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21화 (21/145)

# 21 < 전설의 모험 영화 <레이더스> (4) >

33.

루이스 필름.

내가 조지 루이스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우리 영화에 투자할 투자자를 찾았다고?”

“예, 조지. 그것도 무려 2천만 달러 나요.”

“누구야 그 투자자가? 도대체 누가 그런 큰돈을 선뜻 투자하겠다고 나선 거야?”

“유니온 픽처스의 레이첼 도나 사장님이에요.”

“레이첼 도나? 킴이 레이첼 양을 직접 만난 거야?”

“네. 만나서 영화 시나리오의 내용과 촬영 방향에 대해서 상세하게 설명드렸어요. 그랬더니 선뜻 투자에 응하더라고요.”

“아무리 그래도 그런 큰돈을......”

조지 루이스가 눈썹을 씰룩거리며 말했다.

“역시나 그 소문이 사실이었나 보군.”

“소문요?”

“그래. 유니온 픽처스의 레이첼 도나 사장이 유대 명문 가문인 골드버그 가(家)의 사람이라는 소문 말이야. 하긴, 그러니 그 나이에 그 정도 규모의 영화사를 소유하고 있을 테지.”

“골드버그 가문이 유명한 집안이에요?”

“당연하지. 원래 그 집안이 독일에서 대규모의 금융업을 했었는데, 2차 세계대전 직전에 등장한 나치스의 탄압을 피해 미국으로 대거 망명을 했다더군. 지금도 미국 금융의 중심지인 월가에서 꽤나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고.”

“그 말은 한 마디로 우리가 괜찮은 스폰을 잡았다는 뜻이네요?”

“모르지. 소문은 그저 소문일 뿐이니까.”

조지 루이스가 빙긋 웃으며 말했다.

“그나저나 레이첼 양이 킴이 아주 마음에 들었나 봐. 이렇게 단숨에 거액의 투자 결정을 한 것을 보면 말이야.”

“제가 아니라 제 영화가 마음에 들었나 봐요. 사장님이 앞서 제가 만든 <체이스 오브 리벤지>를 무척 인상 깊게 봤다고 하더라고요.”

“하긴. 그 영화를 봤다면 킴이 얼마나 앞으로 성장 가능성이 큰 영화감독인지 짐작할 수 있었을 테지.”

“어쨌거나 가장 중요한 제작비 문제가 해결됐으니, 이제 본격적인 영화 촬영 준비를 시작할 일만 남았네요.”

“근데......”

조지 루이스가 살짝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이천만 달러로 영화 제작을 완벽히 마무리 지을 수 있을까?”

“조지의 생각에는 이천만 달러로는 제작비가 부족할 것 같아요?”

“아마도. 킴도 한번 생각해 봐. 우리 영화의 컨셉이 CG를 최대한 배제하고, 순수한 아날로그 형식의 촬영 방식을 지향하고 있잖아. 그러다 보니, 세트 제작에만도 천문학적인 예산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고.”

영화 <레이더스>는 1930년대와 40년대 미국에서 유행하던 고전 시리얼 형식의 영화를 지향하고 있었다.

그 때문에 최대한 CG 사용을 배제하고, 눈속임이나 잔재주 없이 현장에서 실제 배우들이 구현 가능한 물리학적 법칙 내에서 액션씬을 촬영할 예정이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영화의 배경이 실제 세트로 제작되어야만 했다.

그야말로 엄청난 규모의 예산이 소요되는 대규모 작업인 것이다.

“방법이 영 없는 것은 아니죠.”

“방법? 킴에게 제작비를 절약할 좋은 방법이 있단 말이야?”

“네.”

“그게 뭔데?”

“일단은 촬영 기간을 최대한 단축하는 거죠. 하루에 최대한 많은 양의 씬을 소화해내서 촬영 기간을 최대한으로 단축하면 제작비 또한 그에 상응하게 줄어들 거예요.”

“말이야 쉽지. 하지만 실제 현장에서 어떤 변수가 발생할지도 모르는데......”

“변수를 최대한 억제해야죠. 그러기 위해서는 프리 프로덕션 기간 동안 철저한 준비가 필요하고요. 특히 스토리보드를 사전에 상세하게 만들어두면 현장에서도 시간 낭비하지 않고 최대한 많은 씬을 촬영할 수 있을 거예요.”

