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7 < 전편보다 나은 속편은 없다? (2) >
58.
영화사 Film Kim.
내가 <체이스 오브 리벤지> 속편 시나리오를 살펴보고 있었다.
<체이스 오브 리벤지>는 나의 첫 감독 데뷔작이다.
‘자동차 추격 액션 영화’의 선구 격이라 할 수 있는 이 영화는 월드 박스 오피스 1억 달러를 기록하며 흥행 면에서도 큰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한정된 제작비로 인해 제대로 된 자동차 추격씬을 구현해내지 못했다.
이에 나는 다시 이 영화의 속편을 제작하기로 결심한 것이다.
그것도 무려 5천만 달러라는 대규모의 예산을 투입해서.
‘5천만 달러는 우리 돈으로 약 300억. 이는 할리우드 역사상 최대 규모의 영화 제작비이지.’
블록버스터급 영화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조스>의 성공 이후 할리우드에서는 대규모 제작비를 투입한 영화 제작이 증가하고 있었다.
영화 <조스>를 제작하는데 900만 달러라는 큰돈이 들어갔지만, 그 수익은 무려 30배에 가까운 2억 6천만 달러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당시 할리우드 영화 관계자 대다수는 그 어떤 영화도 2억 달러의 흥행 성적을 올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조스>는 이러한 선입견을 완전히 깨부숴버렸다.
이에 할리우드 영화계에서는 대규모 예산을 투입한 블록버스터급 영화 제작이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좋은 영화만 만들면 제작비가 얼마가 들어가든 상관없이 충분히 큰 수익을 낼 수 있다는 사실이 영화 <조스>를 통해 증명됐기 때문이다.
‘아무리 그래도 지금 시기에 무려 5천만 달러의 제작비가 들어간 영화가 만들어질 것이라고는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하겠지. 따라서 이 소식이 전해지면 할리우드 영화 관계자들이 또 한 번 깜짝 놀라게 될 테고.’
하지만 많은 제작비가 영화의 질을 담보하는 것은 결코 아니었다.
따라서 <체이스 오브 리벤지2>가 제대로 된 성공을 거두기 위해서는 시나리오 작성에서부터 실제 촬영에 이르기까지 모든 작업이 완벽하게 이루어져야만 했다.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시나리오 작업이고.’
내가 구상한 <체이스 오브 리벤지2>의 대략적인 시나리오는 다음과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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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변화와 에너지 고갈 위기가 점점 심화되고 있는 근미래.
한 남자가 교도소 문을 나서고 있었다.
형기를 마치고 막 출소한 주인공 ‘이든’이었다.
전편에서 이든은 자신의 가족을 살해한 악당 ‘티도’ 일당을 추격해 가족들의 복수를 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이든은 1급 살인죄로 기소되지만, 상대가 온갖 악행을 저질러 온 악당이라는 점, 그들에 의해 자신의 가족이 살해된 점, 그동안 경찰로서 많은 공을 세운 점 등이 정상 참작되어 5년 형을 선고받았다.
그런데.
이든이 출소하는 날만을 손꼽아 기다려온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바로 죽은 악당 티토의 졸개들.
각양각색의 오토바이를 탄 티토의 졸개들이 이든이 출소한다는 소식을 미리 알고 교도소 문 앞에서 진을 치고 있었던 것이다.
- 부다다다당!
- 절그렁, 절그렁!
고막을 찢을 듯한 요란한 오토바이 엔진음,
악당들이 몸에 두른 쇠장식이 부딪히는 소리와 함께 악당들이 일제히 이든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할 무렵,
- 부아아아앙!
- 콰쾅!
멀리서 커다란 트럭 한 대가 악당들을 향해 정면으로 돌진했다.
차에서 내린 사람들은 완전 무장을 한 특수 경찰 조직원들.
이들은 순식간에 악당들을 제압했다.
덕분에 위기에서 벗어난 이든은 그들로부터 놀라운 소식을 전해 듣게 되는데,
그것은 죽은 줄로만 알았던 악당 ‘티토’가 구사일생으로 살아났고,
다시 세력을 규합한 티도가 도시의 질서를 위협할 가공할 음모를 꾸미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주인공 이든은 특수 경찰 조직에 합류하라는 그들의 제안을 받아들여 악당 티토의 위협으로부터 또 한 번 도시를 구하기 위해 나선다.
