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16화 (16/145)

# 16 < 새로운 파트너, 그리고 흥행 신화 (2) >

월트 디즈니, 유니버셜 픽처스, 워너 브라더스, 파라마운트 픽처스, 소니 픽처스, 20세기 폭스사.

일명 ‘빅식스(Big Six)’라 불리는 미국의 메이저 영화사들이다.

이 회사들은 현재 미국 영화 산업의 중심인 할리우드의 영화 제작과 배급에 있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이름만 대면 알만한 영화들은 대부분 이 회사들에 의해 제작 또는 배급되고 있었던 것이다.

유니온 픽처스(Union pictures)는 바로 이러한 메이저 영화사들의 아성(牙城)에 도전하는 회사였다.

하지만 이들의 카르텔이 워낙 공고한지라, 현재는 주로 해외 영화나 흥행 가능성이 있는 비주류 영화들을 수입, 배포하고 있었다.

“궁금하군요. 유니온 픽처스 쪽에서는 어떤 계획을 가지고 있는지.”

나의 물음에 피터 로빈슨이 대답했다.

“일단은 홍콩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시장에 감독님의 영화를 우선적으로 배급할 예정입니다.”

“홍콩 중심의 아시아 시장이요?”

“예. 감독님도 아시다시피 최근 홍콩 영화 시장이 급성장을 하고 있습니다.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면서 상하이를 중심으로 이루어지던 영화 산업이 대거 홍콩으로 이동했기 때문이지요. 특히 브루스 리(이소룡)의 영화가 이곳 할리우드까지 진출하게 되면서 홍콩 영화 시장의 파이는 더욱 커지게 되었습니다.”

“제가 보기에 이유는 그게 다가 아닌 것 같은데요?”

“물론입니다.”

피터 로빈슨이 빙긋 웃으며 말했다.

“우리가 아시아 쪽 영화 시장을 가장 먼저 공략하려는 이유는 마케팅의 측면에서 감독님의 영화가 매우 유리한 상황에 있어서입니다.”

“마케팅이요?”

“예. 세계적인 대작 <스페이스 워즈> 제작팀의 일원으로 참여할 정도로 능력 있는 영화감독, 하지만 동양인이라는 이유로 그가 만든 영화는 미국에서의 상영이 거부됐고, 이에 어쩔 수 없이 아시아 시장에서 가장 먼저 개봉하게 된 비운의 영화 <체이스 오브 리벤지>, 어떻습니까? 제법 그림이 나오지 않습니까?”

일종의 애국심 마케팅 비슷한 건가 보군.

유니온 픽처스에서 세운 전략이.

“뭐, 그런 쪽은 유니온 픽처스가 전문이니, 알아서 잘하시겠죠. 그리고 다음은요?”

“그다음은 뭐 뻔한 것 아니겠습니까? 만약 아시아 시장에서 감독님의 영화가 성공을 거둔다면 다음은 자연히 유럽을 거쳐 최종적으로 북미 시장까지 개봉이 이루어지겠지요.”

유니온 픽처스의 전략은 딱 내가 원하던 그림이었다.

미운 오리 새끼처럼 구박받던 막내아들이 밖에서 큰 성공을 거두고 금의환향하는 스토리.

그야말로 백인 놈들의 코가 납작해질 만한 상황이지 않은가?

“어떻습니까, 감독님. 우리 회사가 세운 전략이 마음에 드십니까?”

“아주 좋네요. 제가 그리고 있는 그림이랑 딱 들어맞는군요.”

“그럼 우리 유니온 픽처스와 계약을 하시는 겁니까?”

“물론이죠. 아 참, 실무적인 부분에 있어서는 저뿐만이 아니라 루카스 필름과도 상의가 있어야 할 것 같습니다. 루카스 필름이 우리 영화 지분의 2/3를 가지고 있거든요.”

“그 점은 염려 마십시오. 루카스 씨께서 이번 일은 전적으로 Film Kim의 결정을 존중하겠다고 했으니까요.”

“그럼 더 이상 왈가왈부할 필요도 없겠군요.”

내가 피터 로빈슨을 향해 손을 내밀며 말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피터 씨.”

“오히려 제가 잘 부탁드려야죠, 제임스 감독님.”

25.

1977년 여름.

나의 첫 영화 <체이스 오브 리벤지>의 후반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동시에 배급을 맡은 ‘유니온 픽쳐스’도 제법 많은 숫자의 홍콩 개봉관을 확보했다.

