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13화 (13/145)

# 13 < 첫 영화 <체이스 오브 리벤지> (7) >

21.

1977년 가을.

드디어 나의 첫 영화 <체이스 오브 리벤지>가 크랭크 인 되었다.

예상 촬영 기간은 4개월.

액션 영화의 성수기인 여름 개봉 시기를 맞추려면 포스트 프로덕션(후반 작업) 기간을 최대한 단축한다 해도 굉장히 빠듯한 일정이었다.

‘이번 <체이스 오브 리벤지>의 러닝 타임은 총 100분, 모두 110개의 씬으로 구성되어 있지. 따라서 촬영 예상 기간 4개월을 맞추기 위해서는 하루 평균 3개 이상의 씬을 소화해 내야 해.’

하지만 촬영 기간을 맞추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영화의 완성도’였다.

<체이스 오브 리벤지>는 겨우 30만 달러의 제작비가 투입된 저예산 영화이다.

출연 배우들도 죄다 무명 배우들이다.

여기에 감독도 백인들이 그렇게 무시하는 동양인 감독이다.

이런 악조건을 극복하고 영화를 흥행시키기 위해서는 다른 영화들과 차별되는 우리 영화만의 특별함이 반드시 있어야만 했다.

‘물론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전생에서 무려 30년 넘게 영화 일을 하면서 그야말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어본 사람이니까. 그 덕분에 지금 내 머릿속에는 풍부한 영화적 지식과 더불어 70년대의 할리우드에는 아직 시도조차 되지 않은 다양한 영화 촬영 기법까지 모두 들어 있지. 고로 이를 잘만 활용하면 이번 영화를 흥행시키는 것은 누워서 떡 먹는 것보다 더 쉬운 일이 될 수 있어.’

내 첫 영화인 <체이스 오브 리벤지>의 흥행을 가져다 줄 차별화 전략.

그 첫 번째는 바로 현재 할리우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한 촬영 기법을 영화에 접목시키는 것이었다.

이를 이용해 영화를 보다 현장감 있고, 박진감 넘치게 만드는 것이었다.

그리고.

<체이스 오브 리벤지>의 이러한 차별화된 촬영 기술이 잘 드러난 장면이 바로 영화 크랭크 인 첫날에 촬영된 두 개의 추격씬이었다.

***

대망의 영화 촬영 첫날.

스태프들이 바쁜 걸음으로 오가며 촬영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오늘 이곳에서는 단 두 개의 씬만 촬영될 예정이었다.

문제는 촬영 난이도가 그렇게 녹록지 않다는 것이었다.

두 씬 모두 차량과 오토바이를 동원한 추격전이 주를 이루고 있었기 때문이다.

“레디, 액션!”

메가폰을 타고 내 목소리가 흘러나오기 무섭게,

- 부아아앙!

곧게 뻗은 아스팔트 도로 위를 차량 한 대가 흙먼지를 휘날리며 질주하기 시작했다.

미술팀에서 특별히 제작한 차량이었다.

영화 설정상으로는 도시의 악당 티토의 동생인 테디가 몰고 다니는 차로, 특수 개조를 통해 V8기통 800마력의 강력한 성능을 자랑하고 있었다.

그리고.

- 두다다다당!

테디의 차 뒤를 5대의 경찰 오토바이가 쫓아가고 있었다.

지명 수배된 흉악범 테디를 체포하기 위해서였다.

“다들 잘 알고 있겠지만, 첫 씬은 원 테이크(One take)로 갑니다. NG가 발생하지 않도록 각자의 위치에서 맡은 역할을 다해주세요. 혹시 모를 사고에 대비해 의료팀도 스탠바이 해주시고요.”

촬영 시작 전 내가 스태프들에게 당부한 내용이었다.

원 테이크란 분할 촬영이나 편집을 하지 않고, 씬 전체를 한번에 촬영하는 기법을 말한다.

이 기법은 관객들로 하여금 잠시도 화면에서 눈을 떼지 못하게 만들어 엄청난 몰입감을 가져다주는 효과가 있었다.

문제는 촬영 난이도가 꽤 높다는 것이었다.

물론 기존의 할리우드 영화 가운데서도 이 원 테이크 기법을 사용한 영화들이 몇 있었다.

하지만 자동차 추격씬과 같이 빠른 속도로 전개되는 장면을 원 테이크로 촬영한 경우는 단 한 번도 없었다.

따라서 만약 내가 이 원 테이크 기법을 이용해 박진감 넘치는 추격씬을 촬영해낸다면 실제 극장에서도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 틀림없었다.

