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27화 (27/145)

# 27 < 미래를 위한 투자 – ILM과 PIXAR >

44.

내가 연출을 맡은 두 번째 영화 <레이더스>가 성공적으로 상영을 끝마쳤다.

총 누적 관람료 수익은 4억 달러.

제작비 대비 무려 20배에 달하는 엄청난 성과였다.

<레이더스> 성공으로 나는 투자사인 ‘유니온 픽처스’로부터 2천만 달러의 성과 보상금을 받게 되었다.

영화가 큰 성공을 거두면 연출을 맡은 감독에게 그만큼의 금전적인 보상을 하는 것이 관례였기 때문이었다.

그 결과 나는 앞선 <체이스 오브 리벤지>를 통해 벌어들인 수익과 더불어 무려 5천만 달러라는 거금을 보유하게 되었다.

나는 이 돈의 상당 부분을 조지 루이스가 설립한 ILM이라는 회사에 투자하기로 했다.

왜냐하면 앞으로 할리우드 영화계는 CG의 비중이 점점 커질 것이고, 그렇게 되면 CG 제작 전문 회사인 ILM 또한 급격하게 성장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머잖아 컴퓨터 그래픽이 영화 산업의 핵심이 되는 시대가 올 거야. 그 중심이 되는 회사 가운데 하나가 바로 ILM이고. 따라서 지금 내가 ILM에 많은 돈을 투자해두면 향후 세계 영화 산업을 주도적으로 이끌어 나갈 발판을 마련할 수가 있을 거야.’

영화 제작사인 Film Kim, 투자배급사인 유니온 픽처스, CG 전문 제작 회사인 ILM.

이 세 회사의 조합으로 기존의 빅식스(Bigsix) 영화사가 장악하고 있는 영화 산업의 패권을 빼앗아 오는 것.

그것이 지금 내가 세우고 있는 계획의 최종 목표였다.

***

루이스 필름.

내가 조지 루이스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루이스 필름 산하의 시각 효과 전문 스튜디오인 ILM 투자 문제에 대해 구체적인 논의를 하기 위함이었다.

“애니메이션?”

조지 루이스의 물음에 내가 대답했다.

“예, 조지. 제 생각에 앞으로 세계 영화 시장에서 애니메이션의 비중은 실사 영화 못지않게 커질 것 같아요. 그래서 일찌감치 관련 기술 분야에 투자를 해두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영화 산업에서 애니메이션 시장의 비중이 커질 것이라는 킴의 의견에는 나도 어느 정도는 동의하는 바이긴 해. 그래서 어떤 방식으로 투자를 할 생각인데?”

“현재 ILM 내에 있는 애니메이션 제작 부서를 독립시켜 별도의 자회사를 만들었으면 해요. 그래서 ILM은 실사 영화의 특수효과 쪽에 집중하고, 별도로 만들어진 자회사는 애니메이션 기술 개발을 전담하는 거죠.”

“나쁘지 않은 생각이긴 한데......”

조지 루이스가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그러려면 앞으로 굉장히 많은 돈이 필요할 텐데? 지금 ILM이 집중적으로 개발하고 있는 실사 영화 CG 분야만 해도 해마다 천문학적인 예산이 들어가고 있어. <스페이스 워즈>의 수익금이 모두 다 그쪽으로 재투자 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말이야.”

“돈이야 앞으로 얼마든지 더 벌면 되죠. 계속되는 영화 제작을 통해서요.”

“허 참, 킴의 그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단 말이야.”

조지 루이스가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좋아. 킴의 말대로 한번 해보자고. 나야 뭐, 밑질 건 없으니까.”

“잘 생각하셨어요, 조지.”

“아 참, 회사 이름은 뭘로 할 건데?”

“회사 이름요?”

“그래. 새로 만들어지는 자회사 이름 말이야. 법인 등록을 하려면 먼저 이름부터 만들어야지.”

“음......”

내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조지 루이스를 향해 말했다.

“픽사(Pixar) 애니메이션 스튜디오가 좋을 것 같네요.”

***

픽사(Pixar) 애니메이션 스튜디오.

영화 제작자치고 아마 이 이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아니, 영화 제작자뿐만이 아니라 일반 대중들도 한 번 정도는 들어봤을 정도로 유명한 애니메이션 제작 전문 회사가 바로 픽사(Pixar) 애니메이션이었다.

1990년대 <토이 스토리>라는 영화를 시작으로 세계 애니메이션 영화 시장의 전성기를 이끌어갔던 회사였기 때문이다.

