오는 범인들을 향해 총을 쏘았지요. 하지만! 아까도 말했다시피 범인들은 법정을 나온 이후로 피고의 딸 아니, 더욱 정확하게 말하면 ‘피해자’와 같은 공간에서 살아가게 될 상황이었습니다. 어느 누가 감히 범인들이 길에서 마주친 피해자에게 위해를 가하지 않을 것이라고, 어느 누가 감히 범인들이 보복을 위해 피해자의 집을 찾아가지 않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겠습니까?”

법정 안의 공기가 무거워졌다.

방청석에서 누군가가 흐느끼는 소리도 들려왔다.

초이가 마지막으로 입을 열었다.

“저는 20년 가까이 법을 공부한 법조인입니다. 하지만 저도 저 피고석에 앉아 있는 심슨과 같은 상황이 된다면 그와 똑같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절대 장담할 수 없습니다. 아마 저도 피고와 똑같이 범인들을 향해 총을 겨누었을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우리 미국 사회가 보장하고 있는 개인의 ‘자위권’이라고 감히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부디 배심원 여러분들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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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이의 감동적인 최후 변론으로 인해 결국 배심원들은 심슨에게 무죄 판결을 내리게 되지. 물론 이는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기는 하지만, 실제로도 미국은 개인의 이런 광범위한 자위권을 보장하고 있는 나라이니까 관객들도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었을 테고.’

이로써,

내가 제작한 다섯 번째 영화 도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

총 누적 관람료 수익 9천만 달러로.

101.

영화 <터미네이터>와 의 성공에 이어,

또 하나의 희소식이 들려왔다.

그것은 바로 홍콩에서 개봉된 영화 <영웅삼색>의 흥행 소식이었다.

그동안 홍콩 영화계는 무술, 무협 영화 일색이었다.

근 10년 넘게 홍콩에서는 이런 류(類)의 영화들만 만들어졌고, 그래서 많은 관객이 식상함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기존의 홍콩 영화와는 전혀 다른 새로운 장르의 영화가 바로 <영웅삼색>이지. 주인공이 칼이 아닌 총을 들었고, 시대 배경도 고전이 아닌 현대이니까. 그 때문에 이 영화를 본 관객들도 무척이나 신선함을 느꼈을 테지.’

약 4주간의 상영 기간을 거쳐 <영웅삼색>이 벌어들인 흥행 수익은 약 4천만 홍콩 달러.

전생의 흥행 수익과 거의 비슷한 수준이었다.

‘하지만 이는 아직 시작에 불과하지. 이번 생에서는 Film Kim과 유니온 픽처스가 합심해서 영화 <영웅삼색>을 아시아 전역에 대대적으로 홍보하고, 이를 바탕으로 많은 상영관을 확보할 예정이니까, 아마도 전체 누적 수익은 그 몇 배는 더 커지게 될 것이 분명해.’

전생과 달리,

재개봉을 거치고 않고도 <영웅삼색>을 아시아 최고의 히트 영화로 만드는 것,

그것이 현재 내가 가지고 있는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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