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3 < <체이스 오브 리벤지2: Ride or Die> (1) >
“감독님.”
제임스 카메룬이 내 사무실로 들어왔다.
조감독인 그는 이번 영화 촬영에서 마치 나의 수족처럼 움직이며 여러 가지 일을 도맡아 하고 있었다.
“아, 지미. 무슨 일이에요?”
지미(Jimmy)는 제임스 카메룬의 애칭이었다.
특히 그와 나는 이름이 같았기 때문에, 회사 직원들은 구분을 위해서라도 다들 그를 ‘지미’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티펀(Tiffen)사에서 연락이 왔는데, 지난번 우리가 제작을 의뢰한 촬영 장비 제작이 완료되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 쪽 사람들이 직접 와서 검수를 좀 했으면 하네요.”
“그래요?”
“예. 감독님 바쁘면 로저 디킨슨 감독님이 촬영팀과 함께 가서 점검하시겠답니다.”
“아뇨. 제가 직접 가서 확인하죠. 지금 로저 감독님 밖에 계시죠?”
“예. 촬영팀과 함께 사무실에서 회의 중이십니다. 요즘 스토리보드에 들어갈 카메라 구도와 기법들을 선정하느라 정신이 없으시더라고요.”
“흠, 그럼 조금 기다렸다가 회의 끝나는 대로 곧바로 출발하도록 하죠.”
“예. 로저 감독님께도 그렇게 전달하겠습니다.”
“그건 그렇고......”
내가 제임스 카메룬에게 물었다.
“요즘 시나리오는 좀 쓰고 있어요, 지미?”
“아, 그게 시간 나는 틈틈이 조금씩 쓰고 있기는 한데......”
“왜요, 잘 안 돼요?”
“예. 생각보다 쉽지 않군요.”
일전에 제임스 카메룬을 우리 회사로 영입하면서 나는 두 가지를 그에게 요구했다.
하나는 내가 촬영하는 영화의 조감독 역할을 하면서 영화 현장 경험과 기술들을 익히는 것.
그리고 또 하나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제작할 영화의 시나리오를 시간 나는 틈틈이 작성할 것이었다.
만약 마음에 드는 시나리오가 있으면 내가 직접 제작비를 지원해줄 것이라는 조건을 내걸고.
‘제임스 카메룬. 그는 천부적인 영화감독임과 동시에 뛰어난 각본가로서의 능력을 가지고 있지. 실제 그의 영화 대부분은 자신이 직접 시나리오를 써서 만들었으니까 말이야.’
제임스 카메룬이 앞으로 만들어낼 대작 영화들.
만약 내가 이 영화의 제작에 참여하게 된다면, 실제 다른 영화사들이 가져가게 될 명성과 흥행 수익을 모두 우리 Film Kim의 것으로 만들 수 있을 것이었다.
‘내 전생의 기억에 따르면 제임스 카메룬 그는 조지 루이스, 스티븐 스필버그와 더불어 할리우드 역사상 최고의 흥행 수익을 올린 감독이었으니까.’
내 속마음을 알 리 없는 제임스 카메룬이 멋쩍은 듯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저기, 감독님. 사실 제가 최근 들어 구상하고 있는 영화 시나리오가 하나 있기는 한데, 이게 좀 허무맹랑한 이야기라서요.”
“허무맹랑한 이야기?”
“예. 무엇보다 이를 실제 영상으로 구현해낼 수 있을지가 의문입니다. 시나리오 내용이 우연히 제가 꾼 꿈에서 모티브를 얻어 쓴 것이라서 말이죠.”
“어떤 줄거리인지 한번 들어나 봅시다.”
“그게......”
제임스 카메룬이 다소 민망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얼마 전 제가 심한 고열로 앓아누운 적이 한 번 있었는데, 그때 꿈에서 끔찍한 모습의 기계 인간이 불 속에서 서서히 일어나는 장면을 보게 되었습니다. 일종의 악몽을 꾼 것이지요. 그래서 이를 바탕으로 SF 영화 시나리오를 한번 써 봤는데, 막상 쓰고 보니 과연 이를 영상으로 구현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더군요. 자칫 잘못 만들면 완전히 B급 수준의 영화가 돼서 괜히 우스갯거리만 될 것 같아서요.”
“불 속에서 나타난 기계 인간이라......”
제임스 카메룬의 말에 내가 속으로 빙긋 웃음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지금 그가 구성하고 있는 시나리오는 바로 전생에서 엄청난 흥행 성적을 기록하며 SF 액션 영화의 대명사가 된 영화 <터미네이터>의 줄거리였기 때문이었다.
