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41화 (41/145)

# 41 < 새로운 투자 방법 (1) >

“감사합니다, 회장님.”

내가 최봉팔 회장에게 감사를 표했다.

그가 준 감사패에는 ‘미주 사회 한인들의 명예를 드높인 공을 높이 사서 어쩌고’ 하는 뻔한 내용이 적혀 있었다.

“김 감독.”

“예.”

“김 감독 혹시 우리 한인회가 어떤 일을 하는 곳인지 알고 있나?”

“잘은 모르지만, 아버지께 언뜻 듣기로 미국으로 이주해오는 한인들의 정착을 도와주고 한인들 간의 친목을 도모하는 단체라고 하더군요.”

“맞아. 사실 사람이 고국을 떠나 낯선 타국에서 산다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니지. 특히 미국처럼 인종 차별이 심한 나라에서는 더더욱 그래.”

1970년을 전후해 미국으로 이주한 이민 1세대들.

그들의 삶은 생각처럼 녹록지 않았다.

대다수는 차별과 멸시를 받으며 힘든 시간을 보내야만 했다.

‘우리 아버지만 해도 그랬지. 미국 이민 초기 백인들이 운영하는 농장에서 갖은 핍박을 받으며 힘들게 일해야 했고, 그렇게 번 돈으로 겨우 한인 타운에 슈퍼마켓 하나를 차릴 수 있었으니까.’

사실 미국 내에는 ‘인종의 용광로’라는 별명에 걸맞게 다양한 나라에서 온 이민자들이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들 가운데서도 유독 한국계 이민자들의 소득 수준이 낮았다.

애초부터 경제력을 가지고 있던 유대인이나 전문직 중심의 인도인 이민자들과는 달리 한국 이민자들은 몸뚱이 하나만 가지고 넘어온 사람이 대다수이기 때문이었다.

이로 인해 한국인 이민자들의 삶은 다른 이민자들보다 훨씬 힘들 수밖에 없었다.

‘그러고 보니 전생에서 이런 미국 이민 1세대의 고통과 애환을 그린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큰 인기를 끌었던 기억이 나는군. 크고 작은 영화제에서 무려 60여 개가 넘는 상을 받은 것은 물론 아카데미 여우 조연상까지 받은 영화 <미나리>가 바로 그것이지.’

LA 한인회는 바로 이런 이민 1세대들이 만든 단체였다.

물론 시간이 지남에 따라 내부 권력 다툼이나 각종 이권 문제에 얽히면서 그 의미가 퇴색되기는 했지만, 적어도 이 시기의 한인회는 이주 한인의 조기 정착과 친목 도모라는 본래의 목적에 충실한 단체였다.

“그래서 말인데......”

이주 한인과 한인회의 역할에 대해 장황한 설명을 늘어놓던 최봉팔 회장이 다시 말을 이었다.

“김 감독도 이제 경제적으로 꽤나 여유가 생겼을 테니, 우리 한인회를 좀 후원해줄 수 없겠나? 아직 우리 도움을 필요로 하는 한인들이 제법 많아서 말이야.”

“후원이요?”

“그래. 이곳 한인들이 십시일반으로 회비를 내고, 또 나름 성공한 한인 사업가들이 경제적인 도움을 많이 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모자란 감이 없잖아 있어서 말이야. 그래서 김 감독처럼 유능한 사람이 경제적인 후원을 해주면 우리 한인회의 활동 폭도 지금보다 더욱 넓어질 수 있을 텐데......”

조심스럽게 내 눈치를 살피는 최봉팔 회장.

그런 그를 향해 내가 말했다.

“그야 당연히 도와드려야지요. 저도 아버지도 모두 한국이 고향인 만큼 이곳 한인 사회의 발전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해야죠.”

“크흡. 고맙네, 김 감독.”

“근데, 회장님.”

“이야기하게.”

“지금은 당장은 좀 어려울 것 같습니다. 제가 이번에 새로운 영화 제작에 들어가서 자금 사정이 그다지 여의치가 못한 상황이거든요.”

