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33화 (33/145)

# 33 < 최초의 파운드푸티지 영화 (4) >

51.

영화 의 촬영은 무척이나 빠르게 진행됐다.

거의 모든 촬영이 스테디캠을 이용한 원 테이크 방식으로 이루어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정도 속도면 애초 계획했던 프로덕션 기간보다 훨씬 빨리 촬영을 끝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촬영 현장이 어느 정도 안정이 되자, 나는 사무실로 돌아와 영화의 후반작업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이제 현장은 레이첼 혼자서도 충분히 통제할 수 있었고, 따라서 굳이 나까지 현장에 나갈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이에 나는 사무실에서 포스트 프로덕션 준비에 집중하면서 필요할 경우 가끔씩만 현장에 들러 진행 상황을 확인하기로 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실력 있는 편집자들을 구하는 것인데......’

사실 공포영화는 후반작업이 훨씬 더 중요하다.

정교한 편집과 적절한 사운드트랙이 뒷받침되어야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공포를 극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편집 관련 일은 아멜리아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겠어.’

아멜리아는 조지 루이스의 부인이었다.

아울러 그녀는 할리우드 내에서 알아주는 실력을 가진 편집자이기도 했다.

실제 그녀는 할리우드 최고의 흥행작인 <스페이스 워즈> 1, 2, 3탄의 편집을 모두 담당했는데, 특히 3편의 경우 6곳의 장소에서 동시에 이야기가 진행되는 아주 복잡한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편집가로서의 뛰어난 능력을 발휘해 관객들이 스토리 진행을 이해하기 쉽게 만들었다.

그 덕분에 아카데미 편집상을 수상하기도 했고.

따라서 아멜리아가 이번 영화의 편집을 맡아준다면 영화의 완성도는 더욱 높아질 것이 분명했다.

생각을 마친 내가 조지 루이스의 사무실에 전화를 걸었다.

“여보세요, 조지?”

- 그래, 킴. 무슨 일이야?

“조지에게 부탁할 일이 있어서요.”

- 뭔데?

“제가 이번에 제작하고 있는 영화 의 후반작업을 맡아줄 편집자들을 구하고 있는데, 아멜리아의 도움을 좀 받아볼까 해서요.”

- 그건 좀 힘들 것 같은데?

“왜요?”

- 요즘 아멜리아가 참여하고 있는 영화작업이 있어서.

“그래요? 그럼 다른 사람을 좀 소개받을 수 있을까요? 그쪽으로는 아멜리아가 꽤 인맥이 넓잖아요.”

- 그럼 킴이 직접 한번 아멜리아를 만나봐.

“제가요?”

- 그래. 요즘 아멜리아가 작업 때문에 거의 집에 못 들어오다시피 하고 있거든. 나도 이번에 새로 영화 제작에 들어가서 마찬가지 상황이고.

최근 조지 루이스는 <스페이스 워즈> 3부작의 완결판인 ‘제다이의 귀환’ 촬영 준비에 여념이 없었다.

이번 시리즈의 기획 또한 그가 맡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 킴도 알프레드 감독 알지? 지금 아멜리아가 알프레드 감독 사무실에서 같이 작업을 하고 있으니까 그쪽으로 연락하면 아마 만날 수 있을 거야.

“알겠어요, 조지.”

- 아 참, 새 작품은 잘 돼가고 있어? 인지 뭔지 하는 그 공포영화 말이야.

“별문제 없이 잘 진행되고 있어요. 레이첼이 생각보다 잘해주고 있어서요.”

- 다행이군. 난 귀하게 자란 부잣집 딸이라 중간에 힘들다고 도망가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말이야, 하하.

“조지도 참.”

- 언제 한가해지면 다시 술 한잔하자고.

“알겠어요, 조지. 아멜리아는 내가 직접 만나볼게요.”

***

워너 브라더스.

미국의 유명 영화사인 이곳은 현재 세계 영화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는 회사였다.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지는 많은 대작 영화들이 이곳에서 제작 또는 배급이 이루어지고 있었던 것이다.

‘세계 최고의 영화사 가운데 하나라서 그런지, 건물 크기부터 확연히 다르군.’

내가 이곳을 찾아온 이유는 간단했다.

현재 내가 제작하고 있는 영화 의 편집 문제를 상의하기 위해 조지 루이스의 부인인 아멜리아를 만나러 온 것이었다.

그런데.

- 끼이익!

