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51화 (51/145)

# 51 < 홍콩 상륙 작전 (2) >

81.

영화 <영웅삼색>의 주역인 오웬삼 감독에 이어,

내가 영화사 ‘Film Kim – Hong Kong’으로 영입을 시도한 인물은 이른바 가화삼보(嘉禾三寶)라 불렸던 인물들이었다.

가화삼보란 1980년대 홍콩 영화계를 대표하는 세 명의 배우를 말한다.

성륭, 황금보, 원표가 바로 그들이다.

특히 이들은 배우로서 뿐만이 아니라, 영화감독으로서도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다.

따라서 내가 만약 이들을 우리 영화사로 영입할 수만 있다면, Film Kim이 홍콩을 대표하는 영화사로 성장하는 것은 시간 문제에 불과할 것이었다.

‘문제는 이들이 모두 현존하는 홍콩 최고의 영화사인 골든 하베스트사 소속이라는 점이지. 특히 이들은 골든 하베스트사의 창립자이자, 홍콩 영화계의 거장이라 불리는 추문회와 인간적으로도 깊은 인연을 맺고 있어. 그 때문에 이들을 우리 영화사로 영입하는 것은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지.’

하지만 한 가지 다행스러운 점은,

가화삼보 가운데 한 명인 황금보가 최근 골든 하베스트사를 나와 별도의 영화사 설립을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성륭 또한 홍콩 영화 시장에서의 성공을 발판삼아 할리우드 진출을 꿈꾸고 있다는 점이었다.

세계 영화시장의 중심인 할리우드에 비하면 홍콩 영화 시장의 파이는 무척이나 작았기 때문이다.

‘내가 이 점을 잘만 이용하면 두 사람을 우리 영화사로 영입하는 일도 불가능한 것만은 아닐지 몰라.’

나의 홍콩 둘째 날 일정과 셋째 날 일정이,

황금보와 성륭과의 만남인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

홍콩 현지의 한 호텔.

내가 한 남자를 만나고 있었다.

주변 사람들의 이목을 한눈에 끌 정도로 커다란 덩치,

여기에 나이에 걸맞지 않은 익살스러운 얼굴을 한 그는 홍콩 영화계를 대표하는 배우 황금보였다.

‘황금보, 9살의 어린 나이에 영화배우로 데뷔한 그는 뛰어난 무술 실력을 바탕으로 이름만 대면 알만한 유명 홍콩 무술 영화에서 무술 감독을 도맡아 했었지. 무엇보다 그는 영화감독으로서의 자질도 뛰어나 당시 시대극으로만 한정되어 있던 홍콩 무술 영화를 현대물로 변화시킨 장본인이기도 하지.’

어쨌거나 신기하긴 신기했다.

오래전 스크린에서나 보던 그 인물이 실제 내 앞에 앉아 있는 모습을 보고 있으려니 말이다.

무려 100kg이 넘는 거구를 움직이면서.

“솔직히 놀랬습니다. 언론 보도를 통해서만 들어왔던 제임스 킴 감독님이 저를 직접 만나고 싶어한다니 말이죠.”

황금보가 부리부리한 눈알을 굴리며 나를 향해 말했다.

“그러실 겁니다. 황형과 저는 서로 일면식도 없는 사이니까요.”

“핫! 지금 절 황형(大哥;따거)이라 부르셨습니까?”

“알아보니 황형이 저보다 한살이 더 많더라고요. 그래서 이런 호칭을 썼는데, 불쾌하셨다면 사과드리겠습니다.”

“불쾌할 것 까지는 없고요, 다만 전 할리우드에서 이름 꽤나 날리시는 분이 이렇게 서글서글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해서요. 그쪽 사람들 대부분 좀 거만하지 않습니까?”

“보시다시피 저는 그쪽 사람보다는 이쪽 사람에 가까워서요.”

내가 황금보를 향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런 내가 무척이나 재미있는지, 황금보가 처음에 보였던 경계심을 살짝 풀면서 말했다.

“국적은 한국이지만, 미국에서 쭉 사셨다고요?”

“예.”

“그런데 어찌 우리 말을 알고, ‘따거’라는 단어까지 쓰시는 겁니까?”

그야 전생에서 홍콩 영화를 지겹도록 봤으니까.

한때 홍콩 영화에 푹 빠져 지낼 때, 친구들끼리 장난삼아 ‘따거, 따거’거리며 놀았으니까.

속마음을 감추며 내가 말했다.

“영화는 곧 그 나라 문화의 표상입니다. 홍콩 영화에 관심이 있어 찾아온 사람이 어찌 홍콩 문화에 대한 공부도 하지 않고 올 수 있겠습니까?”

