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 <스페이스 워즈> 제작에 참여하다 (3) >
8.
<스페이스 워즈> 촬영은 아주 순조롭게 진행되어 갔다.
특히 내가 제안한 로토스코핑 기법을 영화 전반에 적용한 덕분에 영상의 퀄리티 또한 한층 더 높아졌다.
덕분에 나에 대한 조지 루이스 감독의 신뢰는 더욱 높아지게 되었다.
그런데.
영화의 마지막 신 촬영을 앞두고 대본을 받아든 나는 순간 깜짝 놀라고 말았다.
내가 알고 있는 <스페이스 워즈>의 명대사가 대본에서 감쪽같이 사라지고 전혀 다른 대사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스페이스 워즈>는 우주 반란군과 은하 제국 간의 전쟁을 배경으로 한 SF영화로 그 대략적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고아로 성장한 주인공 듀크.
그는 화려한 모험을 꿈꾸지만, 함께 사는 삼촌 내외는 그가 자신들의 일을 도우며 평범하게 살기를 바란다.
한편 평화롭던 은하계는 은하 제국의 독재 체제에 들어가게 된다.
한동안 은하 제국의 독재에 신음하던 은하계에서는 제국에 저항하는 반란군이 만들어지고, 극비의 정보를 가진 레나 공주가 제국으로부터 탈출을 시도하다 뒤쫓아온 추격대에 체포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체포 직전 레나 공주는 비밀정보를 담은 드로이드를 제국군 몰래 밖으로 빼돌리는데, 주인공인 듀크가 우연히 이를 손에 넣게 된다.
듀크는 레나 공주가 남긴 비밀정보에 따라 은하 제국과의 전쟁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비밀 기사단의 일원 오비완(Obi-Wan)을 찾아가게 된다.
오비완은 듀크에게 출생의 비밀과 더불어 사악한 제국의 지도자인 다스 베이더가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다고 말한다.
이에 듀크는 아버지를 살해한 다스 베이더에게 복수하고, 그들에게 붙잡힌 레나 공주를 구출하기 위해 모험을 떠나게 되는데......
‘영화의 가장 하이라이트이자, 사람들 사이에서 두고두고 회자되는 장면이 바로 주인공인 듀크과 그의 아버지를 죽인 원수인 다스 베이더의 마지막 전투 장면이지. 그리고 여기서 관객들을 깜짝 놀라게 만든 그 유명한 명대사가 나오게 되고. 그런데......’
내가 다시 고개를 갸우뚱했다.
‘왜 내가 기억하고 있는 대사와 대본에 나와 있는 대사가 다른 것이지? 설마 내가 이 영화에 개입하는 바람에 나비효과가 일어난 것인가?’
안되지, 절대 안 되지.
영화사에 길이 남을 이 명장면이 사라지는 모습을 그냥 이대로 눈 뜨고 그냥 보고 있을 수만은 없지.
때마침 조지 루이스 감독이 나의 곁으로 다가왔다.
“킴, 여기 있었군.”
“아, 조지. 안 그래도 찾아뵈러 가려던 참이었습니다.”
“왜, 또 무슨 좋은 아이디어라도 떠올랐어?”
“그게 아니라......”
내가 손에 든 대본을 가리키며 말했다.
“여기 있는 다스 베이더의 대사 말이에요.”
“다스 베이더의 대사?”
“예. 이 대사를 조금 수정하는 것이 어떨까 해서요.”
“어떻게?”
“음, 제 생각에는 이 장면을 본 사람들이 다들 깜짝 놀라도록 반전 내용을 넣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가령 예를 들면 영화의 최종 빌런인 다스 베이더의 대사를 로 바꾸어서, 알고 보니 다스 베이더가 주인공 듀크의 아버지였다는 내용을 넣으면......”
“잠깐만, 킴!”
내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조지 루이스 감독이 갑자기 내 손을 잡아끌며 황급히 어딘가로 데려갔다.
“왜 그래요, 조지?”
“같이 갈 곳이 있어. 그러니 일단 날 따라와.”
잠시 후, 조지 루이스가 나를 데려간 곳은 <스페이스 워즈(Space Wars>의 각본가인 로런스 캐스던의 사무실이었다.
