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38화 (38/145)

# 38 < 전편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 (3) >

잭 니콜라슨.

게리 올드만과 더불어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악역 배우이다.

사실 그가 처음부터 악역 전문이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는 연기 스펙트럼이 매우 넓은 배우로 그동안 코미디에서부터 드라마, 호러, 사회고발 영화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들을 소화해냈다.

그런 그가,

악역 배우로서 두각을 드러낸 것은 <더 샤이닝>이라는 영화에서부터였다.

이 작품에서 그는 미치광이 작가 역을 맡았는데, 뛰어난 캐릭터 분석과 메소드 연기로 관객과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았다.

이후에도 그는 다양한 작품에서 특유의 광기 어린 연기를 선보였는데, 이러한 그의 악역 연기가 정점에 달한 것이 바로 팀 버튼 감독이 연출한 영화 <배트맨>의 조커 역할이었다.

‘조커(Joker). 내 기억에 따르면 조커는 할리우드 역사상 최고의 악역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유명한 배역이지.’

사실 잭 니콜라슨 외에도 조커 역을 맡은 배우는 더 있었다.

히스 레저, 자레드 레토, 호아킨 피닉스 등이 그들이다.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인 이들은 모두 조커라는 배역을 훌륭하게 소화해냈다.

하지만 조커 역할을 맡았던 배우들 대부분은 심각한 후유증을 겪게 된다.

영화 촬영이 끝나고도 한참 동안 그 배역에서 헤어나오지 못해 일상생활에 지장을 받을 정도가 된 것이다.

그중에는 약물 중독으로 유명을 달리한 배우도 있었다.

결국 이는 조커라는 캐릭터가 얼마나 악랄하고, 또 위험한 인물인가를 보여주는 방증이라고 할 수 있었다.

‘조커 역할을 맡았던 여러 할리우드 배우들 가운데 단연 돋보이는 인물이 바로 잭 니콜라슨이었지. 조커 역을 맡은 다른 배우들도 물론 훌륭한 연기를 선보였지만, 잭 니콜라슨의 연기를 뛰어넘었다고 평가받은 인물은 단 한 사람도 없었으니까.’

그런데.

만약 내가 ‘악역의 대가’라 불리는 이 잭 니콜라슨을 <체이스 오브 리벤지> 속편에 캐스팅하게 된다면?

‘확실해! 잭 니콜라슨의 훌륭한 악역 연기는 이번 영화의 중요한 흥행 요인으로 작용할 것이 틀림없어.’

루브론이 나를 향해 물었다.

“잭 니콜라슨이라면 내가 잘 알지. 예전에 그와 함께 영화를 찍었던 적이 있어서 말이지.”

“나도 그걸 알고 루브론 너한테 말한 거야.”

“근데 갑자기 잭 니콜라슨은 왜? 킴 너 설마......”

“맞아. 이번 <체이스 오브 리벤지2>에 잭 니콜라슨을 캐스팅하려고. 루브론 너와 같은 악당 역할로 말이야.”

“잭 니콜라슨의 연기야 할리우드 대다수 영화 관계자가 인정할 정도로 훌륭하지. 특히 악역 쪽은 현존하는 할리우드 배우 가운데 그를 따라올 사람이 없을 정도로.”

“맞아. 그래서 만약 잭 니콜라슨이 우리 영화에 출연하게 되면 영화의 퀄리티 또한 한층 높아질 것이 분명하지.”

“그런데 문제는......”

루브론이 살짝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잭 그 양반이 성격이 아주 괴팍하다는 거야. 그 때문에 함께 촬영하는 스태프들이 곤욕을 치른 일이 한두 번이 아니었어.”

잭 니콜라슨의 독특한 성격과 관련된 일화는 꽤 유명했기 때문에 나도 잘 알고 있었다.

영화 <배트맨> 촬영 당시 조커 역할을 맡은 잭 니콜라슨.

당시 그는 촬영 현장에서 스태프들에게 극심한 히스테리를 부렸다고 한다.

이 때문에 도중에 그만두는 스태프가 한둘이 아니었다.

연출을 맡은 감독과 심하게 말다툼을 벌인 일도 있었다.

심지어 촬영 일정을 펑크내고 며칠 동안 잠수를 탄 적도 있었다고 한다.

물론 그도 광기 어린 캐릭터, 그리고 몇 시간 동안 특수분장을 받아야 하는 조커를 연기하는 데서 오는 정신적 압박과 스트레스가 상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를 감안 하더라도, 그의 행동은 분명 다른 출연 배우들과 스태프들에게는 심한 부담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지금 루브론이 염려하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었다.

