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 < 최초의 파운드푸티지 영화 (5) >
52.
미국 버몬트주 영화 촬영장.
레이첼이 오래간만에 현장을 찾아온 나를 반가운 얼굴로 맞았다.
“어머, 킴이 연락도 없이 웬일이에요?”
“웬일은요. 오늘이 영화의 대미를 장식할 마지막 엔딩 씬을 촬영하는 날인데, 제작자인 내가 나와보지 않을 수 없죠.”
“제가 못미더워서는 아니고요?”
“하하, 설마요. 그나저나 다들 몰골이 말이 아니군요. 그동안 얼마나 고생했는지를 알 수가 있을 것 같아요.”
내가 주변 스태프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벌써 한 달 가까이 계속된 야외 촬영과 연이은 밤샘 촬영.
여기에 베링턴 지역의 특성상 예고도 없이 쏟아지는 빗줄기로 인해 촬영 스태프들의 몰골은 말이 아니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스태프들이 이번 영화에 나오는 귀신인 줄 착각할 정도로.
“스태프들이 고생한 만큼 영화 성적도 잘 나왔으면 좋겠네요.”
“그러게요. 아 참, 레이첼. 영화 후반작업 준비는 내가 미리 다 해뒀으니까 우리가 계획한 대로 여름철에 맞춰 영화를 개봉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잘됐네요.”
때마침 스태프 하나가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촬영 준비가 모두 끝났음을 알려주기 위함이었다.
“촬영 끝날 때까지 킴도 현장에 계속 있을 거예요?”
“예. 스태프들 간식거리도 준비해 왔으니까 촬영 끝나고 나누어주면 될 것 같아요.”
“고마워요, 킴. 그럼 이따가 촬영 끝나고 봐요.”
레이첼이 촬영장으로 다시 돌아갔다.
뒤이어 촬영 시작을 알리는 조감독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 준비 다 됐으면 바로 슛 들어갑니다. 3, 2, 1, 레디, 액션!”
- 탁!
둔탁한 슬레이트 소리를 시작으로,
드디어 영화의 마지막 씬 촬영이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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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치이익!
잠깐의 노이즈 현상과 함께 화면이 밝아졌다.
배터리를 교환하느라 잠시 카메라가 꺼졌다가 다시 들어왔다는 설정이었다.
뒤이어 지친 기색이 역력한 남자의 얼굴이 화면에 나타났다.
다큐멘터리 제작팀의 카메라맨인 존이었다.
함께 왔던 샘과 엠마, 수잔의 연이은 실종.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걸어도 걸어도 결국 제자리도 돌아오게 되는 베링턴 숲.
잊을만하면 나타나는 정체불명의 검은 그림자의 존재.
그 덕분에 존은 이미 삶의 희망을 잃은 사람처럼 보였다.
“이제 갈아 끼울 배터리조차 남지 않은 건가.”
존이 자조하듯 읊조렸다.
그의 손에 들린 카메라는 더 이상 다큐멘터리 촬영이라는 목적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미 오래 전에 방전된 손전등의 역할을 대신하는 도구일 뿐이었다.
아울러 존의 일행이 이곳에서 당한 일들을 바깥 사람들에게 알려줄 유일한 기록이기도 했다.
- 스르륵! 스르륵!
어디선가 들려오는 음산한 소리.
처음 수잔이 실종될 때,
뒤이어 엠마와 샘이 실종될 때,
그때마다 어김없이 등장했던 정체불명의 검은 그림자가 내는 소리였다.
그리고 이는,
존의 최후 또한 얼마 남지 않았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이제 내 차례인가.’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영상에 남기려는 듯, 존이 손에 든 카메라로 자신의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다.
화면에 나타난 그의 얼굴은 공포로 얼룩져 있었고, 동공은 지진이라도 난 듯 심하게 흔들리고 있었다.
그러기를 잠시,
“아아아아아악!”
날카로운 비명과 함께 갑자기 존이 바닥에 쓰러지더니 어디론가를 향해 질질 끌려가기 시작했다.
급히 손을 뻗어 근처의 풀이나 나무줄기를 움켜쥐었지만, 아무 소용이 없었다.
마치 강한 자석에라도 이끌린 듯, 그의 몸은 빠른 속도로 바닥에 끌려 이내 어둠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고.