노크도 없이 다짜고짜 사무실로 들이닥친 조지 루이스를 본 로런스 캐스던이 살짝 놀란 얼굴로 물었다.
“무슨 일이에요, 조지?”
“아무래도 킴이 또 대형 사고를 친 것 같아서.”
조지 루이스가 나를 바라보며 말했다.
“다시 한번 말해봐, 킴. 아까 나에게 했던 말을 로런스 앞에서도 다시 한번 해보라고.”
“아까도 말했다시피 영화의 마지막에 극적인 효과를 주기 위해 다스 베이더의 대사를 조금 바꾸는 것이 좋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내가 아까 조지 루이스에게 했던 다스 베이더의 대사를 똑같이 들려주었다.
역시나.
각본가인 로런스 캐스던의 반응도 조지 루이스의 그것과 완전히 일치했다.
“미쳤군. 어떻게 이런 생각을 다......”
“맞지? 로런스 자네도 나와 같은 생각이지?”
“정말이지 이건 내 귀로 듣고도 믿을 수가 없군요. 어떻게 저 친구가 시나리오를 쓴 조지보다, 각본가인 저보다 훨씬 더 멋진 대사를 생각해낼 수가 있는 거죠?”
“어떻게 된 거야, 킴. 어떻게 이런 훌륭한 대사를 생각해낼 수 있었냐고?”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내가 대답했다.
“그냥 오늘 대본을 받아드는 순간 문득 영화의 끝에 반전 내용을 넣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대사를 떠올리자마자 바로 조지에게 가장 먼저 이야기를 한 거예요.”
“역시 킴이야. 킴은 우리 영화 제작에 있어 절대 없어서는 안 될 보물 같은 존재라고, 하하하.”
“뭐, 뭘요.”
조지 루이스가 로런스 캐스던을 향해 말했다.
“어때? 킴의 말대로 대본을 수정하는 것이 가능하겠어?”
“물론이죠. 이 좋은 아이디어를 절대 그냥 놓칠 수는 없으니까요.”
“대신에 오늘 촬영은 예정대로 진행하는 걸로 하지. 혹시나 영화의 반전에 대한 비밀이 새어 나가면 안 되니까 말이야.”
“아무리 그래도 다스 베이더 역을 맡고 있는 배우에게는 이 사실을 알려줘야 하지 않을까요?”
“아니, 일단은 기존 대본대로 촬영을 진행할 거야. 그리고 나중에 그를 따로 불러서 비밀 서약서를 받은 다음에 다시 수정된 대본대로 대사를 녹음할 거야.”
“하긴. 어차피 다스 베이더는 별도의 가면을 쓰고 있어서 입 모양이 화면에 노출되지 않으니, 나중에 따로 녹음해서 음성을 입혀도 상관은 없겠군요.”
“그렇지. 그럼 이번 일은 로런스 자네가 수고 좀 해줘.”
로런스 캐스던의 사무실을 나서며,
조지 루이스 감독이 나를 향해 빙긋 웃으며 말했다.
“고마워, 킴. 네 덕분에 영화의 완성도가 한층 더 높아지게 됐으니까 말이야. 정말이지 난 킴 널 알게 된 것이 엄청난 행운이라고 생각해.”
“그, 그런가요?”
“그래. 지금까지 영화를 촬영해오면서 이런 경우가 한두 번 있었던 일이 아니잖아? 내가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영화 촬영을 했지만, 킴 너만큼 뛰어난 영화적 감각을 가진 사람을 본 적이 없었어. 무엇보다 이번 <스페이스 워즈>에 대한 우리 두 사람의 생각이 무서울 정도로 정확하게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 나는 특히 마음에 들어.”
“하지만 영화 흥행에 대한 생각은 조금 다른 것 같은데요? 전 이 영화가 엄청난 흥행을 기록할 것이라고 보는데, 조지는 항상 불안해하잖아요.”
“그건 감독이라면 누구나 가지게 되는 일종의 숙명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면 돼. 나중에 킴이 직접 자신의 손으로 영화를 만들게 되면 지금 내 심정을 이해할 수 있을 거야. 내 장담하는데 그때는 절대 지금과 같은 자신감을 유지할 수 없을걸? 하하!”
조지 루이스의 그 심정.
