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 <스페이스 워즈> 제작에 참여하다 (4) >
10.
<스페이스 워즈> 비공개 시사회 당일.
대략 3, 40명 가량의 사람들이 시사회장을 찾았다.
투자사인 ‘20세기 폭스’사의 관계자, 루이스 필름 소속 핵심 스태프, 그리고 평소 조지 루이스 감독과 친분이 있는 할리우드의 유명 영화감독이었다.
“여, 조지. 이게 얼마 만입니까?”
조지 루이스 감독이 시사회장에 모습을 드러내자, 수염을 덥수룩하게 기른 남자 하나가 가장 먼저 인사를 청해왔다.
나는 그 남자가 누구인지 단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스티븐 스필버그!’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명감독이자, 블록버스터 영화계의 거장(巨匠)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특히 얼마 전에 개봉한 그의 영화 <죠스>는 북미 시장에서만도 무려 2억 달러라는 엄청난 흥행 성적을 거두며 본격적인 블록버스터 영화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
이후에도 ,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 <쥬라기 공원> 등등 다른 감독은 평생 한 번 만들어 보기도 힘들 흥행작을 대거 쏟아냈고, 이에 할리우드는 물론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영화감독으로 이름을 날리게 된다.
물론 이는 아직 나만 알고 있는 사실이기는 했지만.
“바쁠 텐데 이렇게 흔쾌히 와줘서 고맙군요, 스티븐.”
“무슨 말을 그렇게 섭섭하게 해요. 일전에 내가 조지에게 얼마나 많은 신세를 졌는데. 그러니 조지가 부르면 만사 제쳐놓고 달려와야지요, 하하.”
“늦게나마 축하드립니다. 듣자니 스티븐이 만든 영화 <죠스>가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다더군요.”
“운이 좋았습니다. 무엇보다 원작인 피터 벤츨리의 소설 내용이 워낙 좋았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아무리 잘 쓰인 원작 소설도 감독이 연출을 잘못하면 빛을 보기 힘든 법입니다. 이번에도 영화감독으로서 스티븐의 뛰어난 능력이 제대로 발휘됐기 때문에 이런 엄청난 흥행 성적을 거둔 것 아니겠습니까?”
“과찬입니다. 게다가 연출 능력이라면 조지도 둘째가라면 서러운 감독 아닙니까?”
스티븐 스필버그의 말에 조지 루이스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알잖아요. 난 감독보다는 각본 쪽이 더 체질에 맞는다는 걸. 이번 영화를 찍으면서도 나는 또 한 번 그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런데......”
조지 루이스가 뒤쪽에 서 있는 나를 힐끔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촬영 도중에 우연히 이 친구를 만났고, 이 친구 도움 덕분에 무사히 영화 촬영을 마칠 수 있었습니다.”
“누굽니까? 처음 보는 얼굴 같은데.”
“제임스 킴이라고 이번 영화에서 저에게 아주 큰 도움을 준 친구입니다. 나이에 걸맞지 않게 영화적 감각이 매우 뛰어나요. 내 장담하는데 킴은 앞으로 훌륭한 영화감독으로 성장할 것이 분명합니다.”
“그래요?”
스티븐 스필버그의 시선이 나와 마주쳤다.
조지 루이스 감독의 극찬 덕분인지,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에게서는 백인들이 동양인을 대할 때면 알게 모르게 드러나는 경계심 같은 것은 일체 찾아볼 수 없었다.
“만나서 반가워요. 스티븐 스필버그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나를 향해 손을 내밀며 악수를 청했다.
세상에!
세계적인 명감독 스티븐 스필버그와 악수를 하게 되다니.
그의 손을 맞잡으며 내가 마음속으로 생각했다.
당분간은 절대 손을 씻지 않으리라고.
“제임스 킴입니다. 유명한 감독님을 이렇게 실제로 뵐 수 있게 되다니, 무척이나 영광입니다.”
“뭘요.”
“자, 그럼......”
조지 루이스가 말했다.
“곧 영화가 시작될 예정이니, 남은 이야기는 시사회가 끝난 후에 하도록 하죠.”
“그럽시다.”
잠시 후.
시사회장의 조명이 모두 꺼지고.
드디어 <스페이스 워즈>의 시사회가 시작되었다.
***
A long time ago in a galaxy far,
far away......
(오래 전 멀고 먼 은하계에......)
***
내 눈에는 무척이나 익숙한 <스페이스 워즈>의 도입부 자막.
감격스러웠다.
영화 역사의 중요한 페이지를 장식할 영화의 시사회장에,
그것도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제작자와 명감독들 사이에서 함께 있다니 말이다.
