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 < 전설의 모험 영화 <레이더스> (8) >
40.
할리우드의 한 극장.
꽤 많은 수의 사람들이 극장 안에 모여 있었다.
나의 새 영화 <레이더스> 비공개 시사회에 초청받은 할리우드 영화 관계자들이었다.
“<스페이스 워즈>라는 대작을 만든 조지 루이스가 참여한 영화라니, 이거 무척이나 기대되는군요.”
관계자 중의 한 사람이 말했다.
할리우드 내에서 조지 루이스가 가진 이름값(name value)은 영화의 내용을 떠나서 사람들의 기대를 모으기 충분했던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사람의 의견은 이와 정반대였다.
“조지 루이스가 각본과 제작에 참여하긴 했지만, 감독은 완전 초짜 감독이라면서요?”
“그러게요. 듣자니 이번이 겨우 두 번째 영화라더군요.”
“할리우드 영화판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곳입니까? 전작은 운 좋게 성공했을지 몰라도 이번에는 그리 쉽지 않을 것입니다.”
“맞습니다. 게다가 요즘 같은 시대에 한물간 고전 시리얼 형식의 영화를 다시 재현한다는 게 말이나 되는 이야깁니까?”
“제작 기간도 불과 80일이 채 안 된다고 하더군요. 무려 2천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블록버스터급 영화를 그 짧은 기간에 만들었다는 걸 보아하니, 영화의 완성도는 안 봐도 뻔할 듯합니다.”
“아마도 영화 시장의 성수기인 크리스마스 시기에 억지로 끼워 맞춰 개봉하려고 서두른게지요.”
“아무래도 조지가 뭔가에 씌었나 봅니다. 초짜에, 그것도 동양인 감독과 덜컥 손을 잡고 영화 제작에 나서다니요.”
그런데.
막상 영화가 시작되자, 상황은 곧바로 반전되었다.
시사회장에 모인 관계자들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순식간에 영화에 몰입되어버린 것이다.
그 시작은 바로,
마치 티저(Teaser;예고편) 광고를 연상하게 하는 획기적인 오프닝 액션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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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남아메리카.
대학교수 겸, 고고학자 겸, 탐험가인 인디아나 존슨 박사는 동료와 함께 고대 유물을 찾아 나서게 된다.
험난한 밀림지대를 지나, 드디어 고대 유물이 잠들어 있는 비밀 동굴에 도착한 존슨 박사.
그런데.
“바, 박사님.”
놀란 토끼 눈을 한 동료의 말이 채 끝나기가 무섭게 온갖 해충들이 그들을 습격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무시무시한 함정들까지 등장하며 그들의 생명을 위협한다.
“피, 피해!”
“숙여!”
“뛰어! 얼른 뛰란 말이야!”
천신만고 끝에 두 사람은 드디어 보물이 보관된 비밀장소에 도착하게 된다.
하지만.
“잘 가시오, 존슨 박사.”
함께 온 동료의 배신으로 홀로 동굴에 갇히게 된 존슨 박사.
급기야 동굴마저도 점점 무너져내리기 시작했다.
또다시 온갖 함정과 장애물을 피해 가며 겨우 동굴을 빠져나온 존슨 박사.
그런데.
“용케도 살아나왔군, 존슨 박사.”
그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그의 라이벌이자, 악덕 고고학자인 벨록이었다.
벨록의 곁에는 자신을 배신한 동료의 시체가 널부러져 있었고.
“미안하지만 당신 보물은 이제 내 것이야, 흐흐흐.”
힘겹게 구한 보물을 벨록에게 빼앗긴 존슨 박사는 벨록의 사주를 받은 원주민들에게 다시 쫓기는 신세가 된다.
한동안 원주민들이 쏘는 독화살을 피해 달아나던 존슨 박사.
다행히 미리 준비해둔 비행기를 이용해 무사히 그곳을 탈출하는 데 성공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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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래도 영화는 첫 장면이 가장 중요하다.
첫 장면에서 관객의 관심과 흥미를 유발했다면 이미 그 영화는 반은 성공한 것이나 다름없다.
‘이런 티저(teaser) 형식의 영화 오프닝은 할리우드는 물론 전 세계 어떤 영화계에서도 시도된 적이 없는 획기적인 방법이지. 그러니 시사회에 참석한 사람들이 저런 놀란 표정을 지을 수밖에는.’
