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18화 (18/145)

# 18 < 전설의 모험 영화 <레이더스> (1) >

27.

나의 첫 영화 <체이스 오브 리벤지>는 전 세계적으로 1억 달러가 넘는 흥행 수익을 올렸다.

이는 제작비 대비 무려 300배가 넘는 엄청난 수익률이었다.

하지만 북미 시장에서의 수익은 예상보다 저조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빅식스(Big six) 영화사의 보이지 않는 압력으로 배급사인 ‘유니온 픽처스’가 많은 상영관을 확보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1970년대는 멀티 플렉스 형식의 극장이 그리 많지 않은 시기였다.

대다수 극장이 1개의 스크린을 보유한 ‘단관 극장’이었다.

이에 극장주들은 수익성이 높은 영화를 유치하기 위해서라도 거대 영화사들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고, 그 때문에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유니온 픽처스’가 배급하고 있는 영화를 적극적으로 상영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만약 그랬다간 앞으로 빅식스(Big six) 영화사가 제작하는 영화는 두 번 다시 스크린에 올릴 수 없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또 한 가지 이유는 <체이스 오브 리벤지>의 개봉 시기가 엄청난 제작비가 투입된 블록버스터 영화 <슈퍼맨>과 겹친 탓이었다.

‘워너 브라더스’사가 제작, 배급을 맡은 <슈퍼맨>은 무려 5천만 달러에 가까운 천문학적인 제작비가 투입되었다.

이에 ‘워너 브라더스’는 <슈퍼맨>의 흥행에 사활을 걸고 나섰다.

각종 언론 매체를 이용한 대규모의 홍보와 더불어 특히 많은 상영관을 확보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였다.

사실 빅식스(Big six) 영화사들은 서로 경쟁 관계임과 동시에 공생관계였다.

이들은 사전 협의를 통해 자신들이 제작 또는 배급하는 영화의 개봉 시기가 서로 겹치지 않도록 조정했다.

때로는 자신들이 확보하고 있던 상영관을 적극적으로 내어주면서 영화의 흥행에 도움을 주기도 했다.

일종의 보이지 않는 카르텔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할리우드 영화계의 이단아나 다름없는 우리 회사나 유니온 픽처스는 여기에 해당 사항이 없었다.

그 결과 <체이스 오브 리벤지>가 개봉을 시작한 지 며칠도 채 지나지 않아, 북미 영화관은 <슈퍼맨>이라는 대작 영화로 거의 도배가 되다시피 했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특정 영화의 스크린 독점을 제한하는 ‘파라마운트 합의 명령’ 덕분에 어느 정도까지는 개봉관을 유지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아울러 해외에서의 호평과 입소문 덕분에 우리 영화를 찾는 관객이 꾸준히 있었다.

그 덕분에 북미 시장에서도 우리 <체이스 오브 리벤지>는 800만 달러라는 나쁘지 않은 흥행 수익을 올릴 수 있었다.

물론 당초 우리가 기대했던 수익에는 훨씬 못 미치기는 했지만.

“맙소사! 1억 달러라니. 그것도 불과 30만 달러밖에 안 되는 제작비로 만든 영화가 벌어들인 수익이 말이야.”

아침 일찍부터 내 사무실을 찾아온 조지 루이스가 호들갑을 떨었다.

그는 내 영화의 최대 투자자이기도 했다.

“뭘 그렇게 놀래요? 앞선 조지의 영화는 그 세 배에 달하는 3억 달러를 벌어들였으면서.”

“투입 대비 산출을 따져봐야지. 내가 만든 <스페이스 워즈>는 천만 달러가 넘게 들어간 영화야. 여기에 홍보비며 기타 부대비용까지 모두 합치면 1,500만 달러 가까운 돈이 투입된 영화이지. 반면 킴이 만든 영화는 그 50분의 1밖에 되지 않는 돈으로 만들어졌고.”

“그 덕분에 조지도 엄청나게 큰돈을 벌게 되었으니 잘된 일 아니에요?”

“맞아. 킴은 정말이지 나에게 있어 보물과도 같은 존재야. 하하하.”

조지 루이스가 입이 찢어질 정도로 함박웃음을 지었다.

그도 그럴 것이,

<체이스 오브 리벤지>의 흥행 수익은 투자사인 루이스 필름이 60%, 제작사인 Film Kim이 30%, 배급사인 유니온 픽처스가 10%를 가져가기로 되어 있었다.

따라서 조지 루이스는 앉은 자리에서 3천만 달러(극장 배분 수익 40%가 제외된 순수익)가 넘는 어마어마한 수익을 올리게 된 것이다.

그 결과 조지 루이스는 앞선 <스페이스 워즈>로 벌어들인 수익과 더불어 그야말로 억만장자의 반열에 올라서게 되었다.

“내가 볼 때 킴이 세운 이 기록, 다시 말해 <제작비 대비 최고의 흥행 수익을 올린 역대 영화 1위> 기록은 두고두고 깨지지 않을 엄청난 기록임이 분명해.”