고급 승용차 한 대가 건물 앞에 멈춰서더니, 운전석에서 한 남자가 내렸다.

영화 <에일리언의 침공>으로 유명한 알프레드 스톤 감독이었다.

내가 그를 알아볼 수 있었던 이유는,

‘일전에 <스페이스 워즈> 시사회장에서 처음 봤었더랬지. 그 이후 <레이더스> 시사회장에서 또 한 번 얼굴을 마주했었고.’

그런데.

차에서 내린 알프레드 스톤이 조수석으로 다가가 손수 문을 열어주었다.

뒤이어 차에서 내린 여성은,

‘아멜리아?’

굳이 이상한 상상을 할 필요는 없었다.

같이 작업을 하는 감독과 편집자가 밖에서 같이 식사 한번 하고 들어올 수도 있는 일이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왠지 이상한 예감이 드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전생의 기억 때문이었다.

‘언제였는지는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지만, 전생에서 한 신문 기사를 통해 본 적이 있었지. 조지 루이스가 전 부인과 이혼한 이유가 그녀가 불륜을 저지른 사실을 알게 됐기 때문이라고.’

할리우드 영화 관계자의 사생활은 그렇게 모범적이라고는 할 수는 없었다.

잘생기고 예쁜 미남 미녀 배우들이 즐비하고,

특히 한번 영화 제작에 들어가면 거의 1년 가까이 현장에서 서로 부대끼다 보면 서로 없던 정도 생기기 마련이었다.

영화 제작이 끝날 즈음 이름 있는 영화감독이나 배우들의 열애설 보도가 잦은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었다.

물론 조지 루이스와 아멜리아 두 사람의 사생활 문제까지 내가 관여할 일은 아니었다.

그건 어디까지나 두 사람만의 문제이니까.

하지만 모르면 몰라도 앞으로 두 사람에게 어떤 일이 일어날지 이미 알고 있는 나로서는 한편으로 씁쓸한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다.

“아멜리아.”

“어, 킴이 여긴 어쩐 일이에요?”

“영화 일로 아멜리아와 상의할 일이 좀 있어서요. 조지에게 연락했더니, 여기 가면 만날 수 있을 거라고 하더라고요. 잠깐 시간 괜찮으면 이야기 좀 할 수 있어요?”

아멜리아가 알프레드 스톤 감독을 쳐다보며 말했다.

“먼저 들어가세요, 감독님. 전 킴이랑 이야기 좀 하고 들어갈게요.”

“그러지.”

알프레드 스톤 감독이 나를 힐끔 쳐다보더니, 이내 건물 안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영국 출신의 영화감독 알프레드 스톤.

그는 <에일리언의 침공>, <로마 검투사> 등의 영화로 할리우드에서 나름 이름을 떨친 감독이었다.

“알프레드 감독과 함께 작업 중인 거예요?”

“네. 이번에 그가 <복제인간>이란 영화를 연출하고 있는데, 저도 그 영화에 편집자로 함께 참여하고 있어요.”

“그렇군요.”

“근데 상의할 일이라는 것이 뭐예요?”

“혹시 이야기가 길어질 수도 있으니까, 차나 한잔하면서 이야기하죠. 그 정도 시간은 괜찮죠?”

“물론이죠.”

근처의 카페로 자리를 옮긴 우리 두 사람이 다시 대화를 시작했다.

“다른 게 아니라, 내가 이번에 제작하고 있는 영화 의 편집을 아멜리아에게 맡겼으면 해서요. 아멜리아의 편집 실력은 이미 할리우드에 정평이 나 있으니까요.”

“근데 벌써 영화 촬영이 다 끝난 거예요? 내 기억에 그 영화 크랭크 인 한 지 얼마 안 된 것으로 아는데?”

“저예산 영화이고, 또 영화 전체가 원 테이크 방식으로 촬영이 이루어져서 실제 프로덕션 기간은 얼마 걸리지 않거든요.”

“역시 킴 답네요. 할리우드 감독 가운데 영화를 가장 빨리 찍는 사람이 바로 킴이잖아요. 그러면서도 영화의 완성도는 놓치지 않는.”

“뭘요.”

“그나저나 어쩌죠, 킴.”

“왜요?”

“제가 지금 진행하고 있는 영화의 편집작업이 오래 걸릴 것 같아서요. 대규모 제작비가 투입된 블록버스터 영화인 만큼 편집에도 만만치 않은 시간이 필요하거든요.”

