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 < 전설의 모험 영화 <레이더스> (2) >
29.
“일찍 나오셨네요, 사장님.”
사무실로 들어서는 나를 향해 여직원 이레나가 웃으며 말했다.
영화 촬영이 없는 비수기의 영화사는 무척이나 한산하다.
영화 산업의 특성상 필수 인력을 제외한 대부분의 스태프가 팀 단위의 계약직 형태로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요즘 Film Kim 사무실도 이레나를 포함한 대여섯 명 남짓의 직원만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커피 한 잔 드려요?”
“좋죠.”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피잔을 책상 위에 내려놓으며 이레나가 나에게 말했다.
“사장님 안 계실 때 유니온 픽처스 피터 로빈슨 상무님에게서 연락이 왔었어요.”
“피터 상무님에게서요?”
“예. <체이스 오브 리벤지> VHS 제작 문제와 관련해서 사장님과 상의할 일이 있으신 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언제 사장님 시간 나실 때 사무실로 한번 찾아오겠다고 하더군요.”
“아, 그러고 보니 이제 슬슬 VHS 제작을 시작해야 할 때가 온 것 같네요.”
VHS는 가정용 비디오테이프를 말한다.
이 시기 영화 제작사들은 극장 수입 못지않게 VHS 판매를 통해 제법 쏠쏠한 수익을 올리곤 했다.
‘후, 비디오테이프라니. 이거 완전 추억 돋는 기분이군.’
속마음을 감추며 내가 이레나를 향해 말했다.
“유니온 픽처스에 연락해서 내일 오후쯤에 제가 한번 만났으면 한다고 전해주세요. 아, 가정용 홈비디오 판권은 오롯이 우리 회사가 가지고 있으니, 루이스 필름 쪽에는 연락할 필요 없다고도 전해주시고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그보다 혹시 홍콩 쪽에서 연락 온 거 없습니까?”
“아, 그렇지 않아도 그 일 때문에 좀 전에 변호사 사무실에서 연락이 왔었습니다.”
“그래요?”
“예. 홍콩 쪽 영화사에서 매각 의사를 밝혀 왔다고, 그래서 절차를 진행해도 되겠느냐고 말이죠.”
서구 영화 산업의 중심이 할리우드라면 동양 영화 산업의 중심은 홍콩이다.
특히 1980년대는 홍콩 영화의 전성기가 열리는 시대이다.
그 때문에 나는 얼마 전 홍콩을 방문했을 때, 현지 영화사 하나를 매입하기 위해 해당 영화사의 사장과 직접 면담을 한 적이 있었다.
이후 다시 미국으로 돌아온 나는 이곳 변호사 사무실에 관련 일을 위임해 둔 상태였다.
“잘 됐군요. 그럼 지금 바로 변호사 사무실에 연락해서 매입 절차를 진행하라고 하세요.”
“알겠습니다, 사장님.”
“아,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회사가 가지고 있는 영화의 판권이니까, 이 부분도 절대 빠뜨리지 말고 다시 한번 확인해 달라고 전해주시고요.”
“네.”
***
VHS,
다시 말해 가정용 홈비디오 시장에서 영화 <체이스 오브 리벤지>가 큰 인기를 끌게 될 것이라는 조지 루이스의 예상은 그대로 적중했다.
출시와 동시에 비디오테이프 대여 순위 1위에 오르게 된 것이다.
비슷한 시기에 상영된 <슈퍼맨>은 대부분 사람이 이미 극장에서 관람을 끝마쳤다.
반면 <체이스 오브 리벤지>의 경우는 극장에서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의 숫자가 더 많았다.
이에 가정용 홈비디오 시장에서의 수요는 <체이스 오브 리벤지>가 <슈퍼맨>보다 더 높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관람객 수에 따라 수익이 늘어나는 상영관과는 달리 비디오테이프 시장은 아무리 많은 사람이 비디오를 대여해가도 제작사는 그에 상응하는 금전적 이익이 없다는 점이었다.
비디오테이프 대여 수익은 온전히 비디오 대여점의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도 전 세계 비디오 대여점에 판매한 VHS 수익으로 무려 천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으니, 그나마 선방한 셈이지, 뭐.’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은,
홍콩 현지에 우리 Film Kim 지점이 설립되었다는 것이다.