“과연 그럴까요?”

내가 속으로 웃음을 지었다.

전생의 기억 덕분에 나는 잘 알고 있었다.

<체이스 오브 리벤지>가 세운 이 기록은 불과 십수 년 만에 깨지고 만다는 것을.

제작비 대비 무려 1만 배가 넘는 수익을 올린 영화가 등장하기 때문이었다.

“북미 시장에서의 흥행 수익이 조금 아쉽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면 충분히 만족할 만한 성과인 것 같아요. 첫 영화치고는 말이죠.”

“너무 아쉬워할 필요는 없어. 개봉관을 찾은 관객이 적었다는 것은 그만큼 VHS 제작을 통해 벌어들일 수 있는 수익이 더 많다는 뜻이기도 하니까.”

VHS란 가정용 비디오테이프를 말한다.

2000년대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영화 산업에서 비디오테이프 시장이 차지하는 규모는 일반 극장 못지않게 매우 컸다.

동네 곳곳에 비디오테이프 대여점이 자리 잡고 있었고, 미처 극장에서 영화를 보지 못한 사람들은 이곳에서 비디오테이프를 대여해 가정용 홈비디오로 영화를 관람하곤 했던 것이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DVD와 특히 인터넷을 이용한 실시간 스트리밍 서비스가 등장하면서 가정용 비디오테이프 시장은 완전히 자취를 감추게 된다.

“이럴 줄 알았으면 VHS 수익도 함께 배분하는 걸로 계약서를 작성할 것 그랬어. 킴이 만든 영화가 이 정도로 잘 될 줄 알았다면 말이야.”

조지 루이스가 입맛을 다셨다.

그도 그럴 것이 앞선 계약 내용에 따르면 가정용 홈비디오 판권과 수익은 오롯이 우리 회사가 가지기로 되어 있었다.

“있는 사람이 더 하다더니, 돈도 많으신 분이 왜 이러세요?”

“하하. 농담이야, 농담. 킴이 전혀 생각지도 않았던 3천만 달러라는 돈을 내게 벌어다 주었는데, 난 그 정도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한다고.”

조지 루이스가 덧붙여 말했다.

“무엇보다 나는 킴이라는 사람 자체를 알게 된 것이 가장 만족스러워. 킴은 내가 아는 그 어떤 사람보다 영화적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니까.”

“저도 마찬가지예요. 조지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제가 이렇게 빨리 제 이름을 건 영화를 만들어낼 수 없었을 테니까요.”

“그럼 우리 오래 함께 가는 거지?”

“글쎄요. 앞으로 조지가 하는 거 봐서요.”

“뭐?”

“하하. 농담이에요, 농담.”

“하하하.”

그렇게,

우리 두 사람은 한동안 <체이스 오브 리벤지>의 성공을 자축하고 있었다.

28.

조지 루이스와의 만남을 끝낸 나는,

오래간만에 아버지가 운영하는 슈퍼마켓을 찾았다.

그동안 영화 촬영 일로 바빠서 한동안 아버지의 얼굴을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왜 또 아저씨가 가게를 지키고 계신 거예요?”

계산대에는 아버지가 아닌 찬수 아저씨가 앉아 있었던 것이다.

“네 아버지 요즘 또 극장에 출근 도장 찍고 계신다. 도훈이 네가 만든 그 체이스 뭐시긴지 하는 자동차 영화 본다고 말이야.”

“아버지도 참.”

“그나저나 이번에 도훈이 네가 만든 영화가 엄청나게 큰 히트를 기록했다면서? 네 아버지 말은 허풍인지 아닌지 도통 알 수가 없어서.”

“생각했던 것보다 영화가 큰 성공을 거둔 것은 맞아요.”

“그래? 이야, 도훈이 너 정말 대단하다. 어떻게 그렇게 손대는 영화마다 족족 큰 성공을 거두는 거야?”

찬수 아저씨가 웃으며 말했다.

“혹시 동양인 역할이 필요하면 이 아저씨에게 말해라. 다른 건 몰라도 내가 슈퍼마켓 주인 역할을 누구보다 잘 해낼 수 있으니까. 누구 덕분에.”

“하하. 그런 역할이 필요하면 꼭 아저씨께 먼저 연락드릴게요. 그보다 아버지는 언제쯤 오실까요?”

“글쎄, 지금쯤 올 때가 됐는데......”

때마침 가게 문이 열리며 아버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이를 본 찬수 아저씨가 이죽거리며 말했다.

“역시 네 아버지는 양반 되긴 글렀다. 꼭 저렇게 자기 이야기만 하면 귀신같이 알고 나타나요.”

“하하, 그러게요.”

가게 안으로 들어온 아버지가 내 모습을 발견하고는 무척이나 반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도훈이 왔구나.”

“네, 아버지. 별일 없으셨죠?”

“별일 있을 게 뭐 있냐. 홍콩은 잘 다녀왔고?”

“네.”

