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 <체이스 오브 리벤지2: Ride or Die> (7) >
78.
1982년 여름.
내가 제작한 네 번째 영화 <체이스 오브 리벤지2>의 극장 상영이 시작됐다.
사실 이번 영화는 상영 시작 전부터 영화 관계자와 팬들의 커다란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그도 그럴 것이,
무려 5천만 달러라는 사상 최대의 제작비,
여기에 제작비 대비 300배라는 전편의 흥행 기록이 주는 기대감,
무엇보다 연출을 맡은 영화마다 모두 수억 달러의 흥행 신화를 쏟아내는 ‘제임스 킴’ 감독이 직접 메가폰을 잡았기 때문이었다.
일명 ‘Big six’라 불리는 할리우드 메이저급 영화사 두 곳이 이번 영화의 배급에 참여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최근 극심한 경제 위기로 인해 미국 메이저 영화사들은 자체적인 영화 제작보다는 상대적으로 위험 부담 적은 배급의 비중을 더 높이고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마치 가뭄의 단비와 같은 영화가 바로 이번에 내가 만든 <체이스 오브 리벤지2>였다.
그 결과,
<체이스 오브 리벤지2>는 미국 전체 극장 수의 절반에 가까운 6,500여 개의 스크린을 확보하게 되었다.
극장을 찾는 관객의 절반은 선택의 여지 없이 우리 영화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 만들어진 것이다.
“감독님!”
영화 상영 첫날.
조감독인 제임스 카메룬이 사장실 문을 부술 듯이 열고 들어오며 소리쳤다.
“읔! 지미. 어디 그 정도로 문 부서지겠어요?”
나의 핀잔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제임스 카메룬이 잔뜩 흥분된 목소리로 말했다.
“완전 대박입니다, 대박! 지금 우리 영화를 상영하는 모든 극장에서 영화표가 전회 매진 행진을 기록하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요?”
“예. 오늘 하루만도 무려 200만 명이 넘는 관객이 극장을 찾았다고 하네요.”
200만 명이라.
전생의 충무로에서는 이정도 관객이 들려면 못해도 최소 1주일 이상은 꾸준히 상영해야 한다.
그런데 개봉 단 하루 만에 200만 명이라니, 그것도 1980년대에 말이다.
‘역시 미국 영화 시장은 스케일부터가 남다르군.’
내가 제임스 카메룬을 향해 말했다.
“아직 좋아하기는 일러요.”
“예?”
“개봉 첫날이야 전편의 기대감 때문에 극장을 찾는 사람들이 많을 수도 있지만, 막상 영화가 관객들의 기대치를 충족시키지 못했을 경우, 갈수록 관객의 숫자가 급격하게 떨어질 수 있으니까요.”
“하긴. 개봉 첫날과 비교하면 전체 관람객 수가 현저하게 차이 나는 영화가 한둘이 아니니깐요.”
“예. 그러니 일단은 조금 더 신중하게 지켜봅시다. 최소 한주 정도 지나고 나면 이번 영화의 전체 수익을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우려와는 달리 <체이스 오브 리벤지2>의 인기는 식을 줄을 몰랐다.
연일 매진 행진을 이어가며, 계속해서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이 같은 소식은 영화 잡지와 언론을 통해서도 대서특필 되었다.
- 올해 할리우드 최고의 기대작 가운데 하나였던 영화 <체이스 오브 리벤지2>, 역시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 연일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영화 <체이스 오브 리벤지2>, 최단기간 북미 누적 관람료 수익 1억 달러를 돌파해!
- 사상 최대의 제작비가 투입된 영화 <체이스 오브 리벤지2>, 관람료 수익도 사상 최대를 달성할 수 있을 것인가?
- 할리우드 최고의 흥행 보증 수표라 불리는 제임스 킴 감독, 그의 선택은 이번에도 옳았다!
- 4주 연속 북미 박스 오피스 1위를 기록하고 있는 영화 <체이스 오브 리벤지2>, 기존의 대작 영화의 흥행 기록을 갱신할 수 있을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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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허, 참.”
오래간만에 Film Kim 사무실을 찾아온 조지 루이스.
그가 허탈한 웃음을 지으며 나에게 말했다.
“도대체 킴 넌 어떻게 된 사람이 만드는 영화마다 족족 흥행에 성공하는 거야?”
“그건 조지도 마찬가지죠. 최근 개봉되는 <스페이스 워즈> 속편이 잇달아 흥행에 성공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지금 <체이스 오브 리벤지2>의 관람료 수익이 얼마나 된대?”