원래 픽사(Pixar) 애니메이션은 루이스 필름 산하의 특수효과 제작 회사인 ILM 내의 작은 부서에 불과했다.

그런데 컴퓨터 개발자로 유명한 한 인물이 이 부서의 발전 가능성을 알아보고 거액의 돈을 투자해 ‘픽사 애니메이션’이라는 독립된 회사를 만들게 된다.

하지만 이후 10년 가까이 이 회사는 하드웨어나 소프트웨어는 물론 애니메이션 제작 분야에서도 이렇다 할 성과를 나타내지 못하게 된다.

이쯤 되면 이 회사에 투자한 투자자도 두손 두발 다 들 법도 한데, 그는 여전히 투자를 멈추지 않았다.

계속된 적자에도 불구하고 관련 기술 개발은 물론 해마다 한편씩의 애니메이션 영화를 만들 것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 결과.

1990년대에 이르러 드디어 픽사 애니메이션의 시대가 열리게 된다.

월트 디즈니의 투자를 받아 만든 영화 <토이 스토리>가 크게 히트하면서 무려 3억 달러가 넘는 흥행 성적을 올리게 된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같은 해 실시된 IPO(기업공개)에서도 픽사는 그 유명한 넷스케이프를 누르고 그해 가장 큰 규모의 IPO로 기록되기도 했다.

그랬다.

내가 지금 앞선 두 편의 영화 제작으로 벌어들인 수익 대부분을 픽사 애니메이션에 쏟아부으려고 하는 이유는 1990년대 이후 본격화되는 영화 애니메이션 시장을 선점하기 위함이었다.

“1억 달러?”

조지 루이스가 놀란 목소리로 나를 향해 말했다.

“네, 조지. 앞으로 저는 픽사 애니메이션에 해마다 천만 달러씩 도합 1억 달러의 돈을 투자할 예정이에요. 그래서 픽사 애니메이션을 할리우드 최고의 애니메이션 제작 회사로 만들 생각이에요.”

“맙소사! 아무리 그래도 그런 큰돈을......”

“투자를 해야 발전도 있는 법이니까요. 두고 보세요, 조지. 내가 투자한 1억 달러가 언젠가는 10억, 아니 100억 달러가 돼서 다시 돌아올 테니까요.”

“그만큼의 돈은 있고?”

“전에도 말했잖아요. 돈은 앞으로 영화 제작을 통해 얼마든지 벌면 된다고.”

“끙. 킴의 그 근거 없는 자신감은 여전하군.”

근거가 없긴.

근거가 너무 확실해서 탈이지.

오히려 확실한 근거는 너무 많은데, 투자할 돈이 없는 게 더 큰 문제지.

“이봐, 킴. 그러다 한순간에 훅 가는 수가 있어. 한때 잘 나가던 영화감독 가운데 무리한 투자로 한순간에 나락으로 떨어진 사람이 한둘이 아니야.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겠지만, 특히 영화는 그 누구도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법이거든. 그러니 킴도 조심하는 게 좋아.”

“그럴게요, 조지.”

“그나저나 새로운 영화를 기획하고 있다며?”

“네. 이라는 제목의 공포 스릴러 영화예요.”

“공포 영화?”

“네.”

“의외군. 킴이 공포 영화를 다 만든다니 말이야.”

“매번 같은 액션 장르의 영화만 만들면 사람들이 식상해할 수도 있잖아요. 게다가 소재만 잘 잡으면 저 예산으로도 큰 흥행 성적을 올릴 수도 있는 것이 바로 공포 영화잖아요. 얼마 전에 전국 극장가에서 개봉을 시작한 <13일의 금요일>이란 영화처럼 말이에요.”

<13일의 금요일>

워너 브라더스와 파라마운트 픽처스가 공동 투자한 이 영화는 숀 커닝햄이란 감독이 만든 공포 영화였다.

55만 달러라는 비교적 적은 제작비로 만들어진 이 영화는 현재 미국 극장가에서 큰 인기몰이를 하고 있었다.

“굳이 왜 또 저예산 영화를 만들려는 건지 이해할 수가 없군. 예전이라면 몰라도 이제 킴 너의 명성이면 블록버스터급 영화 제작은 맘만 먹으면 언제든지 할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조지 루이스가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을 이었다.

“어쨌거나 기대가 되는 것만은 사실이군. 킴이 연출한 공포 영화는 과연 어떤 모습일지. 킴은 매 영화마다 아무도 한 적 없는 새로운 시도를 하는 사람이니까.”

“미안하지만, 조지. 이번 영화의 연출은 제가 맡은 것이 아니에요. 전 그저 제작자로만 참여할 뿐이에요.”

