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9 < 트리플 크라운 (2) >
97.
영화 <터미네이터>가 포스트 프로덕션 작업에 들어갔다.
포스트 프로덕션에서는 편집, 음향, 화면 효과 등의 작업이 이루어질 예정이었다.
사실 <터미네이터> 1편은 완성도만 놓고 볼 때, B급 수준의 영화에 불과했다.
다소 조잡해 보이는 화면 연출,
여기에 출연 배우들마저도 대부분 무명이었다.
‘기술적 뒷받침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시기에, 그것도 한정된 예산으로 만들어진 영화이니 그럴 수밖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기계와 인간의 대결이라는 당시로서는 매우 참신한 소재,
여기에 지금까지 아무도 시도하지 않았던 특수 효과 기술이 도입되었기 때문이었다.
이런 요소들이 다소 부족한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전 세계적인 히트작으로 만든 것이다.
그리고 여기에 한 가지 더,
‘이번 생에 만들어지는 영화 <터미네이터>에는 내가 만든 오프닝 영상이 새로 추가될 예정이지. 그것도 시대를 뛰어넘는 CG 기술로 만들어진 화려한 전투 영상이.’
아마도 이 오프닝 CG 영상은,
원래 영화 <터미네이터>가 가지고 있는 참신한 소재와 특수 효과 기술이라는 흥행 요소와 상승효과를 일으켜,
전생에서보다 더욱 큰 흥행 성적을 가져올 것이 분명했다.
***
영화 <터미네이터> 후반 작업이 한창 진행되고 있을 때,
또 다른 영화 가 크랭크 인 되었다.
는 미국의 가장 큰 사회 문제인 ‘인종 갈등’을 정면으로 다룬 영화였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미국 사회에서 각 인종이 처해 있는 상황들을 극명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인종적 우월감을 과시하며 유색인종을 차별하는 백인,
백인들 편에 서서 주류 세계에 편입되려고 애를 쓰는 히스패닉계 미국인,
그리고 진정으로 극복해야 할 문제가 무엇인지도 모른 채, 서로 갈등과 반목을 거듭하고 있는 흑인과 한인들.
영화 는 이런 미국 사회의 불편한 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문제는 1980년대의 미국 사회가 이 같은 문제 제기를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성숙해 있는지이긴 했지만.
“레이첼.”
의 크랭크 인을 며칠 앞두고,
내가 레이첼에게 몇 가지 사항을 당부하기로 했다.
사실 이 영화는 내가 직접 연출을 맡을 생각으로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하지만 레이첼의 만류로 나는 제작에만 참여하고, 메가폰은 레이첼이 잡기로 한 것이다.
따라서 영화 제작 전반에 관한 사항은 대부분 나의 의견에 따라 이루어지고 있었다.
“왜요, 킴?”
“이번 영화 있잖아요, 촬영에 관해서 내가 레이첼에게 한 가지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는데.”
“뭐죠?”
“이번 영화는 출연 배우들의 섬세한 감정 연기가 무엇보다 중요한 영화라는 거, 레이첼도 잘 알고 있죠?.”
“물론이죠. 그래서 저도 장면 장면마다 배우들의 세세한 감정선을 드러내는데 연출을 집중할 생각이에요. 특히 법정 공방이 이루어지는 장면은 더욱더.”
“그래서 말인데 이번 영화를 대본에 나와 있는 씬(scene) 순서에 따라 촬영을 진행하는 것이 어떨까요?”
“씬 순서에 따라요?”
“예. 그렇게 되면 배우들이 영화의 흐름을 더욱 잘 이해할 수 있게 될 테고, 무엇보다 감정선이 흐트러지지 않을 수 있을 거잖아요.”
대부분의 영화 촬영은 대본 순서대로 진행되지 않는다.
촬영 현장이나 배우 스케줄에 따라 선택적으로 촬영이 진행된다.
특히 해외 로케이션 촬영이 있는 경우 필요한 장면을 한 번에 몰아서 촬영한다.
예산 절감을 위해서이다.
문제는 이런 촬영 방식이 배우의 감정선 유지나 몰입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의 경우는 대부분 신인 배우들이 출연한다.
베테랑 배우들과는 달리 신인 배우들은 각 씬의 감정선을 연결하는 것이 쉽지 않다.
그 때문에 내가 레이첼에게 이런 제안을 한 것이었다.
