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8 < 트리플 크라운 (1) >
95.
영화사 Film Kim.
하루하루가 무척이나 바쁘게 돌아가고 있었다.
현재 Film Kim에서는 무려 세 편의 영화가 동시에 제작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제임스 카메룬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터미네이터>
레이첼이 연출을 맡은 영화
그리고 홍콩 현지에서 오웬삼 감독이 제작하고 있는 영화 <영웅삼색>이 바로 그것이었다.
예전에는 한 편의 영화를 제작하는 것도 버거웠다.
그런데 지금 세 편의 영화가 동시에 제작되고 있다는 것은 Film Kim의 규모나 역량이 이전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게 성장했음을 방증하는 것이었다.
“찾으셨어요, 감독님?”
나의 호출을 받은 여직원 이레나가 사장실로 들어왔다.
영화사 창립 초기부터 함께한 그녀는 그때나 지금이나 맡은 일을 무척이나 성실하게 해내고 있었다.
“다른 건 아니고......”
내가 이레나를 향해 말했다.
“내가 오늘 <터미네이터> 촬영 현장을 한번 가볼까 해서요.”
“현장을요?”
“네. 듣기로 오늘이 영화 촬영 마지막 날이라고 하던데.”
영화가 크랭크 인 된 지도 어느덧 4개월.
<터미네이터>는 이제 엔딩을 장식할 몇 개의 씬 촬영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맞아요. 아, 그래서 사장님이 직접 현장에 나가보시려고 하는군요?”
“예. 이레나가 직원들과 함께 스태프들에게 줄 간식 좀 챙겨줘요. 오래간만에 현장 방문인데 빈손으로 가기 좀 뭣하니까.”
“알겠습니다, 사장님. 바로 준비해 둘게요.”
***
이레나가 준비해 준 간식을 잔뜩 챙겨 들고,
내가 영화 <터미네이터> 촬영 현장을 방문했다.
“자, 준비 끝났으면 바로 촬영 들어갑니다. 카메라 스탠바이, 레디, 액션!”
내가 온 것도 모른 채 촬영에 열중하고 있는 제임스 카메룬.
그런 그에게 혹시라도 방해가 될까 봐, 내가 촬영장 한쪽에 가만히 서서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매번 느끼는 것이었지만,
전생에서 스크린으로만 보아오던 영화의 실제 촬영 현장을 볼 수 있다는 것은, 영화인의 한 사람으로서 무척이나 감격스러운 일이었다.
‘그것도 할리우드의 명감독 제임스 카메룬 신화(神話)의 시작이 되는 영화이자, SF 액션 영화의 시초라 불리는 영화 <터미네이터> 촬영 현장을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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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콰쾅!
대형 탱크로리가 폭발하며 사방이 불길에 휩싸였다.
이를 본 주인공 카일 리스와 사라 코너가 서로를 부둥켜안았다.
지독히도 끈질기게 자신들을 뒤쫓아오던 살인 기계 T-800을 드디어 해치웠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그런데.
- 스르르륵.
불 속에서 무언가가 몸을 일으켰다.
온몸이 기계 장치로 이루어진 로봇이었다.
원래 T-800은 인간과 동일한 외형을 갖추고 있었다.
기계의 겉면에 사람의 피부를 이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금 전의 폭발로 몸을 감싸고 있던 피부가 불에 녹아내리는 바람에 온전한 로봇의 형태가 드러나게 된 것이었다.
“Oh, my god!”
T-800을 발견한 카일 리스가 사라 코너를 일으키며 소리쳤다.
“얼른 달아나요. 놈이 아직 살아 있어요!”
황급히 달아나는 두 사람의 뒤로,
- 절그럭. 절그럭.
T-800의 강철 다리가 아스팔트 바닥에 끌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프로그래밍 된 로봇답게 T-800의 머릿속에는 오직 ‘사라 코너를 살해해 인간 총사령관 존 코너의 탄생을 막아야 한다.’는 명령 외에는 아무것도 들어 있지 않았다.
“덤벼! 이 괴물아!”
카일 리스가 T-800을 향해 쇠막대기를 휘둘렀다.
하지만.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그는 인간이고, T-800은 온몸이 강철로 이루어진 기계였기 때문이다.
T-800의 완력에 밀려 결국 큰 상처를 입고 바닥에 쓰러진 카일 리스.
그런데.
“넌 이제 끝이다! 이 망할 살인 기계 놈아!”
카일 리스가 T-800의 몸에 폭탄을 꽂아 넣고는 황급히 자리를 피했다.
당황한 T-800이 황급히 손을 뻗어 폭탄을 빼내려는 순간,
- 쾅! 콰쾅!