“아무렴. 나도 김 감독에게 무리하게 후원을 원하는 것은 아니네. 그냥 여유 있을 때마다 조금씩 우리 한인 사회를 위해 도움을 줬으면 하는 것이지.”

“알겠습니다. 아, 그리고......”

잠시 말을 끊은 내가 다시 입을 열었다.

“제가 회장님께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은 것이 있습니다.”

“부탁?”

“예.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이번에 새로운 영화 제작에 들어가는데 제작비의 일부를 이곳 한인들로부터 투자를 받는 것이 어떨까 싶습니다.”

“에?”

최봉팔 회장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LA의 한인들은 대부분 동네 세탁소 내지는 슈퍼마켓과 같은 소규모 자영업자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그런 그들에게 ‘투자’ 같은 건 생각조차 할 수 없는 거창한 일일 뿐이었다.

“하하. 김 감독 농담이 지나치네. 이곳 한인들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이야. 그런 사람들이 무슨 영화 투자를......”

“큰돈을 투자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냥 은행에 적금 넣듯이, 아니면 주식이나 펀드를 사는 것처럼 몇천 달러나 몇만 달러 정도 투자하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큰 수익을 올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

“한번 잘 생각해보십시오, 회장님. 제가 처음으로 만든 영화 <체이스 오브 리벤지>는 제작비 대비 무려 300배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뒤이어 만든 <레이더스>라는 영화는 20배의 수익을 올렸고요. 최근에 만든 영화 은 무려 1천 배의 수익을 올렸습니다. 따라서 만약 처음에 회장님이 저에게 단돈 1달러만 투자했어도, 지금 그 돈은 6백만 달러가 되어 있을 것입니다. 물론 세금이나 부대 비용을 뺀 단순 계산이긴 하지만요.”

최봉팔 회장이 입을 쩍 벌렸다.

옆에 앉아 있던 아버지도 덩달아 입을 쩍 벌렸다.

그도 그럴 것이,

진짜 내 말대로 1달러를 투자했다면, 그 돈이 불과 5년 만에 몇백만 달러가 되는 마법 같은 일을 경험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커헉, 커헉!”

너무 놀란 나머지,

사레까지 걸린 최봉팔 회장이 연신 기침만 해대고 있었다.

그 틈을 타 아버지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저기, 도훈아.”

“예, 아버지.”

“네 말이 무슨 말인지는 알겠는데, 여기 한인들 대다수가 경제적 형편이 좋지 못한 사람들이다. 애써 번 돈을 네 영화에 투자했다가 괜히 그 돈 날려 먹으면......”

그래요.

아버지나 나나 이곳 한인들에게 돌 맞아 죽겠죠.

“말씀드렸잖아요, 아버지. 제가 사람들에게 큰돈을 투자하라고 권유하는 것은 아니라고요. 몇백 달러 정도는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돈이니, 버리는 셈 치고 한번 투자해보면 의외로 큰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거란 뜻이죠.”

일종의 크라우드 펀딩(Crowd Funding)이었다.

내가 지금 제안하고 있는 것은.

‘크라우드 펀딩은 자금이 부족한 사업자가 프로젝트를 공개하고 익명의 다수로부터 소액 투자를 받는 방식이지. 물론 지금은 인터넷과 같은 플랫폼이 만들어지지 않은 시대라 진정한 의미의 크라우드 펀딩과는 다소 다르기는 하지만 말이야.’

사실 내가 살던 전생에서는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영화를 제작하는 영화사들이 제법 많이 있었다.

그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일본에서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 <너의 이름은>이었다.

이 영화는 약 376만 명의 관객을 동원에 흥행에도 제법 성공을 거두었고, 그 결과 펀딩 참여자들에게 50%에 가까운 수익률을 안겨 주었다.

“그러니까 지금 김 감독의 말은 이곳 한인 타운 사람들이 소액만 투자해도 충분히 괜찮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는 뜻인가?”

“예. 만약 이번 영화가 잘 되면 앞으로도 계속 이런 방식으로 제가 만드는 영화 제작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지금 경제적으로 넉넉지 못한 한인 사회가 큰 발전을 이루어낼 수 있을 것입니다. 미국 사회에서의 한인들의 영향력 또한 무시 못 할 정도로 커지게 될 것이고요.”

