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검은머리 감독의 할리우드 정복기-7화 (7/145)

# 7 < 첫 영화 <체이스 오브 리벤지> (1) >

12.

영화 <스페이스 워즈>의 후반부 작업이 드디어 마무리되었다.

이제 남은 것은 극장 상영을 통해 관객들의 냉혹한 평가를 받는 것이었다.

영화 산업의 두 축은 크게 제작사와 배급사로 나뉜다.

시나리오를 기획하고 이를 영상으로 담아내는 것이 제작사의 역할이라면, 영화를 상영할 극장을 확보하고 영화를 유통시키는 것이 배급사의 역할이다.

따라서 지금부터 <스페이스 워즈>의 운명은 제작사인 ‘루이스 필름’을 떠나 배급사인 ‘20세기 폭스’사와 ‘월트 디즈니’사에 맡겨지게 되었다.

사실 개봉 이전 <스페이스 워즈>에 대한 평가는 한마디로 반신반의였다.

SF라는 장르의 생소함, 특수효과 기술의 부족, 복잡한 스토리 구성 등등, 영화의 성공을 낙관하기에는 여러 가지 불안 요소들이 많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막상 영화가 개봉하자, 상황은 달라졌다.

개봉과 동시에 관객과 평론가들의 극찬을 받으며, 순식간에 북미 개봉 영화 순위 1위에 등극하게 된 것이다.

<스페이스 워즈>를 보기 위해 관객들은 너도나도 극장으로 몰려들었다.

언론들은 앞다투어 <스페이스 워즈>에 대한 소식을 쏟아내었다.

- 흥행 돌풍을 일으킨 조지 루이스 감독의 영화 <스페이스 워즈>

- 조지 루이스 감독의 SF영화 <스페이스 워즈>, 세계 영화 시장의 판도를 바꾸다!

- 전 세계 극장가는 지금 <스페이스 워즈> 열풍!

- 조지 루이스 감독의 영화 <스페이스 워즈>, 스티븐 스필버그의 <죠스>와 더불어 본격적인 블록버스터 영화 시대의 개막을 열어!

- 단기간에 누적 관람료 수익 1억 달러를 돌파한 <스페이스 워즈>, 세계 시장으로 진출할 경우 최대 3억 달러에 가까운 흥행 수익을 올릴 것으로 기대 돼.

***

LA에 위치한 루이스 필름.

조지 루이스 감독이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스페이스 워즈>의 엄청난 흥행 덕분에 요즘 그의 입에서는 웃음이 가실 날이 없었다.

“축하드립니다, 감독님. 듣자니 <스페이스 워즈>가 올해 아카데미 음악상, 시각효과상, 미술상 등 무려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 되었다고 하더군요.”

“후, 정말이지 나도 이번 작품이 이렇게나 선풍적인 인기를 끌게 될지 미처 몰랐네.”

조지 루이스 감독이 내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이게 다 킴, 자네 덕분이야. 영화감독으로서 부족한 내 역량을 킴이 채워줬기 때문에 이렇게 좋은 결실을 맺을 수 있었어.”

“과찬이십니다, 감독님.”

이라고 이야기하긴 했지만.

실제 <스페이스 워즈>의 성공에는 내 공이 무척 큰 편이었다.

사실 조지 루이스 감독은 영화감독으로서의 능력이 그렇게 뛰어난 편은 아니었다.

이는 조지 루이스 감독 스스로도 인정하는 것이었다.

실제 <스페이스 워즈>의 초기 편집판만 하더라도 연출과 편집의 미비함, 특히 정돈되지 않은 복잡한 스토리로 인해 시사회장에서 사람들로부터 많은 혹평을 받았다.

이에 조지 루이스 감독은 여러 명의 편집자를 영입했고, 그들의 도움 덕분에 겨우 관객들이 영화를 이해할 수 있게 영화의 스토리 구성을 이루어낼 수 있었다.

그런데 전생에서 나는 이미 <스페이스 워즈>의 최종본을 본 사람이었다.

이에 나는 조지 루이스 감독이 편집자들을 영입하기 이전에 미리 그를 도와 지나치게 많은 분량의 불필요한 영상들을 잘라내고, 스토리를 전면 재구성했다.

특히 원 역사에서 평론가들이 <스페이스 워즈>의 유일한 단점이라고 지적했던 다스 베이더와 오비완의 느릿하고 지루했던 대결 장면까지도 보다 빠르고 스펙타클하게 편집해서 영화 전체를 흠잡을 데 없이 완벽하게 만들었다.

그 덕분에 최종 시사회장에서 영화를 관람한 사람들의 극찬을 끌어낼 수 있었다.

