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22화 (22/145)

# 22 < 전설의 모험 영화 <레이더스> (5) >

34.

영화 <인디아나 존슨> 시리즈.

30년에 걸쳐 총 4편이 제작된 이 영화는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 가운데 하나였다.

시리즈 전체 관람료 수익만도 20억 달러를 훌쩍 넘겼을 정도이니, 이 영화가 대중들로부터 얼마나 큰 인기를 얻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1978년.

드디어 나는 이 세계적인 대작 영화 <레이더스>의 제작에 돌입했다.

영화 제작에 앞서 나는 두 가지 계획을 세웠다.

하나는, 이 영화의 원래 모습을 훼손하지 않고, 전생에서 내가 본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었다.

<레이더스>는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흥행이 보장된 영화이다.

괜히 어쭙잖은 내 미래의 영화 지식과 기술로 자칫 영화를 잘못 건드렸다가 생각지도 못한 나비 효과가 일어날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에 나는 각본 제작 과정에서 조지 루이스와 로런스 캐스던, 필립 커프만 세 사람의 의견을 최대한 존중했다.

그들은 실제 <레이더스>라는 영화를 만드는데 주축이 된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 가지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영화의 가장 핵심이 되는 주인공과 관련된 문제였다.

<레이더스>는 대학교수이자, 때때로 전 세계를 돌며 유물을 발굴하는 고고학자 인디아나 존슨이 미국 정부의 의뢰를 받아 ‘성궤’를 찾는 과정을 그린 모험영화이다.

특히 이 영화는 주인공을 중심으로 모든 사건과 스토리가 전개된다.

따라서 주인공 인디아나 존슨 캐릭터를 얼마나 잘 살리느냐가 이 영화의 성패를 좌우할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그런데.

각본 제작 회의 초기만 해도 주인공인 인디아나 존슨 캐릭터는 내가 알고 있는 그것과는 많이 다른 방향으로 설정되어 있었다.

따라서 적어도 이 부분만큼은 내가 직접 개입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

Film Kim 사무실.

영화 <레이더스>의 각본 제작 회의가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저기, 조지.”

내가 조지 루이스를 향해 말했다.

“제가 조지에게 한 가지 묻고 싶은 것이 있어요.”

“뭔데?”

“주인공인 인디아나 스미스라는 이름은 어떻게 생각해 낸 거예요?”

원래 조지 루이스가 쓴 <레이더스> 시나리오 초안에는 주인공의 이름이 ‘인디아나 스미스’로 설정되어 있었다.

이에 나는 가장 먼저 주인공의 이름부터 내가 알고 있는 이름인 ‘인디아나 존슨’으로 바꿀 필요가 있었다.

“아, 그거?”

조지 루이스가 멋쩍은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내가 기르는 개 이름이 ‘인디아나’거든. 여기에 내가 좋아하는 배우 스티브 매퀸이 연기한 배역 ‘네바다 스미스’를 합친 거야. 근데 왜? 이름이 이상해?”

“이상하다기보다는 이름이 너무 평범한 것 같아서요. 이건 제 생각인데, 스미스 대신 존슨 어때요? 그편이 훨씬 부르기도 편하고 친근감도 더 있는 것 같아서요.”

“뭐, 이름이야 어떻게 정하든 큰 상관은 없겠지. 킴 말을 듣고 보니 스미스보다는 존슨이 더 나은 것 같기도 하고.”

의외로 쿨한 태도를 보이는 조지 루이스.

하지만 그가 절대 양보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주인공 역을 맡을 배우를 캐스팅하는 문제였다.

“다른 사람은 절대 안 돼! 주인공인 ‘인디아나 존스’역은 반드시 톰 핸슨 그 사람이 맡아야 해!”

내가 기억하는 영화 <레이더스>의 주인공은 윌리엄 포드라는 배우가 연기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이 배역을 아주 완벽하게 소화해 냈다.

‘누가 뭐래도 이 영화의 주인공인 인디아나 존슨 역할을 맡을 사람은 윌리엄 포드야. 내 전생의 기억에 따르면 그는 이 역할을 무척이나 훌륭하게 소화해 냈으니까 말이야.’