“......”

“우리 회사 직원들을 통해 대충은 이야기를 들으셨겠지만, 몇 해 전 저는 재정 적자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홍콩 영화사 한 곳을 인수했습니다.”

“저도 알고 있습니다. 김 사장이 ‘시네마 시티’를 인수했다는 사실을. 그 때문에 한때 홍콩이 좀 떠들썩하기도 했었지요.”

“떠들썩했다는 건 무슨 의미입니까?”

“하나는 긍정적인 의미, 또 하나는 부정적인 의미입니다. 긍정적으로는 세계 영화의 중심지라 불리는 할리우드가 우리 홍콩 영화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이고, 부정적으로는 할리우드의 자본으로 인해 홍콩 영화가 변질될 위험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군요.”

“그래서 저는 이렇게 김 사장과 만나는 것이 썩 유쾌하지만은 않습니다. 솔직히 김 사장이 무슨 이유로 우리 홍콩 영화 시장에 진출했는지 그 진위를 알 수 없는 상황이니까요.”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전 그저 홍콩 영화의 발전 가능성을 보고 이곳으로 진출한 것이니까요.”

“가능성?”

“예. 황형께서도 아시다시피 홍콩 영화는 단시간에 아시아 영화 산업의 중심지로 급부상했습니다. 제가 생각할 때 그 원동력은 홍콩의 문화적 다양성 때문이라고 여겨집니다. 이 하나하나가 모두 영화의 좋은 소재가 될 수 있는 것이지요. 가령 예를 들면......”

내가 황금보를 향해 홍콩 문화에 해박한 지식을 늘어놓았다.

그것이 가능했던 이유는,

‘내 석사 학위 논문 주제가 바로 이것이기 때문이지. 1980년대 중반 어떻게 홍콩 영화가 전성기를 맞이할 수 있었는지, 그 해답을 찾는 것이 말이야.’

그리고 이는 황금보를 우리 회사로 영입하기 위해 내가 세운 전략이기도 했다.

‘내가 알기로 황금보는 홍콩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히 강한 사람이지. 또한 영화 배우들 가운데 의리를 가장 중시했던 인물이기도 해. 실제 동료인 성륭이 홍콩의 조폭 조직인 삼합회의 협박을 받았을 때, 위험을 무릅쓰고 그를 옹호하고 나섰던 거의 유일한 인물이 바로 그였으니까.’

내가 ‘따거’라는 호칭을 쓴 것도,

홍콩 문화에 대한 찬양 아닌 찬양을 늘어놓은 것도,

모두 이 때문이었다.

한동안 내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던 황금보가 말했다.

“그래서 지금 김 사장이 하고 싶은 말이 뭡니까?”

“전 그저 이런 홍콩 영화의 무한한 가능성에 투자하고 싶을 뿐입니다. 글자 그대로 단순한 투자만을요.”

“쉽게 말해 김 사장은 돈만 댈 뿐, 어떤 영화를 만들든 그건 홍콩 영화인들의 손에 전적으로 맡기겠다, 이 말입니까?”

“예. 제가 알기로 황형이 홍콩 최고의 영화사인 골든 하베스트사를 뛰쳐나온 것도 본인이 만들고 싶은 영화를 하고 싶어서라고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가장 필요한 것이 자금 아니겠습니까?”

내가 황금보의 눈을 정면으로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

“제가 하고 싶은 말의 요지가 바로 이것입니다. 황형이 만들고 싶어하는 영화를 마음껏 만들 수 있도록 우리 Film Kim에서 필요한 자금을 제공해드리겠다는 것입니다.”

“허허. 내 살다 살다 김 사장 같은 사람은 처음 봅니다. 시나리오도 보지 않고, 밑도 끝도 없이 자금부터 대겠다니 말이오.”

그야 이미 다 알고 있으니까.

앞으로 황금보 당신이 어떤 영화를 만들지를.

그리고 그 영화들이 하나같이 다 흥행에 성공하게 된다는 것을.

“<귀타귀>. 최근 황형께서 주연과 감독을 모두 맡아 만든 영화이지요. 무엇보다 이 영화는 홍콩식 코믹 호러물의 전형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저는 매우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김 사장의 그 말은 앞으로도 내가 이런 장르의 영화로 계속 성공을 할 수 있을 거란 뜻이요? 그래서 내게 제작비를 투자하겠다?”

“그렇습니다. 물론 제가 이 한 편의 영화로 모든 것은 판단한 것은 아닙니다. 황형이 가지고 있는 배우로서의 잠재력, 여기에 그동안 황형이 쌓아 온 필모(Filmography)를 모두 종합해서 내린 결론입니다.”