“허어......”

“후아......”

최봉팔 회장과 아버지가 동시에 긴 한숨을 쏟아냈다.

일평생을 서민으로 살아온 그들에게 이런 거창한 계획은 감당하기 힘든 일이 분명하기 때문이었다.

‘지금 당장은 내 말을 믿기 어렵겠지. 하지만 딱 한 번만 나를 믿고 투자를 한다면, 내 말이 정말로 허황된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거야.’

내가 가진 전생의 기억.

이는 오직 영화의 신만이 가능한 흥행불패의 신화를 충분히 만들어낼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일단......”

최봉팔 회장이 말했다.

“김 감독의 말 대로 한번 해보겠네. 내가 한인회 조직을 총동원해서 김 감독의 생각을 이곳 LA 한인들에게 전해보고, 투자할 의향이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해보지.”

“예, 회장님. 실무적인 부분은 우리 회사 직원들을 파견해서 진행하도록 하겠습니다. 아무래도 이런 일은 회계나 법률적인 지식이 있는 사람이 필요할 테니까요.”

“그러세.”

64.

LA 한인회의 도움으로,

<체이스 오브 리벤지> 제작을 위한 본격적인 크라우드 펀딩이 시작되었다.

내가 한인들에게 내건 조건은 다음과 같았다.

1. 투자 기간은 제작 기간과 상영 기간을 고려하여 총 15개월로 한다.

2. 영화가 손익 분기점을 넘지 못할 경우,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도 있다.

3. 영화가 흥행에 성공할 경우 투자 금액에 따라 수익금을 균등하게 배분한다.

4.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 1인당 투자 비용은 1만 달러 이하로 제한하되, 특별한 경우는 Film Kim과 별도의 협의를 거쳐 투자 금액을 산정한다.

5. 이번 영화 제작에 참여하는 투자자에 한 해, 다음 영화 제작 투자의 우선권을 부여한다.

***

영화사 Film Kim.

레이첼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나를 향해 물었다.

“크라...... 뭐라고요?”

“크라우드 펀딩이요.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투자금을 모집하는 거죠.”

“그게 가능한 일이에요?”

“보통은 불가능하죠. 하지만 우리 Film Kim 같은 경우는 그동안 제작한 모든 영화가 엄청난 수익률을 기록하며 대성공을 거두었고, 그런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며 마치 자기 일처럼 응원해온 한인들이라면 충분히 이번 영화의 투자에 나설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그런 푼돈이 이번 영화 제작에 무슨 도움이 된다고......”

“물론 개개인으로 따지면 푼돈에 불과하죠. 하지만 그 푼돈들이 모이면 과연 그때도 푼돈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요?”

내가 빙긋 웃음을 지었다.

아직 경험해보지 못한 레이첼은 모르겠지만, 나는 이 크라우드 펀딩이라는 방식이 얼마나 위력적인 투자 방식인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가령 예를 들어 LA 한인들 가운데 10%만 이번 크라우드 펀딩에 참여한다고 칩시다. 그리고 그들이 평균 5천 달러씩 투자한다고 하면......”

“천오백만 달러?”

“예. 우리가 목표로 하는 금액에 상당히 근접한 액수가 모일 수 있을 것입니다.”

“맙소사!”

레이첼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킴은 도대체 어떻게 이런 엄청난 생각을 해낸 거예요?”

“그냥 제작비를 마련할 방법을 이리저리 찾다 보니, 우연히 이런 방법이 떠오르더라고요.”

“만약에 말이죠, 킴. 킴이 생각해 낸 이 방법이 성공을 거두게 된다면 할리우드 영화계에 큰 파장을 몰고 올 수도 있겠군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색다른 영화 제작 방법이니 말이에요.”

“요즘같이 경제 위기가 커지고, 그래서 투자사들이 대규모 투자를 꺼리는 상황에서는 꽤 요긴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죠. 무엇보다 그동안 투자자를 찾지 못해 빛을 보지 못한 많은 무명 감독들과 제작자들이 영화 제작에 나설 수 있는 좋은 동력이 될 수도 있을 것이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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