하지만 조지 루이스의 완강한 태도 때문에 나는 어쩔 수 없이 톰 핸슨과 접촉을 해볼 수밖에 없었다.

내 예상이 맞다면 톰 핸슨 그 사람은 분명 이 영화의 출연을 거절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자연스럽게 윌리엄 포드가 영화의 주연으로 발탁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알았어요, 조지. 일단 조지의 말 대로 톰 핸슨 측에 연락해서 출연 의사가 있는지 한번 알아보도록 할게요.”

***

뉴욕의 한 드라마 촬영장.

방금 막 촬영을 끝마친 배우 하나가 대기실로 들어섰다.

“휴, 이걸로 이번 회차의 내 촬영분은 모두 끝난 건가?”

긴 촬영에 지친 듯 의자에 털썩 주저앉으며 한숨을 돌리는 남자.

현재 미국 내 최고의 몸값을 자랑하는 인기 남자 배우 톰 핸슨이었다.

올해 서른을 갓 넘긴 톰 핸슨은 잘생긴 외모 못지않게 뛰어난 연기력의 소유자였다.

특히 지금 그가 출연하고 ‘베레타 P.I’라는 드라마는 벌써 몇 개월째 북미 시청률 1위를 기록하며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었다.

그야말로 톱스타 중의 톱스타가 바로 톰 핸슨이었던 것이다.

“헤이, 톰.”

톰 핸슨의 맞은 편에 앉아 있던 남자가 그를 향해 말했다.

남자의 정체는 톰 핸슨이 속해 있는 에이전시 관계자 에릭 존시였다.

“이거 한번 봐봐.”

“뭔데?”

“영화 시나리오. 루이스 필름 쪽에서 보내왔어.”

“루이스 필름?”

톰 핸슨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렇지 않아도 그는 조만간 할리우드 영화계로 진출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루이스 필름이라면 얼마 전 <스페이스 워즈>라는 영화로 대박을 터트린 영화사잖아?”

“맞아. 전 세계적으로 3억 달러가 넘는 엄청난 흥행 수익을 올렸다더군.”

“후후. 그 정도 이름 있는 영화사에서 보내온 시나리오라면 당연히 한번 검토해봐야지. 혹시 알아? 나를 <스페이스 워즈> 속편의 주인공으로 캐스팅하려는 것일지.”

하지만 에릭 존시가 내민 시나리오의 제목은 톰 핸슨의 기대와는 전혀 다른 것이었다.

“레이더스?”

“그래. 1930년대를 배경으로 독일의 나치에 맞서 ‘성궤’라는 고귀한 유물을 찾아 나서는 한 고고학자의 모험을 그린 영화라더군.”

“모험 영화라...... 내가 기대했던 것과는 조금 다른데?”

살짝 실망스러운 표정을 지어 보이는 톰 핸슨.

그래도 루이스 필름이라는 이름값 때문인지, 아직은 크게 거부감을 보이지는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응?”

시나리오를 살펴보던 톰 핸슨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이게? 감독이 조지 루이스가 아니잖아?”

“조지 루이스는 이번 영화에서 제작만 맡기로 했고, 연출을 맡은 감독은 따로 있어. 거기 적힌 제임스 킴이라고......”

“제임스 킴?”

“그래. 얼마 전 <체이스 오브 리벤지>라는 액션 영화를 만들어 크게 흥행에 성공한 감독인데......”

에릭 존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톰 핸슨이 시나리오를 테이블 위에 던지듯이 내려놓으며 말했다.

“됐어, 안 해.”

“톰. 일단 시나리오부터 먼저 읽어보고......”

“안 한다니까!”

톰 핸슨이 신경질적으로 말했다.

“넌 지금 나더러 하찮은 동양인 감독 밑에서 일을 하라는 거야? 내가 이 영화에 출연하게 되면 촬영장에서 그 동양인이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사사건건 지시할 것이 뻔한데, 나보고 그걸 다 감수하라고?”

“제임스 킴 감독이 동양인이긴 하지만 이 바닥에서 평이 아주 좋아. 스태프와 배우들을 잘 배려하고, 무엇보다 실력이 꽤 있고.”

“Bullshit!”

톰 핸슨이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누가 뭐라고 해도 나는 동양인 감독 밑에서는 일 못 해. 그러니까, 이번 건은 없었던 일로 해.”

