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26화 (26/145)

# 26 < 전설의 모험 영화 <레이더스> (9) >

42.

‘징글벨♪ 징글벨♬ ~’

연말이 가까워지자, 거리 곳곳에 크리스마스 캐럴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미국 최대의 명절 가운데 하나인 크리스마스가 성큼 다가온 것이다.

크리스마스는 여름철과 더불어 극장가의 최대 성수기라고 할 수 있다.

이에 많은 할리우드 영화가 이 시기를 겨냥해 만들어지고, 또 실제 상영이 이루어진다.

크리스마스를 열흘 앞두고,

드디어 나의 두 번째 영화 <레이더스>가 극장 상영을 시작했다.

이번 영화는 전작과 상황이 많이 달랐다.

일단 개봉관 숫자에서부터 확연하게 차이가 났다.

현재 미국의 극장 수는 대략 14,000개 정도가 되는데, 이 가운데 5,000개 가량을 우리가 확보한 것이다.

그것이 가능했던 첫 번째 이유는 미국 영화계에서의 조지 루이스의 영향력이었다.

현재 조지 루이스는 스티븐 스필버그와 더불어 할리우드 영화계의 흥행 보증 수표나 다름없는 영화감독이었다.

그런 그가 제작에 참여한 영화가 바로 <레이더스>이니, 극장주들도 충분히 믿고 스크린을 내어줄 수 있었던 것이다.

또 하나는 배급을 맡은 유니온 픽처스의 적극적인 노력이었다.

<레이더스> 제작 초기부터 유니온 픽처스는 개봉관 확보를 위해 회사 차원의 총력을 기울여 왔었다.

특히 앞선 <체이스 오브 리벤지>의 흥행 성공으로 영화 배급사로서의 유니온 픽처스의 입지도 꽤 높아지게 되었는데, 이것이 극장주들을 설득할 수 있는 충분한 명분이 되었던 것이다.

그 결과,

영화 <레이더스>는 개봉 첫날부터 북미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그야말로 흥행 돌풍을 일으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같은 소식은 언론과 영화 관련 잡지들을 통해 연일 대서특필 되고 있었다.

- 연말 극장가의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영화 <레이더스>

- 개봉과 동시에 전미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한 영화 <레이더스>의 흥행 비결은?

- 할리우드의 거장 조지 루이스가 제작을 맡은 영화 <레이더스>, 또 한 번의 흥행 신화를 만들어내다!

- 미국 극장가는 지금 <레이더스> 열풍, 고전 모험 영화의 르네상스 시대가 열리나?

- 앞선 <레이스 오브 리벤지>로 전 세계 3억 달러의 흥행 신화를 만들어낸 <레이더스>의 감독 제임스 킴에 대해 할리우드 영화 관계자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어.

- 영화 <레이더스> 감독 제임스 킴, 본지와의 단독 인터뷰를 통해 영화의 흥행 비결을 직접 말하다!

***

Film Kim 사무실.

조지 루이스의 상기된 목소리가 문밖까지 울려 퍼졌다.

“히트야, 히트! 우리 영화가 극장에서 완전 대히트를 치고 있다고!”

“목소리 좀 낮춰요, 조지. 이러다 귀청 떨어지겠어요.”

“그깟 귀청 좀 떨어지면 어때? 영화가 이렇게나 잘됐는데 말이야, 하하하.”

“조지도 참.”

“그나저나 이대로 가면 앞선 <스페이스 워즈>의 흥행 수익을 넘어설 수도 있겠는데?”

“그렇지는 않을 거예요. <스페이스 워즈>는 SF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하며 전 세계적으로 센세이션을 불러일으킨 영화라 그 정도 수익이 나온 거죠. 반면에 <레이더스>는 오락적 요소가 강한 모험 영화잖아요. 그러니 그 정도로 엄청난 수익이 나오기는 좀 힘들 거예요.”

전생의 기억을 토대로 한 말이었다.

실제 영화 <레이더스>는 전 세계적으로 무려 8억 달러에 가까운 수익을 올린 <스페이스 워즈>의 절반인 4억 달러의 흥행 수익에 머무르게 된다.

물론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성과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고.

“그래도 3억 달러는 넘겠지?”

“유니온 픽처스 측의 분석에 따르면 북미 지역에서만 2억 달러, 해외 수입까지 합치면 대략 4억 달러까지는 무난히 수익을 올릴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네요.”

“핫! 4억 달러라니. 제작비 대비 무려 20배가 넘는 수익이잖아?”

조지 루이스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애초에 우리 둘이 투자해서 영화를 만들 걸 그랬어. 은행 빚을 내서라도 말이야.”

