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53화 (53/145)

# 53 < <터미네이터>, 그 전설의 시작 (1) >

할리우드 영화 산업의 가장 큰 특징은 관련 산업의 수직적 통합에 있었다.

쉽게 말해 거대 규모의 영화사가 영화의 제작, 배급, 상영에 이르는 전 과정을 통할하는 것이다.

규모의 경제.

이것이 오늘날 할리우드의 ‘빅식스(Big six)’ 영화사가 세계 영화 산업을 지배하는 원동력이었다.

내가 유니온 픽처스와의 합병을 추진하려는 목적도 바로 이 때문이었고.

“유니온 픽처스와 Film Kim의 합병이라......”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레이첼이 나를 향해 말했다.

“차라리, 킴. IPO(기업 공개)를 생각해보는 것이 어때요? 회사를 규모를 키우고 싶다면 차라리 그 방법이 더 나을 듯한데.”

“그렇게 되면 문제가 하나 생깁니다.”

“문제요?”

“예. 앞으로 제가 만들고자 하는 영화를 제대로 만들 수가 없을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죠. 지금 Film Kim은 제가 회사 지분의 100%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영화 제작이나 투자 문제도 전적으로 제가 결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회사에 외부 자금이 유입되면 주주들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될 테고, 그렇게 되면 제 의지대로 영화를 만들거나 투자할 수 없을 테니까요. 사람마다 보는 눈과 판단 기준이 각기 다르기 때문이죠.”

다른 건 몰라도,

회사의 의결권은 전적으로 내가 가지고 있어야 했다.

왜냐하면 앞으로 할리우드 영화계, 아니 세계 영화 산업이 어떻게 변해갈지 나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었다.

내가 대규모 자금을 끌어들일 수 있는 기업 공개를 마다하고 굳이 합병이나 LA 한인들의 투자를 통해 영화를 제작하려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킴의 말을 듣고 보니, 충분히 그럴 수도 있을 것 같네요. 하지만 회사 합병 문제는 지금 바로 답을 드릴 수가 없을 것 같네요. 조금 복잡한 문제가 얽혀 있어서요.”

“복잡한 문제요?”

“네. 유니온 픽처스는 저보다 우리 아버지가 더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는 회사라서요.”

“알겠습니다. 그럼 회사 합병 문제는 좀 더 천천히 생각해보는 걸로 하죠.”

“그래요, 킴.”

84.

영화사 Film Kim.

내가 사무실로 들어서기가 무섭게 제임스 카메룬이 말을 걸어왔다.

“감독님.”

“아, 지미.”

“감독님 혹시 시간 되시면 잠깐 저랑 이야기 좀 나눌 수 있을까요?”

내가 제임스 카메룬을 향해 무슨 일 때문이냐고 물으려던 찰라,

그의 손에 들린 시나리오 책자 한 권이 내 눈에 들어왔다.

순간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

‘<터미네이터>! 드디어 제임스 카메룬 그가 영화 <터미네이터>의 시나리오를 완성한 것이 분명해.’

속마음을 감추며 내가 제임스 카메룬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물론이죠. 지미가 원하면 없는 시간도 만들어야죠, 하하.”

“감사합니다, 감독님.”

사장실로 자리를 옮긴 내가 제임스 카메룬을 향해 다시 물었다.

“말해봐요, 지미. 할 말이 뭔지.”

“제가 전에 감독님께 말씀드린 시나리오 있지 않습니까?”

“기계와 인간의 대결을 그린 영화 말입니까?”

“예. 제가 드디어 그 영화 시나리오를 완성했습니다. 그래서 감독님께 한번 검토를 부탁드리려고요.”

내가 제임스 카메룬이 내민 시나리오를 받아 들었다.

역시나.

그가 내민 시나리오는 SF 액션 영화의 시초가 된 영화 <터미네이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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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일명 ‘스카이넷’이라 불리는 인공지능 전략 방어 시스템이 인류를 핵전쟁의 비극으로 몰아넣었다.

그 결과 30억의 인류가 잿더미 속으로 사라진다.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은 인간들은 사령관 존 코너를 중심으로 반(反)기계 연합을 구성하여, 본격적인 기계와의 전쟁을 시작하게 된다.

그렇게 30년의 세월이 흐른 2039년.

드디어 인류는 기계와의 전쟁에서 승리를 눈앞에 두게 된다.

하지만.

스카이넷은 타임머신에 기계 인간인 ‘터미네이너’를 태워 1984년으로 보낸다.

그 목적은 인간 총사령관인 존 코너의 어머니 사라 코너를 살해해 그의 탄생 자체를 막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를 알게 된 인간도 ‘카일 리스’라는 군인을 과거로 보내 사라 코너를 보호하게 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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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스 카메룬의 시나리오를 읽으며,

내가 속으로 못내 웃음을 감추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2021년에서 전생한 나의 시각에서 볼 때, 제임스 카메룬이 생각하는 미래의 모습이 너무나도 터무니없었기 때문이다.