이어지는 장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들.
잠시도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도록 박진감 넘치게 진행되는 논스톱 액션.
여기에 주연 배우들의 천연덕스러운 연기와 위트 있는 대화들.
이 모든 것이 <레이더스>라는 영화를 전 세계적인 흥행으로 이끈 요소라는 것을 나는 무척이나 잘 알고 있었고, 그래서 이를 더욱 완벽하게 영상으로 담아낸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대략 두 시간의 러닝 타임이 지나 영화가 모두 끝이 났다.
영화를 본 관계자들의 반응이 어떨지는 굳이 그들의 말을 직접 들어보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었다.
왜냐하면 영화 상영 중간중간 터져 나온 감탄사와 웃음소리의 향연은 그들이 이 영화를 얼마나 재미있게 관람했는지를 충분히 방증하고도 남음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41.
Film Kim 사무실.
내가 ‘유니온 픽처스’의 레이첼 도나 사장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이번 시사회 반응이 장난이 아니더군요.”
레이첼이 상기된 표정으로 나를 향해 말했다.
이 짧은 기간에 이 정도로 완성도 있는 영화가 만들어질 것이라고는 투자자인 그녀도 미처 상상하지 못했던 것이다.
“시사회에 참석한 거의 모든 사람이 이번 영화에 대해 극찬을 아끼지 않더라고요. 영화판에서 잔뼈가 굵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기할 정도인데, 관객들은 어떻겠어요? 이번 영화, 보나 마나 엄청난 흥행 성적을 올릴 수 있을 것이 틀림없어요.”
“당연히 그래야겠죠. 저를 믿고 투자해주신 사장님을 봐서라도 말이에요, 하하.”
“아무리 생각해도 참 신기하네요. 그 짧은 기간에 이런 완성도 있는 영화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영화의 시나리오가 워낙 좋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스태프들이 합심해서 사전 작업을 철저하게 준비한 덕분이기도 하고요.”
“그나저나......”
레이첼이 말을 이었다.
“맥거핀 맞죠? 이번 영화의 줄거리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 요소가.”
“사장님께서 아주 제대로 보셨군요. 제가 전에도 이야기했지만, 사장님은 영화에 대한 조예가 굉장히 깊으신 것 같습니다. 딱 한 번만 보고도 이 영화의 핵심을 그렇게나 잘 짚어내시는 것을 보아하니 말이에요.”
맥거핀이란 일종의 트릭(trick;속임수)을 말한다.
영화의 줄거리 상 별로 중요하지 않은데, 마치 중요한 것처럼 관객의 주의를 끄는 것이다.
사실 영화의 첫 장면에 등장하는 ‘보물’은 영화의 내용과는 별로 관련이 없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물건이다.
그런데 마치 그것이 대단한 것인 양 포장이 되어 있는데, 이것이 바로 ‘맥거핀’인 것이다.
뒤이어 또 다른 맥거핀이 등장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황금 메달’과 ‘성궤’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런 보물이 아니라, 보물을 찾기 위해 죽을 고비를 넘기는 주인공 인디아나 존슨의 모험담 그 자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이 맥거핀에 주목하고, 여기에 이끌리게 되면서 자신도 모르는 사이 영화에 빠져들게 된다.
다음 장면이 어떻게 될까를 궁금해하며 끊임없이 극장을 찾게 만든 고전 시리얼 영화처럼 <레이더스>에 등장하는 다양한 맥거핀은 관객에게 지속적으로 다음 장면을 궁금하게 만들어 영화의 흡입력을 배가시키는 요소로 작용을 한 것이다.
“맥거핀도 맥거핀이지만, 저는 무엇보다 주인공 존슨 박사의 캐릭터 설정이 너무 좋았어요.”
“어떤 점이 말입니까?”
“사실 기존의 영화 주인공들은 대부분 정형화된 틀이 있잖아요. 가령 예를 들면 주인공은 정의롭고 또 보통 사람들과는 다른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게 마련인데, 이번 영화의 주인공인 존슨 박사는 전혀 다른 모습이에요. 불완전하고, 실수투성이며, 때론 매우 폭력적인 행동도 서슴지 않죠. 하지만 위기 상황에서 발휘되는 기막힌 재치와 해학적인 농담은 보는 관객으로 하여금 자연스럽게 웃음을 자아내게 만들죠.”