“킴의 말대로 하면 저야 당연히 좋죠. 사실 그게 가장 이상적인 영화 촬영 방법이기도 하고요. 문제는 효율이나 특히 제작비 면에서 별로 좋지 않다는 것이지만.”
“어차피 이번 영화는 제작비가 그렇게 많이 들어가는 영화는 아니잖아요. 제작 기간도 촉박하게 잡을 필요도 없고요. 그러니 최대한 영화의 퀄리티를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촬영 일정을 잡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알겠어요, 킴. 킴의 말대로 할게요.”
98.
영화 <터미네이터>와 의 제작 상황을 확인한 나는,
곧바로 홍콩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홍콩 현지의 오웬삼 감독으로부터 영화 <영웅삼색>의 시나리오가 완성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들었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영웅삼색>의 시나리오가 완성되었군. 그렇다면 이제 본격적인 홍콩 느와르 시대가 개막되는 것인가.’
넓은 일등석 비행기 좌석에 깊게 몸을 파묻으며,
내가 전생에서 본 영화 <영웅삼색>의 내용을 머릿속으로 떠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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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콩 시내에 위치한 어느 바(Bar).
한 남자가 불붙은 100달러짜리 지폐로 자신의 담배에 불을 붙이고 있었다.
‘마크’라는 이름의 이 남자는 사실 홍콩의 유명한 범죄조직의 일원이었다.
“맛있냐?”
멋들어지게 담배를 피우는 마크의 곁으로 다가온 남자.
마크의 의형제이자, 같은 조직원인 ‘송자호’였다.
“맛있지, 그럼. 그나저나 결정했어, 형?”
“무슨 결정?”
“전에 나한테 얘기했잖아. 동생 자걸이가 경찰이 됐다고. 그래서 이제 더 이상 이런 일 하지 않을 거라고.”
“손 뗄 거야, 마크. 이번 일만 끝내고.”
하지만 같은 조직원의 배신으로 함정에 빠지게 된 자호.
결국 그는 경찰에 체포되고 만다.
그리고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마크는 자호의 복수를 위해 배신자들이 있는 ‘풍림각’이란 음식점으로 쳐들어간다.
의리를 중요시하는 그로서는 땅에 떨어진 강호의 도리를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기에.
- 퓨숭! 퓨숭!
준비해 온 총으로 배신자 일당을 모조리 처단한 마크.
복수를 끝낸 그가 성냥개비 하나를 입에 물고 가게를 나오려는데,
- 탕! 탕!
죽은 줄 알았던 조직원 중의 하나가 마크의 다리에 총을 쏜다.
이로 인해 절름발이 신세가 된 마크.
결국 그는 한때 자신의 부하였지만, 지금은 조직의 보스가 된 담성의 밑에서 허드렛 일을 하며 용돈이나 받아 쓰는 비참한 신세로 전락하게 된다.
그렇게 몇 년의 시간이 흐르고,
교도소에서 출소한 자호는 마크의 이런 비참한 상황을 목격하게 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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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삼색(英雄三色). 제목 그대로 이 영화는 각기 다른 개성을 가진 세 남자의 우정과 의리를 그린 이야기이지.’
하지만 영화의 주인공들은 제목처럼 영웅은 아니었다.
주인공들의 행위는 선(善)이 악(惡)을 무찌르는 것이 아니라 단지 개인적인 복수를 행하는 것일 뿐이었다.
영화의 액션 장면 또한 황당하기 짝이 없다.
일명 ‘무한탄창’이라 불리는 끝도 없이 발사되는 주인공들의 총,
빗발치는 총알을 뚫고 수십 명의 적을 사살하지만, 정작 주인공은 단 한발의 총알도 맞지 않는 모습 등,
영화는 몹시도 비현실적인 장면의 연속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지만 이것이 바로 ‘홍콩 느와르’라는 영화 장르의 특징이지. 비록 범죄자들이긴 하지만 끝까지 신의를 저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영웅이었고, 비현실적인 액션 장면 또한 전통적인 홍콩 무술 영화를 현대적인 총격전에 접목시켰기 때문에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지.’
무엇보다 <영웅삼색>은 스타일리시 액션의 끝판왕이라고 할 수 있었다.
영화의 주인공들은 그 어떤 상황에서도 소위 ‘멋’을 잃지 않는다.