지금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지난 생에서 나도 새로 촬영한 영화의 개봉일을 앞두고 몇 날 며칠을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경험이 여러 번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쨌거나 오늘 일은 극비사항이니, 킴 혼자만 알고 있어야 해. 다른 누구한테도 말하면 절대 안 돼.”
“알겠어요.”
“자, 그럼......”
조지 루이스 감독이 한손으로 나의 어깨를 감싸 앉으며 말했다.
“<스페이스 워즈>의 마지막 촬영을 한번 시작해보도록 할까?”
9.
“컷! 아주 좋았어!”
조지 루이스 감독의 OK 사인이 떨어졌다.
이로써 무려 2년간에 걸친 영화 <스페이스 워즈>의 촬영이 모두 끝이 났다.
이제 남은 것은 음악이나 영상편집과 같은 후반부 작업.
그리고 이 작업이 모두 끝나면 드디어 극장에서 관객들에게 선을 보이게 될 것이다.
“다들 수고 많았어.”
“고생하셨습니다.”
“고생했어요.”
촬영장에 있던 촬영팀과 배우들이 서로 인사를 나누었다.
그들의 표정에는 영화 촬영이 무사히 끝났다는 안도감과 아쉬움이 서로 교차하고 있었다.
“킴, 혹시 주말에 시간 돼?”
촬영장을 나서며, 조지 루이스 감독이 나를 향해 물었다.
“주말에요?”
“응.”
“왜요? 무슨 일 있어요?”
“이번 주말에 비공개 시사회가 있을 예정이거든. 아직 음악과 영상편집 작업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니지만, 제작사 측의 요청도 있고 해서 소수의 관계자만 초청해서 별도의 시사회를 가질 계획이 있어서. 그래서 혹시 킴도 시간 되면 참석하라고.”
“시간이 안 돼도 만들어야죠. 이 영화, 감독님도 그렇지만 저도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요.”
“그럼 잘됐군. 킴이 나 대신 시사회에 참석해서 사람들 반응 좀 살펴보고 오라고. 그리고 나한테 이야기를 좀 해줘.”
“예?”
내가 살짝 놀란 표정으로 말했다.
“지금 그 말은 감독님은 참석하지 않으실 예정이라는 뜻이에요?”
“난 그냥 스튜디오에 남아서 후반 작업이나 하려고. 사람들 앞에서 내 영화를 공개적으로 선보인다고 생각하니, 왠지 좀 낯뜨거운 생각이 들어서.”
“오, 조지!”
내 머릿속에 남아 있는 전생의 기억에서도 그랬다.
실제로 조지 루이스는 <스페이스 워즈>의 시사회 날, 심한 부담감으로 자신의 스튜디오에 틀어박혀 있었던 것이다.
영화가 처음 개봉하는 날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여전히 자신의 스튜디오에 틀어박힌 채 한 발자국도 나오지 않았고, 영화사 관계자 중의 하나가 전화로 알려준 뒤에야 <스페이스 워즈>가 엄청난 반향을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러지 말고 함께 가요, 조지. 내가 촬영 기간 내내 누차 말했잖아요. 이 영화는 반드시 성공하게 될 거라고요.”
“정말 그럴까?”
“물론이에요. 그러니 자신감을 가져요, 조지.”
“......”
머뭇거리는 조지 루이스를 향해 내가 다시 말했다.
“일전에 조지가 나한테 그랬잖아요. 자신의 영화에 대해 갖는 불안감은 감독이라면 누구나 갖게 되는 숙명과도 같은 것이라고요. 그러니 피하지 말고 정면으로 대응해요. 여태까지 조지를 믿고 따라온 수많은 사람의 노력을 생각해서라도요.”
“......킴.”
옅은 미소를 지으며 조지 루이스 감독이 말했다.
“아무리 봐도 킴은 초보 영화인 같지 않아. 적어도 수십 년을 영화판에 뒹군 베테랑 같다고.”
“그, 그럴 리가요.”
“좋아. 내 한번 생각을 고쳐먹어 보도록 하지. 킴의 말대로 나는 이 영화를 총괄하고 있는 ‘감독’이니까 말이야.”
“잘 생각하셨어요, 조지. 까짓거 죽기 아니면 까무러치기 아니겠어요,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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