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 <스페이스 워즈> 제작에 참여하다 (2) >
내가 조지 루이스 감독을 향해 말했다.
“로토스코핑 기법을 활용하면 라이트 세이버의 광선 효과를 더욱 극대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로토스코핑 기법?”
“예.”
로토스코핑 기법이란 사람이나 사물의 움직임을 카메라로 찍은 후 외형선을 한 프레임씩 베껴 애니메이션으로 만든 다음 이를 다시 원본 이미지와 합성하는 기법을 말한다.
쉽게 말해 실사 이미지와 애니메이션을 합성하는 방법이다.
이 기법은 원래는 만화 애니메이션을 위해 개발되었으나, 영화 특수 시각효과의 일종으로도 활용이 되곤 했다.
“그러니까 지금 자네의 말은 실제 라이트 세이버를 제작해 촬영하는 것보다 로토스코핑 기법을 활용하면 더욱 화려하고 섬세한 시각적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이다, 이 말인가?”
“그렇습니다, 감독님.”
조지 루이스 감독의 눈썹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이를 보아하니, 지금 그의 머릿속이 아주 복잡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조감독!”
조지 루이스 감독이 갑자기 큰소리로 외쳤다.
“조감독, 이리 와봐!”
“예, 감독님.”
“지금 바로 회의실에 연출팀들 모두 집결시켜. 내가 촬영과 관련해서 긴히 의논할 일이 있으니까 말이야.”
“예, 알겠습니다.”
조감독이 연출팀을 소집하기 위해 허겁지겁 달려가는 모습을 보고 있던 조지 루이스 감독이 다시 나를 향해 말했다.
“자네 이름이 뭐라고 했던가?”
“제임스 킴입니다. 편하게 그냥 킴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이봐, 킴.”
“예, 감독님.”
“앞으로 넌 매일 내 촬영장에 출근한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그런 허드렛일은 하지 않아도 돼. 내 옆에 착 달라붙어서 영화 촬영 장면을 지켜보고 있다가 떠오르는 아이디어가 있으면 그때그때 나에게 이야기하도록 해.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어?”
“예, 감독님.”
“그리고 좀 있다 진행될 회의에도 참석해. 사람들 앞에서 그 로토스코핑인지 뭔지 하는 기법을 다시 한번 더 설명해주란 말이야.”
“알겠습니다, 감독님.”
‘나이스!’
내가 조지 루이스 감독 몰래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의 신뢰를 얻어내는 일을, 그것도 아주 단시간에 해냈다는 기쁨 때문이었다.
잠시 후.
조지 루이스 감독을 비롯한 연출팀 전원이 참석한 긴급회의가 시작되었다.
회의는 내 예상대로 흘러갔다.
연출팀 모두가 만장일치로 내가 낸 의견, 다시 말해 로토스코핑 기법을 활용해 라이트세이버의 효과를 만들어 내는 것에 동의를 한 것이다.
그리고 이 사건은 <스페이스 워즈> 촬영장 내에서의 내 입지를 굳히게 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나는 이 영화의 정식 팀원이 되어 영화 촬영 내내 함께하기로 결정된 것이다.
특히 이 사건을 계기로 나는 조지 루이스 감독의 신뢰를 한 몸에 받게 되었다.
매 촬영 때마다 그는 나에게 이런저런 질문을 던졌고, 그때마다 나는 내가 알고 있는 전생의 기억을 동원해 그에게 많은 조언을 해주었다.
그 결과 시간이 갈수록 나와 조지 루이스 감독의 관계도 점점 돈독해져 갔다.
그는 촬영장 내에서는 물론이고, 촬영장 밖에서도 항상 나를 자신의 곁에 두려고 했다.
짧은 시간에 우리 두 사람은 마치 의형제와 같이 친한 사이가 된 것이었다.
6.
“감독님, 여기가 어딥니까?”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회사 앞에 도착한 내가 조지 루이스 감독을 향해 물었다.
오늘은 <스페이스 워즈> 촬영이 없는 날.
이를 틈타 조지 루이스 감독이 특별히 나를 이곳으로 데려온 것이었다.
“여긴 인더스트리얼 라이트 앤 매직(Industrial Light & Magic)이라고, 우리 회사에 속해 있는 시각효과 전문 스튜디오야.”
“!!!”
조지 루이스의 말에 내가 속으로 깜짝 놀랐다.
‘인더스트리얼 라이트 앤 매직? 이 회사는 웨타 디지털과 더불어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CG제작 회사잖아?’
