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1 < 첫 영화 <체이스 오브 리벤지> (5) >
“스태디 캠이요?”
로저 디킨스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예. 제가 이번에 촬영할 영화인 <체이스 오브 리벤지>는 로드 액션 무비인데, 대부분의 액션 장면을 이 스태디 캠을 활용해서 촬영할 예정입니다.”
스태디 캠(steadicam)이란 카메라를 움직이며 촬영하는 영상 장비의 일종을 말한다.
전통적으로 카메라를 움직이며 영상을 촬영할 때는 기차처럼 레일을 깐 뒤, 그 위에서 카메라를 움직이게 하는 방법을 써왔다.
문제는 레일이 화면에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하고, 또 레일을 깔 수 있는 곳에서만 촬영을 할 수 있어서 화면 구도를 잡거나 촬영 장소를 선정하는 데 있어 근본적인 제약이 따른다는 것이었다.
이에 레일을 쓰지 않고 사람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촬영하는 핸드헬드 기법이 오랫동안 쓰여왔다.
하지만 이 경우 화면 흔들림이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영상의 완성도를 떨어뜨리고, 영화를 보는 관객의 몰입을 방해하는 중요한 원인이 된다.
스태디 캠은 바로 이런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등장한 영상 장비였다.
스태디 캠을 이용하면 사람이 직접 카메라를 들고 영상을 찍어도 흔들림을 카메라에 전달하지 않고 레일을 깔고 찍는 수준에 근접한 안정적인 화면을 찍을 수 있게 해준다.
스태디 캠의 등장으로 레일에서 해방된 자유로운 촬영이 가능해졌고, 더불어 흔들림 없는 안정적인 화면을 만들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1970년대는 아직 제대로 된 스태디 캠이 만들어지지 않은 시기이지. 작년에 개봉된 <록키>라는 영화에서 이 스태디 캠이 사용되기는 했지만, 일부 장면에서만 제한적으로 사용되었을 뿐이지.’
실제 영화 촬영 현장에서 스태디캠이 본격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에 이르러서였다.
그런데.
만약 지금 내가 이 스태디캠을 완벽하게 구현해낼 수만 있다면,
‘앞으로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들을 스크린으로 옮겨 담을 수 있겠지. 영화의 흥행은 덤으로 따라올 것이고, 흐흐.’
이런 내 생각을 알 리가 없는 로저 디킨스가 나를 향해 물었다.
“그러니까 지금 제임스 킴의 말은 핸드헬드 촬영에 반드시 뒤따르는 화면 흔들림을 자체 개발한 스태디캠으로 극복할 수 있다는 뜻입니까?”
“그렇습니다. 만약 그렇게 되면 이전까지의 영화에서는 볼 수 없었던 생동감 넘치는 장면을 스크린에 그대로 재현해 낼 수 있을 것입니다.”
“그, 그런......”
로저 디킨스의 눈빛이 흔들렸다.
그도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촬영감독은 단순한 카메라맨이 아니다.
조명 선택에서부터 화면 구도에 이르기까지 영화의 전체적인 미장센을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어떤 촬영감독이 카메라를 잡느냐에 따라 시나리오의 표현력과 전달력이 달라지기도 한다.
한 마디로 촬영감독은 감독, 배우와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예술가와 다름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보다 기술적 뒷받침이 중요한 사람이 바로 촬영감독이기도 하다.
카메라 기술의 발전은 곧 영상 예술의 발전과 궤를 같이한다.
제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진 촬영감독이라도 기술적인 뒷받침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할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 나의 제안은 그동안 기술적 제약으로 자신이 생각하고 있는 영상을 마음껏 구현해내지 못했던 로저 디킨스에게 자유로운 날개를 달아주겠다는 의미나 다름없었다.
“정말로 킴이 개발한 스태디캠을 사용하면 핸드헬드 기법의 가장 큰 약점인 화면 흔들림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단 말입니까?”
“그렇습니다. 그것도 아주 완벽하게요.”
“어떻게 그게 가능하단 것입니까?”
내가 카메라 설계도가 그려진 종이 몇 장을 로저 디킨스 앞에 내밀었다.
“이게 지금 제가 제작을 의뢰해 둔 스태디캠입니다. 이를 검토한 제조업체에서도 기술적으로 충분히 구현 가능하다고 했으니, 조만간 현장에 투입할 수 있을 것이고요.”
내가 고안한 스태디캠은 기본적으로 카메라 아래에 무게추를 달아 무게 중심을 낮추고, 카메라와 손잡이 사이에 볼마운트를 설치한 구조였다.