“일단 2억 달러는 돌파했고요, 앞으로 2주간의 개봉 기간과 해외 배급 수익이 더 남아 있으니, 최종 수익은 더 지켜볼 일이죠.”
“읔! 이러다 <스페이스 워즈4>가 세운 기록이 깨지는 것 아니야?”
“그야 모르는 일이죠. 왜요? 기껏 세운 기록이 너무 빨리 깨질까 봐서 아쉬워요?”
“아쉽지, 그럼. 우리 같은 상업 영화 감독에게는 흥행 수익이 곧 훈장이나 다름없는데.”
“아 참, 조지.”
내가 다시 조지 루이스에게 물었다.
“혹시 마텔이라는 회사 알아요?”
“마텔? 마텔이라면 미국 최대의 장난감 제조회사 중의 하나인 그 마텔을 말하는 거야?”
“조지도 알고 있네요?”
“알지 그럼. 일전에 그 회사에서 우리 <스페이스 워즈>에 나오는 소품을 장난감으로 제작하려고 라이센스 구입을 의뢰해 온 적이 있었거든. 물론 내가 이를 거절하고 직접 판매에 나서기는 했지만 말이야.”
조지 루이스의 <스페이스 워즈>는 ‘20세기 폭스’사로부터 제작비 지원을 받아 만들었다.
그 때문에 원래 캐릭터와 소품과 같은 상품 판매권은 투자사인 20세기 폭스가 가지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대한 제작비로 인해 조지 루이스에게 줄 연출비가 부족했던 20세기 폭스사는 대신 상품 판매권을 연출비의 일부로 주게 되었는데, 사실 이는 큰 실수였다.
실제 <스페이스 워즈>는 관람료 못지않게 영화 관련 상품 판매로 엄청난 수익을 올렸기 때문이었다.
20세기 폭스사로서는 땅을 치고 후회하게 된 일이었다.
반면 조지 루이스는 엄청난 돈방석에 앉게 되었고.
“근데 갑자기 마텔사 이야기는 왜 하는 거야?”
“그 회사에서 연락이 왔는데, 이번에 우리 <체이스 오브 리벤지2>에 등장하는 자동차를 장난감으로 출시하고 싶다네요. 그래서 라이센스를 구입하고 싶어하더라고요.”
“그거 아주 잘 됐군. 영화라는 것이 관람료 수익만큼이나 기타 부수입도 아주 짭짤하거든. 특히 이번 영화는 킴이 모든 저작권을 가지고 있으니, 덕분에 제법 괜찮은 수익을 올릴 수가 있겠군.”
“그럼 조지 말대로 마텔사와 상품 라이센스 계약을 맺어도 되겠군요?”
“그래. 대신 로열티 협상을 잘해야 해. 혹시 모를 경우를 대비해서 말이야.”
“회사 직원들에게 일러둘게요.”
“아 참, 그보다 킴 다음 달에 홍콩으로 출국할 예정이라며?”
“네. 현지에 있는 Film Kim 지점에 좀 들러볼까 해서요.”
“왜? 이제 북미 지역을 넘어 아시아 영화시장에도 한 번 도전해 보려고?”
“그럴 생각이 있기는 해요. 할리우드가 서구 영화산업의 중심이라면, 홍콩은 아시아 영화산업의 중심지잖아요.”
“좋은 생각이야. 무엇보다 킴이 동양인이라 그쪽 정서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을 테니 말이야. 그래서 얼마나 있을 생각인데?”
“오래 걸리지는 않을 거예요. 홍콩 영화 시장 쪽은 순수하게 제작에만 참여할 예정이라서요.”
“그래. 갔다 와서 같이 술 한잔 하자고.”
“예, 조지.”
자리에서 일어서려던 조지 루이스가 문득 생각났다는 듯이 덧붙여 말했다.
“연애 사업도 영화만큼이나 잘 돼가고 있는 거지?”
“예? 갑자기 그게 무슨?”
“레이첼 양 말이야. 킴처럼 바쁜 사람이 아무 이유 없이 영화도 보고, 밥도 먹고 하지는 않을 게 분명하잖아. 나도 눈치가 제법 있는 사람이거든, 흐흐.”
“......”
“표정 보니 뭔가 잘 안되는 모양이군. 사실 나도 그랬어. 영화 만드는 것보다 연애하는 게 더 힘들더라고. 그래서 예전에 아멜리아가 나를 무척이나 답답하게 생각했었지, 하하하.”
조지 루이스가 내 어깨를 툭 치며 말했다.