“그건 어디까지나 결과론적인 이야기죠. 게다가 조지도 알잖아요? 영화 산업에 있어 배급사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하긴. 영화 제작과 배급은 확연히 다른 영역이니까. 설사 우리 두 사람의 돈으로 영화를 만들었다고 해도 홍보나 특히 개봉관 확보에 있어서 많은 어려움을 겪었을 테니까.”

영화 산업에 있어 배급사의 역할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배급사가 가지고 있는 마케팅 능력, 특히 많은 수의 개봉관 확보 능력이 영화의 성패를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영화 제작자들이 직접 투자보다는 규모가 큰 배급사로부터 제작비를 투자받아 영화를 제작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그래도 흥행 수익의 20% 정도는 우리 몫이 될 거니까 크게 밑지는 장사는 아니죠. 무엇보다 돈으로 살 수 없는 영화 제작자로서의 명성이 우리에게 따라올 테니까요.”

“하긴. 할리우드 영화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영화감독으로서의 명성이지. 남들 앞에 내세울 수 있는 흥행작만 있으면 투자사에서 서로 모셔가려고 애를 쓸 테니까 말이야.”

“아 참, 조지.”

“응?”

“ILM(인더스트리얼 라이트 앤 매직)의 상황은 좀 어때요? 기술적인 발전을 보이고 있어요?”

“물론이지. 지금까지 내가 ILM에 쏟아부은 돈이 얼만데.”

“하긴. 이번에 <레이더스>에 삽입된 CG 기술을 보니까, 지난 <스페이스 워즈> 작업 때보다 훨씬 기술적으로 뛰어난 것 같더라고요.”

“두고 봐. 조만간 이곳 할리우드 영화계는 CG가 영화의 성패를 좌우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테니까. 그렇게 되면 우리 ILM의 영향력도 지금보다는 훨씬 커지게 될 테고.”

“그래서 말인데요, 조지.”

내가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제가 ILM에 투자를 좀 하면 어떨까요?”

“킴이?”

“예. 전에 조지가 저에게 그런 말을 했었잖아요. 앞으로 영화 산업에서 CG의 비중은 점점 더 커질 것이고, 그때를 대비해 ILM을 크게 발전시킬 계획이라고요. 그래서 저도 힘을 좀 보태려고요.”

“뭐, 나야 환영할 만한 일이지. 그걸 빌미로 킴과 계속적으로 인연을 이어나갈 수도 있을 테고 말이야, 하하.”

“조지도 참.”

“대신 투자 금액만큼의 지분만 킴이 가져가는 거야. 사업은 공과 사를 분명하게 해야 오래 유지될 수 있는 거니까.”

“그야 두말하면 잔소리죠.”

43.

영화 <레이더스>의 흥행 돌풍은 그칠 줄을 몰랐다.

4주 연속 북미 박스 오피스 1위를 차지하며 미국 극장가를 거의 점령하다시피 했던 것이다.

특히 빅식스(Big Six) 영화사 중의 하나인 ‘유니버셜 스튜디오’가 제작한 또 다른 블록버스터급 영화 <죠스2>를 큰 차이로 따돌렸다는 점에서 <레이더스>의 흥행은 매우 큰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이는 그만큼 할리우드 내에서 영화감독으로서의 나의 명성,

아울러 영화 배급사로서의 유니온 픽처스의 입지가 높아진다는 뜻이기도 했기 때문에.

***

유니온 픽처스.

내가 레이첼 도나 사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가 예상했던 대로 <레이더스>가 북미 시장에서 2억 달러에 가까운 흥행 수익을 올렸네요.”

“그거 참 기쁜 소식이군요. 무엇보다 저를 믿고 이번 영화에 흔쾌히 투자를 해주신 사장님께 실망을 안겨 드리지 않아서 정말 다행입니다.”

“다 감독님의 뛰어난 능력 덕분이죠, 호호. 게다가 이제 곧 해외 배급도 시작될 예정이니, 수익은 더욱 눈덩이처럼 불어날 수 있을 거예요.”

“그나저나......”

내가 빙긋 웃으며 말을 이었다.

“유니온 픽처스의 사장님으로서의 역할 말고, 영화감독으로서의 역할은 잘 진행되고 계십니까?”

“글쎄요, 그게 쉬운 일이 아니네요.”

“어떤 점이요?”

“감독님이 말한 ‘페이크 다큐멘터리’라는 영화 기법이 잘 이해되지 않아서요. 이건 영화학 교과서에서도 잘 다루지 않는 아주 생소한 개념이잖아요.”

페이크 다큐멘터리.

연출된 장면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촬영하여, 마치 실제 상황처럼 보이게 하는 영화 기법을 말한다.

