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60화 (60/145)

# 60 < 트리플 크라운 (3) >

영화는 스토리 못지않게 캐릭터가 중요하다.

특히 이번 영화 <영웅삼색>의 경우는 더욱 그렇다.

스타일리시한 액션을 선보인 주연발과 곱상한 외모만큼이나 섬세한 감정 연기를 펼친 장국연이 아니었다면 이 영화가 그만큼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문제는 오웬삼 감독이 이번 영화에 다른 배우들을 캐스팅할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영웅삼색> 출연 이전의 주연발과 장국연은 적어도 영화계에서만큼은 무명이나 다름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현재 Film Kim으로부터 전폭적인 제작비 지원을 약속받고 있는 오웬삼 감독으로서는 다른 인기 있는 배우 섭외를 충분히 욕심낼 수 있는 상황이었다.

전생에서 그가 주연발, 장국연 두 사람을 영화에 캐스팅한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가 한정된 제작비 때문이기도 했기에.

‘안 되지, 절대 안 되지. 다른 건 몰라도 주연발과 장국연 두 사람은 반드시 이번 영화에 주연으로 출연해야 해. <영웅삼색>은 주연발과 장국연 두 사람이 살린 영화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내가 시나리오가 완성되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홍콩으로 달려온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지.’

“일단은......”

역시나,

<영웅삼색> 출연 배우를 묻는 나의 질문에 오웬삼 감독이 가장 먼저 입에 올린 인물은 주연발과 장국연이 아니었다.

“주인공 송자호 역에는 적룡 씨를 캐스팅 할 예정입니다.”

“적룡이요?”

“예. 적룡은 한때 홍콩 최고의 액션 배우로 유명세를 떨친 배우입니다. 꽤 많은 영화제에서 수상을 한 경력도 있고요.”

“뭐, 나쁘지 않은 생각이군요. 일단 영화에 인지도 있는 배우가 출연하는 것은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들일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 될 테니까요. 그럼 나머지 두 명의 주인공, 마크와 자걸 역은요?”

“글쎄요, 아직 거기까지는 정하지 못했습니다. 연출팀과 상의해서 천천히 한번 찾아보려고요.”

“그렇다면......”

내가 오웬삼 감독을 향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 기회에 새로운 인물을 한번 발굴해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새로운 인물요?”

“예. 스크린에서 늘 보아오던 배우가 아닌 새로운 인물이 등장하면 영화를 보는 관객들도 더욱 신선한 느낌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혹시......”

눈치 빠른 오웬삼 감독이 나를 향해 물었다.

“사장님께서 염두에 두고 있는 배우라도 있으신 겁니까?”

“사실 제가 요즘 들어 눈여겨보는 배우가 있기는 합니다.”

“누굽니까? 사장님께서 추천하는 배우라면 저도 한번 적극적으로 고려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일단 마크 역할에는......”

내가 영화사로 오기 전 서점에서 구입한 잡지 한 권을 꺼내 보이며 말했다.

잡지에는 자선단체에 큰돈을 기부한 배우 주연발의 기사가 환하게 웃는 그의 사진과 함께 실려 있었다.

“이 사람을 추천드리고 싶습니다.”

“이 사람은......”

“예. 주연발이라고 얼마 전 드라마 <상해탄>에 출연해서 일약 브라운관 스타로 떠오른 배우입니다. 최근 영화계 진출을 희망하고 있다는 소문도 있고요.”

“흐음.”

오웬삼 감독이 한동안 말없이,

잡지에 실린 주연발의 얼굴을 뚫어질 듯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만 봐도 그의 멋진 액션 연기가 떠오르는 나와는 달리,

오웬삼 감독은 아직 그가 어떤 연기를 펼칠지, 그의 연기가 영화에 잘 맞을지를 확신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웬삼 감독도 곧 알게 될 것이다.

주인공 마크 역에 주연발을 캐스팅한 것이 얼마나 신의 한수였는지를.

“일단 사장님의 안목을 한번 믿어보겠습니다. 듣자니 사장님은 할리우드 유명 배우를 수도 없이 많이 발굴했다고 하더군요. 이곳 홍콩에서도 인기가 자자한 베니 스콧, 윌리엄 포드, 비비 케이츠 등의 명배우들도 모두 사장님의 손으로 발탁되었다던데......”