“킴이 감독이 아니라고? 그럼 감독은 누군데?”

“레이첼 양이에요.”

“레이첼? 설마 유니온 픽처스의 사장인 그 레이첼?”

“맞아요.”

“헛! 갑자기 무슨 바람이 불어서 투자사 사장이 직접 영화를 다 연출하려는 거지?”

“원래 레이첼 양의 꿈이 영화감독이었대요. 여러 가지 현실적인 어려움 때문에 한동안 그 꿈을 접고 있었는데, 이번에 제가 만든 영화들을 보면서 그 꿈을 다시 한번 실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하더라고요. 레이첼 양의 나이가 저와 같은 동갑이다 보니, 자신도 충분히 영화를 연출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것 같더라고요.”

“암만 그래도 영화는 자기가 찍고 싶다고 찍을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영화적인 지식은 물론 현장 스태프들을 지휘할 수 있는 리더십도 필요해.”

조지 루이스가 덧붙여 말했다.

“내가 보기에는 레이첼 사장이 그냥 고급 취미 생활을 해보려는 것 같은데? 어차피 돈 많은 집안 딸이니, 흥행에 실패해도 별 상관없으니까 말이야.”

“그런 거 아니에요. 지금 레이첼 양은 정말 진심으로 영화를 만들고 싶어 해요.”

“그걸 킴이 어떻게 알아? 킴이 레이첼의 속에 들어갔다 나오기라도 한 거야?”

“이번 영화의 투자자는 바로 저니까요. 그래서 손해를 봐도 제가 보지 레이첼 양이 보는 것은 아니니까요. 그리고 매번 기획 회의 때마다 레이첼 양은 진지하게, 배우는 자세로 임하고 있어요. 그 어떤 사람보다 더 열심히.”

조지 루이스가 놀란 표정을 지었다.

“뭐? 이번 영화에 킴이 투자를 했다고? 제작에만 참여하는 것이 아니라?”

“네. 그렇다고 아주 큰 액수는 아니에요. 공포 영화이다 보니, 20만 달러면 충분히 영화를 제작할 수 있을 거예요.”

“뭔가 거꾸로 된 거 아니야? 레이첼 사장이 투자를 하고, 킴이 연출을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가끔은 영화에 투자자로 참여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아요. 사실 감독은 일정액의 보수만 받는데 반해, 투자자는 흥행 수익의 대부분을 가져갈 수 있으니까요.”

“......돈 때문이라는 거야?”

“완전히 그런 것은 아니지만, 그런 면도 없잖아 있어요. 조지도 알다시피 픽사 애니메이션이 정식으로 설립되면 들어갈 돈이 한두 푼이 아니니까요.”

“그러다 영화가 망하면?”

“망하면 인생 공부했다 치죠, 뭐. 20만 달러 정도 없다고 죽는 것도 아니고.”

“허 참......”

기가 막힌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조지 루이스.

그런데.

내가 조지 루이스에게 미처 하지 않은 말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이번 영화의 연출을 유니온 픽처스의 사장인 레이첼 도나에게 맡긴 것은 비단 돈 때문만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 주된 이유는 바로,

‘지난 수십 년 동안 이어져 온 할리우드의 견고한 편견(偏見)의 벽을 무너뜨리기 위함이지.’

그동안 할리우드는 ‘백인 남자’ 중심으로 움직여왔다.

반면에 ‘유색인종’과 ‘여성’은 영화 내에서도 그렇고, 촬영 현장에서도 그렇고, 늘 주변인으로만 존재했다.

하지만.

최근 동양인인 내가 만든 영화가 연이어 엄청난 흥행 성적을 거두면서 ‘동양인’에 대한 편견도 조금씩 깨어지기 시작했다.

몇몇 거대 영화사가 나에게 제작비 지원을 약속하며 영화 작업을 의뢰해 오는 것이 그 방증이라 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남은 또 하나의 벽은 바로 레이첼 양의 몫이 되는 것이지. 만약 레이첼이 만든 영화가 흥행에 큰 성공을 하게 되면 여성 감독이나 배우를 바라보는 할리우드의 시선도 달라질 것이 틀림없으니까.’

화이트 워싱(whitewashing)으로 대표되는 할리우드의 편견의 아성을 무너뜨리는 것.

그것이 영화 외적으로 내가 세운 또 다른 목표이기도 했다.

물론 이는 할리우드 내에서 여전히 이방인 취급을 받는 내 입지를 높이기 위한 목적이기도 했고.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