인더스트리얼 라이트 앤 매직(ILM)은 국내외를 막론하고 영화를 제작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을 정도로 유명한 회사이다.
왜냐하면 할리우드에서 만들어지는 유명 블록버스터 영화의 CG작업 대부분이 이 회사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인디아나 존스, 쥬라기 공원, 터미네이터, 아바타, 미션 임파서블, 아이언맨 등등 이름만 대면 알 만한 영화의 CG 대부분이 이곳 ILM의 손을 거쳐 만들어졌다.
물론 지금의 ILM은 루이스 필름 산하의 작은 스튜디오에 불과했다.
하지만 현재 제작되고 있는 <스페이스 워즈>가 대성공을 거두면서 ILM 또한 비약적인 성장을 하게 될 것이었다.
“킴이 전에 나한테 이야기했잖아. <스페이스 워즈>에 등장하는 라이트세이버를 로토스코핑 기법을 활용해서 촬영하자고. 그래서 내가 이곳 ILM에 그 작업을 의뢰했어. 오늘은 그 작업 결과를 확인하러 온 것이고.”
“아,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킴도 영화감독이 꿈이라고 그랬지?”
“예.”
“나중에 혹시 특수 시각효과가 필요하면 여기서 작업해. 내가 특별히 싸게 해줄 테니까 말이야, 하하.”
조지 루이스가 농담을 던졌다.
하지만 나에게는 그것이 농담처럼 들리지 않았다.
앞으로 나는 할리우드를 주름 잡을 유명 영화들을 많이 만들 것이고, 이를 위해서는 전문적으로 CG작업을 해줄 실력 있는 전문업체가 필요할 것이다.
여기에 가장 적격인 곳이 바로 ILM이 될 테고.
“들어가지. 내 킴에게 따로 소개시켜 줄 사람도 있으니. 아마 킴도 알아두면 앞으로 영화 제작을 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수 있을 거야.”
조지 루이스의 뒤를 따라 내가 스튜디오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한 남자가 반갑게 우리를 맞아 주었다.
“여, 조지. 연락도 없이 갑자기 웬일이오?”
“맡겨둔 작업 때문에요. 진행 상황이 궁금해서 견딜 수가 있어야죠, 하하.”
“하하, 그 급한 성질은 여전하군. 그나저나......”
남자를 나를 힐끔 쳐다보면 말했다.
“못 보던 친구 같은데, 누구?”
“아, 인사해, 킴. 이쪽은 우리 영화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는 랄프 맥쿼리 씨. 그리고 이쪽은 제임스 킴이라고 내가 이번에 새로 영입한 직원입니다.”
“반갑소, 미스터 킴.”
랄프 맥쿼리가 내민 손을 맞잡으며 내가 인사했다.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맥쿼리 씨.”
“혹시 킴이 이번 영화에 로토스코핑 기법을 쓰자고 제안했던 사람이요?”
“맞습니다.”
“젊은 친구가 이쪽 경험이 제법 많은가 보군요. 실사 영화에 애니메이션 기법을 적용할 생각을 다 한 것을 보면.”
“아닙니다, 저도 이제 막 영화를 배워가고 있는 참입니다.”
“조지 저 친구가 남의 말을 잘 듣는 사람이 아니야. 고집이 아주 황소고집이라고. 그런 조지가 킴의 말을 듣고 작업을 수정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은 킴이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증거이지, 하하.”
“천만의 말씀이십니다, 랄프 씨.”
조지 루이스 감독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어떻게, 작업은 좀 진척되고 있습니까?”
“물론이지. 일단 작업 된 부분을 한번 확인해보시겠소?”
“예. 그러려고 여길 왔는걸요.”
“날 따라오시게들.”
랄프 맥쿼리의 안내에 따라 조지 루이스 감독과 내가 스튜디오 안쪽의 영사실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로토스코핑 기법으로 편집된 영상들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훌륭하군.”
한동안 영상을 살펴보던 조지 루이스 감독이 감탄을 쏟아냈다.
“실사 이미지만으로 촬영된 장면보다 훨씬 더 라이트세이버의 움직임이 살아났어!”
“문제는 손이 아주 많이 가는 작업이라는 거요, 조지. 특히 영화 전반에 걸쳐 이 작업을 하려면 못해도 수십 명의 애니메이터가 필요할 거요. 그것도 아주 숙련된.”
“영화의 퀄리티만 높일 수 있다면 뭔들 못하겠습니까?”