‘후후. 바로 이것 때문이지. 내가 제임스 카메룬, 그를 우리 회사로 영입하고, 그의 영화 제작에 도움을 주기로 약속한 것은.’
“지미.”
“예, 감독님.”
“지금 시간 있죠?”
“시간요?”
“예. 내가 지미랑 잠시 같이 갈 곳이 있어서요.”
“가, 갑자기 어디를......”
내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일단 같이 가보면 알아요.”
68.
샌프란시스코의 한 회사.
‘인더스트리얼 라이트 앤 매직(ILM)’이라는 간판을 달고 있는 이 회사는 영화 특수 시각 효과를 만드는 회사였다.
원래 ILM은 아날로그 방식의 시각 효과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었는데, 최근에는 컴퓨터를 이용한 디지털 시각 효과(CG)의 개발에도 열을 올리고 있었다.
그 결과 얼마 전에 개봉한 영화 <레이더스>나 <스페이스 워즈> 시리즈에 이러한 CG 기술이 상당 부분 도입되었고, 이를 본 관계자들로부터 큰 호평을 받기도 했다.
“감독님, 여기는......”
“예. 루이스 필름 산하의 시각 효과 전문 회사 ILM입니다. 참고로 우리 Film Kim도 이 회사 지분의 20%를 가지고 있고요.”
얼마 전 나는,
영화 제작으로 벌어들인 돈으로 ILM의 지분을 매입했다.
영화 시각 효과, 특히 CG 기술이 앞으로 얼마나 할리우드 영화 제작에 있어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인가를 전생의 경험을 통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고,
때마침 <스페이스 워즈> 속편 제작과 관련 사업에 들어가는 막대한 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조지 루이스가 나에게 ILM의 지분 일부를 인수하라는 제안을 해왔기 때문이었다.
“조지와 나는 이곳 ILM에 매년 막대한 예산을 쏟아붓고 있습니다. 더 나은 영화 특수 시각 효과 개발을 위해서이지요. ILM 뿐만이 아닙니다. ILM의 자매회사 격인 픽사(Pixar)에도 많은 예산을 쏟아붓고 있지요. 왜냐하면......”
내가 제임스 카메룬을 향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두 사람 모두 이 두 회사가 앞으로 할리우드 영화계의 미래(未來)가 될 것이라고 확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그런......”
“다양한 CG 기술을 이용해 기존의 영화적 한계를 뛰어넘은 블록버스터 영화, 100% 컴퓨터 그래픽만으로 만들어진 애니메이션 영화, 이 두 영화가 앞으로 전 세계 영화 산업의 핵심이 될 것이라고 저나 조지는 확신을 하고 있고, 그래서 많은 예산을 투입해 관련 기술을 개발하고 있는 것이지요.”
내가 제임스 카메룬에게 다시 말했다.
“아까 지미가 그런 말을 했었죠? 지금 구상하고 있는 시나리오 내용을 과연 영상으로 제대로 구현될 수 있을지에 대한 확신이 서지 않는다고.”
“예.”
“지금부터 나와 이곳 ILM을 천천히 둘러보면 아마도 지미의 그런 생각이 완전히 바뀌게 될 것입니다. 이곳 ILM의 기술적 도움을 받으면 지금 지미가 머릿속으로 구상하고 있는 영화 내용을 실제 영상으로 얼마든지 구현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말이죠.”
***
그날 오전 내내,
나와 제임스 카메룬은 ILM을 둘러보며 CG 기술 개발 상황을 살펴보았다.
아마도 제임스 카메룬의 눈에 비친 ILM의 모습은,
글자 그대로 ‘신세계(新世界)’나 다름없었을 것이었다.
그동안 나와 조지 루이스가 많은 공을 들인 덕분에 현재 ILM의 CG 관련 기술은 이전에 비해 상당한 진보를 보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 기억에 따르면 할리우드 영화계에서 CG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1990년대 들어서부터였지. 물론 1970년대와 1980년대에도 CG 기술을 사용한 영화들이 있었지. <스페이스 워즈>, , <트론>, <스타트렉> 등이 그것이고.’
하지만 이들 영화에서는 CG 기술이 제한적으로만 사용되었을 뿐이고, 그 기술 수준 또한 관객이 경악할 만한 수준은 아니었다.