그리고 그렇게,
2시간 30분이 넘는 긴 러닝타임이 지나가고, 드디어 영화가 끝이 났다.
“멋지군요, 조지.”
영화가 끝나고 가장 먼저 조지 루이스 감독에게 말을 걸어온 것은 유명 각본가 제이 콕스였다.
표정을 보아하니, 적어도 그는 이 영화를 무척이나 인상 깊게 본 모양이었다.
“은하계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이렇게나 섬세하고, 스펙터클하게 그려낼 수 있다니 말이죠. 남은 후반 작업만 잘 마무리하면 대중들의 엄청난 사랑을 받는 것도 무리는 아니겠어요.”
“그러게 말입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도 그의 말을 거들고 나섰다.
“내친 김에 내가 음악 작업을 도와줄 작곡가를 하나 추천해드리죠. 존 윌리엄스라고 꽤 쓸만한 친구가 있어요. 그 친구라면 이 영화에 어울리는 멋진 음악을 만들어줄 수 있을 겁니다.”
“어쩌면 이번 루이스 감독님의 영화가 앞선 스필버그 감독님이 세운 <죠스>의 흥행 성적을 완전히 갈아엎을 수도 있을 것 같은데요?”
“어이쿠, 그럼 내가 이러고 있으면 안 되겠네요. 더 멋진 영화를 만들어 다시 조지를 따라잡아야지요, 하하.”
“하하. 다들 여기서 이럴 것이 아니라, 같이 식사라도 하면서 이야기를 계속 나누도록 합시다. 오늘 투자사에서 특별히 만찬을 준비했다고 하니, 시간 괜찮으시면 끝까지 자리를 빛내주세요.”
시사회 반응이 좋아서 그런지,
한껏 고무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조지 루이스 감독.
그런 그가 다시 나를 향해 말했다.
“킴. 너도 같이 갈 거지?”
“아뇨, 감독님. 저는 그만 스튜디오로 돌아갈게요.”
“아니, 왜? 여기까지 와서는.”
“일개 연출팀 직원에 불과한 제가 만찬장까지 따라가는 건 다소 주제 넘는 일인 것 같아서요. 투자사 관계자나 손님들도 불편할 거고요. 그러니 감독님께서는 저 신경 쓰지 마시고, 손님들 응대 잘하셔요.”
“그래도......”
“괜찮다니까요. 그리고 전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후반 작업이 잘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도 좀 해야 하고요.”
“그래, 킴 생각이 그렇다면 어쩔 수 없지, 뭐. 그럼 조심해서 들어가. 나중에 내가 따로 킴 한테 근사한 저녁 한 끼 대접할게.”
“예, 감독님.”
돌아서는 조지 루이스 감독을 내가 다시 불러 세웠다.
“아 참, 감독님.”
“응?”
“영화 엔딩 크레딧에 제 이름 넣어주신 거 정말 감사했어요. 아까 그거 보는 순간, 저 울컥했어요.”
조지 루이스가 대답 대신 나를 향해 눈을 찡긋해 보였다.
일종의 깜짝 선물이었다.
그가 영화의 엔딩 크레딧에 아주 큼지막하게 다음과 같은 자막을 넣어준 것은.
......and special thanks to ‘JAMES KIM’
(제임스 킴에게 특별히 감사를 표한다.)
11.
LA의 한 식당.
루브론과 내가 저녁 식사를 하고 있었다.
그동안 우리 두 사람은 꽤 오래 서로 얼굴을 보지 못하고 있었다.
나는 나대로 <스페이스 워즈> 촬영 때문에 정신이 없었고, 루브론은 루브론대로 여러 영화에 오디션을 보느라 바빴기 때문이었다.
“촬영은 무사히 끝났어?”
루브론의 물음에 내가 대답했다.
“응. 어제 관계자들을 모아 특별 시사회까지 했어.”
“어때? 잘 될 것 같아?”
“뭐가?”
“<스페이스 워즈> 흥행 말이야. 킴 네가 처음으로 참여한 영화인데 잘 되면 좋잖아? 앞으로 네 이력에도 큰 도움이 될 테고.”
“성공할 거야. 그것도 엄청나게.”
“허, 아주 자신감이 넘치네.”
루브론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있잖아, 킴. 너 요즘 좀 많이 달라진 거 알아?”
“달라지다니, 뭐가?”
“예전의 너는 어딘가 많이 불안하고, 특히 뭔가에 대한 확신이 없는 사람이었거든. 그런데 요즘에는 달라. 눈빛도, 표정도 아주 자신감에 넘쳐 있어. 마치 대단한 뭔가를 가지고 있는 사람처럼.”
“그래서, 마음에 안 들어?”