“일단 나가자. 오래간만에 우리 나가서 같이 밥이나 먹으면서 이야기하자.”

“가게는요? 아버지 가게 봐야하는 거 아니에요?”

“찬수 있잖아, 찬수.”

“......”

***

잠시 후,

아버지와 나는 가게 인근의 한인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전생 이후,

다른 건 다 적응해도 음식만큼은 아직 적응하지 못한 나였다.

60년 넘게 쌀밥과 국을 먹어온 식습관이 하루아침에 빵과 스프로 바뀔 리가 없었던 것이다.

그 때문에 나는 아버지를 찾아올 때면 항상 이 식당에 들러 쌓인 한(?)을 풀곤 했다.

“인마, 영화 촬영도 좋지만, 밥도 좀 잘 챙겨 먹고 다녀. 얼마나 굶고 다녔으면 밥 두 공기를 그렇게 게 눈 감추듯이 금방 뚝딱해치우냐.”

내 속사정을 알 리 없는 아버지가 안쓰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나저나, 아버지.”

“응.”

“제가 만든 영화 어땠어요? 찬수 아저씨 말로는 벌써 열 번 넘게 극장에서 제가 만든 영화를 보셨다면서요?”

“내가 뭐, 영화에 대해서 아나? 그냥 우리 아들이 만든 영화라서 신기한 마음에 보러 가는 거지. 근데 이거 하나는 확실해.”

“뭐가요?”

“영화가 아주 아주 재미있어. 자동차 추격 장면도 무척 박진감 넘치고, 특히 주인공인 그 누구냐?”

“이든요.”

“아, 맞다, 이든. 그 이든이 악당들에게 복수할 때는 마치 사이다 한 병을 원샷한 것처럼 가슴이 뻥 뚫리더라. 그 장면은 볼 때마다 어찌나 속이 시원하던지, 하하하하.”

아버지가 가게가 떠나갈 듯이 큰소리로 웃었다.

“근데 그거보다 아버지가 더 좋았던 장면이 뭔 줄 아냐?”

“글쎄요, 뭔데요?”

“마지막 엔딩 크레딧. 그 엔딩 크레딧에 쓰인 ‘Kim’이란 네 이름을 볼 때마다 어찌나 가슴이 찡해지는지, 사실 내가 그 맛에 몇 번이고 영화관을 찾아가는 거잖냐.”

“아버지......”

신파극 같은 분위기가 부담스러웠는지, 아버지가 다시 화제를 돌렸다.

“그나저나 도훈아. 아버지 요즘 걱정거리가 하나 생겼다.”

“걱정이요?”

“그래. 도훈이 너도 아까 가게 나오면서 봤지? 아버지 슈퍼마켓 앞에 커다란 빈 건물 하나 있는 거 말이야. 사람들 소문에 의하면 거기에 누군가 대형 슈퍼마켓을 연다고 하더구나.”

“슈퍼마켓이요?”

“그래. 만약 그렇게 되면 아버지 가게가 큰 타격을 입지 않겠냐? 요즘 가뜩이나 장사도 안 되는데, 그런 대형 슈퍼까지 들어서다니, 젠장. 이러다 아버지 완전 백수되는 거 아닌가 모르겠다.”

“괜찮아요, 아버지. 아버지한테는 잘나가는 아들이 있잖아요? 아버지 백수 되면 제가 먹여 살릴게요.”

“아서라, 이놈아. 난 굶어 죽었으면 죽었지, 자식 새끼한테는 손 안 벌린다.”

“저기, 아버지.”

내가 조심스러운 표정으로 아버지를 바라보며 말했다.

이제 사실을 고백할 타이밍이 온 것이다.

“왜?”

“아버지 가게 앞에 있는 큰 건물, 대형 슈퍼마켓이 들어설 예정이라는 그 건물 말이에요.”

“그게 왜?”

“그거 사실 제가 매입한 건물이에요. 아버지가 거기서 좀 더 크게 가게를 운영하셨으면 하는 마음에서 제가 아버지께 선물로 드리려고 매입을 했어요.”

“뭐, 뭐라고?”

아버지가 한동안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있었다.

“도, 도훈이 너 인마, 갑자기 무슨 돈이 있어서 그 큰 건물을......”

“아버지는 잘 모르시겠지만, 이번 영화의 성공으로 제가 생각보다 큰돈을 벌게 되었어요. 아버지가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큰돈을요. 그래서 제가 아버지께 작은 보답을 해드리고 싶어요. 그러니 절대 거절하지 말고 받아 주세요.”

“허, 나 이거야 원. 이렇게 황당할 데가, 어떻게 이런 일이......”

몹시도 당황한 듯, 횡설수설하는 아버지.

그건 그가 다시 정신을 차리며 나에게 말했다.

“이 녀석아, 그런 큰 슈퍼마켓을 아버지 혼자 어떻게 감당하라고 상의도 없이 덜컥 일부터 저지른 거냐?”

아버지의 물음에 내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찬수 아저씨 있잖아요, 찬수 아저씨. 흐흐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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