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 < 홍콩 상륙 작전 (3) >
삼합회.
정부 관료, 경찰과 결탁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홍콩의 대표적인 폭력조직이다.
물론 1980년대 들어 반부패수사부인 ‘염정공서(廉政公署)’의 활약으로 삼합회의 영향력이 상당히 줄어들기는 했다.
하지만 홍콩 사회 곳곳에는 여전히 그들의 영향력이 미치고 있었는데, 그 대표적인 곳이 바로 영화계였다.
홍콩 영화는 막대한 이권이 걸려 있는 홍콩의 주요 산업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이다.
‘동방의 할리우드라 불릴 정도로 전성기를 달렸던 홍콩 영화. 이 홍콩 영화의 몰락을 가져온 주범이 바로 삼합회였지. 이들은 막대한 자본과 더불어 폭행, 협박 등의 물리력으로 홍콩 영화 시장을 어지럽혔고, 이는 홍콩 영화의 쇠퇴를 가져오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지. 결국 1990년대 들어 홍콩 영화는 완전히 몰락했고, 이후에도 영원히 이전의 영광을 되찾지 못하게 되었지.’
홍콩 영화계에서 삼합회의 악행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1990년에 있었던 ‘유가령 납치사건’이었다.
유가령은 당대 최고의 여배우 가운데 하나였다.
하지만 삼합회가 제안한 영화의 출연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무려 13시간 동안 납치 감금되었고, 이 과정에서 성폭행과 누드 사진까지 유출되고 말았다.
지금 성륭이 나에게 삼합회에 관한 이야기를 꺼낸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만약 Film Kim이 홍콩 영화 산업에 본격적으로 진출하게 되면 삼합회와의 마찰은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기 때문에.
‘물론 나는 그에 대한 대비책도 가지고 있지. 제아무리 삼합회라 할지라도 미국 시민권자이자, 잘 나가는 할리우드 영화감독을 어떻게 할 수는 없을 테니까.’
게다가 내가 홍콩에 진출한 이유도 삼합회에 의한 홍콩 영화 산업의 몰락을 막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그 목적은,
‘향후 10년간 이어질 홍콩 영화의 전성기 동안 얻게 될 경제적인 이익 때문이지. 이 기간에 얻을 수 있는 수익을 충분히 챙긴 후, 몰락 직전에 모든 사업을 접고 홍콩을 뜨는 것, 그게 바로 내가 홍콩 영화 산업에 진출한 실질적인 목적이지. 어차피 1997년 홍콩의 중국 반환과 그에 따른 홍콩 영화 산업의 몰락은 예정된 사실이니까.’
생각을 마친 내가 성륭을 향해 물었다.
“삼합회라면 홍콩의 유명한 폭력조직 아닙니까?”
“맞습니다. 현재 홍콩 영화인치고 이 삼합회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왜 저에게 삼합회 이야기를 하시는 거죠?”
“제가 킴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이 때문이라서 그렇습니다. 솔직히 킴의 제안, 저로서는 몹시도 구미가 당기는 제안입니다. 할리우드에서 이미 큰 성공을 거둔 Film Kim의 도움을 받으면 제가 오래전부터 꿈꾸고 있던 할리우드 진출을 충분히 이루어낼 수 있을 것이니까요. 하지만 내가 만약 킴과 손을 잡으면 분명 삼합회에서 저를 그냥 두지 않을 것입니다. 킴은 미국 시민권을 가진 사람이니, 제아무리 극악무도한 삼합회라 할지라도 함부로 손을 댈 수 없겠지만 홍콩 사람인 저는 다릅니다. 삼합회가 저를 해하려고 들 경우, 그 누구도 저의 방패막이 되어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성륭의 말은 삼합회가 두려워서 저의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입니까?”
“......솔직히 그렇습니다.”
다소 씁쓸한 기분이 드는 그의 답변이었다.
내가 본 영화에서 성륭은 불의의 맞서 싸우는 불세출의 영웅이자, 죽음조차도 두려워하지 않는 인물이었다.
그런데.
‘역시 영화는 영화일 뿐이군. 영화에서 그려지는 이미지와 달리 실제 성륭이라는 인물은 지극히 현실과 타협적인 인물이군.’
그러고 보니,
한 가지 떠오르는 기억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전생에서 성륭이 보였던 여러 가지 행적들이었다.
