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28화 (28/145)

# 28 < 아카데미 시상식 초청 (1) >

45.

영화 <레이더스>는 흥행 면에서뿐만 아니라 수상 면에서도 큰 화제를 불러 모았다.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영화제 가운데 하나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감독상, 음향상, 미술상 등 총 9개 부문의 수상 후보로 노미네이트 된 것이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사람들의 이목을 끈 것은,

내가 동양인 최초로 아카데미 ‘감독상’을 받게 되느냐 마느냐 하는 것이었다.

그동안 아카데미 시상식은 ‘화이트 오스카(White Oska)’라고 불릴 정도로 백인들만의 잔치였다.

1929년 창립 이래 무려 50년의 가까운 세월 동안 ‘백인 남자’를 중심으로만 운영되었기 때문이다.

이에 ‘유색인종’이나 ‘여성’은 단 한 번도 시상대에 오른 적이 없었고, 심지어 시상식 초청조차도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내가 만든 영화 <체이스 오브 리벤지>에 이어 <레이더스>까지 엄청난 흥행 성적을 기록했고, 이에 주최 측의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었다.

아카데미가 아무리 영화의 작품성을 중시한다고는 하지만 앞선 수상작인 <스페이스 워즈>나 <록키>의 경우처럼 흥행 성적 또한 감안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도훈아, 잠깐만.”

아카데미 시상식 참여를 위해 집을 나서는 나를 아버지가 불러 세웠다.

“왜요, 아버지?”

“넥타이가 좀 삐뚤어진 것 같아서.”

아버지가 손수 내 턱시도의 나비넥타이를 매만져 주었다.

방금 전에 거울로 볼 때는 괜찮았는데.

아무래도 아카데미 시상식에 초청받은 아들이 너무나 자랑스러운 나머지 뭐라도 해주고 싶은 아버지의 마음의 표현인 듯했다.

“음, 좋아. 이제 괜찮네.”

“저기, 아버지.”

“응?”

“너무 기대는 하지 마세요.”

“뭘 말이냐?”

“오늘 수상 말이에요. 제가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오르기는 했지만, 수상 가능성은 매우 낮을 거예요. 아무래도 제가......”

동양인이라서 직접적인 상을 받는 건 좀 힘들 것 같아요, 라고 말을 하려고 했는데.

아버지가 단칼에 내 말을 잘랐다.

“안 돼! 도훈이 너 오늘 상 꼭 받아야 해. 우리 아들이 오늘 영광스러운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큰 상을 받을 예정이라고 아버지가 동네방네 얼마나 소문을 내고 다녔는데. 게다가 한인타운 입구에 걸려고 커다란 현수막까지 만들어 뒀단 말이야.”

“예? 그게 정말이에요?”

“정말이지 그럼. 동네잔치도 한판 크게 벌이려고 생각 중인데?”

“악! 아버지!”

“흐흐, 농담이다, 인마. 아무렴 아버지가 그 정도 사리 분별도 못 할 사람 같으냐?”

“아버지도 참.”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아버지가 나를 향해 말했다.

“도훈아.”

“예.”

“아버지는 네가 오늘 상을 받고 안 받고는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네가 만든 영화가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시상식인 아카데미에 초청받을 정도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도 아버지는 충분히 만족하고 있으니까.”

“아버지......”

“그나저나 이럴 때 네 엄마가 살아 있었으면 정말 기뻐했을 텐데. 아 참, 도훈이 너 그거 아냐?”

“뭘요?”

“네 엄마도 살아생전에 극장에서 영화 보는 걸 참 좋아했다는 거. 그래서 아버지랑 데이트할 때는 꼭 극장에 가서 영화 한 편 보는 것이 정해진 코스였어. 아마도 도훈이 네가 그런 네 엄마의 피를 이어받은 것 같구나. 그래서 이런 훌륭한 영화감독이 된 것 같아.”

“엄마는......”

문득 궁금해진 내가 아버지를 향해 물었다.

비록 나와는 실질적인 관계가 없는 사람이지만, 그래도 내 몸의 원래 주인의 생물학적 어머니가 어떤 사람인지 호기심이 생긴 것이었다.

“엄마는 어떤 사람이었어요?”

“네 엄마?”

“예.”

“넌 그때 너무 어려서 기억 못 하겠지만, 네 엄마는 무척 아름다운 사람이었지. 아버지랑 같이 길을 가면 지나가는 사람들이 다 한 번씩 쳐다볼 정도로 말이야. 그 왜, 예전에 할리우드에서 큰 인기를 누렸던 여배우 있잖아?”