지금의 엄청난 흥행 성적 또한 마찬가지였고.

“신문에서 봤는데, 사람들이 ‘<스페이스 워즈> 봤어?’라는 질문 대신 ‘<스페이스 워즈> 몇 번 봤어?’라고 묻는다고 하더군요. 이건 그만큼 우리 영화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는 뜻이고요.”

“그거 말고도 요즘 사람들 사이에서 빈번히 오가는 질문이 있다던데, 혹시 킴도 알고 있어?”

“글쎄요, 전 금시초문인데요.”

조지 루이스 감독이 입가에 미소를 띠며 대답했다.

“그건 바로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등장하는 ‘제임스 킴’이 누구냐는 거야. 도대체 그 사람이 누구길래 저렇게 특별히 감사를 표하는 거냐고, 사람들의 궁금증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군.”

“그게 정말이에요?”

“그래. 그래서 내가 이번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그 ‘제임스 킴’의 정체를 명확하게 밝히려고 해. 물론 그러려면 먼저 수상부터 해야겠지만 말이야, 하하하.”

“우리 영화가 북미 영화 시장을 완벽하게 휩쓸고 있는 만큼 아카데미 수상은 따 놓은 당상이 아니겠습니까?”

“그게 그렇지가 않아. 전통적으로 아카데미는 영화의 작품성을 몹시 중요시하거든. 그래서 제아무리 흥행에 성공한 영화라 할지라도 아케데미 수상만큼은 장담할 수가 없다고. 그간 흥행에 참패해도 작품성 하나만으로 아카데미 수상을 한 영화가 여럿 되거든.”

조지 루이스 감독의 말에 순간 씁쓸했던 내 전생의 기억이 떠올랐다.

‘작품성이라......’

전생에서 나는 영화의 소위 ‘작품성’에 연연하다, 대중들의 외면을 받은 경험이 있었다.

이를 통해 나는 뼈저리게 느낀 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제아무리 작품성이 뛰어난 영화라도 관객들이 봐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어. 결국 영화는 감독도, 제작자도, 비평가도 아닌 대중들이 보는 거니까.’

철저하게 대중성에 기반을 둔 영화를 만드는 것.

이번 생에서 내가 한 굳은 결심이었다.

“그나저나, 감독님.”

내가 조지 루이스 감독에게 말했다.

“제가 이번에 영화 시나리오를 하나 준비해봤는데요.”

“시나리오?”

“예.”

“오! 그거 꽤 구미가 당기는 이야기인걸? 영화 제작자로서의 킴의 능력은 이미 지난 <스페이스 워즈> 촬영을 통해 검증됐으니, 이제 스스로 영화를 만들어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과연 킴이 어떤 영화를 만들 생각인지 벌써부터 궁금해지는군.”

“일단 첫 영화이니 만큼 저예산으로 한번 만들어 볼 생각입니다.”

“저예산?”

“예. 대략 30만 달러 선에서 제작이 가능하도록 영화를 구상했습니다.”

“그 정도 제작비라면 로맨스나 드라마 쪽인가? 하긴 나도 앞선 영화에서 비슷한 장르의 영화로 꽤 재미를 봤지. 그 덕분에 <스페이스 워즈>를 제작할 수 있는 동력을 얻게 되었고.”

“로맨스나 드라마가 아닙니다.”

“아니라고?”

“예. 이번에 제가 구상한 영화는 근미래를 배경으로 포악한 범죄단과 이들의 뒤를 쫓는 경찰의 추격을 그린 로드 액션 영화입니다. 특히 자동차와 오토바이를 동원한 추격신이 영화의 가장 핵심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허......”

조지 루이스 감독이 살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자동차 추격신이 들어간 액션 영화를 불과 30만 달러의 예산으로 만들겠다고? 그게 가능한 일인가? 내 생각에는 못해도 백만 달러, 아니 만약 대규모의 추격신이 들어간다면 수백만 달러의 제작비도 모자랄 수 있을 것 같은데?”

“추격신의 규모를 작게 하고, 개런티가 낮은 신인 배우를 캐스팅하면 충분히 예산을 맞출 수 있습니다.”

“추격신의 규모를 축소하면 영화의 긴장감과 박진감이 떨어지지 않을까?”

“카메라의 앵글과 각도를 잘 이용하면 소규모로도 충분히 긴장감과 박진감을 살릴 수 있습니다.”

“출연진은? 일단 이름 없는 배우가 등장하는 것만으로도 관객들이 외면하는 충분한 이유가 될 수 있을 텐데?”