“다음 영화는 로맨스 쪽으로 한번 만들어봐. 그럼 없던 연애 감각도 새로 생겨날지 모르니까 말이야. 하하핫!”
79.
1주일간의 연장 상영 기간까지 합쳐,
총 5주간에 걸친 <체이스 오브 리벤지2>의 상영이 모두 끝이 났다.
북미 시장에서 올린 관람료 수익은 자그마치 3억 5천만 달러.
여기에 해외 개봉 수익까지 포함하면 최소 5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이는 제작비 대비 10배에 달하는 수익이었다.
아울러 역대 할리우드 영화 사상 두 번째로 높은 수익이기도 했다.
‘역시 조지 루이스의 <스페이스 워즈>의 아성을 넘기는 힘들군. 그래도 할리우드 영화 사상 두 번째로 높은 흥행 성적을 기록했으니까.’
만족할 만한 흥행 성적표를 들고,
내가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아버지가 계시는 LA 한인회관이었다.
“도훈아!”
“표정을 보니, 벌써 소식을 들으셨나 보네요, 아버지. <체이스 오브 리벤지2>가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고 있다는 소식 말이에요.”
“그래. 네. 덕분에 지금 한인타운이 거의 축제 분위기다. 자신들이 투자한 영화가 대성공을 거두었으니까.”
아버지가 다시 나에게 물었다.
“그나저나 이곳 한인 투자자들이 가져갈 수익이 얼마나 될 것 같으냐? 다들 나만 보면 그것부터 물어봐서 말이야.”
“아직 정확한 수익이 집계되지 않아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최소 투자금액의 3배는 넘게 가져갈 수 있을 거예요.”
“3배?”
“예.”
“읔! 이 소식을 들으면 완전 난리 나겠군. 다들 은행 이자보다 무려 30배가 넘는 수익을 올리게 되었으니, 흐흐.”
“앞으로도 계속 지금처럼 한인들을 대상으로 영화 투자를 받을 생각이니까, 이 이야기도 같이 전해주세요.”
“아무렴. 벌써부터 사람들이 나에게 묻는다. 도훈이 네 다음 영화가 언제 만들어지는지. 그것 때문에 내가 아주 귀찮아 죽겠어.”
말은 그렇게 하지만,
아버지의 표정에는 아들에 대한 자랑스러움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아 참, 아버지.”
“왜?”
“저 영화 제작도 끝나고 해서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홍콩에 잠시 좀 다녀오려고 해요.”
“홍콩? 갑자기 홍콩은 왜?”
“제가 일전에 홍콩에 갔을 때, 괜찮은 영화 시나리오를 하나 발견했거든요. 그래서 홍콩 현지 영화감독을 섭외해서 영화 제작을 의뢰하려고요.”
“그래?”
“예. 한 일주일 정도 걸릴 것 같으니까, 급하게 연락할 일 있으면 홍콩 현지 사무실로 연락하시면 돼요.”
“뭐 그리 급하게 연락할 일이 있겠냐. 아, 그리고......”
살짝 뜸을 들이던 아버지가 다시 말을 이었다.
“나 이번 한인회장 선거에 나가기로 했다.”
“예?”
“봉팔이 형님이 몸이 많이 안 좋아졌어. 그래서 한인회장을 사임하는 바람에 이번에 보궐 선거를 하게 됐지 뭐냐.”
“읔! 그래서 아버지가 출마하기로 하신 거예요?”
“난 뭐, 크게 뜻이 없었는데, 사람들이 하도 성화를 해서. 나만큼 미주 한인 사회의 발전을 가져올 수 있는 사람이 없다나 뭐라나.”
“아버지도 욕심이 없는 것 같지는 않은데요?”
“흐흐. 사실 말이 나와서 하는 말인데, 내가 보기보다 이런 일이 적성에 맞는 것 같아. 나름 재미와 보람도 있고 말이야.”
“저야 아버지가 하신다면 굳이 말리고 싶지는 않아요. 대신에 전에 저랑 했던 약속 꼭 지키셔야 해요. 남을 위해 아버지가 총대 메는 그런 위험한 일은 하지 않겠다고 한 약속 말이에요.”
“그런 걱정일랑 붙들어 매라. 난 도훈이 네가 지금처럼 성공하는 모습을 아주 오랫동안 지켜보고 싶은 사람이니까.”
“그럼 다녀올게요, 아버지.”
“그래. 간 김에 괜찮은 여자 있으면 하나 데려오고. 흑인보다야 같은 동양인 아가씨가 더 낫지 않겠냐, 흐흐.”
“아버지도 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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