‘1980년대와 90년대 아시아 최고 스타였던 성륭. 하지만 그는 2000년대 들어 홍콩 우산 혁명을 폄훼하고, 중국 공산당의 열렬한 지지자로 나서면서 홍콩인들로부터 배신의 아이콘, 10대 인간쓰레기로 선정되는 등 인간적으로 큰 비난을 받기도 했지.’
영화에서 그려지는 배우의 이미지와 현실에서 보여주는 실제 모습과의 괴리(乖離).
오랜 영화감독의 경험을 가진 나에게 이는 물론 드문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성륭의 태도는 ‘그래도 성륭인데......’하는 나의 기대를 여지없이 무너뜨리기에 충분했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였군. 그렇다면 더이상 그에게 미련을 가질 필요는 없지.’
결심을 굳힌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뭐, 성륭 씨의 생각이 그렇다면 저도 강요하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원하는 답변을 드리지 못해 죄송하군요. 그래도 아시아인 최초로 할리우드에서 성공한 감독님을 만나 뵙게 돼서 저로서는 무척 영광이었습니다.”
“뭘요. 앞으로도 좋은 작품 많이 만드시길 바랍니다, 성륭 씨.”
***
황금보와 성륭과의 만남 이후에도,
나는 남은 일정을 쪼개가며 많은 홍콩의 영화배우와 감독들을 만났다.
이들은 모두 내가 살던 전생에서 이름 꽤나 날린 영화인들이었다.
하지만 별다른 성과는 없었다.
대부분 앞서 만난 성륭과 같은 반응을 보일 뿐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 그나마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던 황금보조차도 결국에는 성륭과 유사한 늬앙스의 부정적인 답변을 보내왔다.
홍콩 영화계는 아직 폭력조직인 삼합회와 그들의 지원을 받는 골든 하베스트사의 영향이 무척이나 강했기 때문에.
‘할 수 없군. 가능하면 홍콩 영화의 본류인 무술과 무협 쪽까지도 진출할 생각을 했었는데, 이 분야는 포기해야 할 듯 같군. 그냥 처음 계획대로 <영웅삼색>을 중심으로 하는 홍콩 느와르 영화 시장을 장악하는데 만족하는 수밖에.’
83.
예정된 일주일간의 홍콩 일정을 모두 마치고,
나는 다시 할리우드로 돌아왔다.
내가 자리를 비운 동안에도,
할리우드는 여전히 내가 만든 영화 <체이스 오브 리벤지2> 이야기로 시끌벅적했다.
그도 그럴 것이,
‘5억 달러! <체이스 오브 리벤지2>의 총 수익이 무려 5억 달러를 돌파했기 때문이지.’
이는 역대 영화 수익 2위에 달하는 엄청난 기록이었다.
그 때문에 관련 소식이 언론과 영화 잡지를 통해 연일 대서특필 되고 있었다.
- 월드 박스 오피스 5억 달러의 엄청난 수익을 달성한 영화 <체이스 오브 리벤지2>
- 8억 달러의 흥행 수익을 기록한 <스페이스 워즈>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흥행 수익을 올린 <체이스 오브 리벤지2>
- 전작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라는 ‘소포모어 징크스’를 보란 듯이 깬 영화 <체이스 오브 리벤지2>, 전편보다 5배 높은 무려 5억 달러의 흥행 수익을 기록해.
평론가들의 호평도 쏟아졌다.
- 이번 속편을 통해 <체이스 오브 리벤지>는 자동차 추격 액션 장르의 선구임을 명확하게 증명했다. 향후 모든 자동차 액션 영화는 이 영화의 영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 <체이스 오브 리벤지2>는 영화 기술적 측면에서도 진일보한 영화이다. 이번 영화의 촬영에 사용된 기법과 도구들은 할리우드 영화의 발전을 몇십 년 넘게 앞당길 수 있을 것이다.
- <체이스 오브 리벤지2>가 위대한 점은 단순히 기술적인 측면에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출연 배우들의 연기, 특히 주연과 조연을 가리지 않고 모든 배우가 뛰어난 연기를 선보였다는 점에서 제작진의 캐스팅 안목이 얼마나 뛰어난가를 알 수 있다.
- 영화 <체이스 오브 리벤지2>는 시나리오, 촬영, 배우라는 영화의 3요소를 완벽하게 갖춘 영화이다. 이 때문에 오히려 5억 달러라는 흥행 수입이 적다는 생각이 들 정도이다.
.
.
.
영화사 Film Kim 사무실.
내가 레이첼 도나 유니온 픽처스 사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녀는 이번 영화의 투자자이자, 촬영팀의 일원으로 활약하기도 했다.