물론 여기에는 아직 못다 한 복수를 완수하려는 그의 개인적인 이유도 숨어있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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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ide or Die. (달리거나 죽거나)’
영화 <체이스 오브 리벤지2>의 부제이기도 한 이 말은 주인공 이든이 특수 경찰 조직의 의뢰를 받아들이며 한 말이기도 하다.
이 말처럼 이든은 악당 티토의 진정한 최후를 확인하기 위해 영화의 러닝타임이 끝날 때까지 숨 막힌 추격전을 펼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나타나는 스펙터클 한 대규모 자동차 추격씬은 관객들의 카타르시스를 완벽하게 충족시켜줄 것이 분명했다.
‘<체이스 오브 리벤지>와 같은 오락 영화의 가장 큰 목적은 재미와 볼거리! 이번 영화는 그 목적에 완벽하게 부합하도록 제작을 해야 해.’
전편을 능가하는 화려한 자동차 추격 액션씬.
여기에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명배우들의 연기가 더해지면 역대 최고 흥행 성적을 기록할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드는 것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었다.
생각을 마친 내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전편에서 영화 제작에 참여한 배우와 스태프들을 다시 규합하기 위해서였다.
59.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 시스템은 전생에서 내가 몸담았던 충무로의 그것과 확연하게 달랐다.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체계적인 분업화였다.
그 때문에 영화감독의 권한은 몹시도 제한적이었다.
영화감독보다는 오히려 제작자의 영향력이 훨씬 컸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일명 ‘누구누구 사단’이라 불리는 조직적인 스태프들을 갖춘 감독이 있었으니,
그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조지 루이스나 스티븐 스필버그와 같은 유명감독들이다.
그 덕분에 이들은 다른 외부의 압력 없이 자유롭게 자신이 가진 크리에이티브를 발휘할 수 있는 것이었다.
물론 이러한 시스템이 나쁜 것은 아니었다.
할리우드의 분업화된 영화 제작 시스템은 감독의 폭주로 영화의 내용이 산으로 가는 것을 막고, 보다 원만하고 효율적인 영화 제작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에 나는 결심했다.
그것은 바로,
‘앞으로 나는 나만의 독립된 스태프, 일명 ‘제임스 킴 사단’이라 불리는 조직을 구성하되, 영화 제작과 관련된 그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면서 영화를 제작할 생각이지.’
그 시작이 될 영화가 바로 <체이스 오브 리벤지> 2탄이었다.
***
할리우드 인근의 고급 호텔 커피숍.
창가 쪽 자리에 앉아 있는 나를 향해 검은 선글라스를 깊게 눌러쓴 남자가 다가왔다.
“여, 킴. 이게 얼마 만이야?”
두 팔을 활짝 벌리며 환하게 웃는 남자.
친구 루브론이었다.
“어서 와, 루브론. 그동안 잘 지냈어?”
“그럭저럭. 아 참, 그 소식은 들었어. 최근 킴이 만든 영화들이 모두 흥행에 큰 성공을 거두었다는 거. <레이더스>도 그렇고, 도 그렇고, 두 영화 모두 전 세계인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며?”
“운이 좋았어. <레이더스>의 경우는 조지가 쓴 영화 시나리오가 무척 좋았기도 했고.”
“역시 킴 넌 정말 대단한 사람이야. 어떻게 만들어내는 영화마다 그렇게 족족 성공을 거둘 수 있는 건지.”
“그보다 루브론 넌? 넌 요즘 어때?”
“뭐가?”
“후속작 말이야. 전에 만났을 때, 새로운 영화에 캐스팅되었다면서?”
<체이스 오브 리벤지>의 성공 이후 루브론은 일약 스타덤에 오르게 되었다.
할리우드의 가장 섹시한 악역 배우 1위에 오르며 특히 여성 팬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게 된 것이다.
이러한 인기에 힘입어 그는 새로운 액션 영화의 주인공으로 전격 캐스팅 되었다.
하지만 결과는,
“어휴, 그 얘기라면 말도 마.”
“왜? 잘 안 됐어?”
“잘 안 된 정도가 아니라 쫄딱 망했어. 무려 천만 달러의 제작비를 투입했는데, 수익은 그 절반도 채 건지지 못했으니까.”
“영화 산업이라는 것이 원래 그래. 다른 어떤 분야보다 위험도가 큰 곳이지. 실제로 해마다 수익을 내는 영화는 전체 영화의 불과 20% 내외에 불과하니까.”