“흠. 그럼 아멜리아가 괜찮은 편집자를 좀 소개해 주실 수 있으세요?”

“어디 보자, 누가 좋을까......”

전생의 충무로와 달리 할리우드에서는 편집자의 역할이 매우 컸다.

기술적 업무만 담당하는 충무로의 편집자들과는 달리 할리우드 편집자들은 전체적인 내용 구성에까지 관여한다.

그래서 가끔 감독의 의견이 제대로 반영되지 않은 영화가 나오기도 하는데, 이 때문에 ‘디렉터스 컷’이라는 필름이 따로 나오기도 하는 것이다.

‘이는 그만큼 좋은 편집자를 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미이기도 하지.’

잠시 생각에 잠겨 있던 아멜리아가 입을 열었다.

“아! 웨인 워만 씨는 어때요? 그 사람이라면 킴의 의도를 정확하게 읽고 편집작업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은데?”

“웨인 워만요?”

“네. 그는 10년 넘게 미국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와 드라마를 편집하며 실력을 인정받은 분이거든요.”

“뭐, 아멜리아가 추천할 정도면 실력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죠. 되도록 빠른 시간 내에 제가 한번 만나볼 수 있도록 아멜리아가 좀 도와주시겠어요?”

“물론이죠. 제가 오늘 당장 워만 씨에게 연락해볼게요.”

“그나저나......”

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요즘 조지는 좀 어때요? 많이 바쁜 것 같던데.”

“그 사람 지금 <스페이스 워즈> 후속작 준비하느라 정신없잖아요. 저도 나름 바쁘고요. 그래서 우리 두 사람 모두 서로 얼굴 보기가 하늘의 별 따기보다 더 어려워요.”

“그럼 우리 언제 같이 여행이나 한번 갈래요?”

“네? 갑자기 그게 무슨......”

“조지나 저나 계속 영화에만 빠져 지내느라 제대로 휴식 시간을 갖지 못했잖아요. 그건 아멜리아도 마찬가지일 거고요. 그래서 우리 시간 맞춰서 어디 좋은 곳에 가서 푹 좀 쉬다가 오는 것이 어떨까 하고요.”

“글쎄요......”

아멜리아가 살짝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저는 뭐 그렇다 쳐도 조지가 간다고 할까요? 그 사람 머릿속에는 영화 말고는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이잖아요. 영화 제작만 시작했다 하면 저는 물론이고, 애들의 존재조차 완전히 잊어버리고 영화에만 몰두하는 사람이잖아요.”

아멜리아의 말이 왠지 원망처럼 들리는 것은,

단지 나만의 착각인 것일까?

“제가 언제 조지에게 한번 물어볼게요. 이번 작품이 끝나면 함께 여행이나 다녀오자고요. 가서 같이 시나리오 구상도 하자고 하면 조지도 아마 허락할지 모르니까요.”

“......그래요, 킴.”

“많이 바쁠 텐데 시간 뺏어서 미안해요, 아멜리아.”

“아니에요, 킴. 편집자 워만 씨에게는 제가 바로 연락해서 킴이 한번 만날 수 있도록 할게요.”

“고마워요, 아멜리아.”

아멜리아와 헤어지고 사무실로 돌아오는 길.

문득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어쩌면 지금까지 조지 루이스가 쓴 시나리오의 내용에는 그 자신이 살아온 인생이 반영되어 있었던 것일지도 모르겠군.’

영화 <인디아나 존슨>에서 주인공인 인디아나 존슨이 했던 ‘아버지가 가족을 돌보지 않아 무척이나 원망스러웠다’라는 내용의 대사.

영화 <스페이스 워즈>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주인공 아나킨의 설정,

다시 말해 천재적인 전사로 가난한 혹성에서 은하 공화국에 발탁되어 우수한 전사로 세계를 구하게 되지만 화를 잘 내는 성격 탓에 점점 고립되어 가고, 급기야 부인인 아미달라 공주가 오비완과 불륜을 저지른다고 의심하여 오비완과 싸우다 결국 양손을 잘리게 되는 장면.

이러한 장면들이 어쩌면 실제 조지 루이스 자신의 인생을 그대로 영화에 내보인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이다.

‘내가 두 사람의 인생에 관여할 자격은 없지만, 그래도 미래를 알고 있는 사람으로서 두 사람이 서로 오해를 풀 수 있는 기회 정도는 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아. 만약 이대로 그냥 두면 결국 두 사람 사이는 파국(破局)으로 치닫게 되고 말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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