“5억 달러라니, 도무지 믿기 지가 않는군요.”
“그런가요?”
“네. 제가 볼 때 당분간 이 기록은 절대 깨지지 않을 것이 분명해요. 특히 요즘처럼 경제 위기가 심한 시기에는 말이죠.”
레이첼의 말에 내가 속으로 빙긋 웃음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는 이 5억 달러라는 흥행 기록이 불과 몇 달 만에 깨지고 말 것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만간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제작한 영화 의 상영이 예정되어 있으니까.’
내 기억에 따르면,
전생에서 영화 는 무려 6억 달러에 가까운 흥행 수익을 올리게 된다.
그것도 기껏해야 천만 달러도 되지 않는 제작비로 만든 영화가 말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조만간 그도 우리 Film Kim과 함께 영화를 제작하게 될 거야. 왜냐하면 그가 앞으로 만들 영화는 할리우드의 독보적인 CG 전문 회사인 ILM의 기술적 도움 없이는 절대 만들어질 수 없을 테니까.’
속마음을 감추며 내가 레이첼에게 말했다.
“5억 달러가 큰돈이긴 하지만, 앞으로 세계 영화 산업의 발전 가능성을 놓고 보면 그리 큰 수익은 아닙니다.”
“그럼 킴은 앞으로 이보다 더 많은 수익을 올리는 영화가 계속 나올 것이라고 보시는 건가요?”
“물론이죠. 영화는 사람들이 머릿속으로만 그려오던 판타지를 실현해 주는 중요한 도구입니다. 그것도 단돈 몇 달러에 말이죠. 그 때문에 영화관을 찾는 관객들의 수는 지금보다 늘었으면 늘었지, 절대 줄어들지는 않을 것입니다. 물론 그러기 위해서는 관객들의 판타지를 충족시켜줄 수 있는 좋은 영화들이 많이 만들어져야겠지만요.”
전생에서,
내가 영화감독으로서 실패한 원인도 이 때문이었다.
나는 관객들의 판타지가 아닌, 나의 판타지를 영화 속에서 실현하려 했기 때문에.
“그나저나......”
내가 레이첼을 향해 웃으며 말했다.
“이번 영화로 유니온 픽처스도 그렇고, Film Kim도 그렇고, 무려 8천만 달러에 가까운 돈을 벌게 되었군요.”
“이게 다 킴 덕분이에요. 신생 영화사에 불과하던 유니온 픽처스가 킴 덕분에 중견 영화사로 성장하게 되었으니까요.”
“기왕 시작한 거, 레이첼도 저도 ‘빅식스(Big six)’ 영화사들과 어깨를 견줄 정도까지 회사를 키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서, 설마요.”
레이첼이 가당치도 않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빅식스(Big six)’ 영화사들은 하나같이 엄청난 자본력과 규모를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겨우 몇억 달러의 자본금을 가지고 있는 두 영화사가 쉽게 넘볼 수 있는 수준은 아니었다.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니겠지요. 하지만 앞으로 세계 영화 산업의 파이는 더욱 커지게 될 것이고, 우리가 이 가운데 상당 부분을 가져올 수 있다면 ‘빅식스(Big six)’ 영화사의 아성을 뛰어넘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닐 것입니다.”
“그, 그런......”
“그래서 말인데요, 레이첼.”
잠시 뜸을 들이던 내가 다시 레이첼을 향해 말했다.
“유니온 픽처스와 Film Kim의 합병을 한번 생각해보는 것이 어떨까요?”
“합병이요?”
“예. 현재 ‘빅식스(Big six)’ 영화사가 세계 영화 산업의 중심이 된 것은 기존의 수많은 영화사를 인수 합병하고, 이 과정에서 영화의 제작, 배급, 상영에 이르는 전 과정을 수직적으로 통합했기 때문입니다. 규모가 적은 영화사는 결국 경쟁에서 도태되거나, 살아남아도 성장에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는 뜻이지요.”
“그러니까 지금 킴의 말은......”
레이첼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향해 말했다.
“유니온 픽처스도 그렇고, Film Kim도 그렇고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으니, 합병을 통해 영향력을 더욱 키워보자는 뜻인가요?”
“물론입니다. 특히 요즘 같은 경제 위기에, 그래서 ‘빅식스(Big six)’ 영화사조차도 대규모의 투자를 꺼리는 시기에 새로운 규모의 영화사 탄생은 할리우드 영화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는 중요한 요인이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