“나도 어느 정도는 알아. 잭 니콜라슨이 꽤나 독특한 성격을 가진 배우라는 건. 하지만 할리우드의 유명 배우들 가운데 이 정도 이름 값하지 않는 사람들은 거의 없잖아?”

“하긴 뭐, 다들 한 성깔 하기는 하지. 촬영장에서도 자기 고집과 주관을 잘 꺾으려 들지 않아서 감독과 자주 싸우기도 하고. 하지만 잭 니콜라슨은 그중에서도 유독 더 심한 케이스라서 킴 네가 걱정돼서 하는 말이야.”

“너무 걱정하지 마, 루브론. 문제가 생기면 그때그때 대화로 잘 풀어가면 되니까. 그리고 난 연기 못하는 배우보다는 차라리 성격은 괴팍해도 연기 잘하는 배우가 훨씬 낫다고 생각하니까.”

루브론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그래서 내가 뭘 하면 되는데?”

“잭 니콜라슨과 내가 만날 수 있도록 주선을 좀 해줘. 회사에서 에이전시를 통해 공식적으로 제의를 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런 딱딱한 방법보다는 감독인 내가 직접 가서 그를 설득하는 편이 훨씬 그가 영화 출연을 수락할 확률이 높으니까. 영화나 캐릭터에 대한 열정도 더 높아질 테고.”

“알았어. 내가 연락해보고 약속 잡으면 다시 말해줄게.”

***

잭 니콜라슨에 이어,

내가 이번 영화에 섭외하려는 또 한 명의 악역 배우가 있었다.

그는 바로,

‘안소니 홉킨즈. 영화 <양들의 침묵>에서 연쇄 살인마 한니발 렉터 박사 연기로 관객과 영화 관계자의 극찬을 받았던 배우이지.’

안소니 홉킨즈는 영국 출신의 할리우드 영화배우이다.

원래 영국에서 TV 드라마와 연극배우로 활동하다 1970년대에 야심차게 할리우드로 진출했는데, 결과는 썩 좋지 못했다.

그가 출연한 영화들이 연달아 흥행에 실패하면서 본국에서 만큼의 유명세를 얻지는 못한 것이다.

그런데.

안소니 홉킨즈를 일약 스타 덤에 올려놓은 영화가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조나단 드미 감독이 연출한 영화 <양들의 침묵>이었다.

이 영화에서 그는 보는 사람들로 하여금 소름이 돋을 정도로 완벽한 사이코패스 연쇄 살인마 역할을 소화해냈는데, 이 한 편의 영화로 그는 할리우드 영화배우로서의 입지를 완벽하게 굳히게 되었다.

‘하지만 현재 안소니 홉킨즈는 할리우드에서는 무명 배우나 다름없는 신세이지. 그러니 그를 이번 영화에 캐스팅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닐 거야.’

사실 이번 영화의 시나리오를 구상하면서,

염두에 둔 악역 배우는 잭 니콜라슨과 안소니 홉킨즈 두 사람뿐만은 아니었다.

마음 같아서는 할리우드의 유명한 악역 배우들, 아니 악역 배우가 될 사람들을 모조리 캐스팅하고 싶었다.

하지만 개성 강한 배우들이 너무 많이 출연하면 오히려 영화가 산만해질 우려가 있었다.

그래서 가장 대표적인 악역 배우인 이 두 사람을 선택한 것이었다.

‘그나저나 아주 볼 만하겠군. 할리우드의 대표적인 연기파 배우 두 사람이 악역 연기 대결을 펼치게 될 테니 말이야. 이러다 루브론이 주눅 들어서 제대로 연기를 펼치지 못할지도 모르겠군, 흐흐.’

앞으로 할리우드를 주름잡을 대표적인 악역 배우들의 출연.

이는 막대한 제작비를 투입한 화려한 자동차 추격 씬과 더불어 내가 <체이스 오브 리벤지2>를 성공으로 이끌 주요한 무기였다.

60.

할리우드 인근의 고급 레스토랑.

종업원의 안내를 받으며 한 여성이 안으로 들어섰다.

길게 풀어헤친 금발 머리.

가슴선이 드러날 정도로 깊게 파인 검은 드레스 위로 드러나는 잘록한 허리와 매끈한 다리.

모르는 사람이 보면 할리우드의 유명 여배우로 착각할 정도로 예쁜 얼굴과 몸매를 가진 그녀의 정체는,

“어서 와요, 레이첼.”