무게추의 관성 덕분에 카메라의 진자운동이 상당히 억제되는 효과를 가져올 수 있었고, 이로 인해 흔들림 없는 안정적인 영상 촬영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다.
또한 사람의 몸이나 차량에 쉽게 장착이 가능하도록 설계되어 있었다.
물론 기존에 내가 살던 시기와 비교해보면 영화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정도로 초보적인 형태의 스태디캠이었다.
하지만 1970년대 당시로서는 나름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었다.
실제 이 정도 완성도를 가진 스태디캠은 향후 20년 정도가 더 지나야 겨우 영화판에 등장을 했으니까.
“동선의 제약 없이 움직이는 카메라. 이를 이용한 스피디한 추격신 촬영. 어떻습니까? 그림이 좀 그려지십니까?”
“......”
한동안 말없이 생각에 잠겨 있던 로저 디킨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의 얼굴에서는 아까 전의 경계심 같은 것은 완전히 사라지고 없었다.
“킴, 아니 감독님이 쓰신 그 시나리오, 제가 한번 검토해 볼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내가 인쇄된 시나리오 한 부를 로저 디킨슨 앞에 내밀었다.
“여기 시나리오가 있으니 천천히 한번 검토해 보십시오.”
“예.”
“그럼 연락 기다겠습니다, 디킨스 감독님.”
18.
영화 <체이스 오브 리벤지> 촬영을 위한 스태프 구성이 완료되었다.
제작팀, 연출팀, 촬영팀, 조명팀, 미술팀, 음향팀, 특수효과팀 등이 그것이었다.
물론 수백 명의 스태프가 참여하는 블록버스터 영화에 비하면 초라하기 그지없는 숫자이다.
당장 앞선 <스페이스 워즈>만 하더라도 수백 명의 스태프가 참여한 것에 반해, 우리 팀은 겨우 4~50명 정도로 구성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팀을 구성하고 있는 구성원 하나하나는 일당백의 역할을 해내기 충분했다.
내가 스태프 구성에 각별히 신경을 쓴 덕분이었다.
특히 얼마 전 촬영감독으로 합류한 로저 디킨슨과 주연 배우 역을 맡은 배니 스콧은 이미 완벽하게 검증된 인물이나 다름없었다.
이제 남은 것은 이들과 함께 시나리오의 내용을 영상으로 구현해내기만 하면 되는 것이었다.
“헤이, 킴.”
오래간만에 조지 루이스 감독이 내 사무실을 찾아왔다.
얼굴에는 만면의 미소를 띠고, 손에는 선물 보따리를 한가득 안은 채로.
“이게 다 뭐예요, 조지?”
“뭐긴 뭐야, 선물이지. 영화 <스페이스 워즈>가 아카데미 시상식을 그야말로 휩쓸어버린 기념 선물, 흐흐.”
“저도 TV에서 봤어요. <스페이스 워즈>가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무려 11개 부문의 후보로 올랐고, 그 가운데 7개의 상을 받았다는 것을요.”
“올해 아카데미는 그야말로 <스페이스 워즈>의 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지.”
“그나저나 감독상을 받지 못해서 어떡해요? 전 무조건 조지가 받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우디 앨런 감독이 좀 강력한 경쟁자여야 말이지. 아카데미 특유의 수상 기준도 작용을 했고.”
“기회는 또 있겠죠. 조지는 누구보다 유능한 각본가이자 연출가이니까요.”
“그것보다는 킴 네가 아카데미에 초청받지 못했다는 게 난 더 아쉬울 따름이야. 이번 영화는 그 어떤 사람보다 킴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는데 말이야.”
조지 루이스가 분개하며 말했다.
“이게 다 아카데미가 백인들 위주로 돌아가기 때문이야. 오죽하면 지금까지 아카데미 상을 받은 아시아계 배우라고는 ‘율 브린너’ 단 한 사람밖에 없겠어?”
“너무 신경 쓰지 마세요, 조지. 전 상 같은 거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으니까요. 저에게 중요한 것은 아카데미 수상이 아니라 영화를 보러 극장을 찾는 관객들 하나하나를 모두 만족시키는 일이에요.”
“그나저나......”
조지 루이스가 사무실을 둘러보며 말했다.
“영화 촬영 준비는 차질없이 잘 진행되고 있어?”
“아직까지는요.”
