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48화 (48/145)

# 48 < <체이스 오브 리벤지2: Ride or Die> (6) >

팀의 리더인 베거슨이 지도 한 장을 책상 위에 펼치며 자신의 계획을 설명했다.

“현재 티토 일당이 근거지로 사용하는 곳은 원래 군 특수 부대가 주둔하던 곳이오. 중요한 것은 그 부대의 지하에 아무도 모르는 비밀 통로가 존재한다는 것이지요.”

“비밀 통로?”

“예. 원래는 유사시에 병력이나 물자를 이동시키기 위해 만든 지하 터널인데, 다행히 아직 티토 일당은 그 사실을 모르고 있소.”

“그러니까 지금 베거슨의 말은......”

이든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우리가 그 지하 터널을 이용해서 몰래 악당들의 근거지로 잠입한 후, 핵융합 발전기를 폭발시키고 빠져나와야 한다는 뜻입니까?”

“그렇소.”

“하지만 설령 우리가 무사히 임무를 완수한다고 해도 시간 안에 그곳을 빠져나올 수 있을까요? 아까 달리의 말에 의하면 레이저 가속기가 작동하기 시작하면 몇 분 내로 곧바로 핵융합 발전기가 폭발하게 된다면서요?”

“맞소. 그렇게 되면 지하 터널도 결코 안전한 곳이 되지는 못할 것이오.”

“그래서......”

달리가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었다.

“이번 작전은 특별히 제작된 차량을 이용할 생각이에요.”

“차량?”

“네. 제가 지하 터널의 크기에 맞는 소형 자동차를 제작했어요. 이 차량을 이용해 핵융합 발전기가 폭발하기 전에 빠르게 그곳을 빠져나오는 것이죠. 말 나온 김에 한번 보실래요?”

달리가 이든을 작업장으로 데려갔다.

그곳에는 최근에 제작을 끝낸 듯한 소형 경차가 여러 대 세워져 있었다.

물론 겉모양과는 다르게 고성능 특수 엔진이 장착되어 있어 차량의 출력은 어마무시했고.

“좋습니다.”

이든이 다시 말했다.

“계획한 대로 한번 해봅시다. 까짓거 달리거나 죽거나(ride or die) 둘 중 하나일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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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컷! 오케이.”

메가폰을 타고 나의 음성이 흘러나오자,

스태프들이 분주히 움직이며 현장 정리에 나서기 시작했다.

그 사이,

나는 감독급 스태프들과 함께 다음 촬영 장면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그런데.

평소와는 다르게 자리에 모인 감독급 스태프들의 얼굴에 긴장감이 잔뜩 드리워져 있었다.

그 이유는,

‘이번 영화의 마지막 엔딩 장면에는 무려 3,000리터가 넘는 기름과 50kg의 폭탄을 동원한 대규모의 폭파 장면이 예정되어 있기 때문이지. 그 때문에 이번 장면의 촬영에 임하는 모든 스태프가 바짝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을 테지. 할리우드에서 잔뼈가 굵은 그들도 이런 대규모의 폭파 장면을 촬영하는 것은 대부분 처음 있는 일일 테니까.’

사실 1980년대 할리우드에서는 이런 대규모의 폭파 장면을 실사로 촬영하는 일은 극히 드물었다.

대부분은 실제와 같은 모양의 정교한 미니어처를 제작해서 이런 장면을 촬영해왔다.

촬영에 따른 위험은 물론이고, 소요되는 제작비 또한 엄청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나는 이번 영화의 하이라이트가 될 엔딩 장면을 실사로 구현하기로 마음먹었다.

제아무리 정교한 미니어처 촬영도 실사 장면이 가져다주는 박진감과 현장감을 그대로 재현해내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에 나는 전체 제작비의 10분의 1에 해당하는 무려 500만 달러의 비용을 이번 촬영에 투입했다.

오로지 이 엔딩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악당들의 기지를 세트로 만들어 폭발시키기로 한 것이다.

“자, 그럼 각 팀 별로 준비 사항을 다시 한번 더 점검해 주시고, 완료되면 곧바로 무전으로 연락해주시기 바랍니다.”

나의 말에 감독급 스태프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섰다.

드디어,

영화의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엔딩 장면의 촬영이 시작된 것이다.

***

“레디, 액션!”

무전을 타고 감독인 나의 음성이 흘러나오자,

- 부아아앙!

세 대의 경차가 무서운 속도로 지하 터널을 질주하기 시작했다.

운전대를 잡고 있는 것은 영화의 주연 배우인 ‘이든’과 ‘달리’, 그리고 팀의 리더인 ‘베거슨’이었다.