특히 바바리코트에 짙은 선글라스를 눌러쓰고 성냥개비를 입에 문 주인공 ‘마크’의 모습은 당시 웬만한 남자들이 다 한 번씩 흉내를 냈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었다.
‘나 또한 마찬가지였고, 흐흐.’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이 영화가 처음 개봉될 당시에는 홍콩 이외의 다른 아시아 지역에서는 큰 인기를 끌지 못했다는 것이다.
실제 <영웅삼색>의 인기가 아시아 전역으로 확대된 것은 그로부터 몇 년 뒤, VHS로 이 영화를 본 사람들의 입소문 덕분에 극장에서 다시 재개봉 된 이후부터였다.
‘하지만 이번 생은 다르지. Film Kim과 특히 유니온 픽처스의 인프라를 이용해 아시아 영화 시장에 영화 <영웅삼색>을 대대적으로 홍보할 예정이고, 그렇게 되면 홍콩에서의 성공만큼이나 아시아 시장에서도 큰 성공을 거둘 수가 있을 거야.’
더불어 또 한 가지 달라지는 점은,
‘영화의 도입부에 나오는 영화 제작사의 이름이 홍콩 영화사 시네마 시티가 아닌 ‘Film Kim’으로 바뀐다는 것이지.’
***
“사장님.”
공항에 도착하자,
미셸 예가 어김없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대기하고 있던 차량에 탑승하기가 무섭게 내가 그녀를 향해 물었다.
“오웬삼 감독님은요?”
“지금 사무실에서 기다리고 계셔요. 영화 시나리오도 직접 가지고요.”
“사무실 들어가서 시나리오 검토하고, 별다른 문제가 없으면 곧바로 제작에 들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나머지 일은 미셸 양이 알아서 잘 좀 처리해주시고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아, 그리고......”
내가 차창 밖을 두리번거리며 말했다.
“가는 길에 서점 있으면 잠시 들렀다 갑시다.”
“서점요?”
“예,”
“갑자기 서점은 왜요?”
미셸 예의 물음에 내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럴 일이 좀 있어서요.”
99.
영화사 Film Kim - Hong Kong.
동방의 할리우드라 불리는 홍콩 영화 시장 진출을 위해 내가 현지에 세운 회사이다.
무엇보다 이 회사는 다가올 홍콩 느와르 시대를 이끌어갈 중심이 될 곳이기도 했다.
“오래간만에 뵙습니다, 감독님.”
사무실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내가 오웬삼 감독을 향해 악수를 청하며 말했다.
“드디어 영화 시나리오를 완성하셨다고요?”
“예. 원작이 있는 영화라서 큰 어려움 없이 시나리오를 쓸 수 있었습니다. 현시대에 맞게 각색 정도만 하면 충분하니까요.”
“어디 한번 봅시다.”
내가 오웬삼 감독이 내민 시나리오를 받아 들었다.
역시나,
그가 정한 영화 제목은 내가 알고 있는 그대로였다.
“제목이 <영웅삼색>이네요?”
“예. 세 남자의 우정과 의리에 관한 영화라서 그렇게 한번 정해봤는데, 괜찮을지 모르겠습니다.”
“아주 잘 어울리네요. 부제인 도 그렇고요.”
내가 잠시,
영화 <영웅삼색>의 시나리오에 집중했다.
사실 시나리오 내용을 읽어 볼 필요도 없었다.
전생에서 나는 이 <영웅삼색>이라는 영화를 이미 여러 번 시청했고, 그 덕분에 내용을 거의 외우다시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굳이 시나리오 내용을 확인하려는 이유는,
‘혹시나 시나리오의 내용이 내가 알고 있는 그것과 달라지지는 않았을까 하는 염려 때문이지. 전생에서와 달리 내가 이번 영화의 제작에 개입하는 바람에 말이야.’
다행스럽게도,
시나리오의 내용은 내가 알고 있는 것과 정확하게 일치했다.
“좋네요.”
내가 읽고 있던 시나리오를 덮으며 오웬삼 감독을 향해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곧바로 영화 제작에 들어가도 될 것 같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예. 영화 외적인 지원은 미셸 양이 알아서 할 테니, 감독님께서는 연출에만 집중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감독님.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셔서요.”
“뭘요. 재능 있는 감독님을 우리 Film Kim에 모실 수 있어서 저야말로 영광이죠. 그나저나......”
내가 오웬삼 감독을 향해 물었다.
“주연 배우들은 누구를 섭외하실 생각이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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