내가 레이첼이 앉을 의자를 빼주며 말했다.

얼마 전 나는 영화 을 성공적으로 연출한 레이첼에게 일종의 특별 보너스로 식사 대접을 하기로 했는데, 오늘이 바로 약속한 날이었다.

“여기가 할리우드에서 가장 유명한 레스토랑이라고 해서 예약을 하긴 했는데 레이첼 마음에 들려나 모르겠네요.”

“호호, 의외네요. 킴이 이런 유명한 식당을 다 알고 있다니.”

“왜요? 전 이런 고급 식당을 알면 안 됩니까?”

“그게 아니라 사람들이 킴은 이런 곳보다 LA 한인 타운에 있는 한식당을 더 좋아한다고 하더라고요. 그렇지 않은 경우는 사무실에서 샌드위치 같은 걸로 대충 때운다고 하던데요?”

“아, 그게......”

사람 입맛이 그렇게 쉽게 변하는 것이 아니더군.

빵과 스테이크는 암만 먹어도 밥과 국이 주는 포만감을 느낄 수가 없더라고.

특히 나 같이 평생을 한식만 먹어온 사람은 더욱더.

속마음을 감추며 내가 말했다.

“어려서부터 워낙 아버지가 해주시는 한국 음식에 길들어져 있어서요. 바꾸려고 노력해도 잘 안 되네요.”

“굳이 바꿀 필요는 없을 것 같은데요? 사람이 음식 정도는 자기 먹고 싶은 것만 먹고 살아도 되니까요, 호호.”

“그런가요?”

“네. 그런 의미에서 다음번 식사는 제가 킴이 좋아하는 한국식으로 살게요. 이참에 저도 한국 음식 한번 먹어보게요.”

“후회하실 텐데요?”

“왜요?”

“한국 음식은 워낙 맵고, 짠 편이라서요. 그래서 가끔 직원들 데리고 가면 거의 물을 한 통씩 먹더라고요, 하하하.”

“괜찮아요. 전 음식은 안 가리고 잘 먹는 편이니까. 게다가 미국 음식도 너무 달고 기름진 편이라 제 입맛하고는 잘 안 맞더라고요.”

내가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이었다.

“사실 여긴 제 친구 루브론이 추천을 해줘서 알게 된 곳입니다. 레이첼 말마따나 제가 이런 식당을 잘 안 다녀서 말이죠.”

“루브론이라면 <체이스 오브 리벤지>에서 ‘티토’역으로 나왔던 배우 말이죠?”

“네. 얼마 전 캐스팅 문제로 오래간만에 루브론 그 친구를 만났거든요.”

“아 참, 그러고 보니......”

레이첼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킴이 <체이스 오브 리벤지> 속편을 제작할 예정이라고 하던데?”

“맞습니다. 일단 시나리오는 거의 완성된 단계고요, 본격적인 프리 프로덕션 이전에 제가 직접 스태프와 배우들을 만나 보고 있는 중이죠.”

“킴이 직접요?”

“예.”

사실 할리우드에서는 감독이 직접 나서 스태프와 배우들을 섭외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이런 일은 대부분 영화사나 제작팀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이 일반적이다.

물론 감독이 제작을 겸하는 소규모의 영화사의 경우에는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Film KIm은 이미 앞선 세 편의 영화로 메이저급에는 한참 못 미치지만 그래도 중견급 정도는 될 정도로 규모가 성장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전처럼 내가 직접 스태프와 배우들을 만나고 다니는 것이 레이첼의 눈에는 꽤나 이상하게 비치는 것도 당연했다.

“레이첼도 아시다시피 <체이스 오브 리벤지>는 제가 연출을 맡은 첫 번째 영화입니다. 그래서 저 나름대로는 특별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영화이죠.”

“그렇다고 하나에서부터 열까지 킴이 다 할 수는 없는 일이잖아요? 킴의 몸이 몇 개나 있는 것도 아니고.”

“하하. 다른 사람보다 조금 더 많이 움직이면 될 일입니다. 게다가 아직 시간적 여유도 많이 있으니까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나보다 할리우드 영화판을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지.

전생의 기억 덕분에 나는 앞으로 이곳 할리우드가 어떻게 변해 갈지, 어떤 배우가 뛰어난 연기력을 잠재하고 있는지를 너무나도 잘 알고 있으니까.

“그보다, 레이첼. 제가 상의드릴 일이 한 가지 있는데.”

“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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