“누구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 뭐더라, 아! 영화 <카르멘의 사랑>에서 카르멘 역으로 나왔던 여배우 말이야.”

“리타 헤이워드요?”

“맞아! 리타 헤이워드. 네 엄마가 바로 그 리타 헤이워드만큼이나 예뻤었지.”

“......우리 엄마가 서양인이었어요?”

“그건 아니고, 단지 동양인으로는 보기 드물게 서구형 미인이었지. 그래서 내가 네 엄마를 처음 본 순간 한눈에 반해버렸지, 흐흐.”

“근데......”

내가 살짝 조심스러운 어투로 물었다.

“엄마는 왜 돌아가신 거예요?”

“내가 전에 이야기해주지 않았던가? 미국에 이민 오고 얼마 안 돼서 병으로 돌아가셨다고. 그럴 줄 알았으면 그냥 한국에서 사는 건데, 괜히 내가 미국에 오자고 해서 네 엄마에게 그런 일이 생긴 게 아닌가 하고 후회가 된다.”

“......”

“읔! 내 정신 좀 봐. 중요한 일 하러 가는 우리 아들을 너무 오래 붙잡고 있었네. 이러다 늦을라. 얼른 가봐.”

“괜찮아요. 아직 시간 많이 남았어요.”

“그래도 미리미리 가 있어야지. 사람이 다른 건 몰라도 시간 약속은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 그래야 다른 사람에게 신뢰를 잃지 않는 거야.”

“알겠어요, 아버지. 그럼 다녀올게요.”

“그래. 조심히 갔다 와라.”

***

집을 나서자,

고급 세단 한 대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투자사인 ‘유니온 픽처스’에서 아카데미 시상식에 참석하는 나를 위해 특별히 보내준 차량이었다.

그런데.

“어? 레이첼이 여긴 웬일이에요?”

어깨선이 훤히 드러나는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레이첼이 차에서 내리며 나를 맞은 것이다.

“웬일이긴요. 저도 오늘 시상식에 초청받았기 때문이죠. 가는 길에 킴이랑 같이 영화 이야기나 할까 해서 기다리고 있었어요.”

“잊고 있었군요. 레이첼도 할리우드 영화 관계자 중의 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하하.”

“그나저나 아주 잘 어울리네요, 킴.”

“뭐가요?”

“지금 입고 있는 턱시도요. 매번 허름한 티에 청바지만 입고 다니는 킴의 모습을 보다가 이렇게 제대로 차려입은 모습을 보니 굉장히 새롭네요.”

“뭐, 뭘요.”

갑작스러운 레이첼의 칭찬에 당황한 나머지 얼굴이 살짝 붉어졌다.

“그나저나 레이첼 양도 오늘 무척 아름답군요. 특히 지금 입고 있는 드레스가 레이첼 양과 아주 잘 어울립니다.”

“호호. 자리가 자리이니만큼 신경 좀 썼어요. 그래봤자 화려한 할리우드 톱여배우들 사이에 서면 묻혀버리겠지만.”

“내 생각에는 그렇지 않을 것 같은데요? 오히려 할리우드 여배우들이 레이첼 양에게 밀릴 것 같은데요?”

“호호. 빈말인 줄 알면서도 기분은 좋네요.”

빈말 아닌데.

평소에도 느끼고 있었던 점이지만, 레이첼의 외모는 할리우드의 웬만한 여배우 못지않게 아름다웠다.

금발 머리에, 새하얀 피부, 오똑한 콧날까지.

거짓말 조금만 보태서 지금 당장 스크린에 올려도 될 정도로 그녀의 외모는 뛰어났다.

연기력은 뭐, 두고 볼 일이긴 하지만.

“있잖아요, 킴. 이번에 우리가 준비하고 있는 이라는 영화 말이에요......”

시상식장을 향해 차가 출발하기가 무섭게 레이첼이 영화 이야기를 꺼냈다.

영화 <레이더스>의 성공적인 상영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리 두 사람은 또 한 편의 영화 제작 준비에 돌입했다.

이라는 제목의 공포 스릴러 영화였다.

“말해요, 레이첼.”

“휴,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어렵네요. 이번 영화를 어떤 식으로 연출해야 할지가요.”

땅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는 레이첼.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영화는 레이첼 뿐만이 아니라 이곳 할리우드의 모든 영화 관계자들이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새로운 형태의 공포 영화였기 때문이었다.