물론 기존의 할리우드에도 이런 기법으로 촬영된 영화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1947년에 만들어진 로버트 몽고메리 감독의 는 페이크 다큐멘터리 기법으로 만든 최초의 영화인데, 당시로서는 아주 참신한 촬영기법으로 호평을 받았다.

이에 페이크 다큐멘터리 기법을 활용한 영화들이 우후죽순처럼 등장했지만, 영화의 내용적인 측면보다는 그저 카메라만 요란하게 흔들어대며 실화인 척하는 통에 관객들의 큰 주목을 받지 못하고 대부분 사장되고 말았다.

그런데.

‘만약 내가 이 페이크 다큐멘터리라는 기법을 활용하되, 내용적인 면에서도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내게 된다면? 당연히 영화 관계자들의 엄청난 호평을 끌어내며 흥행에도 크게 성공하게 되겠지.’

그랬다.

내가 유니온 픽처스 레이첼 도나 사장에게 연출을 맡긴 영화 시나리오는 바로 이런 가정하에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러니까......”

한동안 나의 설명을 듣고 있던 레이첼이 나를 향해 물었다.

“감독님의 말씀은 페이크 다큐멘터리라는 기법을 이용해 시나리오의 사건이 마치 실제 있었던 사건인 것처럼 관객들을 속이겠다는 뜻인가요?”

“그렇죠. 만약 그렇게 되면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몰입감을 최대한으로 끌어 올릴 수 있을 것이고, 그런 만큼 관객들의 공포감도 더욱 극대화될 것입니다.”

“흐음.”

“자, 그럼 시나리오를 보면서 영화의 장면 장면을 어떻게 연출하면 좋을지 한번 의논해보도록 하죠.”

내가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시나리오를 펼쳐 들었다.

그 시나리오의 가장 앞장에는 다음과 같은 영화 제목이 적혀 있었다.

< Missing(실종) >

***

LA 한인타운 중심가에 위치한 슈퍼마켓.

김판석 사장이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가게 안으로 들어섰다.

‘Kim’s Supermaket’이란 간판이 달려 있는 이 가게는 인근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슈퍼마켓이었다.

“판석이 자네......”

가게에서 한창 땀 흘리며 일하고 있던 박찬수가 도끼눈을 뜨며 김판석을 향해 소리쳤다.

“어딜 그리 쏘다니다 오는 거야? 연말 크리스마스 시즌이 가장 바쁜 때라는 걸 누구보다 가장 잘 아는 사람이 말이야.”

“미안, 미안.”

김판석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내가 일이 좀 있어서.”

“일은 무슨. 보나 마나 또 극장에 가서 영화 보고 오는 길이겠지. 도훈이가 만든 그 뭐냐......”

“레이더스!”

“킁. 역시 맞구먼. 영화 보고 온 거.”

박찬수의 힐책이 이어졌다.

“암만 그래도 가게가 한창 바쁜데, 사장이라는 작자가 영화나 보러 가는 게 말이나 돼?”

“나 없어도 박 사장이 잘 알아서 하잖아, 흐흐.”

“끙. 이러려고 날 이 슈퍼마켓 공동사장으로 만든 거지? 지분이라고는 쥐뿔도 없는 바지사장으로 말이야.”

“어허, 찬수 자네 무슨 그런 섭한 소리를. 내가 자네를 얼마나 아끼는데. 자넨 나의 둘도 없는 친구야.”

“친구는 개뿔. 일단 지금은 바쁘니까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세.”

“잠깐만.”

잔뜩 골이 난 표정으로 돌아서는 박찬수를 향해 김판석이 무언가를 내밀었다.

두툼한 봉투였다.

“뭐야? 이게?”

“연말 보너스.”

“보너스?”

“우리 ‘Kim’s Supermaket’은 찬수 자네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 가게가 아닌가. 그러니 내가 자네를 살뜰하게 안 챙겨줄 수 없지.”

“크흠. 그건 맞는 말이긴 하지.”

“자자, 얼른 넣어둬. 명색이 크리스마스인데, 자네도 식구들이랑도 기분 좀 내야 하지 않겠어?”

“나 참, 김 사장은 뭐 이런 걸 다...... 아무튼 고맙네, 김 사장.”

방금 전의 골이 잔뜩 난 표정은 온데간데없이, 금새 기분 좋은 표정을 지어 보이는 박찬수.

그런 그를 향해 김판석이 말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오늘 가게 영업 끝나고 영화 한 편 어때?”

“영화? 자네 지금 막 영화 보고 오는 길이잖아?”

“우리 아들이 만든 영화는 보고 또 봐도 질리지가 않거든. 그래서 갈 거야, 말 거야?”

“으, 판석이 자네를 누가 말리겠나. 알았어. 가자고,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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