내가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처음부터 유명한 배우는 없지 않겠습니까? 누구에게나 이름 없는 무명 배우 시절은 있는 법이지요. 그리고 영화만 잘 만들어진다면 무명 배우의 출연이 오히려 영화의 신선함을 더해주는 요소로 작용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나참......”

조지 루이스 감독이 혀를 내둘렀다.

“킴 너의 그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르겠군.”

어디서 오긴.

내 머릿속에 들어 있는 ‘전생의 기억’에서 오는 것이지.

그것도 이미 완벽하게 검증된.

“뭐, 일단 시나리오부터 한번 살펴보자고.”

내가 가방에서 종이 뭉치 하나를 꺼내 조지 루이스 감독 앞에 올려 놓았다.

일전에 친구인 루브론에게 준 것과 동일한 시나리오 원고였다.

“이건가? 영화 시나리오가?”

“예.”

“어디 보자, 영화 제목이......”

조지 루이스 감독이 시나리오 가장 첫 페이지에 적혀있는 영화 제목을 향해 눈을 돌렸다.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이름의 영화 제목이 적혀있었다.

< 체이스 오브 리벤지(Chase of revenge): 더 비기너 >

13.

대다수 영화감독의 첫 작품은 저예산 영화이다.

아직 제대로 검증도 되지 않은 감독에게 막대한 예산을 투자하는 제작사는 거의 없기 때문이다.

그 때문에 영화감독은 배우 못지않게 필모그래피(filmography;작품 이력)가 중요하다.

흥행작이 많은 감독일수록 제작사로부터 대규모의 제작비를 투자받을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끔 저예산으로 제작된 영화가 블록버스터급 영화 못지않은 엄청난 흥행 수익을 기록하는 경우가 있다.

제작비 대비 수십, 아니 수백 배의 관람 수익을 올리며 소위 ‘대박’을 친 영화들이 있는 것이다.

그 대표적인 영화가 바로 ‘매드맥스(Madmax)’라는 영화였다.

매드맥스는 호주 출신 영화감독 조지 밀러가 만든 영화이다.

총 제작 비용은 불과 35만 달러.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무려 1억 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관람료 수익을 올렸다.

이는 최소 제작비로 최대 흥행을 거둔 영화 역대 2위에 랭크될 정도로 엄청난 기록이었다.

매드맥스는 저예산 영화인 만큼 스케일이 매우 작았다.

또한 영화의 배경을 근미래로 설정하고 있지만, 실제 영화에 그려진 장면은 이를 무색하게 할 정도로 누추한 시골 마을을 연상하게 했다.

각본 또한 몹시도 진부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가 성공할 수 있었던 것은 포스트 아포칼립스라는 참신한 세계관, 개성 있는 캐릭터, 훌륭한 액션신, 특히 무자비한 복수를 통해 관객들에게 큰 카타르시스를 안겨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랬다.

지금 내가 만들고자 하는 영화 <체이스 오브 리벤지(Chase of revenge): 더 비기너>는 바로 이 <매드맥스>를 모티브로 한 영화였다.

갑작스러운 지구 환경 이변으로 사회기반이 완전히 무너진 시대.

공권력의 부재를 틈타 온갖 범죄자들이 기승을 부리게 된다.

이 가운데 악당 티토(Tito)가 이끄는 폭주족들은 기물파손, 강간, 절도 등을 일삼으며 도시의 평화를 위협하는 가장 악랄한 세력이었다.

가히 세기말의 사이코패스 집단이라고 할 정도로 무자비한 티토 휘하의 폭주족들.

주인공 이든(Ethan)은 이들과 맞서는 몇 안 되는 경찰이다.

끈질긴 추적 끝에 그는 두목인 티토를 붙잡지만 부패한 권력에 의해 쉽게 풀려나게 되고, 오히려 티토의 보복으로 자신의 가족을 모두 잃게 된다.

이에 이든(Ethan)은 경찰을 그만둔 뒤 티토와 그의 부하들을 추격하기 시작하고, 그들을 붙잡아 하나하나 잔인하게 복수를 한다.

어떻게 보면 너무나도 진부한 영화 내용.

하지만.

‘중요한 것은 바로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추격 액션 장면이지.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촬영 기술을 총동원해 관객들에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본 적 없는 스피디한 액션 장면을 선보일 예정이야. 그렇게 되면 관객들도 이 영화에 열광하지 않을 수가 없을 테지. 실제 <매드맥스>라는 영화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기존의 <매드맥스>라는 영화를 모티브로 하되, 내용적인 면에서나 기술적인 면에서나 이를 훨씬 뛰어넘는 영화.

그것이 바로 이번에 내가 만들려고 하는 <체이스 오브 리벤지>라는 영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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