“그러니까 킴 네가 더 대단한 거지. 앞서 만든 영화들이 모두 다 엄청난 성공을 거두었으니까 말이야.”
영화 제작은 막대한 자금과 인력이 투입되는 분야임에도 불구하고, 성공 가능성은 매우 낮은 편이다.
많은 영화가 제작비도 제대로 건지지 못한 채로 묻혀버리기 일쑤였다.
대신 흥행에 성공하였을 경우 그 수익의 규모는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컸다.
열 편 가운데 아홉 편을 실패해도, 마지막 한편만 흥행에 성공하면 이전의 실패를 모두 보상받고도 남음이 있었다.
승자가 모든 것을 가지는 ‘Winner take all’의 구조를 가지고 있는 것이 바로 영화 산업의 특징이었다.
“그나저나 킴. 갑자기 날 왜 보자고 한 거야? 설마......”
루브론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새로운 영화에 날 캐스팅 하려고?”
“맞아.”
“어떤 영화인데?”
“<체이스 오브 리벤지>의 속편인 ‘Ride or Die’. 솔직히 할리우드에 루브론 너 만한 악역은 또 없으니까.”
“읔! 또 악역이야? 그동안 다른 영화에 출연해서 겨우 악당 이미지를 벗었더만.”
“싫으면 말고.”
“누, 누가 싫대? 개런티 좀 올려보려고 한번 튕기는 척해본 거지, 흐흐.”
“전편에서도 그랬지만 이번 속편에서는 특히 악역들이 매우 중요해. 주인공 이든 만큼이나 큰 비중으로 차지하는 것이 바로 그들이지.”
“악역‘들’? 그럼 나 말고도 악당 역할을 맡을 배우들이 더 있다는 거야?”
“그래. 이번 속편에서는 주인공 이든이 경찰 특수 조직원들과 합심해서 악당들과 싸울 예정이거든. 그 때문에 악당들 캐릭터도 전편보다 훨씬 많은 인원을 투입할 예정이야. 그것도 각자 독특한 개릭터성을 갖춘.”
“출연 배우들이 많아진다는 것은 영화의 규모도 그만큼 커진다는 뜻이겠네?”
“물론이지. 이번 영화는 전편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스케일이 커질 거야.”
“제작비는 얼마나 예상하고 있는데?”
“오천만 달러. 그것도 순수 제작비만.”
“풉!”
루브론이 순간 마시던 음료를 뿜었다.
그 역시 오천만 달러라는 천문학적인 제작비에 깜짝 놀란 것이다.
“진짜야? 정말로 이번 영화 제작비가 오천만 달러나 돼?”
“응.”
“투자사는 확보했고?”
“아직은. 지금부터 차근차근 찾아봐야지.”
“허어, 오천만 달러라니......”
루브론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런 그를 향해 내가 다시 말했다.
“어때? 이번 영화에 다시 출연할 생각 있어?”
“당연하지. 할리우드의 흥행 보증 수표인 제임스 킴 감독이 제작하는 영화를 마다하는 건, ‘대가리 총 맞은 놈’이나 하는 짓이라고 많은 할리우드 배우들이 반농담으로 이야기하잖아.”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몰라? 전에 네가 만든 <레이더스> 출연 제의를 받았다가 드라마 촬영 스케줄 때문에 출연을 거절한 톰 핸슨. 그 사람이 한 언론 인터뷰에서 그렇게 말했잖아. 레이더스에 출연을 고사한 자신의 머리를 총으로 쏴버리고 싶다고. 그 이후로 사람들이 이런 말을 쓰는 건데?”
“크. 톰 핸슨 일이라면 나도 기억나는군.”
소문난 인종차별주의자인 톰 핸슨.
그는 동양인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는 이유로 <레이더스>의 출연을 고사했다.
하지만 이 영화가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흥행을 기록하는 모습을 보면서 속 꽤나 상했을 것이다.
더불어 이후로 그는 이렇다 할 대표작 없이 배우로서의 내리막길만 걷게 된다는 것을 전생의 기억 덕분에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좋아. 그럼 이번 속편에서도 악당 티토 역할은 루브론 네가 맡는 것으로 하고, 대신에 내가 한 가지 부탁이 있어.”
“뭔데?”
“루브론 너 ‘잭 니콜라슨’이란 배우 알지?”
“잭 니콜라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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