사실 공포 영화(Horror Movie)는 전쟁 영화와 더불어 흥행하기 쉽지 않은 대표적인 영화 장르 가운데 하나이다.

장르적 특성상 호불호가 명확하게 갈리기 때문이다.

하지만 다른 장르에 비해 저예산으로도 충분히 제작 가능하기 때문에 비교적 수익률은 높은 편이었다.

그 때문에 매년 꾸준히 만들어지는 영화 장르 가운데 하나가 바로 공포영화이다.

‘중요한 것은 현재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지는 대다수 공포 영화가 시각과 청각을 이용한 단순 자극을 통해 공포감을 유발한다는 것이지. 연쇄 살인마나 정신병자, 혹은 유령이나 귀신과 같은 존재가 예고도 없이 갑자기 나타나 사람을 해치는 형태가 바로 그것이지. 괴기스러운 외형과 동작, 소리는 덤이고 말이야.’

하지만 내가 쓴 시나리오 은 달랐다.

1980년대 할리우드의 공포 영화에는 찾아보기 힘든 인간의 말초적인 심리적 공포를 자극하는 영화였다.

무엇보다 이 영화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보다 정확하게 말하면 ‘파운드 푸티지(출처 불명의 미스터리 영상)’라는 기법이 최초로 도입될 예정이었고, 그 때문에 이 영화가 상영을 시작하면 영화계의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게 될 것이 분명했다.

“쉽게 생각해요, 레이첼. 그 왜, 학교 영화학 수업에서 ‘서스펜스’에 대해 배운 적 있죠? 이번 영화는 바로 그 서스펜스를 극한으로 끌어올린다고 생각하면 돼요.”

서스펜스란 관객들이 불안감 또는 긴박감을 느끼도록 만든 영화를 말한다.

성공한 공포영화는 대부분 사전에 계획된 치밀한 극적 구성으로 서스펜스를 극대화한 영화이다.

“물론 저도 알죠.”

레이첼이 나를 보며 말했다.

“문제는 머리로는 이해가 되는데, 막상 연출을 하려고 하면 힘이 들어서 그렇지.”

“힘들어도 여러 가지 방법으로 한번 시도해보는 것이 좋아요, 레이첼. 이러한 경험들이 나중에 다른 영화를 연출할 때도 많은 도움이 될 테니까.”

“그런가요?”

“물론이죠.”

“근데, 킴. 아무리 생각해도 대본이 너무 불친절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상황 설명은 차치하더라도 배우들의 행동이나 표정, 심지어 대사마저도 제대로 나타나 있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나중에 배우들이 실제 대본을 받았을 때, 무척 당황하지 않을까 걱정되는데.”

“말했잖아요. 이번 영화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형식을 취하고 있다고. 그래서 마치 실제 있었던 일처럼 영상을 만들어야 한다고. 그러기 위해서는 배우들이 상황에 맞는 자연스러운 연기를 해야 하고, 그 때문에 대본의 내용을 최소화한 것이라고요. 게다가 촬영감독도 되도록 경험이 적은 사람으로 영입하는 것이 좋을 거예요. 일반인이 카메라를 들고 직접 촬영하는 상황인데, 너무 능숙한 영상이 나오면 사실감이 떨어질 테니까요.”

“알겠어요, 킴. 근데......”

레이첼이 여전히 걱정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로 말했다.

“이런 류(類)의 영화가 정말 흥행에 성공할 수 있을까요?”

“흥행요?”

“네. 공포 영화는 장르적 특성상 흥행이 굉장히 어렵잖아요. 지금까지 수많은 공포 영화가 만들어졌지만 제대로 흥행 성적을 올린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로 말이에요.”

레이첼의 말에 내가 속으로 빙긋 웃음을 지었다.

왜냐하면 나는 이 영화가 잘만 하면 엄청난 흥행 성적을 올릴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 이유는,

‘내 전생의 기억에 따르면 이번에 내가 제작할 영화 과 같은 파운드 푸티지 기법을 활용해 적게는 제작비 대비 800배, 많게는 1만 배가 넘는 수익을 올린 영화가 있었지. 그 대표적인 영화가 바로 <블레어 위치>와 <파라노말 액티비티>라는 영화이고.’

하지만.

전작과 달리 이번 영화에 이 두 영화의 내용을 차용하는 것은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블레어 위치>의 경우는 영화 외적인 마케팅으로 성공한 케이스였고, 이에 영화의 내용은 그리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또한 <파라노말 액티비티>같은 경우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 CCTV라는 장치를 이용해 영화의 내용 전체를 이끌어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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