정확하게 말하면 기존의 홍콩 영화사인 ‘시네마 시티’가 ‘Film Kim Hong-Kong’으로 간판을 바꿔 단 것이었지만.
어쨌거나 이로써 1980년대를 주름잡을 홍콩 느와르 영화 시장을 장악할 사전 준비 작업도 마무리되었다.
무엇보다 고무적인 것은 아시아 영화 시장을 휩쓸 <영웅삼색>이란 영화의 원작을 내가 확보했다는 점이었다.
‘벌써부터 몇 년 뒤가 기대되는군. <영웅삼색>이라는 영화를 필두로 한 홍콩 느와르 영화 시대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 우리 Film Kim 홍콩 지점도 그야말로 급성장을 하게 될 테니까 말이야, 흐흐흐.’
하지만.
그보다 먼저 할 일이 한 가지 있었다.
그것은 바로 1980년대 초 할리우드 영화 시장을 휩쓸 영화 한 편을 또다시 내 손으로 직접 만드는 일이었다.
30.
루이스 필름.
사무실로 들어서는 나를 조지 루이스가 반갑게 맞았다.
“어서 와, 킴.”
“별일 없으시죠?”
“별일 있을 게 뭐 있나. 그나저나 점심은?”
내가 조지 루이스를 향해 손에 든 샌드위치를 흔들어 보였다.
“뭐야? 겨우 샌드위치 따위로 점심 때우게?”
“먹으면서 일 얘기하면 시간도 절약되고 좋잖아요.”
“읔! 아무리 봐도 킴 너는 일 중독이야. 그것도 아주 중증의.”
“하하, 그런가요?”
“그래. 자나 깨나 머릿속에 영화 생각밖에 없잖아.”
“그건 조지도 마찬가지잖아요. <스페이스 워즈> 상영이 끝나기가 무섭게 곧바로 다음 영화 시나리오 제작에 들어갔잖아요?”
“읔! 그 이야기라면 말도 꺼내지 마. 아주 치가 떨린다고.”
조지 루이스가 넌덜머리가 난다는 듯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일전에 킴이 나한테 그런 제안을 한 적이 있잖아? 모험 활극을 한번 써보는 것이 어떻겠냐고 말이야.”
“그랬죠.”
“그래서 내가 고심 끝에 한편의 시나리오를 완성해서 투자사를 찾아갔는데......”
잠시 뜸을 들이던 조지 루이스가 다시 말을 이었다.
“젠장. 찾아가는 영화사마다 전부 거절하더군. 3, 40년대 낡은 극장에서나 볼 수 있음 직한 이런 구닥다리 영화를 어느 누가 보겠느냐고 하면서.”
“설마 그 많은 영화사가 전부 다 거절했다고요? 그래도 명색이 <스페이스 워즈>라는 대작을 만들어낸 조지인데?”
“할리우드 투자사 놈들이 얼마나 약삭빠른 놈들인데. 돈이 안 될 것 같다고 생각되는 영화에는 단돈 1달러를 투자하는 것도 아까워하는 놈들이 바로 그놈들이라고.”
“어디 한번 봐요.”
“뭘?”
“조지가 쓴 그 시나리오 말이에요.”
“갑자기 킴이 그걸 왜......”
내가 농담을 던졌다.
“얼마나 졸작이길래 찾아가는 영화사마다 족족 거절했는지, 제 눈으로 한번 확인해보고 싶어서요, 흐흐.”
“읔. 꼭 그렇게 확인 사살까지 해야 직성이 풀리겠다, 이 말이지? 그래. 어디 킴이 한번 읽어봐. 그놈들 말마따나 이게 그렇게나 촌스럽고 유치한 내용인지.”
조지 루이스가 시나리오 한 권을 나에게 내밀었다.
< 레이더스 오브 더 로스트 아크(Raiders of the Lost Ark) >
순간 내 눈빛이 매섭게 반짝였다.