“사장님께서 아주 정확하게 보셨네요. 고전적인 영웅과는 달리 존슨 박사의 모험담이 자아내는 긴장감과 쾌감은 그의 불완전함과 실수에서 비롯되는 것이니까요.”
“무엇보다 중절모를 쓰고 채찍을 손에 든 존슨 박사의 외모도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요. 정작 영화에서 채찍을 사용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서도요, 호호호.”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은 한동안 시간 가는 줄도 모른 채 계속 영화 이야기에 몰입하고 있었다.
“그나저나, 감독님.”
“예.”
“이번 영화를 보면서 새삼 느낀 건데, 저도 다시 한번 영화를 만들어 보고 싶어요.”
“사장님이요?”
“네. 전에도 말씀드렸다시피, 제가 원래 영화 감독이 되는 것이 꿈이었거든요.”
“아, 기억나는군요. <레이더스> 투자 문제로 처음 사무실에서 사장님을 만났을 때 그런 이야기를 하셨었죠.”
“그래서 말인데, 감독님이 저를 좀 도와주실 수 있겠어요?”
“제가요?”
“네. 감독님은 제가 본 어떤 영화 감독보다 뛰어난 영화적 재능을 가진 분이세요. 그런 감독님이 만약 저를 도와주신다면 저도 제대로 된 영화를 한번 만들어 볼 수 있을 것 같아서요.”
“흐음.”
전혀 예상치 못한 레이첼의 부탁에 내가 잠시 고민에 빠졌다.
그 순간.
내 머릿속에 번뜩 떠오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일전에 내가 <체이스 오브 리벤지> 시나리오를 쓸 때 함께 써둔 또 하나의 시나리오였다.
‘이 영화 시나리오 또한 저예산으로 쉽게 찍을 수 있는 시나리오이지. 초창기 제대로 된 투자자를 만나지 못할 경우를 대비해서 만든 시나리오라서 말이야. 하지만 영화 감독으로 어느 정도 이름을 알리게 된 지금의 나에게는 더이상 필요가 없을 테니, 레이첼에게 연출을 한번 맡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 어차피 실패해도 그만인 시나리오니까.’
생각을 마친 내가 레이첼을 향해 말했다.
“사장님.”
“네.”
“도와드릴게요.”
“네?”
“영화 감독으로서 사장님의 영화 촬영을 제가 도와드리겠다고요.”
“그, 그게 정말이세요?”
“네. 대신 이번에는 서로 입장을 한번 바꾸어보도록 하죠.”
“입장을 바꾼다고요? 어떻게요?”
“이번에는 제가 투자자가 되고 사장님이 영화의 메가폰을 잡는 겁니다. 아, 물론 저도 제작자로 참여해서 사장님의 영화 촬영을 적극적으로 도와드릴 것이고요.”
레이첼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생각지도 못한 나의 제안에 무척이나 놀란 탓이었다.
“사장님께서 동의하신다면 일단 두 가지를 제가 사장님께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그게 뭔데요?”
“하나는 이것입니다.”
내가 곁에 있는 가방에서 카메라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 놓았다.
독립 영화나 저예산 영화 제작에 많이 사용되는 16mm 카메라였다.
“16mm 카메라네요?”
“예.”
“그 말은 저더러 저예산 내지는 독립 영화를 한번 찍어보라는 뜻인가요?”
“그렇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내가 가방에서 다시 종이 뭉치 하나를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렸다.
“영화 시나리오입니다. 일전에 제가 써둔 영화 시나리오가 하나 있거든요. 살펴보시고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면 이걸 이용해 영화를 촬영하시면 됩니다.”
“영화 시나리오라......”
내가 준 시나리오를 천천히 넘겨보던 레이첼이 다시 나를 향해 물었다.
“공포 영화인가 보네요?”
“예. 정확하게는 공포 스릴러 영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의미심장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이 영화가 지금까지 영화계에서는 단 한 번도 시도되지 않은 ‘페이크 다큐멘터리(fake documentary)’라는 기법으로 촬영될 예정이라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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