‘1997년에 이 정도의 지능을 가진 인공지능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상상하다니 우습기 짝이 없군. 내가 살던 2021년에 이르러서도 아직 제대로 된 인공지능 자율주행 자동차조차도 만들어지지 못했는데 말이야.’

“저기, 감독님......”

제임스 카메룬이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제가 쓴 시나리오가 그렇게나 유치한가요?”

“예? 그게 무슨......”

“감독님이 시나리오를 보면서 자꾸 피식 웃으셔서요. 이 영화 장르가 코미디도 아닌데.”

“하하. 그래서 웃은 것이 아닙니다. 난 그저 지미가 쓴 이 시나리오가 너무 마음에 들어서, 그래서 나도 모르게 절로 웃음이 나온 것입니다.”

“그게 정말이십니까?”

제임스 카메룬이 뛸 듯이 기뻐하며 말했다.

“정말로 감독님께서는 제가 쓴 영화 시나리오가 마음에 드시는 겁니까?”

“그렇습니다. 지금 당장 제작에 들어가도 전혀 손색이 없을 정도로요.”

“감사합니다, 감독님. 정말 감사합니다.”

제임스 카메룬이 연신 나를 향해 감사를 표했다.

사실,

제임스 카메룬이 쓴 영화 <터미네이터>의 시나리오는 영화 제작사로부터 그리 환대를 받지 못했다.

대다수 영화사가 이 영화의 투자를 거절한 것이다.

우여곡절 끝에 그는 영화 제작비 지원과 감독직을 주는 조건으로 단돈 1달러에 이 영화 시나리오를 영화사에 넘기게 된다.

‘하지만 이번 생은 다르지. 나는 그가 가진 실력에 걸맞는 제대로 된 대우를 해줄 생각이니까.’

“지미.”

“예, 감독님.”

“지미가 생각하는 이번 영화의 제작비는 얼마가 될 것 같습니까?”

“그게......”

살짝 망설이던 제임스 카메룬이 다시 말을 이었다.

“적어도 600만 달러는 필요할 것 같습니다.”

“600만 달러요?”

“예. 이번 영화에 여러 가지 특수 효과들이 많이 들어가야 해서요. 게다가......”

제임스 카메룬이 주저리주저리 변명 아닌 변명을 늘어놓았다.

그의 필모나 명성으로 볼 때,

600만 달러라는 제작비는 확실히 적은 액수는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그 때문에 그는 내가 혹시라도 제작비가 너무 많다고 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을 내심 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600만 달러가 아니라 6,000만 달러도 좋아. 제임스 카메룬 당신이 만드는 영화라면.’

“지미.”

“예, 감독님.”

“제작비는 얼마가 들어도 상관없습니다. 이 시나리오의 내용을 그대로 영상으로 구현해낼 수 있다면.”

“그게 정말입니까, 감독님?”

“예. 다만 제가 염려스러운 것은 아직 ILM의 CG 기술력이 완숙되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일단 제가 ILM을 먼저 들러봐야 할 것 같습니다. 이번 영화에 어느 정도 선까지 CG 기술을 선보일 수 있을지 확인을 해봐야 해서요.”

“알겠습니다, 감독님.”

85.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ILM(인더스트리얼 라이트 앤 매직).

내가 사무실로 들어서자, 조지 루이스가 반가운 얼굴로 나를 맞았다.

“여, 킴.”

나를 발견한 조지 루이스가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여긴 웬일이야? 홍콩은 벌써 다녀온 거야?”

“예, 조지.”

“갔던 일은 잘됐고?”

“예. 괜찮은 영화감독을 한 명 섭외해 영화 제작을 의뢰해놓고 오는 길이에요.”

“킴은? 킴은 그 영화에 참여하지 않고?”

“굳이 제가 참여하지 않아도 충분히 좋은 영화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는 감독이라서요. 그래서 이번 영화는 전적으로 그에게 맡기기로 했어요.”

“홍콩 쪽은 투자만 할 생각이라더니, 정말로 그런가 보군.”

“예. 그보다 지금 시간 괜찮으세요?”

“왜? 무슨 일 있어?”

“제가 이번에 새로 영화 제작에 들어갈 예정이라서요. 그와 관련해서 조지와 상의할 일이 좀 있어서요.”

“읔! <체이스 오브 리벤지2> 상영 끝난 지 얼마 됐다고 또다시 영화 제작이야?”

“좋은 시나리오가 하나 들어왔거든요. 그래서 곧바로 준비를 좀 하려고요.”

새 영화 제작이라는 말에 조지 루이스가 눈빛을 반짝이며 물었다.