내가 덧붙여 말했다.

“그래서 저는 이번 영화 촬영 전에 최소 6,000컷 이상의 스토리보드를 만들 생각이에요.”

“6,000컷? 그렇게나 많이?”

“네. 영화의 한 장면 한 장면을 모두 다 스토리보드 화(化)하는 거죠. 현장에서는 이 스토리보드를 그대로 구현해내는 데만 집중하는 거고요.”

스토리보드란 영화의 주요 장면을 그림이나 사진으로 정리한 일종의 촬영 계획표라고 할 수 있다.

사실 감독이 머릿속으로 생각하는 영상이나 이미지를 말로 전달시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이에 대부분의 영화 촬영 현장에서는 스토리보드를 제작해 촬영장에서 제작진과의 의사소통 도구로 활용한다.

특히 영화 제작 규모가 점점 커지는 현대로 갈수록 촬영 현장에서 스토리보드의 중요성은 더욱 커진다.

수백 명의 제작진이 참여하는 블록버스터급 영화의 경우 촬영 일정이 단 며칠만 지연되어도 들어가는 제작비가 엄청난 차이를 보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대규모의 영화 촬영일수록 더욱 디테일한 스토리보드의 제작이 요구되는 것이다.

‘현재 할리우드에서 촬영되는 많은 영화가 최소한의 스토리텔링을 이어갈 수 있을 만큼의 스토리보드만 제작되고 있어. 세부 내용은 대부분 촬영 현장에서 구두로 이루어지고 있고.’

하지만 나는 달랐다.

전생에서 30년 넘게 영화계에서 일한 경험 덕분에 나는 정교한 스토리보드의 제작이 얼마나 중요한지, 이것이 얼마나 큰 제작비 절감 효과를 가져오는지를 명확하게 알고 있었다.

그래서 이번 영화 제작에서도 촬영 전 과정을 상세하게 스토리보드로 제작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또 하나는......”

내가 다시 말을 이었다.

“중견이나 무명 배우들을 출연시켜 개런티를 최소화하는 거죠. 앞선 <체이스 오브 리벤지>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에요.”

“그건 안 돼.”

조지 루이스가 잘라 말했다.

“내가 전에도 말했지만, 영화에 인기 있는 배우가 출연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관객의 흥미를 떨어뜨리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어. 게다가 애초에 내가 이 영화를 기획할 때, ‘중절모를 쓰고 채찍을 휘두르는 모험가의 이야기’ 이 한 줄만 가지고 시작했단 말이야. 사전에 이 역할에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도 염두에 두고 있었고.”

“그게 누군데요?”

“톰 핸슨(Thomas Hanson).”

톰 핸슨은 현재 미국 내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남자 배우였다.

특히 그가 출연한 ‘베레타 P.I’라는 TV 드라마는 벌써 몇 년째 전미 시청률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엄청난 인기를 누리고 있었다.

그 덕분에 톰 핸슨은 지금 미국 남자 배우 가운데 가장 높은 몸값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런데.

‘톰 핸슨? 윌리엄 포드가 아니라 톰 핸슨이라고?’

뭔가 이상했다.

내가 기억하는 <인디아나 존슨> 시리즈의 주인공은 윌리엄 포드라는 배우였다.

영화 <인디아나 존슨>에서 윌리엄 포드의 연기는 그야말로 완벽 그 자체였다.

그는 생동감 넘치는 액션과 특유의 천연덕스러운 연기로 영화에 딱 맞는 주인공 캐릭터를 창조해냈다.

그 결과 ‘인디아나 존슨’이라는 캐릭터는 역대 영화 캐릭터 가운데 가장 매력적인 캐릭터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특히 윌리엄 포드가 얼마나 이 역할을 완벽하게 소화해냈던지, 이후 그가 다른 장르의 영화에도 여러 편 출연했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이 캐릭터의 강렬한 이미지를 벗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지금 조지 루이스는 윌리엄 포드가 아닌 다른 사람을 주인공으로 캐스팅하려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여기에는 내가 모르는 어떤 사연이 숨어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다.