“아니, 아주 맘에 들어. 이제 더 이상 너의 그 지겨운 신세 한탄을 들어주지 않아도 될 테니까, 흐흐.”
“넌 어때?”
“뭐가?”
“오디션 말이야. 아직 좋은 소식 없어?”
“말도 마라. 그동안 내가 오디션만 수십, 아니 수백 번은 봤잖냐. 그런데 단 한 번도 제대로 된 배역을 따내 본 적이 없네. 할리우드에 있는 영화 관계자들 눈이 다들 어떻게 된 것이 틀림없어. 나 같은 인재를 알아보지 못하다니 말이야.”
“실망하지 말고 계속 도전해봐. 스티브 가렐과 같은 배우는 스무 살에 데뷔했지만, 마흔 살이 넘은 나이에야 겨우 배우로서 빛을 발휘했으니까.”
“스티브 가렐? 그게 누군데?”
아차차.
스티브 가렐은 한참 후에나 등장하는 배우지.
전생 이후 가끔 하는 실수였다.
무심코 이전에 내가 살던 시대의 배우나 영화 이름을 입에 올리는 것은.
“있어, 그런 사람이.”
“근데, 킴.”
“왜?”
“네 뒤쪽 테이블에 있는 저 남자들, 아까부터 우릴 보는 눈빛이 좀 심상치 않은데?”
루브론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갑자기 내 뒤쪽에서 남성들의 거친 목소리가 들려왔다.
“뭐야? 이 식당은 원숭이에게도 음식을 파나?”
“원숭이는 원래 초식 동물인데, 저 노란 원숭이 놈은 신기하게도 빵이랑 스테이크를 먹네.”
“주제도 모르고 인간인 척하는 거지, 뭐. 클클.”
내가 슬쩍 뒤를 돌아보니,
건장한 백인 남자 둘이 나를 쳐다보며 낄낄 대고 있었다.
또 시작이군, 망할 백인 놈들.
저놈들은 자신의 하얀 피부를 아주 대단한 벼슬인 양 여긴다니까.
“저 새끼들, 지금 킴 너 들으라고 하는 소리지?”
“신경 쓰지 마.”
“어떻게 신경을 안 써? 저렇게 큰 소리로 대놓고 사람 욕을 하는데. 가만있어 봐, 킴. 내가 가서 저놈들을 혼쭐을 내주고 올......”
“그냥 앉아 있어, 루브론. 동양인인 나한테 이런 일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니까. <스페이스 워즈> 영화 촬영 때도 그랬어. 촬영 내내 그들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은근히 나를 멸시하고, 때론 따돌리기까지 했지. 그런데, 루브론. 그런 일이 있을 때마다 내가 그들과 싸우려고 든다면 과연 내가 이 미국 땅에서 멀쩡히 계속 살아갈 수 있을까?”
“키, 킴.”
“그래서 난 다른 방법으로 그들에게 복수하기로 했어.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최고의 명성을 가진 영화감독이 되어 실력으로 그들의 입을 다물게 만들겠다고. 내 말 무슨 뜻인지 이해하겠어, 루브론?”
“물론이지. 정말이지 킴 넌 내 친구지만 정말 멋진 놈이야.”
“그런 의미에서......”
내가 가방에서 종이 뭉치 하나를 꺼내 루브론 앞에 내려 놓으며 말했다.
“네가 이거 한번 검토해주라.”
“뭔데, 이게?”
“영화 대본. 그동안 내가 <스페이스 워즈> 촬영을 하면서 시간 나는 틈틈이 대본을 써왔거든. 아마도 이게 내 첫 감독 데뷔 작품이 될 것 같아.”
“그럼, 킴.”
루브론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주인공은 당연히 나를 써주는 거야?”
“아니. 이 영화의 주인공은 내가 따로 정해둔 사람이 있어.”
“읔! 이 매정한 놈. 일말의 고민도 없이 이렇게 단칼에 거절하다니.”
“대신 네가 원한다면 악당 역할을 주는 건 한번 고려해 볼게. 내가 보기에 넌 악역 쪽에 소질이 있어보이니까 말이야.”
“뭐? 악당? 나더러 나쁜 놈 역할을 하라고?”
“악당이 뭐 어때서? 매력적인 악당 역할을 훌륭히 소화해내는 배우는 주연배우보다 훨씬 사람들의 관심을 받는 경우도 많아. 악역 전문 배우 게리 올드만처럼 말이야.”
“게리 올드만? 그건 또 누군데?”
아차차.
또 후대에나 나오는 배우의 이름을 언급해버렸네.
“그런 사람이 있어. 어쨌든 내가 준 대본 한번 읽어보고 느낌이 어떤지 나한테 다시 말해줘.”
“알았어, 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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