“......”

“아, 그래도 조지 루이스 감독과는 앞으로 또 인연이 있을지 모르니까, 그럴듯한 핑곗거리를 만들어서 상대가 기분 상하지 않게 거절하는 것이 좋을 것 같군. 그 정도는 에릭 네 선에서 충분히 해결할 수 있지?”

“알았어, 톰. 내가 적당한 이유를 만들어서 거절 의사를 전달하도록 할게.”

톰 핸슨이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의자 뒤로 몸을 젖혔다.

하지만.

그가 모르는 것이 하나 있었다.

그것은 바로,

그가 출연을 고사한 <레이더스>라는 영화는 조만간 전 세계적으로 엄청난 흥행 돌풍을 일으키며 그야말로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작 가운데 하나가 된다는 것을.

그리고 이 사실을 알게 된 톰 핸슨은 자신의 선택에 땅을 치고 후회하며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게 된다는 것을.

...... I want to shoot my head with a pistol!

(그때만 생각하면 권총으로 내 머리를 쏘고 싶다!)

35.

영화사 Film Kim.

조지 루이스의 실망스러운 목소리가 회의실 문밖까지 울려 퍼졌다.

“뭐? 톰 핸슨이 <레이더스> 출연을 거절했다고?”

“예. 조지.”

“이유가 뭐야?”

“현재 촬영 중인 드라마의 전속 계약이 아직 끝이 나지 않았다네요.”

“그 드라마는 이제 거의 종방이 가까워지고 있잖아?”

“그쪽 에이전시 말로는 지금 드라마가 매우 인기가 있어서 속편 제작 가능성도 있다고 하네요.”

“가능성은 무슨. 그냥 이번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지 않는 거겠지. 그것도 아니면......”

조지 루이스가 하려던 말을 멈추었다.

하지만 눈치 빠른 나는 그가 무슨 말을 하려던 것인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다.

“아니면 감독인 내가 마음에 안 들어서던가요.”

“그, 그게 무슨 말이야, 킴?”

“조지도 알잖아요. 톰 핸슨이 소문난 인종차별주의자라는 걸. 일전에 상대역으로 흑인 배우가 출연하자, 촬영을 완강히 거부해서 결국 백인으로 그 역할이 바뀌게 되었다는 일화는 언론에까지 보도되며 인권단체들의 큰 비난을 사기도 했잖아요.”

“......”

조지 루이스가 살짝 민망해하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미안해, 킴. 내가 톰 핸슨을 주인공으로 섭외하려한 건 그런 의도가 아니었어.”

“알아요, 조지. 조지는 그저 시나리오에 가장 잘 어울릴 만한 배우를 찾은 것일 뿐이죠.”

“그나저나 이제 어쩌지? 톰 핸슨을 대신해 ‘인디아나 존슨’ 역할을 맡을 배우를 찾아야 할 텐데 말이야.”

내가 조지 루이스를 향해 넌지시 말했다.

“윌리엄 포드 씨는 어때요?”

“윌리엄 포드?”

“네. 앞선 <스페이스 워즈>에서 한 솔로 역을 맡은 남자 배우 말이에요. 그때 조지도 무명이지만 굉장히 뛰어난 배우라고 입에서 침이 마르도록 칭찬을 했었잖아요.”

“물론 윌리엄 포드도 훌륭한 배우이긴 하지. <스페이스 워즈>의 흥행 성공으로 배우로서의 인지도도 꽤 많이 올라갔고. 하지만 그가 과연 이 역할을 잘 소화해 낼 수 있을까?”

물론이지.

윌리엄 포드만큼 이번 영화의 주인공 역할을 잘 소화할 수 있는 인물도 없다니까.

이는 전생에서 내가 이미 눈으로 확인한 사실이기 때문에 너무나도 확실했다.

속마음을 감추며 내가 조지 루이스에게 말했다.

“일단 오디션을 한번 보기로 해요. 그래서 만약 그가 이 배역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판단되면, 그때는 또 다른 사람을 찾으면 되니까요.”

“그래. 일단 윌리엄 포드 쪽에 시나리오를 보내서 의사를 한번 알아보도록 하자고.”

“예, 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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