‘이 영화의 핵심은 누가 뭐래도 자동차 추격 장면이야. 이 장면을 제대로 구현해 내지 못하면 영화는 절대 성공할 수 없어. 따라서 내가 알고 있는 미래의 촬영 기법을 총동원해 관객들이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스펙타클한 영상을 구현해 내야 해.’

내가 다시 촬영 현장으로 눈을 돌렸다.

눈앞에는 손에 땀을 쥐게 하는 자동차와 오토바이의 아찔한 추격전이 이어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옆을 따르는 차량이 또 한 대 있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의 눈이 되어줄 촬영 차량이었다.

촬영 차량에는 운전사와 더불어 이 영화의 촬영감독인 로저 디킨스가 함께 타고 있었다.

그는 차량에 탑재된 카메라를 신중하게 조정해가며 이 추격씬을 생생하게 카메라에 옮겨 담고 있었다.

천부적인 촬영기술을 가지고 있는 로저 디킨슨.

만약 그가 우리 영화에 합류하지 않았다면 애초에 이런 원 테이크 기법과 같은 고급 촬영 기술을 시도조차 해보지 못했을 수도 있었다.

- 쾅!

- 콰쾅!

잠시 후, 차량이 약속된 장소에 도착하자 강한 폭발음과 함께 특수효과팀이 설치한 화약들이 여기저기서 터졌다.

동시에 오토바이에 타고 있던 경찰(사실은 고도의 훈련을 받은 스턴트맨)들이 바닥에 나뒹굴기 시작했다.

“컷! 오케이, 좋았어!”

나의 OK 사인이 떨어지자 스태프들이 우루루 상황 수습에 나섰다.

그사이 나와 촬영감독인 로저 디킨스는 방금 촬영한 장면을 모니터링하기 시작했다.

“콘티(continuity)대로 화면이 잘 나왔는데요, 감독님?”

“그러게요. 재촬영 없이 이대로 가면 될 것 같군요.”

“그럼 이제 테디 역을 맡은 배우의 클로즈 샷(close shot)만 따면 되겠군요.”

“예. 그나저나 촬영 감독님이 아주 고생이 많으시네요.”

“뭘요. 자동차 추격씬을 원 테이크로 촬영하는 것은 저도 처음 시도해보는 것이라 아주 재미있게 촬영에 임하고 있습니다. 감독님은 어떻게 이런 시도를 할 생각을 다 하셨는지 참으로 대단할 따름입니다.”

“아닙니다. 저도 감독님이 없었더라면 이런 시도는 꿈도 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하하, 그렇게 말씀해주시니 저야 감사할 따름이지요.”

“자, 그럼 남은 쇼트도 마저 촬영을 진행하도록 하죠.”

영화 첫 장면의 ‘원 테이크 자동차 추격씬’.

이는 <체이스 오브 리벤지>의 흥행을 가져다줄 첫 번째 비장의 무기였다.

***

점심 식사가 끝나고, 다시 촬영이 재개되었다.

오후 촬영도 오전과 마찬가지로 자동차 추격씬이었다.

이번 씬은 무전을 통해 경찰이 테디의 뒤를 쫓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주인공 이든이 테디와 일명 ‘치킨 게임’을 벌이는 장면이었다.

이번 씬은 배우가 아닌 고도로 훈련된 스턴트 맨이 대역 촬영을 할 예정이었다.

씬 자체가 무척이나 위험한 장면을 담고 있었고, 그래서 자칫 잘못하면 대형 사고가 발생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문제는,

대역을 쓰게 되면 카메라 구도를 잡는데 있어 많은 제약을 받게 된다는 것이었다.

관객들이 대역임을 눈치채지 못하게 원거리나 후방에서만 촬영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독의 입장에서는 배우가 직접 그 장면을 소화해주는 것만큼 최선의 그림을 뽑아낼 수 있는 방법도 없었다.

물론 주인공 이든 역을 맡은 베니 스콧은 영화를 처음부터 끝까지 대역 없이 촬영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촬영 계획이 잡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가 나를 찾아와 다음과 같은 제안을 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저기, 감독님.”

“무슨 일이에요, 베니?”

“이번 영화 말인데요, 처음부터 끝까지 대역을 쓰지 않고 제가 직접 촬영을 하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예? 베니가 직접요?”

“예. 제가 영화의 전체 액션 장면을 대역 없이 소화해 내면 촬영감독님이 카메라 구도도 자유롭게 잡을 수 있고, 특히 나중에 영화 홍보 측면에서도 큰 도움이 되지 않겠습니까?”