“톰 핸슨의 중후한 이미지, 여기에 그의 멋드러진 콧수염과 미소는 내가 생각하는 주인공의 이미지와 완벽하게 맞아떨어지고 있어. 그러니 다른 건 몰라도 톰 핸슨은 반드시 이번 영화에 주인공으로 캐스팅해야 해.”

“조지의 생각이 정 그렇다면 어쩔 수 없죠. 주인공을 제외한 나머지 역할들을 중견급이나 무명 배우로 채우는 수밖에요.”

조지 루이스의 완강한 태도에 내가 한발 물러섰다.

‘아직은 잘 모르겠지만, 계속 지켜보면 왜 톰 핸슨이 아닌 윌리엄 포드가 이 영화의 주인공으로 캐스팅 되는지를 알 수 있게 될 테니까.’

내가 원 역사를 알고 있기 때문에 부릴 수 있는 여유였다.

“아, 그리고 조지.”

“말해, 킴.”

“우리 영화의 각본 제작을 도와줄 사람을 몇 명 더 영입했으면 좋겠어요. 아까 말했듯이 영화 스토리보드를 완벽하게 작성해서 촬영에 임하려면 우리 두 사람 외에도 능력 있는 각본가가 더 필요할 것 같아서요.”

“나쁘지 않은 생각인 것 같군. 근데 누가 좋을까?”

“일단은 로런스 캐스던을 먼저 영입했으면 해요.”

“로런스 캐스던?”

“네. 그는 지난번 <스페이스 워즈> 촬영 때도 각본가로서 아주 훌륭한 역할을 수행해냈잖아요. 더불어 필립 커프먼 씨도 함께 각본가로 영입했으면 좋겠어요.”

내가 이번 영화 제작에 각본가인 로런스 캐스던과 필립 커프먼을 영입하려는 이유는 간단했다.

그들은 실제 영화 <레이더스>의 각본가로 활동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었다.

사실 내가 전생에서 영화 <레이더스>의 완성작을 보긴 했지만, 영화의 모든 장면을 디테일하게 다 기억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이 영화가 워낙 오래된 영화인 탓에 전체적인 스토리와 주요 장면들만 주로 기억하고 있을 뿐이었다.

따라서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세부적인 장면들을 메워줄 그 누군가가 반드시 필요했다.

‘여기에 가장 적합한 인물이 바로 <레이더스>의 실제 각본가인 로런스 캐스던과 필립 커프먼이고.’

기존의 <레이더스> 제작팀이 가지고 있는 능력.

여기에 나의 현대적인 영화 감각과 지식이 더해진다면 이 영화는 기존보다 훨씬 더 완벽한 영화로 탈바꿈될 수 있을 것이었다.

“흠, 좋은 생각이군. 각본가로서의 두 사람의 능력은 이미 이곳 할리우드에 정평이 나 있으니, 그 두 사람이 이번 영화에 참여하면 훨씬 더 완벽한 영화가 만들어질 수 있겠지. 그런데 그 두 사람이 순순히 이번 영화에 참여할까? 둘 다 워낙 바쁜 사람들이어서 말이야.”

“일단 한 번 제안해보죠, 뭐. 앞선 <스페이스 워즈> 촬영 때의 인연도 있으니까 두 사람도 아마 긍정적으로 생각할 거예요.”

“그래, 알았어. 각본가인 로런스 캐스던과 필립 커프먼 영입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 테니까, 킴은 스태프 구성이랑 배우 섭외 일을 맡아서 하도록 해. 아, 베이스 캠프는 어디에 두는 것이 좋을까?”

“Film Kim 사무실로 해요. 이번 영화의 메가폰을 잡게 된 사람은 저니까요.”

“그렇게 해.”

***

1978년 봄.

나의 두 번째 영화가 될 <레이더스>의 제작 준비가 시작되었다.

전작과 달리 이번 영화의 제작에는 꽤 다양한 인물들이 참여했다.

투자: 유니온 픽처스

제작: 조지 루이스

각본: 조지 루이스, 로런스 캐스던, 필립 커프먼

감독: 제임스 킴

그리고 이것이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기념비적인 영화 탄생의 시작이라는 것은,

오직 나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