“흐음.”

팔짱을 낀 채로,

한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던 황금보.

그런 그가 다시 입을 열었다.

“지금 당장 답변을 원하는 것은 아니지요?”

“물론입니다. 이번 주말에 제가 다시 미국으로 출국할 예정입니다. 그때까지 충분히 생각을 해보시고 답변을 주시면 됩니다.”

“좋소. 그렇게 하죠.”

82.

홍콩 일정 3일째.

오늘은 황금보와 더불어 가화삼보(嘉禾三寶) 가운데 한 명인 성륭을 만나기로 약속한 날이었다.

사실 성륭이 어떤 인물인지에 대해서 다시 언급하는 것은 시간 낭비에 가깝다.

70년대에 이소룡이 있었다면, 80년대에는 성륭이 있었다고 입을 모아 말할 정도로 홍콩 무술 영화를 대표하는 인물이 바로 성륭이었기 때문이다.

‘내가 알기로 성륭은 완벽주의자에 가까운 인물이지. 자신이 생각하는 화면이 나올 때까지 수십 번도 넘게 재촬영을 계속했고, 그 때문에 그가 만든 영화는 단 한 번도 정해진 기일이나 제작비를 맞춘 적이 없었다는 일화는 매우 유명하니까. 보다 못한 제작사에서 제작비를 맞춰 영화를 끝내면 특별 보너스를 지급하겠다고 약속할 정도였으니 말이야.’

하지만 성륭을 우리 회사로 영입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다.

1978년에 만들어진 영화 <취권>으로 그는 이미 유명 배우이자, 감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그가 소속된 골든 하베스트사가 회사의 간판이나 다름없는 그를 곱게 놓아줄 리가 만무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 일단 성륭과 인연을 맺어두면 당장은 아니더라도 나중에 그가 나를 찾게 되는 일이 생길 수도 있을 거야. 내가 기억하고 있는 바에 따르면 그는 누구보다 할리우드 진출을 꿈꿨던 홍콩 영화 배우 가운데 한 사람이었으니까.’

- 끼익!

출입문이 열리며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검은 선글라스를 짙게 눌러쓴 남자.

홍콩 영화계를 대표하는 감독 겸 배우 성륭이었다.

“킴?”

성륭이 나를 향해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그의 손을 맞잡으며 내가 대답했다.

“처음 뵙겠습니다. 제임스 킴입니다. 홍콩을 대표하는 영화배우를 이렇게 직접 만나게 돼서 영광입니다.”

“저야말로 영광이지요. 킴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유명 감독이자, 우리 같은 아시아 영화인들의 우상과도 같은 존재니까요.”

“과찬이십니다.”

자리에 앉기가 무섭게 성륭이 입을 열었다.

“피차 바쁜 사람들이니 본론만 간단히 합시다. 그 유명한 제임스 킴 감독께서 절 만나자고 한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렇게 말씀하시니 저도 거두절미하고 본론부터 이야기하겠습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성륭 씨를 우리 영화사로 영입하는 것입니다. 아시다시피 제가 몇 해 전 홍콩의 영화사 하나를 인수했거든요.”

“그건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근데......”

성륭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전 킴이 저를 할리우드 영화계에 진출시키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줄 알았는데, 홍콩 영화사 이야기를 꺼내는 걸 보니, 그건 아닌가 봅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할리우드 영화계는 문이 굉장히 좁습니다. 특히 우리 같은 유색인종들에게는요.”

“그러는 킴도 동양인 아닙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할리우드에서 성공을 하지 않았습니까?”

“문제는 그 과정이 생각보다 길고 험난했다는 것이지요. 그렇기 때문에 성륭 씨께서도 곧바로 할리우드에 진출하는 것을 추천드리고 싶지 않습니다. 대신 앞으로 좋은 영화를 많이 만들게 되면 할리우드 영화계에서도 반드시 성륭 씨에 대한 욕심을 내게 될 것이고, 그때 가서 다시 할리우드에 진출해도 그리 늦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니까 지금 킴의 말은 제가 Film Kim의 지원을 받아 좋은 영화를 많이 만들어내면 언젠가 할리우드로 진출할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될 것이다, 뭐 이런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구미가 당기는 제안이기는 합니다만, 현실적으로는 좀 힘들 것 같군요.”

“이유를 물어도 되겠습니까?”

“예. 하나는 제가 아직 골든 하베스트사와의 계약이 끝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잠시 말을 끊은 성륭이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혹시 킴은 홍콩의 ‘삼합회’라는 조직에 대해서 들어보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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