“어떤 영화인데?”

“<터미네이터>라는 제목의 SF 액션 영화인데요......”

내가 영화 시나리오의 전반적인 내용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한참 동안 내 설명을 듣고 있던 조지 루이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흠. 스토리텔링은 나쁘지 않군. 소재 또한 꽤 신선하고 말이야.”

“그래서 제가 이번 영화에 제작비를 대려고요.”

“어디서 찾았어? 제임스 카메룬인지 뭔지 하는 그런 인재를?”

“지난 <체이스 오브 리벤지2> 촬영 때 조감독을 맡았던 사람인데, 영화적 재능이나 감각이 매우 뛰어난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 제가 데리고 있으려고요.”

“그렇군. 근데 나한테 상의하려는 일이란 게 뭐야?”

“다른 게 아니라 이번 영화의 장르가 SF인 만큼 특수 효과가 상당히 많이 들어가야 할 것 같아서요. 게다가 가능하면 현재 ILM에서 개발 중인 CG 기술도 시범 삼아 한번 사용을 해보려고요.”

ILM은 원래 영화 특수 시각 효과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였다.

그런데 최근에는 CG 개발 쪽에도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이에 ILM 내에는 관련 소프트웨어와 하드웨어 개발을 담당하는 컴퓨터 전문 부서가 만들어졌고, 그 덕분에 관련 기술 또한 상당한 수준에 올라 있었다.

물론 CG 기술이 본격적으로 영화에 도입되던 시대에 비견할 바는 아니었지만.

“흠. 좋은 생각이긴 한데......”

조지 루이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그러기에는 제작비나 제작 기간의 측면에서 상당히 부담이 될 것 같아. 킴도 알잖아? 일전에 영화 <레이더스>에 사용된 겨우 몇 초짜리 CG를 만들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많은 시간과 돈을 투자했는지.”

“그래도 그때에 비해서는 ILM의 CG 기술이 상당히 발전했잖아요? 조지와 내가 엄청난 자금을 쏟아부은 덕분에.”

“아직 갈 길이 멀어. 그래도 꼭 써야겠다면 부분적으로만 사용하는 게 좋아. 전체적인 특수 효과는 기존의 아날로그 방식을 사용하되, 꼭 필요한 부분에만 한정해서 CG를 쓰라는 뜻이야. 안 그러면 제작비나 기간이 무한정으로 소요될 수 있으니까. 그래도 희망적인 것은......”

조지 루이스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앞으로 4, 5년 정도만 더 지나면 영화의 상당 장면을 CG로 처리할 수 있을 정도라는 거지. 그동안 킴과 내가 많은 돈을 쏟아부은 덕분에 우리 ILM의 CG 제작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발전하고 있으니까 말이야.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계속 많은 자금을 투자해야겠지만.”

“그 점은 걱정하지 마세요, 조지. 필요한 자금은 앞으로 영화 제작을 통해 얼마든지 벌면 되니까요.”

“읔! 이러다 ILM을 통째로 킴에게 넘겨야 하는 경우가 생길지도 모르겠군. 갈수록 킴의 회사 지분이 점점 늘어나고 있으니까.”

“그래도 최소한 회사에서 쫓아내지는 않을게요. 그동안의 정을 생각해서.”

“뭐?”

“하하, 농담이에요, 농담.”

내가 다시 말을 이었다.

“아 참, 조지. 요즘 시간 좀 어때요? 보니까 여유가 좀 생긴 듯하던데.”

“<스페이스 워즈> 속편 제작을 끝내고 조금 시간적 여유가 생기기는 했지. 근데 왜?”

“혹시 시간 되면 여행이나 같이 갔으면 해서요. 아멜리아도 같이 동반으로.”

“여행?”

“예. 조지나 저나 제대로 휴식을 가져본 적이 없잖아요. 그래서 어디 가서 휴양이나 좀 하고 오자고요. 새로운 영화 구상도 같이할 겸요.”

“흠. 여행이라......”

팔짱을 낀 채로 잠시 생각에 잠겨있는 조지 루이스.

그도 그럴 것이,

워커 홀릭이자, 몹시도 급한 성격의 소유자인 그는 긴 휴식이나 여행은 지금까지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소울 프렌드인 나의 제안이니만큼, 그도 고민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게다가 새로운 영화 구상이라는 괜찮은 미끼도 있으니까.

“나야, 뭐 그렇다 쳐도, 킴이 시간이 되겠어? 새 영화 제작에 들어갈 예정이라면서?”

“그래봐야 며칠인데요, 뭐. 그 정도 시간은 충분히 뺄 수 있어요.”

“알았어. 그럼 일단 아멜리아와 상의해보고 다시 이야기하도록 하지.”

“그래요, 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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