커다란 폭발음과 함께 T-800의 몸이 산산조각나 사방에 흩뿌려졌다.
하지만.
이것 또한 T-800의 완전한 최후는 아니었다.
하반신이 날아간 T-800이 손으로 바닥을 기어가며 주인공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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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컷! 오케이, 좋았어요.”
메가폰을 타고 제임스 카메룬의 오케이 사인이 흘러나오자,
스태프들이 우루루 현장 수습에 나섰다.
그 틈을 타서 내가 제임스 카메룬의 곁으로 다가갔다.
“고생이 많네요, 지미.”
“아, 킴. 미리 얘기도 하지 않고 갑자기 현장에는 어쩐 일이에요?”
“오늘이 영화 <터미네이터> 마지막 촬영날이잖아요. 그러니 제작자인 내가 안 와볼 수 없죠.”
사실 이번 영화의 연출은 전적으로 제임스 카메룬에게 위임을 해두고 있었다.
하지만 중간중간 나도 촬영장을 직접 찾아가서 진행 상황을 점검하곤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그에게 더 나은 촬영 방향에 관한 조언을 해주었다.
영화적 재능을 둘째치더라도, 촬영기법에 관한 지식이나 현장 경험은 제임스 카메룬보다 내가 훨씬 뛰어났기 때문에.
“그나저나......”
내가 스태프가 현장에서 수습해온 T-800의 팔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보면 볼수록 정교하게 잘 만들었다는 생각이 드네요, 이 로봇.”
“이거 만들려고 제가 업체를 몇 번이나 찾아갔는지 모릅니다. 그 덕분에 만족할 만한 엔딩 씬이 나오기는 했지만요, 하하.”
영화에서 T-800은 인간과 동일한 외형을 갖춘 로봇이었다.
그 때문에 이전까지의 T-800은 아놀드 슈워제너거가 직접 연기를 했다.
영화 중간중간 특수 분장을 통해 신체 일부에서 기계 장치들을 보여줌으로써 관객들에게 그가 인간이 아닌 로봇이라는 점을 인식시켜 줄 뿐이었다.
하지만 마지막 엔딩 장면에서는 온전한 T-800의 모습이 드러난다.
‘바로 이 장면이 제임스 카메룬이 꿈에서 보았다는 바로 그 장면이지. 불 속에서 기계 인간이 등장하는 모습 말이야.’
제임스 카메룬은 이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무려 백만 달러에 가까운 거금을 들여 실물 로봇을 제작했다.
하지만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로봇의 움직임까지는 완벽하게 재현할 수 없었다.
그래서 T-800이 움직이는 장면은 스톱 모션 기술을 이용해 미리 촬영을 해둔 상태였다.
1980년대는 아직 CG 기술이 제대로 발전되지 못한 시대이고, 이에 영화 <터미네이터> 1편은 기존의 아날로그 특수 시각 효과를 최대한 활용해 영화를 촬영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동안 고생 많았어요, 지미.”
“고생은요. 저에게는 너무 즐거운 하루하루였습니다. 빨리 촬영장에 나가고 싶어서 밤잠을 설칠 정도로요.”
그렇겠지.
영화 감독에게 있어 소위 ‘입봉’이라 불리는 첫 작품이 어떤 의미인지는 전생의 경험을 통해 나도 충분히 잘 알고 있으니까.
“그나저나 이제 후반 작업만 끝내면 곧바로 극장에서 상영을 시작할 수 있겠군요.”
“예. 근데, 킴.”
제임스 카메룬이 다소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번 영화, 관객들이 좋아할까요?”
“그야 당연하죠. 지금까지 기계와 인간의 대결을 그린 영화는 한 번도 만들어진 적이 없었으니까요. 그러니 이번 영화는 관객들에게 신선한 충격이 될 것이 분명합니다.”
“킴이 그렇게 말해 주니 조금 안심이 되네요. 킴은 할리우드 최고의 흥행 감독이니까요.”
“뭘요. 아, 그리고 방금 ILM에서 연락이 왔었습니다. 이번 영화 오프닝에 들어갈 CG가 어느 정도 완성이 되었다고요. 말 나온 김에 같이 한번 보러 갈래요?”
“그래요, 킴. 현장 정리되는 대로 곧바로 한번 가보죠.”
96.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ILM.
제임스 카메룬과 내가 사무실로 들어서자, 벤자민 파웰이 우리를 맞아주었다.
벤자민 파웰은 현재 영화 <터미네이터> 오프닝에 들어갈 5분 짜리 CG 영상 제작의 책임을 맡고 있었다.
“어서 오세요, 킴.”