존의 손에서 떨어진 카메라,
충격으로 렌즈에 거미줄처럼 금이 간 카메라 화면이 이 기괴한 장면을 고스란히 담아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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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컷! 오케이, 좋았어요.”
메가폰을 타고 흘러나오는 레이첼의 목소리.
뒤이어 스태프들이 우르르 현장 수습에 나섰다.
53.
영화 의 촬영이 모두 끝났다.
촬영에 소요된 시간은 불과 한 달 남짓.
그야말로 저예산, 초(超)단기 제작 영화인 것이다.
이제 남은 것은 포스트 프로덕션이라 불리는 영화 후반작업.
이 작업이 모두 끝나면 비로소 극장 스크린을 통해 영화가 관객들에게 선을 보이게 되는 것이다.
영화 제작에 있어 포스트 프로덕션은 실제 촬영이 이루어지는 프로덕션 과정 못지않게 중요한 작업이다.
특히 이번 영화가 공포영화인 만큼 편집과 음향작업은 무엇보다 중요했다.
효과적인 편집을 통해 영화의 속도감과 긴장감을 높이고, 여기에 적절한 배경음과 효과음을 입혀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공포감을 더욱 증폭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나는 할리우드의 이름난 편집자와 음악감독 두 사람을 영입했다.
그동안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 편집작업을 도맡아 해온 웨인 워만, 그리고 오컬트 영화 <오멘>에서 음악 작업을 담당했던 버나드 홀먼이 그들이었다.
사실 유명세만 놓고 보면,
두 사람이 이런 저예산 영화에 참여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었다.
하지만 아멜리아의 적극적인 추천,
여기에 파격에 가까울 정도로 참신한 이번 영화의 촬영기법,
무엇보다 지난 두 작품 <체이스 오브 리벤지>와 <레이더스>를 통해 쌓은 나의 영화감독으로서의 명성 덕분에 이 두 사람도 흔쾌히 이번 영화 작업에 동참하는 것을 허락한 것이다.
그 결과,
후반작업을 거친 영화 의 완성도는 이전의 그것보다 훨씬 높아지게 되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공포심 또한 더욱 배가될 것은 두말할 나위 없었고.
***
영화 제작사이자, 투자배급사인 유니온 픽처스.
레이첼과 내가 영화 의 상영 문제에 관해 논의하고 있었다.
“마케팅이요?”
“네. 이번 우리 영화가 파운드 푸티지, 다시 말해 실제 발견된 영상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를 표방하고 있는 만큼 영화 외적인 마케팅이 무엇보다 중요한 요소입니다.”
전생에서 내가 본 <블레어 위치>란 영화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었다.
내 기억에 따르면,
<블레어 위치>는 공포영화 사상 유례가 없는 엄청난 흥행 성적을 올린 영화이다.
겨우 6만 달러의 제작비로 북미 지역에서만 1억 4천만 달러의 관람료 수익을 올린 것이다.
‘제작비 대비 무려 800배’라는 이 엄청난 수익은 급기야 기네스북에까지 등재되기도 했다.
하지만 <블레어 위치>는 영화 내적인 요소보다는 영화 외적인 요소, 다시 말해 적극적인 마케팅을 통해 성공을 거둔 영화였다.
‘마케팅’과 ‘최초의 파운드 푸티지 영화’라는 점을 제외하면 이 영화의 전반적인 내용은 다소 지루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하지만 다양하고 적극적인 마케팅을 통해 제작자들은 이 영화가 ‘실제 있었던 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관객들에게 심어주었고, 그 결과 영화는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입소문이 퍼지면서 엄청난 흥행 성적을 올릴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킴의 말은 각종 언론 매체와 영화 잡지들을 통해 오래전에 있었던 베링턴 삼각지대 실종 사건을 다시 한번 주목받게 만들자는 건가요?”
“예. 그렇게 되면 이번 우리 영화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도 더불어 높아지게 될 테니까요. 그리고 이는 곧바로 영화의 흥행으로 이어지게 될 것이고요.”
“흐음. 나쁘지 않은 생각이기는 한데, 나중에 이 영화가 실화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 관객들이 허탈감을 느끼게 되지는 않을까요?”
“물론 그럴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이번 영화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시도되지 않았던 ‘파운드 푸티지’라는 장르를 개척했다는 측면에서 오히려 박수를 보내는 관객이 훨씬 더 많을 것입니다.”