실제 극장을 찾은 관객들이 엄청난 충격을 받을 정도로 수준 높은 CG 기술을 선보인 영화는 1990년대에 제작된 두 영화 <터미네이터2>와 <쥐라기 공원>이었다.
이 두 영화는 할리우드를 넘어 전 세계 영화계에 일대 혁명을 불러일으킨 영화로 CG 기술이 영화 제작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새삼 각인시켜준 영화였다.
‘그 중심에 있는 것이 바로 이곳 ILM이란 회사이지. 물론 그동안 조지 루이스와 내가 엄청나게 많은 돈을 쏟아부은 덕분에 그 기술력은 전생의 그것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발전하게 되었고.’
한동안 나와 함께 ILM을 둘러보는 제임스 카메룬의 입에서 감탄이 사라지지 않았다.
아마도,
이를 통해 그는 확신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신이 지금 구상하고 있는 <터미네이터>라는 영화를 완벽하게 구현해낼 수 있는 해법이 바로 이곳 ILM에 있다는 것을.
69.
그날 오후,
<체이스 오브 리벤지2>의 촬영감독인 로저 디킨슨과 내가 할리우드 인근의 영화 촬영 장비 제작 전문 업체인 디펀(Diffen)사에 들렀다.
얼마 전 나는 영화 제작에 필요한 특수 촬영 장비 제작을 이 회사에 의뢰했었는데, 마침 장비 제작이 완료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온 것이었다.
이번에 촬영할 내 영화 <체이스 오브 리벤지2>는 대규모 자동차 추격씬이 들어가는 영화이다.
이에 보다 박진감 넘치는 화면 연출을 위해 나는 새로운 촬영 장비 제작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 가운데서 가장 많은 비용이 들어간 것은,
“바로 이건가 보군요. 감독님이 말씀하신 ‘카메라 크레인’이라는 장비가.”
촬영감독 로저 디킨슨이 커다란 기계 하나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가 가리킨 곳에는 내가 살던 시대에서는 일명 ‘지미 집 카메라’로 불리던 장비가 세워져 있었다.
‘지미 집 카메라란 건설 현장에서 쓰는 크레인과 같은 구조물 끝에 카메라를 설치해 촬영하는 장비를 말하지.’
물론 내가 살던 시대에서 쓰던 것에 비해 정교함은 다소 떨어지기는 했다.
하지만 촬영 각도와 방향을 자유자재로 조절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생동감 있는 화면 연출이 가능해질 것이 분명했다.
특히 차량 내외부에서 벌어지는 격렬한 액션 장면을 다양한 각도에서 촬영하기 위해서는 이 장치가 반드시 필요했다.
“예. 감독님도 아시다시피 대규모 차량 이동 장면은 헬기를 동원해서 촬영할 예정입니다. 반면 차량 내외부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액션 장면들은 주로 이 장치를 이용해서 촬영이 이루어질 것이고요.”
“그럼 촬영 전에 미리 스태프들과 연습을 좀 해둬야겠군요. 생소한 장비인 만큼 촬영장에서 능숙하게 사용하려면 말이죠.”
“그렇게 하시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그나저나......”
로저 디킨슨이 감탄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감독님은 참 대단하신 것 같습니다. 어떻게 된 것이 촬영감독인 저보다 더 촬영 장비에 대한 지식이 해박하신 것 같아서 말이죠. 지난번 영화 촬영에 사용된 ‘스태디캠’도 그렇고 이번 ‘카메라 크레인’도 그렇고, 모두 감독님이 직접 고안해낸 것이 아닙니까?”
“원래 필요가 발명을 부르는 법입니다. 어떻게 하면 보다 효과적인 화면 연출이 가능할까를 고민하다 보니 문득 이런 장비들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덕분에 부수입도 짭짤하시겠습니다. 듣자니 감독님이 개발하신 장비를 여기 티펀사에서 독점 판매하는 대가로 감독님에게 일정액의 로열티를 지불한다고 하던데요?”
“수요가 많은 장비가 아니라 금전적 이익은 그리 큰 편은 아닙니다. 그저 형식적으로 지불하는 금액일 뿐이지요.”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감독님이 개발하신 장비 덕분에 영화 촬영기법이 이전보다 훨씬 진일보했다는 점입니다. 특히 저같이 영화 촬영으로 밥 먹고 사는 사람은 그 혜택을 더욱 직접적으로 누릴 수가 있고요.”
“별말씀을요.”
내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자, 그럼 남은 장비들도 이상 없는지 확인해보도록 하죠.”
“예, 감독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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