“어려운 점 있으면 언제든지 말해. 내가 적극적으로 도와줄 테니까. 킴의 영화 투자자의 한 사람으로서 영화가 잘 되면 나도 좋으니까 말이야, 하하.”
“그럴게요.”
“크랭크 인은 언제 할 예정이야?”
“올해 가을 정도면 충분히 가능할 것 같아요.”
“그렇게나 늦게? 아무리 생각해도 프리 프로덕션 기간이 너무 긴 것 같은데?”
“프리 프로덕션 기간에 완벽한 준비를 해 놓으면 그만큼 프로덕션 기간이 단축되고, 스태프들 간의 손발도 잘 맞아 들어갈 테니까요. 그렇지 않고 현장에서 변화를 주면 스태프 간의 갈등이 발생할 우려가 크잖아요. 특히 우리 영화가 저예산 영화인 만큼 시간과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라도 타임 테이블을 정확하게 맞추고 촬영에 들어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그럼 극장 개봉은 내년 여름이나 연말쯤이면 가능하겠군?”
“최대한 여름에 개봉할 수 있도록 일정을 조정해보려고요. 아무래도 우리 영화가 액션이니까, 그 시기가 좋을 것 같아요.”
“그래. 아무래도 킴에게는 첫 영화 촬영이라, 여러 가지 어려움이 꽤 많을 거야. 하지만 그런 것들이 전부 앞으로 킴이 감독으로 성장해 나가는데 있어 많은 도움이 될 테니까, 지혜롭게 잘 헤쳐나갈 수 있도록 해. 내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이 요청하고.”
“그럴게요, 조지.”
첫 메가폰을 잡는 내가 걱정돼서 그런지,
조지 루이스가 여러 번 나에게 격려와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하지만 그런 조지 루이스와는 달리 나는 무척이나 자신이 넘쳐 있었다.
영화 촬영 현장이라면 전생에서 이미 이골이 날 정도로 많이 경험해봤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이제 뭘 하실 생각이세요?”
“당분간은 좀 쉬면서 다음 작품 구상이나 좀 해보려고. 아, 그리고 이번 기회에 ILM을 한번 제대로 키워보려고. 할리우드 최고의 시각 효과 전문 스튜디오로 말이야.”
ILM(인더스트리얼 라이트 앤 매직).
루이스 필름 산하의 시각 효과 전문 스튜디오였다.
원래는 아날로그 시각 효과를 전문으로 하는 곳이었는데, 조지 루이스가 영화 <스페이스 워즈>의 성공으로 벌어들인 돈의 상당액을 여기에 투자함으로써 향후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CG 회사로 성장하게 된다.
‘역시 내가 알고 있는 원 역사대로 흘러가는군.’
“좋은 생각이에요, 조지. 앞으로 영화에 있어 시각 효과는 무척이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될 테니까요.”
“맞아. 특히 컴퓨터 그래픽이 본격적으로 도입되면 영화 산업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엄청난 성장을 하게 될 것이야. 내가 ILM에 많은 돈을 투자하려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고.”
“역시 조지의 안목은 남다르다니까요. 아 참, 다음 작품도 구상하고 있다고요?”
“아직 구체적으로 결정된 건 없어. 그냥 이것저것 자료 조사도 하면서 생각하는 단계야.”
조지 루이스의 말에 내가 속으로 빙긋 웃음을 지었다.
전생의 기억 덕분에 나는 그가 만들 다음 영화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 영화가 <스페이스 워즈> 만큼이나 전 세계적인 흥행 돌풍을 일으키게 될 것이라는 것도.
“저기, 조지.”
“응?”
“만약에 말이죠, 이번에 제가 만드는 영화 <체이스 오브 리벤지>가 큰 성공을 거두게 된다면, 조지가 쓴 다음 작품의 메가폰을 제가 잡아도 될까요?”
“킴이?”
“네.”
“아직 시작도 안 했는데 어떤 작품이 나올 줄 알고? 그러다 내가 졸작이라도 쓰게 되면 어쩌려고 그러는 거야, 하하.”
“하하. 조지의 각본가로서의 능력은 할리우드 영화인이라면 누구나 다 알고 있을 정도잖아요. 저도 영화감독의 한 사람으로서 조지와 함께 꼭 작업을 해보고 싶어요.”
“좋아, 한번 생각해보지.”
조지 루이스가 농담처럼 덧붙여 말했다.
“킴의 이번 영화가 천만 달러 이상의 수익을 올리게 된다면 말이야, 하하하.”
천만 달러는 무슨.
이번 영화의 기대 수익은 1억 달러 이상인데, 흐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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