“운이 좋았을 뿐입니다. 아, 그리고 주연발 외에도 또 한명 추천하고 싶은 배우가 있습니다.”

“그 사람은 또 누굽니까?”

“장국연이라고, 아마 감독님도 잘 아실 것입니다. 이곳 홍콩에서는 꽤 인기 있는 가수이니까요.”

“가......수요?”

“예. 그렇다고 너무 걱정하지는 마십시오. 제가 장국연 씨가 출연한 짧은 단막극을 몇 편 살펴봤는데, 연기력이 웬만한 배우 못지않게 뛰어나더라고요. 무엇보다 그의 출중한 외모는 많은 관객을 극장으로 불러들이는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내가 또 다른 잡지 하나를 오웬삼 감독에게 내밀었다.

장국연의 가장 전성기 시절,

남자가 봐도 반할 정도로 빼어난 그의 외모가 돋보이는 사진이 여러 장 실려 있는 잡지였다.

“흐음......”

장국연의 얼굴을 또 한번 뚫어질 듯 쳐다보고 있던 오웬삼 감독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상업 영화에 있어 주연 배우의 외모는 흥행의 또 다른 요소 가운데 하나임을 그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사장님의 적극적인 추천도 있고 하니, 두 사람에게 영화 시나리오를 보내 출연 의사를 한번 확인해보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두 사람이 허락한다면 오디션과 카메라 테스트도 진행해보고요.”

“아마 두 사람 모두 이번 영화의 마크와 자걸 역에 아주 잘 어울릴 것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제가 배우 보는 눈 하나는 자신 있거든요, 하하하.”

***

내가 사무실을 나가고,

오웬삼 감독이 미셸 예를 향해 말했다.

“제임스 킴 감독님, 참 대단하신 분이신 것 같아요.”

“왜요?”

“이역만리 떨어진 미국 땅에서, 힘들게 잡지까지 구해가며 홍콩 배우들에 대한 연구를 하셨으니 말이에요. 사장님이 괜히 동양인 최초의 할리우드 영화감독이 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새삼 드는군요.”

오웬삼 감독의 말에 미셸 예가 살짝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응? 저 잡지들, 방금 공항에서 사무실로 오는 길에 산 건데......’

하지만 사실을 말해줄 틈도 없이,

오웬삼 감독이 자리에서 일어나 사무실을 벗어났다.

입으로 연신 ‘대단하군, 대단해.’라는 말을 내뱉으면서.

99.

1983년 봄.

드디어 영화 <터미네이터>의 극장 상영이 시작됐다.

확보된 개봉관은 총 4천여 개.

신예 감독이 만든 영화치고는 꽤 많은 개봉관 숫자였다.

제작사인 Film Kim의 이름값과 배급사인 유니온 픽처스의 적극적인 노력 덕분이었다.

이번 영화는 감독인 제임스 카메룬 뿐만이 아니라 특수 효과를 담당한 ILM에서도 큰 기대를 걸고 있었다.

그동안 ILM이 자체 개발한 CG 기술이 총 집약된 영상이 영화의 오프닝에 삽입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제작자인 나 또한 마찬가지였고.

‘1930년대 유성 영화의 등장과 더불어 또 한 번 할리우드 영화의 전성기를 가져온 것이 바로 ‘CG 기술의 도입’이지. 영화에 CG가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하면서 종래에는 기술적 제약으로 구현할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본격적으로 영화로 만들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지.’

본격적인 할리우드 CG 영화 시대의 개막.

영화 <터미네이터>는 바로 그 분기점에 위치한 영화였던 것이다.

***

영화사 Film Kim.

회사 문을 열고 들어서던 나는 사무실 분위기가 평소와는 사뭇 다르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자리에 앉아 각자 할 일을 하고 있어야 할 직원들이 다들 상기된 얼굴로 왁자지껄 서서 떠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나는 그 이유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있었다.

오늘이 영화 <터미네이터> 개봉 3일 차.

될성싶은 영화는 이쯤 되면 슬슬 입질이 올 시기였던 것이다.

“킴!”

내 모습을 발견한 제임스 카메룬이 큰 소리로 말했다.

“대박이에요, 대박! 지금 극장가에서 <터미네이터>가 엄청난 인기를 끌고 있어요.”

“그게 정말이에요?”

“예. 어제와 오늘 극장의 모든 영화표가 전회 매진되었다고 합니다. 영화 <터미네이터>를 보려는 사람들의 긴 줄이 극장 앞에 늘어서 있다는군요.”