왜냐하면 이 <레이더스>라는 영화는 전 세계적으로 무려 4억 달러에 달하는 엄청난 흥행 수익을 올린 영화 <인디아나 존슨> 1편의 원제목이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 영화는 앞선 SF영화 <스페이스 워즈>와 더불어 조지 루이스를 세계적인 감독이자 각본가의 반열에 올려놓은 양대 산맥에 해당하는 영화라고 할 수 있었다.
‘정말이지 눈으로 보고도 믿기지 않는군. 세계적인 영화 레이더스, 아니 더 정확하게는 <인디아나 존슨>의 영화 시나리오 초안이 지금 내 손에 있다니 말이야.’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인디아나 존슨>이라는 영화의 흥행이 단지 이번 한편만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이 영화는 이후 3개의 속편이 더 만들어졌고, 이 3개의 속편 모두 전작 못지않은 엄청난 흥행 성적을 올리게 된다.
따라서 만약 내가 이 영화의 제작에 참여하게 된다면 엄청난 흥행 수입은 둘째치고, 영화감독으로서의 독보적인 명성을 얻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한 상황이었다.
‘절대 놓칠 수 없지. 전 세계 영화사에 길이 남을 이 엄청난 영화의 제작에 참여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말이야.’
속마음을 감추며 내가 조지 루이스가 쓴 <레이더스> 시나리오를 천천히 읽어가기 시작했다.
전생에서 내가 본 영화 <인디아나 존슨>의 실제 내용과 서로 비교해가면서.
‘아직 초안인 만큼 실제 영화와 다른 부분이 제법 많군. 특히 영화 주인공의 이름과 설정이 제대로 다듬어지지 않았어. 하지만 이런 것은 모두 부차적인 문제일 뿐이야. 중요한 것은 이 영화가 사람들에게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향후 만들어지는 모험 영화의 교과서와 같은 존재로 자리 잡게 된다는 것이지.’
속마음을 감추며 내가 조지 루이스를 향해 말했다.
“괜찮은데요?”
“그래?”
“네. 잘만 만들면 <스페이스 워즈>에 버금가는 또 하나의 엄청난 영화가 탄생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럼 뭐하나? 문제는 이 영화에 투자할 회사가 없다는 것인데.”
“돈 많잖아요, 조지. 지난 <스페이스 워즈>의 흥행으로 벌어들인 천문학적인 수익은 다 어쨌어요?”
“어쩌긴. 전부 ILM에 투자했지. 전에도 말했다시피 난 ILM을 세계 최대의 CG제작 회사로 키울 생각이거든. 그런데 이게 웬만큼 돈이 많이 들어가는 분야가 아니야. 아주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간다고. 그래서 어떻게든 다음 영화도 성공시켜야 하는데......”
조지 루이스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냥 투자사들 제안대로 <스페이스 워즈> 속편 제작에나 올인할까?”
“<스페이스 워즈> 속편요?”
“그래. 원래 내가 <스페이스 워즈>를 처음 기획할 때부터 시리즈물 형태로 준비했거든. 그래서 앞으로 최소 서너 편은 더 속편이 제작될 예정이야.”
“그건 그거대로 진행하면 될 문제잖아요. 어차피 속편부터는 조지가 제작자로만 참여할 뿐, 감독과 각본은 따로 사람을 영입할 생각이라면서요?”
“그렇긴 하지.”
내가 다시 조지 루이스에게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한번 해보는 것이 어때요?”
“어떻게?”
“제가 직접 이번 영화에 제작비를 지원할 투자사를 한번 찾아보도록 할게요.”
“킴이?”
“네. 정 안되면 제가 직접 투자자로 나서도 되고요.”
“읔. 그렇게까지 무리할 필요는 없어. 대형 영화사들이야 영화 한두 편 말아 먹어도 충분히 만회할 기회가 있지만, Film Kim과 같은 작은 영화사의 경우는 문을 닫아야 할 정도로 치명적인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으니까 말이야.”
“이번 시나리오가 그만큼 마음에 드니까요. 어쨌거나 제작비 문제는 제가 한번 해결해보도록 할게요. 그러니 이번 영화 시나리오는 절대 다른 곳에 넘기시면 안 돼요. 알았죠, 조지?”
“알았어. 그리고 넘기고 싶어도 넘길 곳도 없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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