내 전생의 기억 속에도 베니 스콧은 대역을 쓰지 않고 액션 장면을 촬영하는 할리우드의 몇 안 되는 배우로 유명했다.

그가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대스타가 되고 난 이후에도 말이다.

하지만 문제는 안전이었다.

전문 스턴트맨이 아닌 일반 배우가 위험한 장면을 직접 촬영할 경우 예기치 못한 사고가 발생할 수도 있었다.

특히 베니 스콧은 앞으로 할리우드의 간판스타가 될 인물이었다.

따라서 나는 만에 하나 발생할지도 모를 위험으로부터 베니 스콧의 안전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그렇긴 하지만, 위험해서 말이죠. 전문 스턴트 맨도 아닌 베니가 추격씬과 같은 위험한 장면을 대역 없이 직접 촬영하다 만에 하나 사고라도 발생하면......”

“감독님도 아시잖습니까. 제가 이번에 이든 역을 소화하기 위해 자동차 레이서 출신 전문가에게 특별 교육까지 받았다는 것을요. 게다가 반복된 리허설을 통해 약속된 동선을 충분히 숙지하면 큰 문제가 발생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

계속되는 베니 스콧의 완강한 태도에 내가 잠시 고민에 빠졌다.

사실 나도 속으로는 대역을 쓰는 것을 원치 않고 있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대역을 쓰면 그만큼 카메라 구도를 잡는데 제약을 받기 때문이다.

‘흐음, 뭔가 좋은 방법이 없을까?’

그 순간 내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가는 생각.

그것은 바로 광학 합성(optical composing) 기술을 이용하는 것이었다.

광학 합성이란 CG 등장 이전, 아날로그 필름으로 영화를 촬영할 때 주로 사용됐던 필름 합성 기법을 말한다.

결합하고자 하는 두 장의 필름에 빛을 투과시켜 최종의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다.

‘베니 스콧의 차가 질주하는 장면과 테디의 차가 질주하는 장면을 각각 따로 찍은 다음 광학 합성(optical composing) 기법을 이용해 마치 두 차가 동시에 마주 보고 질주하는 것과 같은 효과를 만들어내면 돼. 그렇게 되면 별다른 위험 없이 이번 씬을 무사히 촬영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이 경우 해상도가 떨어져 영상의 퀄리티가 낮아진다는 단점이 있었다.

디지털 방식과는 달리 아날로그 광학 합성은 빛이 필름을 통과하는 과정에서 감쇄 현상이 나타나기 때문이었다.

‘이 또한 해결할 방법이 있지. 그것은 일반적인 35mm 필름을 사용하지 않고 75mm 필름을 사용하는 방법이야. 실제 앞선 <스페이스 워즈> 촬영 때도 이 75mm 필름과 모션 컨트롤 카메라를 이용해 우주 전쟁 장면을 광합 합성으로 촬영했었지.’

내가 머릿속으로 완성된 화면을 떠올리며 속으로 빙긋 웃음을 지었다.

그러는 사이,

- 쾅! 콰쾅!

- 화르르르!

테디의 죽음을 알리는 강렬한 화염이 그의 자동차를 뒤덮으며 두 번째 신의 촬영도 무사히 끝났다.

베니 스콧을 비롯한 출연 배우들의 안전 또한 무사히 확보되었고.

“컷, 오케이!”

내가 스태프들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자, 오늘 촬영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겠습니다. 현장 정리하고 숙소로 복귀하도록 하겠습니다. 모두 수고들 했어요.”

‘광학 합성’을 이용한 대역없는 박진감 넘치는 추격씬.

이는 <체이스 오브 리벤지>의 흥행을 가져다줄 두 번째 비장의 무기였다.

***

원 테이크 기법, 광합 합성과 같은 방법 외에도 이번 영화의 차별성을 더해주는 요소 가운데 하나는 바로 ‘스태디 캠’이 영화 촬영 전반에 걸쳐 사용되었다는 점이었다.

앞서도 말했다시피 스태디 캠은 사람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영상을 찍을 때 나타나는 화면 흔들림을 억제해 줌으로써 영화의 현장감과 사실감을 극대화시켜 준다.

특히 스태디 캠은 주인공 이든이 악당 티도 일당을 추격하고, 잔인한 복수를 하는 장면을 촬영하는데 폭넓게 활용되었다.

그 결과 관객들은 마치 자신이 영화의 주인공이 되어 시원한 복수를 하는 것과 같은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게 되었다.

이처럼,

내가 가진 미래의 영화적 지식과 기술들은 <체이스 오브 리벤지>에 담길 영상을 이 시기 영화의 그것과는 차별되게 만드는 중요한 원동력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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