이제 남은 것은 실제 영화 상영을 통해 관객들의 냉철한 평가를 받는 것이었다.

사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다르다고,

나의 첫 영화인 <체이스 오브 리벤지>는 정식 상영 이전부터 흥행의 청신호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첫째는 개봉 직전에 이루어진 비공개 시사회에서 내 영화가 관계자들의 극찬을 받았다는 점이다.

<체이스 오브 리벤지>는 기존의 할리우드 영화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다양한 차별적 요소가 들어 있었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자동차 추격씬과 이를 더욱 돋보이게 만든 새로운 촬영 기법과 도구들.

여기에 독특한 세계관과 캐릭터, 그리고 배우들의 명품 연기가 더해지면서 영화의 완성도는 더욱 높아졌다.

무엇보다 이 영화가 불과 30만 달러의 저예산으로 만들어졌다는 점은 영화를 본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만들기 충분했다.

‘영화판에서 잔뼈가 굵은 영화 관계자들도 입을 다물지 못하게 만든 영화가 바로 <체이스 오브 리벤지>인데, 일반 관객들은 오죽하겠어?’

두 번째 청신호는 바로 배급사인 ‘유니온 픽처스’의 적절한 마케팅 전략에 있었다.

영화 개봉 이전부터 유니온 픽처스는 각종 언론 매체를 통해 <체이스 오브 리벤지>에 얽힌 다양한 뒷이야기를 대중들에게 소개했다.

백인 중심의 할리우드 영화판에서 검은 머리 동양인이 고군분투하며 만든 영화, 하지만 뿌리 깊은 그들의 인종 차별로 인해 정작 할리우드에서는 상영조차 되지 못한 영화 등의 내용이 바로 그것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영화 외적인 스토리텔링은 실제 영화가 상영되기 이전부터 영화에 대한 대중들의 관심을 끌어모으기 충분했다.

그 결과......

나의 첫 영화 <체이스 오브 리벤지>는 홍콩 영화 시장에서 그야말로 대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영화 개봉 첫날 관객만도 무려 2만 명.

이후 한 달도 채 안 되는 기간에 누적 관객 수 40만 명을 달성한 것이다.

이는 1970년대 후반의 경제 여건, 특히 전체 인구수가 불과 5백만 명도 채 안 되는 홍콩의 상황을 감안하면 엄청난 흥행 성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니었다.

홍콩에서의 성공을 발판삼아 ‘유니온 픽처스’는 <체이스 오브 리벤지>의 개봉관을 아시아 전역과 호주, 유럽 일대로 확대했다.

물론 그곳에서도 영화는 큰 성공을 거두게 되었다.

그리고.

<체이스 오브 리벤지>의 이러한 성공은 곧바로 미국 현지의 영화 관계자들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다.

***

LA에 위치한 루이스 필름.

조지 루이스가 책상 위에 놓인 여러 권의 영화 잡지와 신문을 살펴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잡지와 신문에는 최근 해외에서 흥행 가도를 달리고 있는 영화 <체이스 오브 리벤지>에 관한 소식과 극찬에 가까운 영화 평론가들의 감상평이 공통적으로 실려 있었다.

- 개봉과 동시에 각국 박스 오피스 1위를 달리고 있는 영화 <체이스 오브 리벤지>

- 전 세계 극장가는 지금 <체이스 오브 리벤지> 열풍!

- 전 세계적으로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로드 액션 영화 <체이스 오브 리벤지>, 단기간에 누적 관람료 수익 5,000만 달러를 돌파해.

- 할리우드가 외면한 영화 <체이스 오브 리벤지>, 하지만 관객들은 결국 이 영화의 진가를 알았다!

- <체이스 오브 리벤지>는 지금까지 어떤 영화감독도 시도하지 않았던 ‘자동차 로드 액션 무비’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선구적인 영화이다.

- 영화 <체이스 오브 리벤지>의 독특한 카메라 구도와 미장센은 영화에 제법 잔뼈가 굵은 나조차도 감탄이 나오게 만든다. 테크닉의 측면에서 이 영화는 거의 완벽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 잠시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드는 영화 <체이스 오브 리벤지>. 특히 도입부의 자동차 추격씬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라고 할 수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것은 이 영화가 불과 30만 달러로 만들어진 저예산 영화라는 점이다.