“비용을 감당할 수 있겠소? 안 그래도 지금 제작비가 많이 빠듯하다고 들었는데?”
“안 되면 제작사를 찾아가 투자자들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매달려야지요.”
조지 루이스 감독이 나를 향해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이게 다 킴 자네 덕분이야. 자네의 조언 덕분에 영상이 훨씬 더 입체적이고 박진감 있게 만들어졌어.”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입니다.”
“내 이 신세 언젠가는 꼭 갚아주지. 나중에 자네가 정말로 영화감독이 되어 메가폰을 잡게 된다면 내가 물심양면으로 자네를 도와주도록 하겠네.”
“말씀만으로도 감사합니다, 감독님.”
전생 이후 처음으로 맺은 조지 루이스 감독과의 인연.
이는 앞으로 내 할리우드 영화 인생에 있어 매우 중대한 자산이 될 것임이 틀림없었다.
그래픽 디자이너 랄프 맥쿼리와의 인연 또한 마찬가지였고.
7.
“요즘 뭐가 그렇게 바빠? 이러다 아버지가 네 얼굴 까먹겠다.”
오래간만에 집에 들어온 나를 향해 아버지가 말했다.
“저 취직했잖아요.”
“취직?”
“예. 루이스 필름이라고 영화 제작회사에요.”
“루이스 필름?”
“예. 조지 루이스라는 유명 감독이 만든 회사인데, 거기서 요즘 SF영화 하나를 만들고 있거든요? 거기서 제가 아주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어서 요즘 집에도 잘 못 들어올 정도로 바빠요.”
“그래도 용케 영화 제작사에 취직을 했구나. 난 네가 자리를 잡는 데까지 한참 시간이 걸릴 줄 알았는데.”
“나중에 영화 시사회 시작하면 아버지도 초대할게요. 감독님이 엔딩 크레딧에 제 이름도 큼지막하게 실어주신다고 했거든요.”
“그래? 그렇담 나도 한번 가서 봐야겠구나. 우리 아들이 참여한 첫 영화인데, 이 아비가 빠질 수는 없지.”
“감독님이 저를 아주 신뢰하세요. 매 신(scene)을 찍을 때마다 꼭 저와 상의해서 진행을 하거든요.”
“그게 정말이냐?”
“예. 덕분에 영화 곳곳에 제 아이디어들이 많이 들어가게 되었어요. 나중에 영화 보시고 나면 어떤 장면들이 제 아이디어로 만들어지게 되었는지 다 설명해드릴게요.”
“녀석. 그래도 제법 밥값은 하고 있는 모양이구나.”
“그보다 아버지. 혹시 돈 좀 있으세요?”
“돈? 왜 또 갑자기 돈타령이냐? 너 이제 더 이상 아버지에게 손 안 벌리겠다고 호언장담하지 않았었냐?”
“그게 아니라 여윳돈 있으시면 20세기 폭스사 주식 좀 사두시라고요. 나중에 영화 개봉하고, 전 세계적으로 큰 히트를 치게 되면 폭스사의 주식도 엄청나게 오를 예정이거든요.”
“이놈아. 그걸 네가 어떻게 알 수 있냐. 영화가 성공할지 실패할지 말이야.”
“다 아는 수가 있어요. 그러니 여윳돈 있으시면 꼭 폭스사 주식 사두셔요. 아시겠죠?”
“한국 속담에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내 주제에 투자는 무슨 투자야.”
“절 한번 믿어보시라니까요, 아버지.”
“됐다, 이놈아. 일없다.”
“......”
이거야 원.
속을 뒤집어 까 보일 수도 없고.
“그나저나 아버지. 저 머잖아 영화 제작에 들어갈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영화? 네가 벌써 영화를 만든다고?”
“예. 루이스 감독님이 이번에 촬영하고 있는 <스페이스 워즈>가 성공하면 제가 영화를 찍는데 도움을 주신다고 했거든요.”
“그게 정말이야?”
“예. 물론 처음부터 큰 지원을 해주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저예산 영화 한 편 정도는 찍을 수 있을 거예요.”
“그건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을 때의 이야기 아니냐? 실패하면 말짱 도루묵이 되는 거고.”
내가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반드시 성공할 거예요. 그것도 모든 사람들이 다 깜짝 놀랄 정도로 아주 큰 성공을 할 거예요.”
“허, 그놈 참. 뭘 믿고 저렇게 호언장담을 하는지.”
“후후,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어서 그러는 거예요, 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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