벤자민 파웰이 내 옆에 서 있는 제임스 카메룬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아, 이분이 이번 영화의 연출을 맡고 계시는 제임스 카메룬 감독님인가 보군요.”
“반갑습니다, 제임스 카메룬입니다.”
두 사람이 인사를 나누기가 무섭게 내가 벤자민 파웰을 향해 말했다.
“듣자니 제가 의뢰한 CG 영상 제작이 완료되었다고 하더군요?”
“예. 한번 살펴보시고, 따로 수정해야 할 부분이 있으면 말씀해주십시오.”
“알겠습니다.”
벤자민 파웰의 안내에 따라 제임스 카메룬과 내가 별도로 마련된 영사실로 이동했다.
컴퓨터 모니터를 통해 확인할 수도 있었지만, 보다 자세한 검증을 위해서는 실제 극장과 유사한 환경에서 확인하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영화용 컴퓨터 그래픽. 이는 앞으로 할리우드 영화의 판도를 바꿀 핵심 기술이라고 할 수 있어. 그동안 내가 많은 자금을 투자해 관련 기술을 개발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지.’
그리고.
이 기술의 첫 번째 시험 무대가 될 곳이 바로 영화 <터미네이터>의 오프닝 장면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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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펑! 퍼펑!
- 쾅! 콰쾅!
하늘에서 떨어지는 수백, 수천 발의 폭탄과 미사일.
덕분에 주변 지역이 완전히 초토화되고 있었다.
그리고 잠시 후,
- 절그럭! 절그럭!
무너진 건물 잔해 위로 모습을 드러낸 것은 엄청난 숫자의 ‘로봇 군단’이었다.
외형적으로 해골 병사 ‘스켈레톤’의 연상케하는 이 로봇들은 하이브 마인드 인공지능 슈퍼컴퓨터인 일명 ‘스카이넷’의 지시에 따라 지구상의 모든 인류를 섬멸시키는 임무를 맡고 있었다.
- 퓨숭! 퓨숭!
- 커헉!
- 으악!
로봇 군단에 의해 처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
그런데,
갑자기 한 무리의 군인들이 등장했다.
완전 무장을 한 이들은 일명 ‘저항군’이라 불리는 세력으로 총사령관인 존 코너의 지휘하에 기계와의 전쟁에서 인류를 지켜낼 최후의 보루였다.
그렇게 치열한 전투 끝에,
로봇 군단은 저항군에 의해 완전히 섬멸된다.
바닥에 산더미처럼 쌓인 로봇 잔해들을 딛고 올라선 존 코너가 살아 남은 저항군들을 향해 소리쳤다.
“We never give up! We will fight to the end!”
(우린 절대 지지 않는다. 끝까지 싸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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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때요, 킴?”
영상 시연이 모두 끝나고,
벤자민 파웰이 나를 향해 물었다.
ILM의 기술력이 총집약된 5분짜리 CG 영상.
물론 전생에서 이보다 더 뛰어난 퀄리티의 CG 영상을 셀 수 없이 많이 보아온 나의 시각에서는 만족할 만한 수준의 영상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1980년대.
CG 기술이 영화에 사용된 지 불과 10년도 채 되지 않은 시기이다.
이런 시기에 비록 5분 정도밖에 되지는 않지만, 그래도 오롯이 CG로만 만들어진 전투 영상이라니.
무엇보다 실사로는 도저히 만들어낼 수 없는 수백 명의 로봇 군단이 등장해 전투를 벌이는 장면,
게다가 그 로봇 하나하나가 제각기 생동감 있게 움직이는 장면은 그야말로 획기적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 엄청나네요......”
차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는 제임스 카메룬의 모습이 이를 방증하고 있었고.
‘역시나 이 시대 사람들에게는 이 정도의 CG 영상도 확실히 충격적인가 보군. 하긴, 처음 CG를 도입한 블록버스터 영화들이 개봉되었을 때 나도 엄청난 충격을 받기는 했었지.’
“전체적인 화면 구성은 이 정도면 충분할 것 같습니다. 다만 배경이나 화면 효과 부분에 있어서 조금만 더 디테일을 살리면 지금보다 훨씬 완성도 있는 화면이 완성될 것 같군요.”
내가 벤자민 파웰에게 몇 가지 보완할 사항들을 이야기해 주었다.
만약,
남은 포스트 프로덕션 기간 동안 내가 요청한 사항들이 모두 반영되어 영상 수정이 이루어진다면,
‘아마도 영화 <터미네이터>의 오프닝 장면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 될 테지. CG 기술만으로 만들어진 최초의 영상이 될 테니까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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