차량의 가장 선두에는 카메라를 든 촬영팀이 이 장면을 화면에 담아내고 있었고.

뒤이어.

마찬가지로 영화의 엔딩에 사용될 여러 개의 씬과 쇼트가 연속적으로 촬영됐다.

지하 터널을 통해 무사히 악당의 본거지에 잠입하는 이든의 일행의 모습을 담은 장면.

침입자의 존재를 눈치챈 악당 수하들과 이든 일행의 총격 장면.

악당들의 본거지를 한 방에 날려버리기 위해 핵융합 발전기에 레이저 가속기를 장착하는 장면.

주인공 일행이 악당 수하들의 추격을 피해 기지를 빠져나와 다시 지하 터널에 대기 중인 차량에 탑승하는 장면.

그리고 최종적으로 핵융합 발전기가 수소 폭탄화 되어 악당들의 본거지를 일제히 날려버리는 장면이었다.

- 쾅!

- 콰광!

- 쿠콰콰쾅!

약속된 시간이 되자,

특수 효과 팀에서 설치한 폭약들이 터지기 시작했다.

엄청난 폭발음과 함께 하늘 높이 솟구치는 불꽃은 그야말로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후반 작업을 통해 불꽃을 뚫고 나오는 주인공 일행의 차량을 필름 합성하면 영화를 보는 관객들에게 통쾌함을 선사해 줄 완벽한 영화의 엔딩 장면이 완성될 것이었다.

“컷! 오케이, 좋았어요!”

그렇게.

장장 5개월간에 걸친 나의 새로운 영화 <체이스 오브 리벤지2: ride or die>의 촬영이 모두 끝이 났다.

물론 극장 상영을 위해서는 앞으로 또다시 몇 개월의 포스트 프로덕션 과정을 거쳐야 할 것이지만.

76.

영화 <체이스 오브 리벤지>의 후반 작업이 시작되었다.

프로덕션 과정 못지않게 포스트 프로덕션 과정에도 꽤 많은 수의 스태프가 참여했다.

편집, 음향, 화면 특수 효과에 이르기까지, 한 편의 영화가 온전히 완성되기 위해서는 아직 거쳐야 할 작업이 수없이 남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물론 실제적인 작업은 할리우드의 전문 팀들이 투입되어 이루어졌다.

감독 겸 제작자인 내가 할 일인 전체적인 작업의 가이드 라인을 제시하고, 최종 완성된 영상을 확인하고 피드백하는 것이었다.

“어때요, 킴. 잘 될 것 같아요?”

레이첼이 나를 향해 물었다.

그녀는 이번 영화에 메인 투자자 겸 세컨 유닛 촬영 감독으로 참여하고 있었다.

“뭐가요?”

“영화 흥행 말이에요.”

“글쎄요. 사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해 영화를 만들기는 했지만, 또 흥행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는 법이잖아요.”

라고 말은 했지만,

사실 나는 이번 영화의 흥행을 거의 확신하고 있었다.

왜냐하면 내가 살던 전생에서도 <체이스 오브 리벤지>와 같은 류(類)의 자동차 추격 액션 영화들은 거의 다 흥행에 성공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그 대표적인 영화가 바로 <매드맥스>와 <분노의 질주> 시리즈였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번 나의 영화 <체이스 오브 리벤지2>가 전생에서 엄청난 흥행을 기록한 같은 자동차 액션 영화인 <매드맥스>나 <분노의 질주> 속편에 버금갈 정도의 퀄리티를 가지고 있다는 것이지. 이 두 영화가 실제 극장에서 상영된 시기보다 무려 20년에서 30년이나 앞서 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야.’

1980년대에 상영되는 2000년대의 영화라니.

흥행에 성공하지 않을래야, 성공하지 않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내가 레이첼을 향해 말했다.

“개봉관 확보는 어느 정도 진행되고 있습니까?”

“지금 유니온 픽처스 직원들이 최대한 많은 개봉관을 확보하기 위해 다방면으로 노력하고 있어요. 아 참, 그러고 보니 유니버셜 스튜디오와 월트 디즈니 쪽에서도 우리 영화의 배급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 같더라고요.”

“잘 됐군요. 만약 메이저급 영화사인 이 두 회사가 우리 영화의 배급에 참여하면 개봉관 확보가 훨씬 더 수월해질 테니까요.”

“안 그래도 그쪽과 계속 접촉하고 있어요. 결과가 나오면 킴에게도 알려 드릴게요.”

“고마워요, 레이첼. 레이첼이 아니었다면 제가 이만큼 빨리 성공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래서 늘 감사하고 있어요.”

“뭘요.”

갑작스러운 나의 감사 인사에 살짝 얼굴을 붉히는 레이첼.