내 말에 수긍한다는 듯 레이첼이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이번 영화는 기존의 공포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파격에 가까운 참신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그녀가 이 영화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느꼈던 그 충격을 이번 영화를 본 관객들 또한 고스란히 느낄 수 있을 것이었다.
“좋아요. 킴의 말대로 각종 언론 매체와 영화 잡지를 통해 베링턴 삼각지대 실종 사건이 다시 한번 세간의 주목을 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 볼게요.”
그리고 그 관심이 절정에 달했을 때가,
우리 영화의 본격적인 상영이 시작될 시기였다.
53.
1980년 여름.
미국의 약 1,000여 개 개봉관에서 공포영화 의 상영이 시작되었다.
여름철은 공포영화 상영의 최적기라 할 수 있다.
공포영화가 주는 오싹함은 한여름의 무더위를 순식간에 날려버리고 오히려 한기(寒氣)마저 느끼게 해주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계절보다 얇은 관객들의 옷차림, 여기에 극장의 서늘한 냉방 시스템이 더해지면 공포영화에 더욱 몰입하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진다.
이런 이유로 대다수 공포영화가 개봉 시기를 여름으로 잡는 것이다.
영화 개봉 1주 차.
기대만큼의 흥행 성적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었다.
공포영화라는 장르적 특성, 그리고 상대적으로 적은 개봉관 수 때문이었다.
하지만.
개봉에 앞서 언론 매체와 영화 잡지 등을 통해 진행된 다양한 마케팅 덕분에 영화에 대한 관심은 베리텅 삼각지대의 미스터리함 만큼이나 사람들의 관심을 끌기 충분했다.
“분위기가 좀 어때요?”
영화 에 대한 관객들의 관심도를 묻는 나의 질문에 레이첼이 대답했다.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확실히 대중의 관심을 끄는 데는 성공한 것 같아요. 많은 언론 매체와 영화 잡지에서 이 영화가 진짜 실화인지 아닌지에 대한 논쟁이 오고 갈 정도니까요.”
“그래요?”
“네. 더군다나 영화를 본 관객 중에는 911에 직접 신고를 한 사람도 있다더군요. 영화에 등장한 네 사람을 찾아달라고 하면서 말이죠.”
“좋은 현상이군요. 영화의 내용이 사람들에게 논란거리가 된다는 건 영화 흥행의 측면에서는 청신호라고 할 수 있으니까요.”
“그렇죠. 회사 직원들의 분석에 따르면 아마 이번 주말을 기점으로 분위기가 달라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렇게 된다면 다행이고요.”
영화 개봉 2주 차.
영화에 대한 입소문이 퍼지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그 때문인지 극장을 찾는 관객들의 숫자도 눈에 띄게 늘어나기 시작했다.
지난주 내내 하위권에 머물러 있던 박스 오피스 순위도 서서히 상위권으로 치고 올라오기 시작했다.
그러자 배급사인 유니온 픽처스 내에서도 서서히 개봉관 확대에 대한 논의가 진행되기 시작했다.
개봉 3주 차.
드디어 기대했던 반응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영화에 대한 소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더니, 급기야 관객들이 너도나도 극장으로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다.
이에 유니온 픽처스에서는 발 빠르게 개봉관 확대를 결정했다.
그 결과 기존의 1,000여 개에 불과했던 의 개봉관이 두 배 이상 늘어나 2,500여 개로 확대되었다.
물론 여기에는 극장주들의 적극적인 요청이 있었음은 두말할 필요도 없었고.
개봉 4주 차.
은 이미 극장가의 큰 화제가 되어 있었다.
그 이유는 이 영화가 실화(實話)라는 소문이 관객들 사이에서는 완전히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덕분에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몰입도는 더욱 높아질 수밖에 없었고, 이는 이번 영화의 엄청난 흥행을 가져온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개봉 5주 차.
애초 계획에는 없었던 연장 상영이 시작되었다.
하지만 관객의 수는 여전히 줄어들지 않고 있었다.
아직 영화를 보지 못한 관객들이 상영 마지막 주라는 소식을 듣고 영화관으로 몰려든 것이다.
그 결과,
영화 은 공포영화 사상 유례없는 관객 수와 흥행 성적을 기록하게 되었다.
북미 지역에서만 무려 2억 달러의 관람료 수익을 올리게 된 것이다.
이는 제작비 대비 무려 ‘일천 배’ 수익이라는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기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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