- <체이스 오브 리벤지>의 흥행 신화를 한마디로 요약하면 참신한 세계관, 개성 있는 캐릭터, 스펙타클한 액션씬, 여기에 완벽에 가까운 배우들의 연기가 더해졌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 영화 <체이스 오브 리벤지>는 기술적인 측면에서 세계 영화의 발전을 최소 10년 이상 앞당긴 영화이다.

.

.

.

“뭘 그렇게 열심히 보고 있는 거요?”

한 남자가 조지 루이스의 사무실로 들어서며 말을 붙였다.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사 중의 하나인 20세기 폭스사의 로렌스 헤네만 사장이었다.

“아, 헤네만 씨.”

“역시나 <체이스 오브 리벤지>와 관련된 언론 보도를 보고 있었군요.”

“그러길래 내가 뭐랬습니까?”

조지 루이스가 <체이스 오브 리벤지>와 관련된 기사가 실려 있는 잡지와 신문에서 눈을 떼지 않은 채로 로렌스 헤네만을 향해 말했다.

“킴 그 친구, 영화적 능력이 보통이 아닌 사람이라고요. 그러니 그 친구를 믿고 <체이스 오브 리벤지>를 주력으로 한번 상영해보자고 내가 몇 번이나 권유하지 않았습니까?”

“그건 어디까지 결과론적인 얘기요, 조지. 동양인 감독에, 제작비도 얼마 들어가지 않은 영화가 이렇게까지 성공하게 될지를 그 누가 예상할 수 있었겠소.”

로렌스 헤네만이 쓴 입맛을 다셨다.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체이스 오브 리벤지>는 미국을 제외한 세계 영화 시장에서 무려 5천만 달러가 넘는 흥행 성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는 아직 시작에 불과했다.

앞으로 개봉이 예정되어 있는 국가들의 흥행 수익까지 모두 감안한다면 이 영화는 최소 1억 달러 이상의 수익을 거둘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었다.

따라서 만약 로렌스 헤네만이 처음 조지 루이스의 제안을 받아들여 이 영화의 배급에 나섰더라면 20세기 폭스사 또한 상당한 수익을 올릴 수 있었을 것이 분명했다.

“킴인지 뭔지 하는 동양인 그 친구, 이번에는 그저 운이 좋았을 뿐이요. 하지만 그 친구도 곧 깨닫게 될 것이오. 그런 요행이 두 번 다시 통하지 않는다는 것을. 특히 이곳 할리우드에서는 더더욱 말이요. 할리우드가 세계 영화 산업의 중심이 된 것은 개인의 능력이나 운보다는 체계화된 시스템이니까. 그런 만큼 하찮은 동양인 하나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을 것이오.”

과연 그럴까요, 라는 말을 삼키며 조지 루이스가 다시 물었다.

“그보다 일전에 제가 보낸 시나리오는 어떻습니까? 한번 검토해보셨습니까?”

“살펴보긴 했는데......”

로렌스 헤네만이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내용이 너무 고전적인 거 아니요? 이건 마치 3, 40년대의 흑백 무성 영화에서나 볼 수 있는 진부하고 유치한 스토리잖소.”

“바로 그 점이 이 영화의 핵심 포인트입니다. 과거 미국 극장가에서 유행했던 시리얼(serial) 모험극과 같은 영화말입니다. 그 시절 이런 류(類)의 영화가 얼마나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했습니까? 이번 영화 시나리오는 바로 그때의 감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조지 루이스가 입에 침까지 튀겨가며 시나리오에 대한 설명을 장황하게 늘어놓았다.

하지만 로렌스 헤네만의 반응은 여전히 뜨뜨미지근했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1970년대 들어 할리우드에서는 소위 ‘작가주의’의 영향을 받아 상업영화도 최소한의 극적 구성의 갖출 것을 요구하고 있었다.

이런 상황에서 다소 황당무계한 플롯을 특징으로 하는 고전 시리얼 형식의 영화를 만드는 것은 누가 봐도 무모한 짓이나 다름없었다.

“조지의 의도는 충분히 이해하겠으나, 나는 이 영화 시나리오가 상업적으로 큰 성공을 거둘 수 없다는데 한 표를 던지겠소. 그러니 우리 회사의 투자가 필요하다면 이보다 더 나은 시나리오를 가지고 다시 오는 것이 좋겠소.”

툭-

로렌스 헤네만이 조지 루이스가 쓴 시나리오를 책상 위에 내려놓았다.

그 시나리오에는 다음과 같은 제목이 적혀 있었다.

< 레이더스 오브 더 로스트 아크(Raiders of the Lost Ar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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