그런 그녀를 향해 내가 말했다.

“저기, 레이첼.”

“네.”

“일전에는 약간 오해가 있었던 것 같아요.”

“오해요? 갑자기 그게 무슨 말이죠?”

“전에 내가 비비랑 단둘이 밥 먹은 거 말이에요. 그거 진짜 둘이서만 먹은 거 아니에요. 그날 조감독이랑 시나리오 문제로 상의할 일이 있어서 같이 술 한잔하기로 했는데, 마침 비비가 저녁을 못 먹었다고 해서 함께 데리고 간 거예요. 조감독이 잠깐 화장실 간 사이 레이첼이 우리 자리에 온 거고요.”

“호호호.”

뭐가 그렇게 재미있는지,

레이첼이 한동안 배를 잡고 웃어댔다.

“......왜 웃어요? 사람 민망하게.”

“킴은 여태 그 일을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거예요?”

“아니, 그게 계속 마음에 걸려서요. 레이첼이 오해하고 있을 것 같아서 말이죠.”

레이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이상하네.”

“뭐가요?”

“그렇잖아요. 킴이 누구랑 같이 밥을 먹든 굳이 저에게 해명할 필요는 없는 일인데, 그걸 한참이나 지난 지금 다시 저에게 애써 설명하려 하시니까요.”

“......”

그러게 말이다.

막말로 우리 둘이 무슨 사이도 아닌데.

오지랖 넓게 내가 왜 이런 해명 아닌 해명을 하고 있는 거지?

“감독님.”

때마침 조감독인 제임스 카메룬이 사장실로 들어왔다.

으이구.

저 인간은 전에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고 타이밍 하나는 절묘하게 못 맞춘다니까.

“왜요? 지미.”

“음향 감독님이 작업 내용 좀 확인해달라고 하셔서요. 그래서 제가 감독님께 알려드리러 왔습니다.”

“알겠어요. 지금 바로 작업실로 갈게요.”

자리에서 일어서며 내가 레이첼을 향해 다시 말했다.

“레이첼은요?”

“전 영화 배급 문제로 만날 사람이 있어서요. 고생하고 이따가 다시 봐요, 킴.”

“그래요.”

“아 참, 킴.”

“네?”

“이번 영화 끝나고 같이 한국 식당에 가서 밥 먹기로 한 거 잊으면 안 돼요.”

“물론이죠.”

“거기 또 저 말고 다른 여배우 데려가도 안 되고요.”

“......”

“호호, 농담이에요, 농담.”

알다가도 모를 여자의 마음.

그래서 할리우드에서 라는 영화가 만들어졌나 보군.

77.

LA 한인타운 인근의 소극장.

저녁 무렵이 되자, 꽤 많은 사람이 이곳으로 몰려들고 있었다.

오늘 이곳에서 영화사 Film Kim의 새 영화 <체이스 오브 리벤지2>의 특별 시사회가 있을 예정이기 때문이었다.

“여, 박 사장. 오래간만이야.”

“김 사장도 어서 오게. 요즘 많이 바쁘지?”

“어이쿠. 순만이 자네도 왔구먼. 어서 들어오게.”

극장 입구에서 시사회에 초청된 사람들을 맞이하고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내 아버지였다.

말끔한 정장에, 각 잡힌 넥타이까지 목에 맨 채로.

그랬다.

오늘 이곳에서 이루어지는 시사회는 LA 한인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었다.

이들은 또한 앞서 내가 진행한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영화의 투자에 참여한 소액 투자자들이기도 했다.

적게는 수백 달러에서, 많게는 수천 달러를 이번 영화에 투자한 LA 한인들은 영화가 성공할 경우 일정액의 배당금을 받을 예정이었고, 이에 영화의 흥행 여부에 누구보다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를 잘 알고 있는 나는 이례적으로 가장 먼저 이들을 대상으로 한 특별 시사회를 준비한 것이었고.

잠시 후.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 앉자, 곧바로 영화가 시작되었다.

대략 120분에 가까운 영화의 러닝타임.

꽤 긴 상영 시간이었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은 잠시도 지루할 틈이 없었다.

자동차 액션 영화답게 빠르게 전환되면 화면들, 여기에 다양한 촬영기법과 특수 효과가 가미된 스펙타클한 추격씬과 액션씬이 곁들여지면서 영화는 순식간에 엔딩을 향해 달려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영화 시사회가 끝이 나고,

관객들의 기립 박수 속에서 무대에 오른 나는 확신할 수 있었다.

‘이번 영화도 반드시 흥행에 성공할 것이란 걸. 그것도 전편에 못지않은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면서 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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