“오! 그거 참 잘 됐군요.”

“그래서 배급사인 유니온 픽처스에서 극장주들과 개봉관 확대와 연장 상영까지 논의하고 있다고 합니다. 아마도 이번 영화, 우리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흥행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하, 내가 뭐랬어요, 지미. 영화 <터미네이터>는 반드시 성공할 수 있을 거라고 누차 얘기했잖아요.”

“이게 다 킴 덕분입니다. 킴이 이번 영화 제작을 물심양면으로 도와줬기 때문이에요.”

“뭘요.”

내가 제임스 카메룬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그럼 이제 속편 제작도 준비해야겠군요.”

“속편요?”

“영화가 큰 성공을 거두었으니, 당연히 속편도 제작해야죠. 아직 할 이야기가 많잖아요. 기계들이 존 코너의 어머니를 살해하는 데 실패했으니, 이제 존 코너를 직접 노릴 수도 있을 테고, 또 이전보다 더욱 강력한 살인 병기를 보낼 수도 있을 테고, 안 그래요, 지미?”

“그, 그런......”

제임스 카메룬의 눈빛이 점점 빛나기 시작했다.

아마도 지금 그의 머릿속에는 SF 액션 영화사에 길이 빛나는 역작 <터미네이터2>의 대략적인 스토리가 떠오르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체이스 오브 리벤지>와 마찬가지로 영화 <터미네이터>도 속편으로 끝내야 해요, 지미. 전생의 내 기억에 따르면 제작사의 무리한 욕심으로 만들어진 3편부터는 무리한 내용 전개로 인해 전작의 명성에 흠집만 냈을 뿐이니까. 그래서 흥행에도 큰 성공을 하지 못하니까.’

Leave when you get applauded.

(박수 칠 때 떠나라.)

영화사 Film Kim의 영화 제작 원칙이기도 한 이 말은,

감독이 만들 수 있는 최고치의 작품이 나오면 더 이상 그 영화의 속편을 만들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

영화 <터미네이터>의 인기는 그야말로 폭발적이었다.

상영 기간 5주 내내 북미 박스 오피스 1위를 기록하며 엄청난 인기를 끈 것이다.

관련 소식 또한 언론과 영화 관련 잡지를 통해 연일 대서특필 되고 있었다.

- SF 액션 영화의 신기원을 연 영화 <터미네이터>!

- 미국 극장가는 지금 <터미네이터> 열풍, 그 인기 비결은?

- 상영 2주 만에 관람료 수익 1억 달러를 돌파한 영화 <터미네이터>, 적은 예산에도 불구하고 블록버스터급 영화 못지않은 흥행 성적을 올릴 것으로 기대 돼.

-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연장 상영 기간에도 영화 <터미네이터>를 보기 위해 많은 인파가 극장으로 몰려들어.

- 영화 <터미네이터>에 사용된 특수 효과, 특히 오프닝 영상 제작에 사용된 CG 기술에 할리우드 영화 관계자들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어.

평론가들의 호평도 이어졌다.

- 영화 <터미네이터>의 흥행 비결은 기계와 인간의 대결이라는 참신한 소재, 뛰어난 특수 효과 기술, 무엇보다 영화 사상 가장 뛰어난 CG 오프닝 영상이다.

- 영화 <터미네이터>에 사용된 CG 기술은 기존의 그것을 뛰어넘는 획기적인 기술이다. 향후 할리우드 영화 역사는 영화 <터미네이터> 이전과 이후로 시기로 구분될 것이 분명하다.

- <터미네이터>는 단순한 오락 영화의 수준을 넘어 인간과 기계의 공존과 미래에 대한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고 있는 영화이다.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감독인 제임스 카메룬과 제작사인 Film Kim에 경의를 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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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터미네이터>의 월드 박스 오피스 최종 수익은 총 3억 달러였다.

‘3억 달러, 이는 전생의 흥행 성적과 비교해볼 때 무려 4배나 높은 액수이지. 전생에서 이 영화는 1억 달러에 조금 못 미치는 금액의 관람료 수익을 올렸으니까.’

이번 영화를 통해 내가 새삼 깨달은 사실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똑같은 영화라도 제작자의 각색이나, 배급사의 노력 여부에 따라 흥행 성적은 얼마든지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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